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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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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시대착오 용납 못한다”

등록 2006-09-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일본 공산당 대표로선 최초로 한국 방문한 시이 가즈오 간부위원장…“헌법 9조 개정 움직임 저지… 북한 납치문제는 평화적 해결이 중요”

▣ 진행·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 정리·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아베 신조 관방장관의 역사관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공표한 내용에서도 후퇴한 것이다. 그가 총리가 된 뒤에도 개인적인 역사관을 최우선에 두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계속 검정 승인해준다거나,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견해를 후퇴시킨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제4차 총회 참석을 위해 한국을 찾은 시이 가즈오 일본 공산당 중앙위원회 간부위원장을 9월7일 오전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바쁜 일정을 쪼개 1시간 남짓 과 마주 앉은 그는 “일본의 우경화·군국주의화 경향에 대해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의 우려가 큰 것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일본 안에서도 평화를 지키려 노력해온 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일본 공산당 대표가 한국을 방문한 것은 시이 위원장이 처음이다.

왕손 출산? 아이가 태어나면 경사스런 일

방한 첫날 서대문형무소 역사관을 둘러본 것으로 안다.

= 처음으로 한국을 찾아 뜻깊게 생각한다. 서대문형무소에선 과거 일제 식민지배의 폭력적인 억압과 잔혹함, 한국민들이 겪었을 아픔이 가슴 깊이 새겨졌다.

일본 공산당은 1922년 창당한 이래 일제의 침략전쟁과 식민지배에 목숨을 걸고 일관되게 반대한 역사를 갖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일 양국 국민이 미래를 위해 진정한 우호관계를 구축하는 데 (공산당이) 진정한 중개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선 지금 왕손이 태어났다며 전체 열도가 들썩이고 있다. 일왕을 과거 제국주의 식민지배의 상징으로 여기는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에선 이를 지켜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 태평양전쟁 전 천황은 절대주의적 전제군주였다. 그것이 아시아인들에 대한 침략의 원인이 됐다. 천황은 또 일본 공산당에 대한 가차없는 탄압의 책임자이기도 했다. 때문에 천황제 타도 없이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었고, 일본 공산당은 전쟁 기간 동안 천황제 타도를 기치로 내걸고 싸웠다. 전후의 천황제는 분석적으로 봐야 한다. 전쟁에 패한 결과 천황은 모든 정치적인 권한을 잃었다. 정치에 관여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됐다. 바뀐 상황에 따라 공산당은 천황제에 대한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첫째, 천황의 존재를 반동적으로 정치에 활용해선 안 된다는 점이다. 둘째, 천황의 의무와 권리를 규정한 헌법 조항을 철저히 지키고, 천황제 철폐 문제는 미래에 논의하기로 했다. 셋째, 장기적으로 국민의 총의에 기초해 천황제를 철폐하고 민주공화국을 세우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 원칙에는 변화가 없다. 지금 당장은 천황의 지위를 규정한 헌법 조항을 철저하게 지키고, 천황을 군국주의 부활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을 차단하는 게 중요하다.

공산당에선 왕손 출산에 대해 공식 반응을 낸 게 없나?

= 언론에서 논평을 요구해와 어느 집안에서나 아이가 태어난 것은 경사스런 일이라는 정도의 말을 했다. 어느 가정에서나 마찬가지 아닌가? (웃음) 공식 반응은 그게 전부다.

일본에서 한류 열풍이 여전하다. 좋아하는 한국 연예인이 있나?

= 굉장히 좋아하는 연예인이 있다. 배우 이영애씨다. (웃음) 지금 <nhk>에서 을 방송하고 있는데, 바빠서 시간을 놓치면 녹화를 해서라도 꼭 챙겨본다. 은 단행본으로도 나와 있어 여러 번 읽었다.

한류가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일부지만 한국을 근거 없이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혐한류도 극성이라고 들었다.

