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동자들의 점거농성 부른 것에 ‘무죄’넘어 ‘피해자’라고 항변하는 포스코… 대체인력 투입·노조 동향 보고 등 ‘실질적 사용자’로 볼 수 있는 정황도 많아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우리 집 공사하러 온 사람이 우리더러 일당을 올려달라는 격이다.”
포스코 본사 점거 사태가 자진 해산으로 끝난 뒤인 7월26일 서영세 포스코 홍보실장은 전화 통화에서 ‘집주인과 일꾼’의 비유를 들어 포스코의 난처한 처지를 설명했다. 말하자면, ‘집주인으로선 정해진 계약에 따라 일꾼을 부리는 업체에 공사 금액을 지급했거나 할 예정인데, 일꾼 쪽에서 집주인한테 일당을 더 올려달라는 건 합당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포스코 쪽의 비유법은 얼마나 진실을 반영하고 있을까? 본사 점거 농성 뒤 포스코는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검토하고 있다. 법적으로 ‘무죄’임을 넘어 ‘피해자’라는 얘기가 되는 셈인데, 이는 실상에 얼마나 부합하는 것일까?
공사하러 와서 일당 올려달란 격?
대규모 구속, 손해배상 등으로 만만치 않은 여진을 남기고 있는 포스코 본사 점거 사태는 포항지역 건설노조 조합원 3천여 명이 포스코 하청업체인 전문 건설업체들과 벌인 임금협상이 난항을 겪은 데서 비롯됐다. 협상이 벽에 부딪힌 상황에서 300여 명이 부당 해고되고, 원청(하청을 주는 쪽) 업체인 포스코에서 ‘대체인력’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2천여 명의 조합원이 7월13일 포스코 본사를 점거하는 사태로 번졌다. (합법적인 파업 기간의 대체인력 투입은 불법으로 규정돼 있는데, 포스코 쪽은 대체인력 투입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어 논란으로 남아 있다.)
포항건설노조와 포스코는 직접적인 고용관계로 연결돼 있지 않음에도 노조의 본사 점거라는 이례적인 현상을 통해 포스코가 사태의 중심으로 떠오른 것은 건설현장의 독특한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비롯됐다.
다른 건설현장과 마찬가지로 포스코 현장에서도 설비 신설이나 합리화 공정, 유지·보수 같은 일감이 수직적인 하청관계를 통해 단계적으로 배분된다. 포스코는 포스코건설에, 포스코건설은 다시 100여 개 전문 건설업체들에, 전문 건설업체들은 흔히 ‘십장’으로 불리는 현장 관리자들에 도급(일정 기간에 끝내야 할 일의 양을 몰아서 맡기는) 형태로 일감을 넘긴다. 포스코를 꼭대기로 하는 먹이사슬 구조의 제일 아래쪽에는 4천여 명의 포항지역 건설노조로 뭉쳐 있는 건설기능직들이 있다. 건설노조의 교섭 대상은 포스코건설과 하청관계를 맺고 있는 전문 건설업체들이며, 이번 단체교섭도 우선적으로 이들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돼왔다.
