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 독일어로 라틴어 성경 번역, 민중 깨우치면서 이후 현대 표준독일어로 …유럽인의 3분의 1이 사용, 영어 안 통할 땐 “독어 할 줄 아느냐”고 물어보라
▣ 슈투트가르트=한귀용 전문위원 hanguiyong@hanmail.net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외국에 살면서 힘든 것은 고향과 다른 것을 뼈저리게 느낄 때다. 그럴 때마다 한국과 비슷한 것이 무엇인지 일부러 찾으며 위안을 삼는다. 이렇게 찾은 것 중 하나가 바로 독일의 ‘분단과 통일’ ‘언어의 정립 과정’이다.
교실에서 오르가슴을 느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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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천절인 10월3일은 동독과 서독으로 분단됐던 독일이 1989년 통일된 날이다. 통일은 기쁨과 기대도 가져왔지만, 힘든 문제와 무거운 부담도 독일인들에게 가져왔다. 그중 하나가 언어의 차이였다.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 있는 동안, 체제의 다름이 가져온 서로 이해할 수 없는 신생어와 사투리로 인한 언어 장벽은 통일을 전후해 독일인들에게 큰 ‘차이’로 다가왔다.
이런 부담을 독일인들은 자연스럽게 일상생활에서 잘 풀어나갔다. 통일 전부터 왕래가 가능했고, 끊임없는 접촉을 하면서 서로의 언어를 수시로 접했다. 체제와 장벽에 의한 언어의 차이는 모든 독일인들이 인내와 관용으로 극복해야 하는 문제였고, 언론도 통일을 전후로 동??뗌?다른 언어를 접하게 하면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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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어 배우는 언어는 더 어렵고, 머릿속에 집어넣어도 순간 바로 뛰쳐나오기 마련이다. 머리 쥐어짜며 처음 독일어를 배울 때, 그나마 정이 가게 한 것이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 과정을 떠올리게 하는 ‘마틴 루터와 현대 독일어의 정립 과정’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성경은 소수의 귀족층과 성직자만이 읽을 수 있는 어려운 라틴어로 쓰여 있었다. 대다수 민중은 라틴어로 쓰인 어려운 성경을 읽을 수 없었고, 이는 가톨릭 교회와 교황의 권력 유지에 큰 역할을 했다.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와 관련해 교회와 갈등을 빚고, 끝내 교회에서 축출된 마틴 루터는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1521년 망명지인 바르트부르크에서 인근 지방의 방언이던 고지 독일어를 중심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번역된 독일어 성경은 독일 민중이 쉽게 읽고, 실제 성경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를 알게 되면서 의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된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민중의 의식을 깨우치는 계기가 된 성경 번역에 사용한 고지 독일어는 이후 현대 표준 독일어가 된다.
라틴어 계열인 독일어는 우랄알타이어계 언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에겐 낯설고 실수를 연발할 수밖에 없는 언어였다. 독일에 와서 어학원을 다닐 때였다. 무슨 말끝에 ‘Ich komme im Klassenzimmer’(나는 교실에서 오르가슴을 느낀다)라는 문장을 더듬더듬 읊조렸는데, 주변의 독일인들이 박수를 치며 웃는 거다. ‘kommen’은 ‘오르가슴을 느낀다’라는 침실에서 사용되는 뜻과 사전식의 ‘오다’라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이 문장은 ‘Ich komme ins Klassenzimmer’(나는 교실에 왔다)라고 방향 전치사를 사용해야 제대로 되는 문장이었는데, 우리식으로 ‘오다’라는 단어만 생각하고 전치사를 잘못 사용했던 게다.
전세계 1억2천만 명의 모국어
실수 연발 끝에 배운 독일어지만, 배우면서 한 가지 뿌듯한 사실을 알게 됐다. 유럽을 여행할 때 “Do you speak English?”(영어 할 줄 아세요)에 대한 대답이 “No”라면 “Koennen Sie Deutsch sprechen?”(독어 할 줄 아세요)이라고 물어보라. 유럽 어디서나 반가운 표정을 만날 수 있다. 독일어는 통계적으로 유럽인의 3분의 1이 사용하는 언어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1억2천만 명이 독일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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