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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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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스웨덴’을 아느냐

등록 2006-09-28 00:00 수정 2020-05-03 04:24

우파가 정권 잡았다고 복지정책 후퇴라니, 스웨덴 모델에 대한 무지와 오해… 한국 정부가 그들 수준의 복지를 목표로 삼은 적도 없고 그럴 단계도 안돼

▣ 김용기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지난 9월17일 스웨덴 총선 결과를 놓고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우선, 프레드릭 라인펠트 온건당 당수가 이끈 우파연합의 승리가 스웨덴을 기존의 복지모델을 버리고 효율성을 추구하는 다른 경제체제로 변화시킬 것인가를 놓고 해석이 엇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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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국 정부가 스웨덴 복지 모델을 과연 한국의 미래 모습으로 상정했는지, 특히 최근에 발표된 ‘비전 2030’이 스웨덴식 복지국가를 염두에 둔 것이냐에 대해서도 대립된 의견이 나오고 있다.

그냥, 예란 페르손 현 총리가 싫어서…

첫 번째 의문점에 대해서는 서방 언론의 분석이 속속 전해지면서 비교적 분명하게 답이 정리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스웨덴 국민들은 스웨덴 복지모델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지난 9년 동안 스웨덴을 지배해온 사회민주당의 예란 페르손 현 총리를 거부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분석이다. 보수적인 논조로 잘 알려진 영국의 경제주간지 , 중도 우파적인 이외에도 <bbc> <cnn> <ap> 등을 통해 전해지는 분석이 대체로 일치한다. 실제로 중도우파연합(온건당, 중도당, 자유당, 기민당)을 이끈 41살의 지도자 프레드릭 라인펠트는 선거기간 중 스웨덴 우파가 복지국가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말해왔다.
정권이 교체된 만큼 일정한 변화가 일어날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라인펠트가 선거기간 중 “북유럽 복지모델은 좋은 모델이다. 하지만 그 모델은 개인에게 좀더 많은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점에서 복지국가의 틀 자체를 흔들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스웨덴에서는 어떤 주요 정당도 사회복지 국가의 해체를 말하지 않는다. 라인펠트는 감세안을 말한다. 하지만 부유층의 소득세나 기업의 법인세 감면이 아니라 저임금 근로자들에 대한 세금 감면을 말했다.
스웨덴 모델이 경제적으로 실패했다는 증거도 찾기 어렵다. 고율의 세금과 정부 지출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대기업들의 실적은 우수하다. 스웨덴의 빈곤율(전체 가구 대비 중위 소득50% 이하 가구의 비율)은 6%에 불과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신용평가기관 피치(Fitch)의 국가신용등급 책임자 브라이언 쿨톤은 “스웨덴은 순채권 국가(대외 부채보다 채권이 많은 나라)이며, 스웨덴 은행이나 기업이 외국에서 자금을 빌리는 데 아무런 어려움을 겪지 않기 때문에 스웨덴 사회복지 모델이 현재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고 말했다.
스웨덴의 지난 2/4분기 경제성장률은 5.6%에 달해 유럽연합(EU) 평균 2.8%를 앞질렀다. 정부 보조금을 받고 재교육 중인 근로자 등을 포함하면 스웨덴의 실업률은 공식 통계 5.8%를 훨씬 웃돈다는 게 사회민주당을 비판하는 사람들의 지적이지만, 예란 페르손 총리가 집권한 지난 9년 전에 비하면 실업률은 오히려 2.2%p 하락했다. 심지어 라인펠트는 2002년 총선거에서 세금을 대폭 감면하고 복지국가를 해체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워 대패한 온건당과 스스로를 구분하기 위해 자신이 당수로 있는 온건당을 ‘신온건당’이라고 부르고 있다. 레이건이나 대처와 같이 ‘감세와 작은 정부’를 내세우는 전통적 우파와 자신은 다르다는 말이다. 전통적 우파 정책을 내세웠던 4년 전 총선에서 온건당은 15% 득표에 그치는 끔찍한 패배를 맛보았다. 이후 온건당을 짊어진 라인펠트가 당의 우파적 노선을 중간지대로 이동시켰고, 이것이 다소 ‘오만’해 보이고 장기 집권하는 데 지친 사민당 지지자들을 흔들어 총선 승리를 얻는 데 주효했다는 게 사실에 부합하는 분석이라 생각된다.