건설현장에서 말썽이 빚어질 때마다 늘 지적돼 어느 정도 알려졌듯이 이렇게 다단계를 거치면서 일거리가 나뉘는 것은 업종 특성에서 비롯된다. 건설업종의 독특한 성격 탓에 해당 업체들은 필요한 인력을 상시 고용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아파트 한 채를 짓는 과정을 예로 들어보면, 기초공사가 끝나야 뼈대를 올리고 그 다음에 바닥 공사, 내장 작업을 할 수 있다. 앞 단계 일이 끝나지 않으면 뒤에 이어지는 작업을 할 수 없다. 골조 올리는 공사가 진행 중이면 기초공사나 바닥 작업 부문은 그냥 놀든지, 다른 곳에서 일을 해야 한다. 건설업의 또 한 가지 특성으로 모든 작업 과정이 상당한 전문 분야여서 다른 데서 대체하기 힘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 때문에 웬만큼 큰 종합 건설업체라 하더라도 각 부문의 인력을 모두 상시적으로 보유하기는 힘들다. 회사 처지에서 볼 때 골조 작업반이 땀을 흘리는 틈에 다른 분야 직원들이 그냥 노는 걸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포스코건설이 기계, 플랜트, 목공, 철근 등 각 분야의 전문 인력을 직접 보유하기보다는 대아공무, 엄한산업, 창진전기, 현창산업, 동진건설, 범한산업, 한동산전, 스카이산전, 미래산업, (주)미성, 경해산업, 강동건설, 태길개발, 대영건설, 삼원건설 같은 수많은 전문 건설업체들에 하청을 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도급 과정에서 간접고용 관계 생겨나
하청 구조가 일처리의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건설업체들엔 나름대로 합리적인 방안인 셈인데, 문제는 일용직 노동자들의 불안정한 신분이다. 포스코 현장에선 안정적인 일감이 제공되고 있어 다른 곳에서 일하는 건설일용직들보다는 상대적으로 낫다곤 해도 다단계 하청관계에서 빚어지는 근본적인 문제는 그대로 안고 있다. 포항지역 건설노조에서 기계·플랜트 분야는 임·단협을 통해 불법 다단계 도급 근절과 법정수당 지급 같은 노동조건 개선을 꾸준히 이뤄온 반면, 올해 새로 결성한 목공·철근분회 쪽에선 변칙적인 다단계 하도급, 법정수당 미지급이 잦을 뿐 아니라 단체협약 체결도 거부되는 실정이라는 게 노조 쪽 주장이다.
포스코 현장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 노동시간, 수당 지급 여부, 복지시설 등 세부 항목들을 둘러싼 노사 양쪽의 주장이 워낙 달라 사실 여부를 단정적으로 말하기는 힘들지만, 논란의 큰 줄기는 ‘포스코가 건설 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교섭 대상자인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형식적인 법문구만으로는 포스코 쪽의 주장대로 교섭의 당사자는 노동자들과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전문 건설업체들이다. 이렇게만 보면, 포스코는 본사를 점거당하고 물적·정신적 피해를 입은 제3자가 되는 셈이다. 실제로 그걸까?
전국건설산업노동조합연맹의 최명선 정책부장은 “수차례 (단계를 거치면서) 도급을 하는 구조에선 발주처(포스코)가 공사 금액 조정 같은 조처를 해줘야 문제가 풀린다”고 말한다. “우리 집에 공사하러 온 일꾼이 우리더러 일당을 올려달라는 격이라는 (포스코 쪽의) 비유는 일견 맞다. 그런데 건설노동자들의 고용관계는 다양하다. 직접 고용관계뿐 아니라, 간접 고용관계도 있다. 집주인이 일을 맡기면서 공사 금액을 정하고 언제까지 마쳐달라는 요청을 한다.” 여기서 간접적인 고용관계가 생겨난다는 게 최 부장의 설명이다.
포스코 스스로 당사자로 여겨질 여러 정황을 남겼다는 주장도 많다. 대체인력 투입 시비, 시장·경찰 관계자·지역 언론사 사장 등이 참여한 대책회의를 열었던 사실, 경찰로부터 노조 동향을 보고받았다는 논란, 공기를 연장해 파업을 무력화시킨 전력 시비, 파업 때 대체인력 투입을 검토한 문건의 존재 등을 감안할 때 포스코는 실질적인 사용자로 봐야 한다는 게 건설산업연맹 쪽의 주장이다. 현행 법규상 저가·불법 하도급의 최종 관리자는 발주처라는 점에서도 포스코는 이번 사태의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을 펴기는 어렵게 돼 있다.
이번 포스코 사태에서 단연 눈길을 끈 쟁점이었던 주5일제 논란에서도 이런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이 사안은 포스코 사태의 본질을 잘 보여주며, 건설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부가 얼마나 무관심했는지를 보여주는 극명한 사례이기도 하다. 건설현장의 주5일제 논란은 일찌감치 불거진 것인데, 큰 쟁점으로 부각된 적은 별로 없었다. 포스코 사태에서 이 논란이 뚜렷하게 부각된 것은 7월부터 100인 이상 사업장까지 주5일제(주40시간제)가 확대된 시기와 겹친 이유도 있었던 듯하다.
