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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절차법 제정이 핵심!

등록 2006-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지식기반 서비스’ 경쟁력 위한다면서 법률시장은 개방대상에서 왜 빠졌을까… 농민의 참여권 보장하는 미국처럼 산업별 이해관계 조정하는 통상체제를

한미FTA와 협상의 미래

▣ 송기호 변호사

정월 초하루였다. 새해에는 하루에 3시간씩은 농업 공부를 하자고 다짐했다. 생업 때문에 사건과 법전에 파묻혀 지낼 수밖에 없지만, 마음의 화두를 접을 수는 없었다. 마침 정월 초이틀에 경북대 백두현 교수가 안동 장씨의 를 냈고, 그 다음달에는 제인 구달의 이 번역 출판되었다.

17세기 후반의 한국 여성과 21세기 영국 여성의 조곤조곤하면서도 열정적인 이야기에 귀기울일 때만 해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무대에 오르지도 않았다.

법률시장 개방을 찬성했건만…

필자의 처지에서 한미 FTA를 그저 책읽기를 방해하는 소란이라고만 말한다면 한가로운 사치일 것이다. 먹고사는 것과 직결된다. 법률시장 개방 문제가 있다. 아마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국 변호사들의 업무 방식을 찬찬히 지켜볼 기회도 생길 것이다. 뉴욕과 워싱턴DC의 로펌에서 보았던 그들은 과연 서울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잡을까? 한국의 대기업은 그들과의 만남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도 궁금한 대목이다. 아직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필자가 5·6월호에서 법률시장 개방에 찬성한다고 밝힌 것은 기업의 대외거래를 위한 법률 서비스가 좀더 나아져야 하고, 이 과정이 결국 한국의 변호사들에게 유익할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난 6월이던가? 어느 한미 FTA 토론회에 참석해,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이시욱 박사가 중소기업의 85%가 법률 서비스를 받아본 경험이 없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하는 것을 들을 때까지는 공감했다. 그런데 이 박사는 ‘제조업 위주의 수출지향형 성장 전략’을 ‘기존의 성장 패러다임’이라고 규정하더니,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면 한미 FTA를 해서 지식기반 서비스를 육성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렇게 되면 필자의 직업은 구시대를 마감하고 신시대를 열어야 할 짐을 지게 된 셈이다. 그리고 지난 7월14일,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이 뒤쫓아오는 상황에서 우리가 앞서가려면 지식기반 서비스 등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말한 뒤, 변호사들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려야 할 임무마저 떠안게 되었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 남아 있었다. 한국은 지난 18일, 2차 협상에서 서비스 분야 개방 목록을 미국에 전달했는데, 법률시장을 개방에서 제외했다. 이 보도를 처음 보았을 때, 의심할 여지가 없는 오보라고 생각했다. 통상 분야에서 오보는 드물지 않다. 지난 2003년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렸던 세계무역기구(WTO) 제5차 각료회의가 결렬됐지만, 한국의 언론들은 타결을 전제로 ‘전면 시장개방 불가피’ 보도를 일제히 쏟아낸 적이 있다. 이런 경험이 있기에, 어디까지나 오보임을 확인할 목적으로 다른 신문과 방송 보도를 둘러봤는데, 맙소사 오보가 아니었다. 정부는 법률시장을 개방 목록에서 뺀 것이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식기반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한미 FTA의 궁극적 목표’라고 국민에게 홍보한다( 2006년 7월19일). 이만하면 극적 긴장도가 괜찮은 연극이다.

정부의 말과 행동은 왜 다른가? 최대 피해자일 농업인에 대해서는 밀어붙이던 정부가 왜 법률시장은 개방에서 제외했을까? 한미 FTA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갈등과 모순은 통상행정의 폐쇄성과 단절 때문에 더욱 증폭되고 있다. 이해관계자의 참여권을 보장하고, 통상행정의 통합을 제도적으로 담보하는 통상절차법이 필요한 때이다.

