끊임없는 송출 비리와 인권 침해를 반성하며 도입된 외국인 고용허가제…중기협 등 막대한 커미션 챙겨온 이익단체들을 대행업무에 또 참여시켜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의정부역에서 내리거나 늦은 밤 지친 몸을 이끌고 가리봉5거리를 걷다 보면, 어김없이 곱슬머리에 짙은 눈빛의 외국인 노동자들을 만날 수 있다. 1994년 산업연수생제가 도입된 뒤 지난 13년간 그들은 한국 중소기업들이 치열한 세계 경쟁에서 가격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준 산업 역군이 되어왔다.
대한민국과 외국인 노동자들의 지난 13년 동안의 동거가 늘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유해한 독극물에 노출돼 앉은뱅이가 되고 만 타이 노동자들과 오랜 임금 체불을 이기지 못해 불법 체류자가 되고만 네팔 노동자들과 한국 돈으로 1천만원 가까운 커미션을 내고 코리안 드림을 꿈꿨던 스리랑카 노동자들의 깨어진 꿈을 이따금 지면을 통해 만나게 된다.
연수생 장사, 한 해에 100억원
2004년 8월17일 도입된 외국인 고용허가제는 산업연수생제에 대한 한국 사회의 반성을 일정 부분 법제화했다는 점에서 이전보다 한 걸음 전진한 제도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산업연수생제 아래서 외국인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이었으며(노동부는 이들이 몇명 들어와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송출 업무를 대행해온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이하 중기협)와 한국건설협회 등 업계 이익단체들은 끊임없이 이어지는 송출 비리로 바람 잘 날 없었다. 이에 견줘 고용허가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했으며 송출 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 외국의 국가기관이나 공공기관이 직접 인력을 뽑아 그 명단을 한국 쪽에 넘기도록 했다. 또 한국에 노동자들이 입국하면 공공기관인 산업인력관리공단이 직접 나서 교육과 사후관리 업무를 맡도록 했다. 2005년 5월11일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는 2007년 1월1일부터 그동안 병행 실시돼온 산업연수생제를 폐지하고 고용허가제로 외국인력제도를 일원화하기로 방침을 정했고, 그 시행은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상태다. 겉으로 보기엔 모든 일이 제대로 굴러가고 있는 듯했다.
그러는 사이 물밑에선 반격이 일어나고 있었다. 산업연수생제 아래서 인력 송출 대행 업무를 맡고 있는 중기협(24만원), 대한건설협회(15만원), 농협중앙회(46만2천원), 수협중앙회(43만6천원) 등은 사업주에게서 연수생 1명당 수십만원의 사후관리비를 받고 있다. 2005년 현재, 중기협 한 곳의 추천으로만 입국한 연수생은 3만417명, 전체 연수생은 4만2872명에 이른다. 중기협 한 곳에서만 연수생 장사로 1년에 73억원, 4개 단체 전체로 보면 100억원에 이르는 막대한 수입을 얻고 있는 셈이다.
그 대가로 중기협 등이 하는 역할은 무엇이었을까.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2006년 9월30일 펴낸 (법무부 기획과)에서 그들이 하는 역할이 “거의 없다”는 것을 완곡한 어조로 전하고 있다. “사업장 배정 후 법무부에 외국인 등록, 근무처 변경, 체류기간 연장 신청 대행, 출국 지원 등의 일은 업종단체(중기협 등 4개 단체)에서 대행하지 않고 산업연수생을 사용하는 업체에게 직접 수행한다. 또 외국인에 대한 고충상담, 이탈방지 현장방문 등 사후관리 업무는 업종단체에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해외 송출기관의 국내 지사가 주로 담당하고 있다.”