포스코 사태의 본질, 주5일제 논란
업체별 상시 근로자 수(100인)를 기준으로 적용 범위를 정하는 주5일제는 도급 구조를 기본으로 삼는 건설현장에는 맞지 않아 말썽을 빚을 수밖에 없다. 포스코 현장의 예로 돌아가보자.
포스코건설에 소속돼 있는 상시 근로자들은 당연히 주5일제 적용을 받지만, 그 아래 하청관계를 맺고 있는 전문 건설업체들의 사정은 다르다. 상시 근로자 기준으로 하면 5일제 적용 대상이 되는 업체와 그렇지 않는 경우가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몇몇 업체가 어울리는 공동 도급 공사가 많다는 사정을 감안할 때 똑같은 현장에서 비슷한 일을 하면서도 누구는 주5일제 대상이고, 누구는 아닌 사례가 생겨난다.
건설산업연구원의 심규범 박사는 “(포스코건설이 포스코한테서) 수주하는 단계에서부터 주5일제 실시에 따른 비용 증가를 감안한 공사비를 받아내야 하는데, 지금 같은 주5일제 기준에서는 어렵다”고 설명한다. “포스코로선 공사 발주 때 (해당 프로젝트를) 주5일제 적용을 받는 전문 건설업체에서 맡아서 할지, 다른 데서 담당할지 사전적으로 알 수 없다. 발주처로선 이게 (공사 금액을 깎기 위한) 좋은 핑곗거리가 된다. 이 때문에 (주5일제 실시에 따른) 추가적인 인건비 상승분을 공사비 원가에 반영하지 않든지, 하더라도 보수적으로 조금 얹어주는 데 그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현장 노동자들은 (고용관계를 맺고 있는) 전문 건설업체들에 주5일제 실시에 맞춰 토요일 유급 휴무를 요구하게 되고, 전문 건설업체들은 그에 상응하는 공사비를 받지 못했다고 버티며, 포스코는 (직접적인 고용관계가 없다고) 발뺌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주5일제에 따른 토요일 유급 휴무 여부는 노사 합의로 정하게 돼 있다.
심 박사는 “2004년부터 건설현장에 대해선 주5일제 적용 기준을 상시 근로자 수 대신 ‘총 공사 금액’ 기준으로 바꿀 것을 제안했는데, 정부(노동부)에서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적용 기준을 총 공사 금액으로 변경하면 포스코 쪽에서 주5일제 실시에 따른 비용 증가를 감안한 수준에서 발주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도, 중간에 법(근로기준법)을 바꾸면 잘못을 시인하는 꼴로 비친다는 부담을 느꼈던 듯하다는 게 심 박사의 추정이다.
포스코 사태로 극명하게 불거진 건설현장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는 너무나 복잡해 한마디로 진단하거나 해법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기본적인 사실 하나하나를 둘러싼 이견이 너무나 크고 불신의 골이 깊다. “하도 복잡해 확실한 답이 보이지 않아 실태 조사부터 해봐야 한다”(배규식 노동연구원 연구위원)는 말이 솔직한 토로일지 모르겠다. 그렇더라도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포스코의 역할은 너무나 미흡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 해 5조9천억원의 순이익(2005년 기준)을 거둔 바탕에 건설일용직들의 고통이 깔려 있다면 그다지 자랑스런 실적일 수 없을 것이다.
기업모토 ‘사회적 책임’을 생각하라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생겨난 회사라는 역사적 맥락을 떠나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는 지금의 기업 모토를 생각하더라도 형식적인 법문구에만 얽매여 교섭 당사자가 아니라는 주장만 되뇔 수는 없지 않을까? 공공공사 발주에선 이미 주5일제 실시에 따른 원가 상승분을 감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비현실적 기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우린 민간회사일 뿐’이라고 하려면 ‘사회적 책임’이란 깃발은 내려져야 마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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