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적평가 방식의 허점 이용하여 논문 1개를 ‘뻥튀기’하는 교수들… 학자의 양심을 버린 연구자들은 실명을 거론해서라도 뿌리 뽑아야
▣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지난 3월에 이런 일이 있었다. 2단계 ‘두뇌한국(BK)21’ 사업단(팀)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에 연구실적 수치들이 잔뜩 부풀려져 있었던 것이다. 한두 개 사업단이라면 모르겠지만, 90%가 넘는 사업단들에서 광범위하게 발견돼서 교육인적자원부는 선정 결과 발표를 한 달 이상 늦출 수밖에 없었다.
여러 편 쓴 교수보다 점수 높을 수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는 연구실적에 포함되지 않는 논문을 집어넣거나, 특허 실적에 끼워넣지 말아야 할 것을 기재하는 등 일견 ‘실수’처럼 보이는 오류들을 확인하기 위해 20여 명의 아르바이트생까지 고용했다.
심사 과정이 엄격하고 복잡한 정부 재정 지원 사업을 신청할 때에도 이러한데, 비교적 심사가 느슨한 대학별 교수업적 평가에서는 어떠할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 상황이다.
최근 들어 대학들이 승진 기준을 강화하고 업적평가 결과에 따라 성과급 지급에 차등을 두는 추세여서, 이로 인해 교수들의 경쟁적인 ‘실적 쌓기’가 부도덕한 연구실적 부풀리기로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논문의 학술지 게재, 저서 출간, 학술대회 발표, 특허 실적, 연구비 수주 실적 등이 낱낱이 정량적으로 평가되다 보니, 1~2점의 점수 때문에 크고 작은 ‘고의적’인 실수가 저질러지는 것이다.
가장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것은 대학의 업적평가 방식이 지닌 맹점을 활용해 연구실적 점수를 높이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논문 한 편으로 꿩 먹고 알 먹는 방식이다. 대학에서 업적평가를 할 때 논문 내용과 상관없이 학술대회 발표, 논문 게재, 연구비 수주, 저서 발간 등에서 모두 점수를 부여할 경우, 논문 한 편으로 여러 평가 항목에서 점수를 두둑이 얻게 된다.
하나의 주제로 여러 학회를 돌아다니며 부지런하게 제목을 약간 달리한 논문들을 발표하고 그것을 국내 학술지에 게재한 다음, 약간 변경해 국제학술대회에 발표하고, 이후 출처를 밝힌 상태에서 과학기술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된 국제 학술지에 게재하면, 논문을 삼중, 사중으로 점수화할 수 있다. 만일 이 논문이 정부나 기업의 연구비를 받아 수행된 것이라면, 연구비 수주 실적에서도 점수를 얻고, 특허까지 내면 특허 실적 점수도 얻게 된다. 그리고 때마다 여러 논문들을 모아 논문집 형태의 저서를 내면 저서 실적 점수도 딸 수 있다.
몇몇 일부 대학들의 경우에는 주제가 같으면 논문 한 편의 실적만을 인정하지만, 대개의 경우 그렇지 않기 때문에 묵묵히 논문 여러 편을 쓴 교수보다 논문 한 편을 쓴 교수가 연구실적 점수가 높아지는 상황이 다반사로 이뤄지는 것이다.
그래도 이 경우는 대학의 업적평가 방식이 지닌 허점을 손질하면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여기서 더 나아가 교수가 자신의 실적을 약간씩 부풀려 보고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 있다. 국제학술대회 발표 논문을 국제학술지 게재 논문으로 올리거나, 잡지 게재 논문을 학술지 논문으로 보고하거나, 공동 저자 수를 줄이거나, 책임 저자인 것처럼 표시하는 등 ‘실수’로 혼동할 법한 보고 사례가 있는 것이다.
