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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심이 히노마루를 이겼다

등록 2006-09-27 00:00 수정 2020-05-02 04:24

도쿄 법원에서 위헌 판결 받은 도쿄도 교육위원회의 10·23 통달…국기·국가 강제에 반대해온 교사와 학부모들의 완승으로 끝나다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일본국헌법’을 넘어, 개인을 강제하지 않는 것을 전제로 제정된 ‘국기·국가법’을 넘어, 지난 2004년 10월부터 교사들 위에 군림해 징계를 휘둘러온 것이 있다. 바로 이시하라의 도쿄도 교육위원회(이하 도교위)의 ‘10·23 통달’이다.

“희망과 용기를 주는 판결”

이것이 지난 9월21일 도쿄 법원에서 위헌 판결을 받았다. “교사를 징계하면서까지 기립 제창과 피아노 반주를 의무로 부과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한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지나친 조처”라는 것이 판결문의 요지다. “패소하리라곤 1%도 예상치 않았다”는 도교위의 반응만 보더라도, 이번 위헌 판결이 가져온 충격은 도교위를 강타했다.

도쿄도립교 전·현직 교사 401명과 변호사 50여 명으로 구성된 ‘국가 제창 의무 부존재 확인 등 청구소송 원고단’(이하 원고단)의 전면 승소 소식은 이들을 지지하고 지원해준 교육 현장의 대다수 교사와 학부모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하기에 충분했다. 입학식과 졸업식에서 히노마루(일장기)·기미가요(국가)를 강제할 때마다 일어서지 않는 것으로 화답한 교사들에게는 굳건한 소신이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전쟁의 상징이며 군국주의 사상의 정신적 지주인 히노마루·기미가요에 대해 예를 표하는 것은 양식 있는 교육자로서 있을 수 없다”는 것. 일본의 보수 언론은 ‘국기·국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이라며 역공세를 펴왔지만, 교사들은 히노마루·기미가요 강제와 징계에 부단히 맞서왔다.

아시아 태평양 전쟁에서 패망한 일본이 전쟁에 대해 반성하고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명시한 ‘헌법 9조’와, 이를 토대로 한 ‘교육기본법 10조 1항’(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복종해서는 안 된다)은 일본의 시민사회와 교육계에서 ‘상식’으로 통하는 것이다. 이를 도교위가 ‘통달’과 ‘직무명령’으로 직권을 남용해 그동안 교사를 징계 처분해왔고, 이러한 비상식적 처사에 대해 도쿄 법원은 명확하게 위법, 위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승소 이튿날인 오전 11시. 도쿄도 제2청사 1층 로비에 원고단과 변호단 50여 명이 판결문을 토대로 10·23 통달 철회와 부당 처분 취소 등 후속 조치를 도교위에 요구하기 위해 속속 모여들었다. 이른 아침부터 징계를 당한 학교 앞에서 승소 기사를 스크랩해 만든 전단을 뿌리고 부리나케 달려온 후쿠시마 쓰네마쓰 교사도 “이제껏 위정자들에게만 유리한 판결이 내려졌는데, 더 이상 일본의 민주주의가 꺾여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에 제동을 걸어준 당연한 판결”이라며 가슴 벅차했다. 마쓰바라 노부키 교사도 “어제 기뻐서 몸이 다 후들거렸다”며 “전직 교사들은 물론 현직 교사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판결”이라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도교위 당국자는 침묵으로 일관

이날 책임 있는 답변을 요구하는 사토 분지 변호사단 사무국장 앞에 도교위를 대표해서 나온 사람은 도교위 정보과장이었다. 침묵으로 일관한 그는 “비상식적 대응 아니냐”는 교사와 변호사들의 비난을 뒤로하고 12시 정각, 공무의 하나인 점심시간을 지키려는 듯 황급히 빠져나갔다.

소송에 나선 교사들은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지키려는 노력이 결국 아이들의 인권과 자유를 지키는 것으로 이어짐을 믿었다. 이들의 전례 없는 사법적 완승은 “대체 왜 이런 재판이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스기우라 세켄 법무상이나 초지일관 ‘애국심’을 강조하며 교육기본법에 메스를 들이대겠다고 호언하는 아베 신조 및 그를 지지하는 일본 보수 언론에게는 정말이지 납득할 수 없는 판결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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