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석 교사에게 ‘정직 3개월’ 징계를 내리고 금기의 탑 세운 경기도교육청… 법적 자유권이나 진정서 대필설 검토 없이 ‘국기 경례 거부’만으로 중징계
▣ 수원=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금기를 깨뜨린 사람은 그 자신이 금기가 된다는 말이 있다. 상동고 이용석 교사도 금기가 되었다. 경기도육청은 이 교사에게 정직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이 세 달 동안 이 교사를 학생들로부터 격리 처분한 것이다.
이 교사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고 편향적 교육을 했다는 이유 등으로 140명의 학부모가 진정서를 접수해 6월26일 경기도교육청 징계위원회(위원장 김화진 부교육감)에 회부됐다. 다소 긴 징계요구 사유서를 그대로 옮기자면 다음과 같다.
일부 징계위원들은 “해임” 주장
① 교사 이용석은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 조회 때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함으로써 대한민국 정부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를 취하고, 수업 중 학생들에게 국기와 국가를 부정하는 교육을 했으며, ② 수업 시간을 통하여 군대에 가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의 교육을 실시하고, 남북통일을 앞둔 시대에 군대에서는 살인 기술과 복종의 문화만 배우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안 가는 게 좋다고 했으며, ③ 이순신 장군은 조작된 위인인데 국민이 존경하는 마음을 갖는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고 감수성이 예민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편향된 가치관 교육을 실시한 사실에 대하여….
이용석 교사는 징계위의 결정이 알려진 8월7일부터 다시 경기도교육청 앞으로 가 1인 시위를 시작했다. 섭씨 34도에 이르는 무더위. 이날 오전 이 교사는 혼자 아스팔트의 후끈한 열기를 버티며 쪼그려 앉아 책을 보고 있었다. 징계위가 정직 3개월을 교육감에게 요구했고, 이젠 요식적인 절차만 남은 것처럼 보였다.
“징계위원들은 나에게 ‘국기 경례를 했냐 안 했냐’ ‘가슴에 손을 얹었냐 안 얹었냐’고 캐묻더군요.”
8월4일 오후 열린 징계위원회는 ‘사상 검증대’였다. 2006년 현대판 사상검증위원회의 위원 8명은 이 교사의 ‘국가관’과 ‘편향적 가치관’을 두고 심히 나라 걱정을 하다가 투표 끝에 만장일치로 정직 3개월을 내렸다. “개전의 정이 없다”며 해임을 주장하는 일부 징계위원들이 있었지만, 투표 결과는 해임 바로 아래 단계인 정직 3개월로 모아졌다.
이 교사의 중징계(파면·해임·정직)를 징계위에 요청하고 8월4일 징계위에 징계위원으로 참석한 김성기 교육국장은 8월8일 “아이들에게 편향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기 때문에 정직 세 달의 징계를 내렸고, 이 교사는 교육의 중립성과 학습권을 훼손했다”고 말했다. “사상·양심의 자유 침해 여부에 대한 법적 검토는 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법적 검토는 하지 않았다”며 “민원을 토대로 국가공무원법에 따라 징계했을 뿐”이라고 답했다.
이 교사와 학부모들의 갈등은 교육부가 금지한 사설 모의고사에서 비롯됐다. 이 교사가 지난해에 이어 올해 3월 실시될 예정이던 사설 모의고사를 반대하자, 학부모들이 학교에 찾아와 이를 항의했고, 그 뒤 에 보도되면서 국기 경례 문제가 불거졌다. 그러나 징계위원회는 지난 두 달 동안 사설 모의고사 건은 조사하지 않았다. 또 교장의 지시로 부장교사가 학부모의 교육청 진정서를 대필해준 사실 역시 조사하지 않았다. 김 교육국장은 “이 교사 징계와는 별개의 사안”이라며 “분명한 것은 이 교사가 국기·국가에 대한 예절을 어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건의 인과관계는 따져보지 않고, 국기 경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 자체로만 징계를 내린 것이다.
1972년 판결에서 한치도 진보하지 않아
사실 이 교사에게 내려진 중징계는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였다. 경기도교육청은 그동안의 사법적 판례와 공권력 집행의 전례를 충실히 따랐다. 물론 30여 년 전 유신 시절의 시각과 처분에서 한 치도 진보하지 않았다.