학과(부)평가위원회 등의 심사 과정에서 1차적으로 걸러질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대학 본부의 연구지원 직원들이 2차적으로 검증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더욱이 논문 표절, 자기 표절(혹은 연구논문 자기 복제), 동일 논문 중복 게재, 논문 쪼개어 내기 등 연구실적 부풀리기는 고의적이기 때문에 더욱 밝혀내기 힘들다.
공동저자로 ‘무임승차’하기
학술지에 게재되기 전에 학계 심사위원들의 심의를 거칠 뿐 아니라 출판 이후 후속 연구자들에게 논문의 독창성이 검증되기 때문에, 작정하고 표절하리라 생각지 않는다는 점도 고려할 부분이다. 사실 표절이나 자기 표절, 동일 논문 중복 게재 등은 밝혀지면 감당치 못할 불명예를 뒤집어쓰는데다 학자적 생명까지도 끝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운하게도 표절이나 동일 논문 중복 게재는 ‘있다’. ‘자기 표절’은 꽤나 많다. 우울한 풍경이지만 이것이 교수 사회가 요즘 직면하고 있는 상황이다. 교육자로서, 학자로서 양심을 걸고 연구하는 많은 교수들이 화낼 만한 일이지만, 현실이 그런 것이다.
이 지난 한 달간 다룬 자기 표절·표절 건만 해도 12건에 달했다. 교내 학술지에 게재된 논문을 통째로 혹은 약간 수정해서 등재(후보) 학술지에 싣거나, 이미 실렸던 논문 여러 편을 조립해 ‘통합형’ 논문을 또다시 게재하거나, 이미 게재된 논문의 한 장을 통째로 이후 논문에 집어넣는 식이었다. 한 학술지에 실은 논문을 제목을 바꾸고 내용을 약간 고쳐 또 다른 학술지에 싣는 사례도 있었다. ㄱ대 A교수의 경우, 하나의 논문을 제목을 바꿔 세 차례에 걸쳐 게재하고, 또 다른 논문은 타인의 저서를 표절하기까지 했다.
지도교수와 대학원생이 공동저자 이름으로 연구 논문을 게재할 수 있도록 한 ‘연구 문화’가 예외 없이 거의 모든 연구에 적용됨에 따라, 거꾸로 지도교수가 실질적으로 기여를 하지 않더라도 공동저자가 되는 ‘논문 무임승차’도 만연한 실정이다. ㅎ대학의 B교수는 석·박사 학위자들과 공동저자 형식으로 논문을 게재한 데 더해, 이 논문들을 짜깁기한 단독 저서를 내기까지 해 석·박사 학위자들의 불만을 샀다. 최근 학내 연구윤리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한 성균관대의 배재현 교원인사팀장의 말이다.
“지금까지는 적어도 대내외적으로 학계의 자정능력을 신뢰하는 풍토가 있었어요. 하지만 황우석 교수 연구논문 조작 사건, 김병준 교육부총리 논문 의혹 사건이 잇달아 터지면서 자정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지요.”
평가제 개선과 엄격한 심사 필요
물론 이같은 사례들이 교수 사회 전반을 말해준다고 볼 수는 없다. 그렇게 봐서도 안 된다. 교수 사회 전부가 ‘부도덕한 집단’이라거나 ‘도덕적 해이가 총체적으로 만연한 집단’이라고 일반화하는 것은 곤란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교수(화학)는 “일부 교수들의 부도덕한 행태로 인해 교수 사회 전체가 불명예스런 일을 겪었는데,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상상도 하지 않는 일”이라면서 “잘못을 저지를 연구자들은 실명을 거론해서라도 뿌리 뽑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계량적인 업적 위주의 평가 방식이나 단기간의 성과만을 중시하는 정부 학술연구 정책 등이 크고 작은 ‘연구실적 부풀리기’를 부추겼다는 사실도 감안해야 한다. 요즘 대학별 업적평가제도 개선, 엄격한 학술지 논문 심사, 연구 부정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화 등의 필요성이 얘기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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