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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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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이툰은 완전히 족쇄다, 족쇄!”

등록 2006-09-28 00:00 수정 2020-05-03 04:24

에르빌은 활발히 재건되는데 코리아타운에 갇힌 교민들은 외출도 어려워…자이툰 부대 현지조사단이 마련한 간담회에서 답답함과 분노를 쏟아내다

▣ 에르빌=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이륙을 위해 출력을 높이자 진동이 더욱 심해진다. 프로펠러의 굉음과 기체의 진동이 최고조에 이르는가 싶더니 육중한 C-130 수송기가 이내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솟구쳤다. 쿠웨이트 시티 외곽 알리 알 살렘 공군기지를 출발한 공군 다이만부대 소속 수송기는 급격히 고도를 높이며 원을 그리듯 크게 회전했다.

한국 제외한 외국기업 진출도 활발

얼마나 왔을까? 쌍발 프로펠러가 만들어내는 굉음으로 귀청이 얼얼하다. 피곤한 눈을 감고 있으려니 “곧 착륙할 것”이란 기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갑자기 급회전을 하며 마치 땅으로 쑥 빨려들어 가듯 고도를 낮추더니 좌우 회전과 급강하가 이어진다. 비행기가 요동칠수록 온몸의 피가 머리 쪽으로 몰려드는 느낌이다.

덩달아 심장 박동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출발에 앞서 자이툰부대 통역 요원이 “웬만하면 기내식으로 제공하는 샌드위치는 먹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한 이유가 있었던 게다. 평균 고도 1만8천~2만 피트를 유지해오던 수송기가 착륙 10분 전부터 급격히 고도를 낮추면서, 수송기 내에선 중력의 1.5배 이상의 하중이 느껴진단다. 혹시나 있을지 모를 지상 공격을 피하기 위한 ‘전술비행’이다.

임종인 열린우리당 의원 등 이라크 파병에 반대해온 5명의 국회의원으로 구성된 자이툰부대 현지조사단과 함께 9월21일 오전 이라크 북부 에르빌에 주둔하고 있는 자이툰부대를 찾았다. 부대 현황 보고를 마친 일행을 따라 들어선 에르빌 시내의 모습은 자이툰부대 파병에 앞서 둘러봤던 2년5개월여 전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금요성일을 앞두고 텅 빈 거리에서 간혹 마주치는 주민들의 옷차림은 그대로였지만, 시내 곳곳에서 도로포장과 건설 공사가 한창이었다.

자이툰부대를 빠져나오자마자 마주친 드넓은 벌판에는 ‘드림시티’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터키 건설업체가 부유층을 겨냥해 1200가구 규모로 짓고 있는 고급 주택단지로, 분양가만 2억~20억원에 이른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을 정도다. 드림시티 뒤편으론 공원 등 위락시설과 쇼핑센터를 비롯한 편의시설이 들어설 ‘엠파이어 월드’ 공사도 한창이다. 뒤편으로 에르빌 공항을 사이에 둔 벌판은 쿠르드 자치정부가 상업지구로 지정해 개발을 앞두고 있다. 끝없이 이어지는 유혈 사태로 하루에도 100여 명이 비명에 가는 이라크 중·남부 지역과 달리 북부 쿠르디스탄에선 본격적인 재건·복구 작업이 시작된 것이다.

외국 기업의 쿠르드 지역 진출도 활발하다. 이덕윤 자이툰사단 참모장(육군 대령)은 “지난 2004년 100여 개에 그쳤던 에르빌 진출 외국 기업 규모가 올해 370여 개로 급격히 늘었다”며 “에르빌 공항 취항 국제선 노선도 14개에서 23개로 늘어났으며, 3개국이 연락사무소를 설치했고 8개국은 영사관 설치가 예정돼 있다”고 말했다. 벌써 1년 넘도록 이렇다 할 테러 공격이 발생하지 않은 에르빌의 안정적인 치안 상황이 외국 기업의 대규모 진출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안전을 이유로 ‘민간인’들의 이라크 출입을 정부가 철저히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파병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전후 재건·복구 공사 참여를 통한 경제적 혜택을 꼽았던 것이 무색하기만 하다. 그나마 현지에 진출해 있는 기업인들이 맞닥뜨린 현실은 말이 아니었다.

“교민 초청 행사 처음이다, 눈물난다”

척박한 사막의 구릉 사이로 100여만 평 부지를 확보하고 있는 자이툰부대 한 귀퉁이에 ‘코리아센터’가 있다. 2277명의 자이툰 부대원 외에 40여 명의 민간인이 그곳에 살고 있다. 자이툰부대와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자이툰부대가 오기 전부터 에르빌에서 사업을 했던 이들이 대부분이다. 2004년 자이툰부대 전개에 앞서 정부가 마련한 ‘안전지침’에 따라 군 부대 내부에 민간인이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9월22일 오후 자이툰부대 회의실에서 국회 현지조사단의 요청으로 교민 간담회가 열렸다. 유양호 교민회장은 “자이툰부대는 황무지 같은 땅에서 크나큰 재건사업을 실시했으며, 지금도 엄청나게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말로 인사말을 대신했다. 그는 “100% 무상으로 재건사업에 투자를 해왔으니, 앞으로는 우리가 결실을 이룰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며 “바깥에 나가 하는 사업은 정부 방침에 따라 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그런 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검토해주시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유 회장이 코리아센터에서 생활하고 있는 이들을 하나둘 소개하는 사이 상기된 표정의 한 여성 교민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그동안 교민이 있는지 알아보지도 않고, 둘러보지도 않은 채 가셨다. 에르빌에 온 지 2년이 넘었는데 교민 초청행사는 이번이 처음이다. 눈물이 날 것 같다.” 거친 손으로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는 그는 지쳐 보였다.

