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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반, 그들이 돌아왔다

등록 2006-09-16 00:00 수정 2020-05-03 04:24

궤멸당한 지 5년만에 다시 아프간 국토의 50%에서 영향력 회복… 양귀비 제거 작전에 나선 다국적군, 의도치 않은 민심이반 부르다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테러와의 전쟁’은 9·11 동시테러가 벌어진 지 9일 만인 2001년 9월20일 그 서막이 올랐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의회 연설에서 9·11 테러의 배후로 지목된 오사마 빈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지도부를 보호하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최후통첩을 보냈다.

그는 알카에다 지도부의 신병을 미국 쪽에 넘기고, 이들이 아프간 내에서 운영하는 훈련캠프를 비롯한 테러 관련 시설을 영구 폐쇄할 것을 촉구하는 한편 이런 과정을 감시할 수 있는 접근권을 요구했다.

재건 예산에 인색한 국제사회

탈레반 정권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 다음날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알카에다 지도부가 9·11 테러를 저질렀다는 증거를 내놓기 전에는 이들의 신병을 넘겨줄 수 없다는 점을 명확히 했다. 탈레반 정권은 같은 달 말 빈라덴을 파키스탄이나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로 보낸 뒤 현지에서 이슬람법에 따라 재판을 받도록 하자는 수정 제안을 내놨지만, 전쟁을 피하기엔 이미 때가 늦었다.

그해 10월7일 전폭기를 동원한 공습과 함께 전함에서 발사된 토마호크 미사일이 아프간의 마른 땅을 때려대기 시작했다. ‘항구적 자유’ 작전의 시작이었다. 9·11 테러가 벌어진 지 26일 만의 일이다. 전세는 초반부터 싱거울 정도로 일방적이었다. 미군 주도의 다국적군의 막강한 공군력 지원 아래 반탈레반의 기치를 든 북부동맹군은 전투가 시작된 지 한 달여 만인 11월9일 아프간 북부 최대 도시 마자리샤리프를 장악했다. 이어 11월13일엔 카불이, 25일엔 탈레반의 거점 가운데 한 곳이던 쿤두즈가 각각 함락됐다.

전쟁을 시작한 지 두 달 만인 그해 12월7일 탈레반의 심장부인 남부 칸다하르가 북부동맹군의 손아귀에 떨어지면서 탈레반 정권의 붕괴를 공식화했다. 그리고 12월22일 전쟁 발발 78일 만에 카불에서 하미드 카르자이를 임시 수반으로 하는 아프간 과도정부 수립식이 열렸다. ‘전쟁의 땅’ 아프간에 다시 평화가 찾아온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쉽게 아프간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미국 주도의 다국적군은 파키스탄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동부 산악지역을 중심으로 군사작전을 지속했다. 빈라덴을 비롯한 알카에다 지도부와 탈레반 잔당을 소탕하기 위해서였다. 치열한 전투 끝에 연일 승전보가 전해졌지만, 빈라덴은 이미 종적을 감춘 뒤였다. 이듬해 여름까지 살아남은 탈레반과 알카에다 세력 대부분은 파키스탄 쪽 국경을 넘어가는 데 성공했고, 그곳에서 게릴라전을 벌이기 위한 조직 추스르기에 들어갔다.

탈레반의 검은 머릿수건이 사라졌지만, 포성이 멈춘 뒤에도 아프간 주민들의 고달픈 일상은 쉽게 나아질 줄 몰랐다. 아프리카의 차드·수단·소말리아와 함께 세계 최빈국으로 꼽히는 아프간을 지원하겠다는 국제사회의 다짐도 지난 5년 동안 아프간에 변화를 가져오진 못했다. 유엔개발기구(UNDP) 등 국제기구의 자료를 보면, 아프간 어린이 4명 가운데 1명은 5살 이전에 숨진다. 전체 인구의 70%가량이 만성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있고, 안전한 마실 물을 공급받고 있는 이들은 전체 인구의 25%에도 못 미친다. 평균수명은 고작 45살에 불과하다.

