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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버리 짝사랑의 갖다바치기

등록 2006-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노동·환경·금융서비스 등 낯선 분야가 많아서 “배우면서 협상한다”는 한국… 핵심 독소조항 기본 조사도 제대로 않고 통상에 잔뼈 굵은 미국과 대적할까

한미 FTA와 협상의 미래

▣ 송창석 기자 한겨레 정책금융팀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배우면서 협상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초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FTA 1차 협상 때 만난 우리 쪽 노동분과 협상단 관계자는 협상이 순조로운지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번에 미국이 노동분과와 환경분과에서 한국으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퍼블릭 커뮤니케이션’(공중의견 제출) 제도의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미 둘 중 한 나라에서 노동·환경 관련 법규 위반 사례가 발생했다고 치자. 그러면 그 나라 국민은 물론 협정 상대방 국민 누구나 자유롭게, 두 나라 정부 가운데 아무 정부한테나 이의를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양국 정부는 그 처리 결과를 통보해주자는 취지다.

그는 “미국과는 달리 노동 문제가 첨예한 우리로서는 그런 통로를 100% 열어둘 경우 정부가 제대로 핸들링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노동과 환경은 사실상 이번 협정에서 처음 다루는 것이어서 낯선 게 많다”고 토로했다.

뒤늦게 “온 법률을 뒤지고 있다”

금융서비스 분과에서도 마찬가지 얘기가 흘러나왔다. 투자와 서비스 분과는 7월10~14일 서울에서 열린 2차 협상 때 유보안(개방 불가 리스트)을 양국 간에 주고받았다. 하지만 금융서비스 분과는 유보안 교환을 9월에 있을 3차 협상으로 미뤘다. 신제윤 금융서비스 분과장(재정경제부 국제금융심의관)은 “한국이 몇 차례 자유무역협정을 맺은 적이 있지만 금융서비스는 이번 미국과의 협정에서 사실상 처음 다루는 것”이라면서 “미국은 많이 해봐서 포맷이 있지만 한국은 유보안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필요했다”고 설명했다. 금융서비스도 원칙적으로는 미국 기업한테 내국인 대우를 해야 하고 시장 접근의 기회를 줘야 한다. 현행 국내 법이나 제도에서 외국인을 차별하고 있거나 외국인의 시장 접근을 제한하고 있는 경우, 이런 차별이나 제한을 유지하려면 이번에 유보안으로 제출해야만 한다. 금융서비스 개방은 미국의 경쟁력 있는 금융상품이 더욱 쉽게 한국 시장을 드나들면서 자칫 미국발 금융위기를 가져올 수도 있는 민감한 사안이다. 관련 제도와 법률을 미리 조사하고 대책을 세워둘 필요가 있었다. 한국 협상단은 지금 뒤늦게 “온 법률을 뒤지고 있다”고 했다.

정부의 준비 부족은 한미 FTA 신중론자와 반대론자들이 주장하는 핵심 독소조항 가운데 하나인 투자자-정부 간 제소 절차에 대한 정부의 대응에서도 잘 나타난다. 이 절차는 투자자(기업)가 상대국 정부를 그 나라 법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 제3의 기관에 제소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린벨트나 스크린쿼터 등 공익을 위한 정부의 건전성 규제가 기업의 사익을 해친다는 이유만으로 제소당할 수 있으며, 해당 정부는 자국의 사법적 판단을 받을 기회마저 잃게 된다.

이와 관련, 정부는 2년 전 한미 투자협정(BIT)을 추진하며 낸 자료에서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를 통해 투자자가 상대국 정부를 제소한 경우는 1965년부터 2000년까지 40건에 불과하다”면서 “우리의 경우에는 사례가 없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한미 투자협정은 양국 정부 간에 거의 합의가 됐으나 한국 내 거센 반발로 체결되지 못했다. 지금 미국이 한미 FTA 투자조항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한미 투자협정 때와 거의 같다.)

정부 해명의 요지는 35년 동안 제소는 불과 40건으로 매년 1건을 겨우 넘는 수준이니 투자자-정부 간 제소 절차를 받아들여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4년에 낸 자료인데도 2001년부터 2003년까지의 생생한 통계는 누락돼 있다. 제소는 2001년에 14건으로 크게 늘었고, 2002년에는 19건, 이어 2003년에는 다시 31건으로 급증했는데 반영되지 않았다.

고의로 그랬을까? 정보를 제대로 수집하지 않아 빚어진 현상이라는 게 더 정확한 듯했다. 기자는 지난 5월24일 “한국도 투자자-정부 간 제소 절차에 따라 피소된 적이 정말 없느냐”고 우리 협상단의 투자분과 담당자에게 물은 적이 있다. 외교통상부 소속인 그는 그때까지도 “그런 적이 없다”고 밝혔다.