“교민 초청행사가 처음”이라는 말이 맘에 걸렸는지 황중선 사단장(육군 소장)이 나섰다. “사실 여러분이 부대 밖으로 나가시면 우리도 너무 좋다. 밖에 왜 안 내보내냐고 하시는데, 그건 규정대로 할 수밖에 없다. 오늘 답변들이 부대보다는 외교통상부에 계시는 분들의 업무이지, 우리 업무가 아니다. 내일이라도 당장 정부에서 내보내드리라고 하면 대대적인 환송행사라도 열고 나가시게 한다.” 군은 단지 명령에 충실하고 있을 뿐이란 얘기다.

“바깥사업을 전혀 못하고 있다.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무슨 말부터 어떻게 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설레고 어떻게 이런 자리가 마련됐는지…. 이변이다, 이건. 자꾸 그런 생각만 든다.” 자이툰부대가 에르빌에 도착하기 전부터 현지에서 사업을 해온 건설업체 알콘의 김성태 사장이 맨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간단하게 말씀드린다. 자이툰부대가 처음 에르빌로 올 때 공사를 내가 했다. 사막에 숙영지를 짓는다는 게 굉장히 불가항력적이고 시간도 촉박했다. 치안 부재 상태였지만, 자재가 없어 위험을 무릅쓰고 모술이며 키르쿠크, 술라이마니아, 도후크 등지를 다니며 자재를 구해 공사를 마무리했다.”

동맹군 주둔은 12월31일까지?

중동 생활이 27년째라는 김 사장은 “그 당시 위험하니까 조심하라는 말을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며 “되레 장병들이 사막에서 잠을 자게 생겼다며 어서 자재를 구해오라고 성화였다”고 말했다. 2년여째 자이툰부대에서 생활하면서 쌓인 교민들의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간담회 분위기는 쉽게 달궈졌다. 특히 코리아센터 개설 당시 ℓ당 16원에 불과했던 유류 가격이 ℓ당 560원으로 급등해 최근 전력용 발전기 가동비 부담이 커진 게 화근이었다. 에르빌 지역의 유류 사정 악화로 미군 쪽에서 유류를 대신 공급받으면서 생긴 폐해였다.

“29년6개월 동안 군생활을 한 사람으로서 군은 정책부서에서 결정되면 명령에 순응할 뿐임을 잘 알고 있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문을 연 김남선 피코(부대 안 매점 운영업체) 부사장의 목소리가 커지는 데도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는 “허용된 외출 시간이 하루 4시간뿐인데, 그나마 들어오고 나가는 시간 2시간에 제르바니(쿠르드족 치안요원)들이 밥 사달라고 해 응하면 아예 시간이 없다”며 “지난달 순이익 3천달러에서 기름대금 내고 나면 남는 게 없는데, 왜 쿠웨이트 등지에서 싼값에 석유를 들여올 생각은 안 하고 미군에서 조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녁에 취침나팔을 부는 소리가 날 정도로 에르빌은 전쟁지역도 아니고, 미군이 운용하는 동맹군 재건지원자금도 자이툰부대엔 단 1%만 배당되고 있다”며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46호를 보면, 이라크에서 정부가 구성되면 외국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의 격한 발언이 끝나자 최영범 민사협조본부장(육군 대령)이 즉각 반박에 나섰다. “유엔 안보리 결의안 1546호를 근거로 합법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철군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사실과 다르다. 최종적인 안보리 결의안은 2005년 12월11일 통과된 제1637호다. 당시 이라크 외교부 장관이 동맹군 추가 주둔을 요청함에 따라 나온 것인데, (이에 따르면) 동맹군은 2006년 12월31일까지 주둔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그럼 정부가 최근 파병 연장 움직임을 보이는 건 안보리 결의안을 무시한 처사일까?

“2년 조금 넘게 이곳에서 지내면서 기업인도 자이툰 장병들도 엄청 고생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교민들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안전을 이유로 강제로 수용해놓고 활동을 통제하는 데 따른 생계 문제로 인해 생긴다.” 박씨는 “일 때문에 터키·시리아 국경을 많이 다니는데, 지난해까지만 해도 위험 때문에 부대에서 지낸다고 하면 수긍했지만 요즘은 비웃는 사람이 많아 민망하다”며 “정부야 교민의 안전을 고려했겠지만, 여기 상황을 봤을 때 지금은 전혀 (위험한 상황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전을 이유로 발목잡힌 사업

이미 미국·네덜란드·러시아 등 세계 각국 기업들이 에르빌에 진출했으며, 중국인은 1천 명을 넘어선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박씨는 “자이툰부대 주둔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업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줬다”며 “한꺼번에 움직일 게 아니라, 자이툰부대가 순차적으로 나가면서, 기업인도 순차적으로 들어오면 되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1시간 남짓 격한 목소리를 토해냈지만, 당장 달라질 것은 없어 보였다. 전후 이라크의 치안 유지와 재건·복구 지원이 자이툰부대 파병의 이유였지만, 현지에 진출한 교민들은 여전히 ‘안전’을 이유로 재건·복구 사업 참여의 발목이 잡혀 있었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달궈진 막사를 따라 간담회장을 빠져나오던 한 교민이 쓴소리를 한다. “에르빌은 안전하다. 자이툰부대 오기 전에도 그랬다. 그런데 자이툰부대가 온 뒤 오히려 치안이 나빠지기라도 한 것인가. 이건 완전히 족쇄다, 족쇄. 자이툰이 철수라도 해야 놓여날 수 있는….” 이날은 자이툰부대가 에르빌에 사령부를 개설한 지 만 2년째가 되는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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