박정희 유신정권이 시작될 무렵인 1972년 전남 광양 오사교회의 주일학교 교사인 양영례씨는 아이들에게 경례 거부를 시켰다며 징역 8개월(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보석으로 나오기까지 양씨는 한 달여의 구치소 생활을 했다. 1973년 국기 경례를 하지 않은 김해여고 학생 6명은 퇴학을 당했다. 대법원은 “종교의 자유는 학칙과 교내 질서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보장된다”며 일개 학칙이 헌법상의 종교와 양심의 자유보다 상위에 있다는 놀라운 판결로 화답했다. 지금은 사법고시 교과서에 나오는, 고시생들이 코웃음을 치며 드는 ‘유신 사법부’의 대표적인 판결이다. 이뿐이었을까. 학교 현장의 다양성은 꾸준히 묵살됐다. 불과 3년 전, 박준규군은 고입 면접 전형서에 “종교적 신념상 국기 경례를 하지 않으니 양해해달라”고 썼다가 의정부 영석고에서 입학을 거부당했다. 경기도교육청은 그때도 “영석고의 입학 거부는 정당한 학생 선발권의 행사”라고 화답했다. 일개 학교의 학생 선발권이 종교와 양심·사상의 자유보다 중요하다고 ‘행정 조처’한 것이다. 그래서 이용석 교사의 징계가 새삼스럽지 않다. 적어도 이번 징계는 1972년 박정희 유신정권 때 대대적으로 취해진 ‘국기 경례 거부 사범’의 색출과 처분이라는 법적·행정적 일관성이 34년 동안 지켜져오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용석 교사는 법적 수단을 통해 이번 징계가 부당함을 입증하겠다고 말했다. 노용래 전교조 경기지부 사무처장은 “징계에 이의가 있을 경우 교육부 소청심사위원회에 재심을 요구할 수 있지만, 여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오성근 부천학부모연대 대표는 “심곡초등학교의 한 교사는 100만원의 촌지를 받고 장애아를 폭행했는데, 경기도교육청은 이 교사의 사표를 반려하고 정직 2개월만 선고했다”며 “교육청은 누가 부적격한 교사인지 모르고 있다.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평화인권연대, 다산인권센터 등 39개 단체가 모인 인권단체연석회의도 이번 징계가 사상과 양심에 대한 검열이라고 보고 법적·사회적 대응을 벌일 방침이다.
8월9일 김진춘 경기도교육감은 징계위가 올린 정직 3개월의 징계 요구에 최종 사인을 했다. 이 교사와 동료들이 혹시나 하며 품었던 기대는 산산이 깨졌다. 이날은 34년 전 박정희 유신정권이 국기에 대한 맹세를 전국 학교에 지시한 바로 그날이었다. 학생들은 이날부터 꼬박 34년 동안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쳐’ 다하는 충성 맹세를 외우고 있다.
이 교사의 징계를 지켜본 한 블로거는 “그는 국기 경례를 의무가 아닌 선택이라고 외쳤을 뿐”이라고 적었다. 이 교사는 매일 오전 11시면 경기도교육청 앞에 나가 징계 철회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허수아비처럼 선다.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공무원들은 뜨거운 햇살을 피해 지나가고, 교육청 옥상에 매달린 태극기는 하릴없이 휘날린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단독] 통일교 ‘민주당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특검은 수사 안 했다 [단독] 통일교 ‘민주당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특검은 수사 안 했다](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8/53_17651431283233_20251207502130.jpg)
[단독] 통일교 ‘민주당 정치인 15명 지원’ 정황…특검은 수사 안 했다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7/17650888462901_20251207501368.jpg)
[단독] ‘김건희 후원’ 희림건축, 종묘 앞 재개발 520억 수의계약 팀에 포함

뜨끈한 온천욕 뒤 막국수 한 그릇, 인생은 아름다워
![쿠팡, 갈팡질팡 [그림판] 쿠팡, 갈팡질팡 [그림판]](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child/2025/1207/53_17651042890397_20251207502012.jpg)
쿠팡, 갈팡질팡 [그림판]

‘윤어게인’ 숨기고 충북대 총학생회장 당선…아직 ‘반탄’이냐 물었더니

‘소년범’ 조진웅 은퇴 파문…“해결책 아냐” vs “피해자는 평생 고통”

‘갑질’ 의혹 박나래 입건…전 매니저 “상해, 대리처방 심부름”

“중국은 잠재적 파트너, 유럽은 문명 소멸”…미, 이익 중심 고립주의 공식화

“쿠팡만 쓴 카드, 14만원 결제 시도 알림 왔어요”…가짜 고객센터 피싱까지

바다를 달리다 보면…어느새 숲이 되는 길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 [단독] 세운4구역 고층 빌딩 설계, 희림 등과 520억원 수의계약](https://flexible.img.hani.co.kr/flexible/normal/500/300/imgdb/resize/test/child/2025/1205/53_17648924633017_17648924515568_20251204504031.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