=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은 양호하다고 생각한다. 혐한류에 대해선 처음 듣는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이 드라마를 통해 이웃 나라의 풍부한 문화와 역사성, 그리고 연기하는 배우들의 아름다움에 감동한다. (웃음) 물론 일부 세력이 의도적으로 한국과 중국에 대해 배타적 적대감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것들과 싸워야 한다. 연대의 흐름을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지가 과제다. 한국 국민들에게도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반일’은 곤란하다는 거다. 일본에도 평화를 지키려 노력하고, 한국의 통일과 평화를 위해 힘써온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 일본 공산당의 전쟁 전 역사를 보면, 그 시대에도 한국의 인민들과 연대하려고 노력했다. 한국인들이 일본의 우경화를 걱정하는 걸 잘 알고 있다. 우려스런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평화를 지키려는 에너지도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

아베와 1대1 TV토론한 이야기

아베 신조 관방장관이 차기 총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인 아베 신조를 평가한다면?

= 지난해 가을 TV아사히에서 야스쿠니 신사 참배 문제를 두고 아베 장관과 1대1로 토론을 벌인 일이 있다. 굉장히 흥미진진했다. 그때 아베 장관에게 역사관에 대해 두 가지를 물었다. 먼저 일본이 과거에 저지른 침략전쟁과 식민지배를 정당하게 생각하는지, 아닌지를 물었다. (전범재판에서) 1급 전범 판결을 받은 사람들을 전쟁 범죄자로 생각하는지도 물었다. 간단한 질문인데, 아베 장관은 대답을 하지 못했다. 말을 빙빙 돌리다 그저 “후세의 역사가들에게 맡기겠다”고 했다.

그래서 “후세까지 기다릴 이유가 없다. 벌써 60년 전에 역사가 판단을 내렸다. 일본 정부도 충분하진 않지만 식민지배와 침략에 대해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나? 당신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역시 답변을 쉽게 하지 못하더니 “그렇게 말한다면 로마제국 시대에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이 로마를 상대로 전쟁을 벌인 것도 침략전쟁이냐?”고 되묻더라. 그래서 “지금 2천 년 전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60년 전 얘기를 하고 있다”고 대꾸했다. 당시 아베 장관의 발언은 시청자들은 물론 정치권 내에서도 빈축을 샀다.

아베 장관의 역사관은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공표한 내용에서도 후퇴한 것이다. 그가 총리가 된 뒤에도 개인적인 역사관을 최우선에 두고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거나, 왜곡된 역사 교과서를 계속 검정 승인해준다거나,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한 견해를 후퇴시킨다거나 하는 짓을 한다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아베 장관이 총리가 되면 (침략전쟁을 부인하는) 헌법 9조 개정 움직임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우려가 많다.

= 일본 헌법 9조 개정은 단지 일본 국민만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 9조는 일본이 다시는 전쟁을 벌이지 않겠다는 세계인에 대한 약속이자 평화 공약이다. 그것을 지키는 것은 중대한 책임이다. 2년여 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등 9명의 유명인사가 시작한 ‘헌법 9조를 지키기 위한 모임’은 삽시간에 전국 각지로 퍼지면서 현재 5천여 개에 이르고 있다. 정치적 견해 차이를 뛰어넘어 날마다 새로운 모임이 생겨나고 있다. 일본에선 헌법을 개정하려면 국민투표를 해서 과반수의 찬성을 얻어야 한다. 그래서 지역마다 주민 과반수의 개헌 반대 서명을 받는 운동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힘을 모아 반동적 흐름을 저지할 것이다.