우습게 된 ‘4대 선결조건’ 허용

하지만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인터넷 사이트(worldbank.org/icsid/cases)에서 한국이 제소당한 사례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한국 정부는 1984년 2월 무기 제조업체 ‘콜트’로부터 무기생산 특허와 관련해 피소된 적이 있었다. 이 사건은 최종 판결이 나기 전인 지난 90년에 양 당사자 간 합의로 종결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이 제소를 당한 근거는 지난 1960년에 미국과 체결한 ‘한미 투자보장협정’ 때문이다. 투자보장협정은 투자하겠다는 의향만으로 투자자로 간주해 보호해주는 투자협정과는 달리, 실제로 투자를 한 단계부터 투자자를 보호한다.

2004년 한미 투자협정을 한창 논할 때는 물론, 한미 FTA 1차 협상이 10여 일밖에 남지 않은 지난 5월24일까지도 우리 정부는 피소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기자가 증거를 대며 되묻고 나서야 협상단 관계자는 “그럴 리가 없지만 알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1시간 뒤 “기자 말이 맞는 것 같다. 기록이 안 남아서 잘 파악할 수 없었다”고 답변했다.

우리 정부에는 기록이 없다고 쳐도 궁색한 변명이다. 투자분과 협상의 기초 자료나 다름없는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의 홈페이지를 지난 몇 년간 몰랐거나, 제대로 방문하지 않았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한미 FTA 제의를 덥석 문 우리 정부를 보노라면 ‘짝사랑’이 떠오른다. 한국은 현 정부 초반부터 미국한테 FTA를 타진했지만 거절당했다. 그 뒤 한국은 ‘외곽 때리기’로 가닥을 잡았다.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거대 경제권과 협정을 맺기 전에 이들 국가와 인접한, 경제 규모가 작은 나라와 협정을 맺는 것이었다.

그래서 2004년 가을 캐나다와 협상을 시작했다. 이때 미국에서 ‘러브콜’이 들어왔다. 농산물과 축산물 수출에서 캐나다와 경쟁 관계인 미국이 한국 시장을 놓치기가 아까웠다는 게 우리 정부의 설명이다. 미국도 다급했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우리 정부는 그 이점을 살리지 못했다. 짝사랑하던 상대방이 기대하지 않았던 손을 내밀자 놓치지 않으려는 듯 우리만 스크린쿼터 축소 등 이른바 ‘4대 선결조건’을 허용하고 말았다.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은 그 과정에서 여러 차례 미 연방의원들을 만나 설득 작업을 벌였다. 한미 FTA는 미국만 원하면 하겠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다.

한미 FTA를 해야 하는지, 체결 때 경제적 효과는 어떤지에 대한 우리 내부의 공론화는 턱없이 부족했다. 대통령 훈령 제121조(FTA 절차 규정)에 규정된 공청회는 협상 공식 선언 하루 전인 2월2일에야 치러졌다. 시민·사회단체는 “의견 수렴용이 아닌, 공청회를 했다는 증거용 공청회”라고 주장했다. 정태인 전 청와대 비서관은 “한일 FTA에 견줘 훨씬 많은 개방을 요구하는 협정을 준비하면서도 연구량은 10분의 1에 불과했다”고 지적했다.

공청회도 의견 수렴용 아닌 ‘증거용’

FTA 찬성론자 일부도 준비 부족을 시인하고 있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는 “준비가 미흡했지만 그 자체를 지금 탓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고 주장한다.

우리 협상단의 성향과 경력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한미 FTA를 추진하기로 결심하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현종 본부장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두 미국에서 졸업했다. 그를 아는 한 지인은 “김 본부장의 2남 가운데 장남은 중학생인데 현재 미국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직선적 성격 탓에 노무현 대통령처럼 소신이 너무 강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받고 있다.

야전 사령관이라 할 수 있는 김종훈 협상단 수석대표는 정통 외무관료 출신이지만, 통상 쪽 경력이 짧다. 1997년부터 1년간(국제경제국 심의관), 그리고 2000년부터 2년간(지역통상국장) 정도다. 다른 분과장들 또한 2~4년마다 보직을 바꾸는 순환 시스템으로 인해 통상 경력이 풍부하지 못하다. 1차 협상과 2차 협상 사이에만 3명의 분과장이 인사로 바뀌었다. 반면 미국은 웬디 커틀러 대표를 비롯해 많은 분과장들이 10년 넘게 통상에만 잔뼈가 굵은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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