통상행정의 폐쇄성이 갈등을 키운다

우리의 상대방인 미국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1975년부터 통상법 체제를 가동하고 있다. 여기서 이해관계자는 두 가지 통로를 통해 통상협상에 관여한다. 먼저 각 산업의 개별적 이익을 반영하는 부문별 자문위원회다. 미국 오리건주에서 딸기 농사를 짓고 있는 앨리스 데트윌러의 경우를 보자. 그녀는 미국 여성농업인협회의 부회장을 지냈다. 그래서 농업 분야 통상자문위원회의 과일·채소분과 소위 위원으로 임명되었다. 데트윌러에겐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과일과 채소 분야의 통상협상의 목적과 전략에 대해 조언을 할 법률적 권리가 보장돼 있다. 그리고 미국이 추진하는 모든 FTA로 인해 미국의 과일과 채소 분야가 어떠한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를 평가하고,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보고서는 미국 무역대표부와 미국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나머지 축산분과, 곡물분과, 가공식품분과, 설탕분과, 면화분과의 위원들도 모두 마찬가지다. 만일 어떤 FTA에 대해 분과 사이의 이해관계가 다를 경우에는 농업통상자문위원회(APAC)라는 좀더 포괄적인 기구에서 조정하는 제도가 법제화돼 있다.

나아가 만일 어느 FTA에서 농업 분야와 그 밖의 산업 분야 사이에 이해관계가 어긋날 경우에는 어떻게 조정하는가? 대통령 직속 통상정책·협상자문위원회(ACTPN)가 이 역할을 담당한다.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소를 기르는 목장주인 위스 윌리의 예를 보자. 그는 미국 육우협회의 회장을 역임했다. 부시 대통령은 2004년 겨울, 윌리를 이 위원회의 위원으로 임명했다. 위원회는 미국의 전반적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산업 간의 이해관계를 조정한다. 그리고 미국이 추진하는 모든 FTA에 대해 미국 전체의 관점에서 평가한다. 위원회의 보고서는 대통령과 의회에 제출해야 할 필수적 문서다. 그리고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위원들이 활동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정보를 제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미국의 각 산업의 이익을 균형 있게 반영하는 통상정책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미국의 무역대표부는 통상정책의 입안과 대외협상을 함께 진행한다. 그리고 부처 간 협의 위원회(TPSC)를 통해 단일하고 통합된 미국 정부의 협상안을 마련한다.

일반적 통상정책은 산자부 장관 맘대로?

한국은 어떠한가? 한국의 농업인 가운데 정부의 통상정책과 협상에 농업계의 이익을 반영하고, 한국의 종합적 이익을 위해 다른 산업계와 같이 의논할 법적 권리를 보장받은 사람은 없다. 여기에 단절적인 한국의 통상행정 시스템이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외교통상부의 권한은 원칙적으로 통상‘교섭’의 영역, 곧 협상의 범위로 제한된다. 통상교섭의 차원이 아닌, 일반적 통상정책은 산업자원부 장관의 권한이다. 이는 중국의 상무부나 일본의 경제산업성의 통합적 체제와도 매우 다르다. 더욱이 부처 간 논의 구조로 설치된 ‘자유무역협정추진위원회’와 ‘대외경제장관회의’는 대통령 훈령과 대통령령에 근거한 것일 뿐이다. 아무런 법률적 근거가 없다. 따라서 이 회의들에서 논의된 어떠한 사항도 대외적으로 책임이 없다. 환경, 노동, 복지 등의 분야를 다루는 비경제 부처는 두 회의에 상시적으로 참석할 권리조차 없다. 통상절차법이 없는 한국의 모습이다. 아마 법률시장 개방 문제는 이 시스템의 어느 한 골목에서 실종되었을 것이다.

법률시장은 개방 목록에서 빠졌다. 그러니 이제 제발 ‘지식기반 서비스’ 경쟁력을 위해 한미 FTA를 한다는 대사는 그만 읊어다오. 그런 연극을 계속 지켜보기에는 아직 절반이 남은 한 해가 내게는 소중하고 읽어야 할 책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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