수십 년간 이어져온 내전으로 깡마른 땅과 험준한 산뿐인 아프간의 재건·복구를 위해선 막대한 자금지원이 절실했다. 세계은행은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 아프간의 현 재건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선 향후 10년 동안 모두 150억달러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그러나 지난 5년 동안 막대한 군사비를 아프간에 쏟아부은 국제사회는 재건·복구 지원엔 이상하리만치 인색했다.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동맹국 등이 2002~2006년 아프간에서 사용한 군사비는 약 825억달러에 이르는 반면, 같은 기간 재건·복구 예산은 군사비의 1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73억달러에 불과했다.

지역 전체를 장악할 정도로 대담해져

아무런 외부의 도움도 없이 가난한 삶을 이어가야 하는 아프간 농부들의 유일한 수입원인 아편용 양귀비 재배가 탈레반 정권 몰락과 함께 급증한 것은 당연했다. 지난 2002년 3600t이던 아프간의 아편 생산량은 불과 3년 만인 지난해 6100t까지 치솟았다. 이는 전세계 아편 생산량의 92%에 이르는 규모다. 특히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아편 재배 면적이 급속히 늘면서 다국적군은 양귀비 제거 작전에 나서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낳게됐다.

영국 런던에 본부를 둔 다국적 싱크탱크 센리스위원회(www.senlis.org)가 광범위한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9월 초 내놓은 ‘아프가니스탄 침공 5년: 탈레반의 귀환’이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양귀비 제거작전 최대의 피해자는 외부 세계의 지원이 가장 절실한 가난한 농민들이었다”고 전했다. 이 단체는 “양귀비 제거작전으로 가난한 농민들의 유일한 수입원이 파괴되면서 굶주림과 빈곤이 심해지고, 이는 다시 치안 상황을 악화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졌다”며 “양귀비 재배 단속을 피하기 위해 뇌물까지 바치던 농민들은 어느새 세력을 회복한 탈레반에 보호를 요청하기 시작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한때 궤멸 직전까지 몰렸던 탈레반은 이미 오래전부터 아프간 전역에서 게릴라전을 벌여왔으며, 이미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아프간 국토의 50%가량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탈레반 정권의 수도였던 칸다하르 지역의 한 경찰 책임자는 센리스위원회 현장조사 요원과 만나 “상황이 하루가 다르게 악화되면서 혼란이 극에 달해 희망이 없는 상황이며, 칸다하르는 곧 탈레반의 손아귀로 넘어갈 것”이라며 “주민들은 탈레반에 적대적으로 비쳐지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하고 있으며, 탈레반 복귀 뒤 외국인을 지원했다고 처벌받지 않기 위해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5월 이후 푼즈와이, 제라이 지역 등 칸다하르 남서부 일대에선 많게는 1500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탈레반 조직원들이 집단 출몰해 아프간 정부군과 현지 주둔 캐나다군을 괴롭혔다. 그동안 8~15명씩 소규모로 무리지어 다니며 치고 빠지기식 게릴라 전술을 구사해온 탈레반이 이제는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한 지역 전체를 장악할 정도로 대담해진 것이다. 은 9월7일 “탈레반의 공세가 거세지면서 NATO가 주도하는 1만8500여 국제평화지원군 가운데 1주일에 평균 5명이 전사하고 있다”며 “이는 이라크 침공 초기 다국적군 전사자의 2배 가까운 수치”라고 전했다.

국제평화군, 1주일에 평균 5명 전사

지난 9월2일 전투기와 공격용 헬리콥터의 지원 아래 NATO군은 칸다하르 남서부 지역 일대에서 대대적인 공세에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첫날 공세로 200여 명의 탈레반 무장대원들과 캐나다 출신 병사 4명이 목숨을 잃을 정도로 전투는 격렬했다. 모두 2천 명의 병력이 동원된 이번 작전의 암호명은 ‘메두사’다. 5년 전 예감했던 ‘평화’는 여전히 멀기만 한데,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탈레반은 어느새 신화 속 괴물로 부활해 눈앞에 다가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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