해마다 수십억~수백억원의 고정 수입을 보장하는 이권 사업을 “그만두라”고 했을 때 이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조직은 없을 것이다. 2005년 5월11일 산업연수제 폐지 결정을 내린 정부의 정책 방향은 일곱 달 뒤인 2005년 12월13일 큰 전환을 맞게 된다. 그동안 산업인력공단이 전담해온 고용허가제 대행 업무에 중기협 등 4개 기관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것이다. 그 정책 변화에 중기협 등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 알려진 것은 물론 없다.
뇌물 수수, 불법 입국…
우삼열 외국인이주노동자대책협의회 사무국장은 “그래서 우리가 다시 마주하는 것은 고용허가제의 탈을 쓴 산업연수생제”라고 말했다. 고용허가제의 근본 취지는 첫째가 송출 비리 근절이고, 둘째가 외국인 노동자의 노동자성 인정이었다. 새로운 제도 아래서 중기협 등은 해외 현장에서 직접 노동자 선발과 면접을 할 수 있고, 입국 직후 취업 교육 업무도 맡을 수 있다. 또 산업 현장에서의 각종 신청·신고와 고충상담 등 고용과 생활지원 관련 업무도 담당하게 된다. 이는 대한민국 정부가 산업연수생제의 시행착오와 그에 대한 반성으로 도입한 고용허가제의 경험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수많은 비리를 저질러온 중기협에 외국인 노동자를 현장에서 선발할 수 있는 권한을 준다고 해보세요.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최현모 한국이주노동자인권센터 사무처장이 말했다. 유광수 중기협 연수기획팀장은 “초기에 우리에게도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지만, 중기협이 저질러온 화려한 범죄 행각 앞에서 무색한 변명일 뿐이다. 1994년 중기협 연수협력단장이 송출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아 처벌된 것을 시작으로 1998년에는 박상희 중기협 회장이 수천만원 상당의 호랑이 가죽을 받아 기소됐으며, 2002년에는 중기협의 전 상근부회장 등이 50여 명의 브로커와 손잡고 필리핀과 중국에서 300여 명을 불법 입국시켜 5억여원을 받다가 구속됐다. 2000년에는 필리핀 여자 산업연수생이 회사 쪽에 낸 피해보상 청구소송을 무마하기 위해 현지 인력 송출회사에 협박을 일삼았고, 2001년 국정감사 때는 104억원에 달하는 연수생 적립금으로 회장이 타는 에쿠스 승용차와 직원용 콘도 회원권을 구입한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고용주인 중소기업들이 모여 만든 이익단체에 노동자의 고충상담과 노동법 위반에 대한 신고 접수 업무까지 맡긴다는 것은 정부 방침의 옳고 그름을 떠나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김종각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그동안 해온 것처럼 산업인력관리공단이 처리하면 될 업무에 중기업 등을 참여시켜 정부가 이들의 이권을 보장해주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시민사회단체들의 비판이 두려웠는지 2006년 2월3일 이후 여덟 차례에 걸쳐 관계부처 회의를 진행하면서 공청회는커녕 시민사회단체의 의견을 묻지 않았다.
부랴부랴 토론회 급조
지난 10월2일 이 문제를 놓고 서울 마포구 한국산업인력공단 10층 국제회의실에서 열린 긴급토론회는 싸늘한 분위기로 얼어붙고 말았다. 국무조정실은 고용허가제 제도 변화 내용을 시민사회단체들에 숨겨오다 사실이 밝혀지자 부랴부랴 토론회를 급조했다. 강태옥 국무조정실 노동심의관은 토론회에서 “완벽하진 않겠지만, 정부 부처의 이견을 좁혀 만든 최선의 안이라 자부한다”고 말했다. 그가 말한 최선은 누구의 최선일까. 외국인 노동자와 중소기업들의 최선일까, 중기협 등 이익단체들의 최선일까. 정부는 10월 말께 외국인력정책위원회를 열어 정부안을 확정할 계획을 밝혔고, 시민사회단체들은 이르면 10월10일부터 정부안 철회를 요구하는 밤샘 농성을 벌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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