1938년 ‘살츠셰바덴 협약’의 정신

그런데도 스웨덴 복지국가가 일정 부분 폐기되고, 효율성이 중시되는 영미식 경제체제로 전환할 것이라는 견해가 대두된 것은 우리 사회의 북유럽 복지국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에서는 ‘실패’했지만 예란 페르손 총리가 이끈 사민당은 자유시장 경제와 복지국가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는 점에서 세계화 시대에 살아남은 ‘성공한’ 정부이다. 스웨덴 경제는 개방된 시장경제와 일자리의 유연성을 역동적으로 추구하며, 고도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경쟁력을 잃었다 싶으면 과감하게 구조조정에 나서는 스웨덴 노동시장과 경제주체들의 뒤에는 강력하고 세계에서 지나치게 ‘너그럽다’고 비판을 받는 사회보장제도가 존재한다. 실업 상태에 빠지더라도 이전 임금의 80%를 받기 때문에 구조조정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 않는다. 실업 기간 중 재교육을 받거나 새로운 기술을 습득해 피고용 능력을 향상시킨 뒤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노동시장에 진출한다. 이것이 그 유명한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개방된 시장경제와 일자리의 유연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스웨덴은 미국 사회와 닮은꼴이다. 하지만 평등적인 임금제도와 강력한 사회보장제도의 뒷받침 덕분에 스웨덴은 미국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점이 바로 일부 스웨덴 젊은이들이 현재의 스웨덴 복지국가를 비판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자신의 역량에 따라 더욱 많은 기회를 갖고 더욱 좋은 대우를 받고 싶은데 그것이 어렵다는 불만이다. 연초에 한국을 방문한 스웨덴 국회의장은 전 국민의 80%가 거의 평등한 소득 수준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간의 소득 격차가 50%를 넘지 않는다는 설명이었다. 말하자면 임금 노동자의 80%가 400만원에서 600만원 사이에 밀집되어 있다는 얘기였다.
시장경제가 활발하게 작동하는 스웨덴 내에서 이처럼 평등성이 구현되는 이유는 대개 두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하나는 스웨덴의 중앙 집중화된 임금교섭을 통해 임금이 대체로 일정 수준에서 합의된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경쟁력을 잃은 기업은 가차 없이 구조조정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임금교섭에 임하는 남아 있는 기업들은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기업이다. 중앙 집중화된 임금교섭이 노사 간의 극단적 힘 대결로 이어지지 않고 산업평화로 귀결되는 것은 바로 스웨덴 모델의 출발점이 된 1938년 ‘살츠셰바덴 협약’의 정신 때문이다. 노사가 서로 협력하고 노동시장의 발전을 위해 상호 공동의 책임감을 갖자는 것이 협약의 내용이다.

복지와 효율을 왜 반대로만 보는가

두 번째 요인은 스웨덴뿐만 아니라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국가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현상인데, 사민당과 기민당이 주요 정당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점이다. 노조를 지지기반으로 하는 사민당이나, 혜택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기독교 민주당, 혹은 가톨릭 민주당이 집권당이거나 최소한 제1야당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스웨덴 총선 결과 복지가 쇠퇴하고 효율성이 강조될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 건 복지와 효율을 대립적으로 놓고 보는 우리의 시각 탓이고, 유럽사회에 익숙하지 못한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정부가 과연 스웨덴 복지국가를 모델로 삼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도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가 ‘살츠셰바덴 정신’으로 일컫는 노사 간 타협을 국민대통합의 모델로 삼은 적이 있는 게 사실이다. 지난해 정기국회에서 이해찬 당시 총리가 대독한 연설문을 통해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대통합 연석회의의 구성을 제안하고, 이의 모델 중 하나로 스웨덴 살츠셰바덴 협약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것은 타협을 통한 어려움을 극복하고 경제적 성장과 형평을 이룰 수 있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지, 스웨덴 복지국가를 한국에서 실현하겠다는 목표를 삼는 ‘야무진 꿈’을 꾸었을 성싶지는 않다.
상당 기간 개방의 압력이 덜한 상태에서 경제성장을 축적해놓은 스웨덴에 비해, 훨씬 강도 높은 세계적 경쟁 압력과 맞닥뜨려 성장해야 하는 한국 사회가 스웨덴 수준의 복지를 목표로 했다면 그것은 잘못된 일이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 지출 비중(스웨덴 28.9%: 한국 8.6%), 정부 재정 중 복지 지출 비중(미국 등 대부분의 선진국 50% 이상, 한국 23.4%)으로 볼 때 한국은 복지 과잉 상태를 걱정할 상태에 있지도 않고, 조만간 도달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계에 있지도 않다.
</ap></cnn></b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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