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국기법안’발의한 뒤 심의 기다리는 열린우리당 홍미영 의원 인터뷰… 한나라당 이상배 의원 등 13명은 맹세 존속된 법안 발의, 찬반논란 일 듯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36년 한국인의 일상을 지배해온 ‘국기에 대한 맹세’(이하 국기 맹세)가 폐지될 수 있을까. 국기 맹세를 현행 법령에서 삭제하는 ‘대한민국국기법안’(이하 국기법)이 국회에 발의돼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홍미영 의원(열린우리당) 등 25명이 2004년 9월 발의한 이 법안은 현행 대통령령으로 명시된 ‘대한민국 국기규정’을 그대로 이어받되, 제3조에 규정된 ‘국기에 대한 맹세’ 부분을 없앴다.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1972년 유신정권 이래 한국인의 일상 속에 자리잡은 국기 맹세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법안 제정 과정에서 국기 맹세 폐지에 대한 찬반 논란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배 의원(한나라당) 등 13명 또한 국기법안을 발의해 현행 국기 맹세를 존속시키도록 했기 때문이다. 홍 의원과 이 의원의 국기법안은 국기 맹세를 포함시킬지 여부를 두고 상반된 입장을 갖고 있어, 향후 국기법 제정 과정이 주목된다. 행자위는 두 법안을 병합 심의해 올해 안에 통과시킬 예정이다.
6월2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만난 홍미영 의원은 “국가에 충성만을 요구하는 국기 맹세는 강제적이고 훈육적”이라며 법령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의원은 또 “국기 맹세가 일상화돼 뿌리 뽑기 힘들겠지만, 사회적인 토론을 거치면서 하나씩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맹세, 하고 싶은 사람만 하게 하자
언제쯤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가게 되나.
=현재 행정자치위 법안심사소위에 계류 중이다. 지난 4월 법안 공청회를 할 예정이었으나, 사학법 파동 때문에 연기됐다. 아마도 9월 정기국회에는 어떤 식으로든 통과될 것으로 보인다.
국기법은 대통령령인 ‘대한민국 국기규정’을 법률로 격상시킨 것이다. 현행 국기규정은 맹세 전문을 명문화한 다음,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할 때 맹세문을 낭송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홍 의원이 발의한 법안에는 국기 맹세 자체가 빠져 있는데.
=국기 맹세까지 넣을 필요가 있나. 굳이 법률에 넣어 의무화할 필요는 없다. 법안에서 큰 틀만 만들어주면, 나머지는 국민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다. 국민에게 자율성을 주자. 강제할 필요가 없다.
국기법이 제정되면, 국기 맹세는 법적 지위를 잃게 된다. 국기 맹세를 폐지하자는 주장인가.
=국기 맹세는 시대의 흐름에 맞지 않다. 보수단체 등 하고 싶은 사람들은 하면 된다. 하기 싫은 사람들은 더 이상 부담을 안 가져도 되고. 국민 의식이 바뀌는 방향에 따라 국민의례도 자연스럽게 바뀔 것이다.
국기 맹세에 어떤 문제점이 있어서 법률에서 뺐나.
=처음 시행된 맹세문(1968년 충남도교육위원회)은 ‘정의와 진실로써’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었다. 보편적인 가치를 통해 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자는 내용이다. 하지만 현 맹세문은 비민주적 독재정권 때 만들어진, 국가에 충성만을 요구하는 강제적이고 훈육적인 내용이다.
맹세문을 뜯어보라. 당시 권력의 내면을 은유하고 있지 않은가. 맹세문은 보편적인 가치를 담아야 한다. 혹시라도 국기 맹세가 포함된 이상배 의원의 법안이 다수결로 통과된다 하더라도, 현재의 맹세문은 바뀌어야 한다.
국기 맹세에 대한 기억이 있는가.
=1974년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고등학교 다닐 적에 막 제정된 국기 맹세를 외웠던 게 기억난다. 마찬가지로 국민교육헌장도 외워야 했고, 매일 조회 때 검사받았다. 등·하교 때 국기 경례를 안 했다고 선생님한테 잡히기도 하고…. (웃음) 지금도 국기 맹세를 들으면 독재정권의 의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요즈음 아이들은 모르겠다. 그런 시대를 살지 않았으니까 문제라고 느끼지 않을 수도 있겠지.
이념 논쟁으로 흐를까봐 걱정
지난 1월 의 보도 뒤, 국기 맹세 폐지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앞으로 법안 심의 과정에서 존폐 논란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를 것 같은데.
=이념 논쟁으로 흐를까봐 걱정이다. (맹세 존속을 주장하는 편이) ‘애국심이 없다’고 공격할 수도 있다. 더욱이 월드컵 때문에 애국주의 분위기가 고양된 상태이지 않나. 지난해 황우석 사태도 그랬고…. 세계는 날로 통합돼가고 있고, 한국에서도 국제결혼이 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애국지상주의적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념 논쟁으로 가다 보면 불필요한 비용을 감수해야 할 것 같은데.
=국기 맹세에 숨어 있는 은유를 파헤쳐 ‘잘못됐다’는 인식을 확산시켜야 한다.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이 인왕산에 쇠말뚝을 박지 않았나. 그건 단순한 행위가 아니었다. 일본이 식민지를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은유였다. 국기 맹세도 마찬가지다. 국기 맹세가 일상화돼 쇠말뚝처럼 뿌리 뽑기 힘들겠지만, 이에 대한 내력을 알리고 사회적인 토론을 활성화화면서 하나씩 바로잡아가야 한다.
관습적으로 인정돼온 국기를 꼭 법률로 명문화할 필요가 있나.
=행정자치위에 들어와 미진한 법안을 찾아봤는데, 국기법이 있었다. 약간 차이가 있겠지만, 한글날을 국경일로 승격시키는 법률 개정안을 통과시킨 것과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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