주일미군은 일본의 안전에 오히려 위협

북한 미사일 발사 직후 이른바 ‘적국 기지 공격론’이 등장하더니 최근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핵무장을 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하는 등 우파의 발언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 북한 미사일 문제가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있다. ‘적국 기지 공격론’도 이같은 흐름에서 나왔다. 선제공격론은 명백히 불법이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 문제를 헌법 개정이나 당리당략에 이용하는 것은 비열한 정치인이 하는 짓이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다.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해선 공산당도 엄중하게 북한을 비판해왔다. 동시에 냉정한 외교적 접근이 중요하다. 핵과 미사일 문제에 대해선 6자회담 틀이 중요하다.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한반도 비핵화에 나서기를 바란다. 이게 성공하면 이 틀거리가 동북아 평화공동체의 틀로서도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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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치 문제에 대해서도 치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북한이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것은 앞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이었다. 전면적 해결까지 전진시킬 필요가 있다. 역행도 있고 우여곡절도 있지만, 평화적 해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02년 9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정상회담 결과로 나온) 북일 평양선언은 과거 청산과 핵·미사일 문제, 납치 문제를 패키지로 해결하자는 것이었다. 북-일 두 나라가 이 원칙에 기반해 외교적 노력을 다하는 게 중요하다.

한-미 동맹이 그렇듯 미-일 동맹도 숨가쁘게 재편되고 있는데.

= 공산당은 미-일 동맹 해소를 주장해왔다. 현재 일본에서 이뤄지는 미군 재편은 전례 없이 위험한 수준이다. 알다시피 주일미군은 주한미군과는 또 다른 침략성을 갖고 있다. 주력 부대가 해병대와 항공모함 부대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해외에서 침략전쟁을 수행하거나 폭력적인 개입을 할 때 가장 앞장서는 부대다. 이라크 침공 때도 제일 먼저 파견된 게 주일미군이었다. 주일미군 재편은 이들 부대를 더 강화시킨다는 것이고, 해외 원정에 자위대도 같이 데리고 가서 전쟁을 하겠다는 거다. 일본 전국에서 반대 투쟁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속도로 오키나와·이와쿠니·요코스카·자마 등 각 도시에서 좌·우파를 초월해 지자체를 구성하는 모든 주체들이 참여하고 있다. 주일미군은 일본의 안전보장에 전혀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일본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 그것은 아시아에 대한 위협이기도 하다. 미군이 철수한다고 해서 일본이 곤란해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지지자 500만명, 원내 제4당

공산당과 일본 정계를 대표하는 정치인 중 한명인 시지 가즈오 위원장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1922년 7월 창당한 일본 공산당은 현재 일본 전역에 2만4천여 지부를 두고 있으며, 당원은 약 40만 명을 헤아린다. 지난 2000년 선거에서 11.3%의 득표율을 올린 이후 최근 몇 년 새 지지율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500만 명에 가까운 적극적 지지층을 거느리고 있다. 자민·민주·신공명당에 이어 원내 제4당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2004년 치러진 참의원 선거에선 436만 표(득표율 7.8%)를 얻어 9석(전체 242석)을 확보했으며,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선 492만 표(득표율 7.3%)를 얻어 9명(전체 480석)의 의원을 배출했다.

9월7일 오전 인터뷰를 위해 찾은 시이 가즈오 위원장의 객실 책상 위에는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가 쓴 책의 일본어판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남과 북의 평화통일을 지향하는 강한 바람이 담긴 강 교수의 역사학에 공감해 그의 저작을 대부분 탐독했다”며 “특히 일본은 남북의 평화적 통일에 이바지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954년 지바현 요쓰카이도에서 태어난 시이 위원장은 1973년 도쿄대 교양학부 입학과 함께 일찌감치 공산당에 입당했다. 재학시절 도쿄대 학생당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한 그는 대학 졸업 뒤 당 도쿄도위원회 근무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었다. 그는 1989년 당 중앙위원에 선출된 데 이어 1993년엔 고향인 지바현에서 출마해 당선되면서 중의원에 진출했다.

2000년 중의원 선거에서 3선 고지에 오르면서 정치 기반을 확고히 한 시이 위원장은 같은 해 열린 전당대회에서 46살의 나이에 공산당 대표 격인 중앙위 간부회 위원장에 선출돼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열린 중의원 선거에서 미나미간토 지역 비례대표로 출마해 내리 5선에 성공한 그는 공산당은 물론 일본 정계를 대표하는 정치인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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