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이즈미 정부의 교육기본법 개정에 반대 목소리 높이는 일본 교사들…‘나라사랑’ 항목 평가 매기는 학습 지도안 강제되면 악용 가능성 높아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일본의 대표적 우익신문 이 한국에서 한 수 배워야 한다고 할 정도로, 밖에서 보면 ‘애국심’ 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월드컵 열풍 속의 한국. 이러한 ‘대~한민국’에도 없는 게 일본에 있다. 바로 ‘애국심 통신표’다.
이는 5월11일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져 6월18일 국회 회기 최종일까지 여야가 각축을 벌인 ‘교육기본법’(이하 교기법) 개정 심의 과정에서 밝혀졌다. 사실 고이즈미 정부는 자신들의 교기법 개정안을 무슨 일이 있어도 이번 회기에 통과시키려고 작정한 듯 보였다. 그러나 5월24일 일본공산당 시이 위원장이 고이즈미 총리를 추궁하면서 후쿠오카시 한 초등학교의 ‘애국심 통신표’ 건을 발표한 것이다.
지도안 맞춰 사이타마현 52개 학교 실시
2002년에 만들어진 이 통신표는 ‘나라 사랑’이라는 항목을 두고 학생들을 A·B·C로 평가했는데, 주변이 시끄러워지자 1년 뒤 사라졌다. 그러나 사이타마현 52개 학교에서는 여전히 실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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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애국심 평가는 학교가 ‘재량껏’ 또는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문부과학성의 학습지도 요령 가운데 “나라 사랑의 마음을 키우도록 한다”는 항목에 맞춰 만들어졌다. 이로써 교기법 개정에 반대해왔던 야당을 비롯한 일선교사와 시민들은 다시금 크게 반발하고 나섰다. 교기법 개정 움직임은 바로 학습지도 요령 항목을 법률로 ‘승격’시키려는 것임과 동시에 궁극적으로는 평화헌법의 개악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결국 교기법 개정을 둘러싼 사회적 논의가 열기를 더해가면서, 정세의 긴박성을 일깨워주는 듯 일대 성명이 발표됐다. 5월31일 도쿄도 공립학교교직원노조 3개 단체 위원장 연명의 ‘교기법 개악 반대의 호소문’이 그것이다. “아이들과 일본 교육의 보물인 교기법 개악을 절대 용인할 수 없으며, 교기법 개악 법안의 폐안을 위해 도쿄 전 교직원들이 일어나 한목소리로 공동 대응하자”는 촉구였다.
이렇듯 교사들이 현 정부의 교기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이유는 명명백백하다. 1947년 ‘일본 교육의 헌법’으로 통용되는 교기법의 제정 이후, 개인의 존엄을 기본 이념으로 해온 일본의 전후 교육을 ‘근저부터 뒤흔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헌법 개악의 움직임과 맥락을 같이하는 의도적인 개정의 냄새를 피우는 것이라 비판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현행 교기법 전문에 명시된 일본국헌법의 이상 실현과 교육기본법과의 관계를 명시한 부분을 삭제하고, 전쟁에 대한 반성으로 새겨넣은 ‘평화’라는 단어를 ‘정의’로 바꿈으로써, 헌법 9조와의 관계를 단절하고 있다. 또 전쟁을 포기하는 나라로 거듭나겠다는 의미인 ‘새로운 일본의 교육의 기본을 확립’한다는 부분을 삭제해 전후 일본의 교육 선언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말살하고 있다.
둘째, 현행 교기법 제2조의 ‘교육 방침’을 ‘교육 목표’로 바꾸고 무엇보다 “나라와 향토를 사랑한다”는 ‘애국심’ 항목과 20여 개에 달하는 덕목을 나열해, 국가가 바라는 ‘태도’를 규정하고 그 달성을 의무화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교사들은 “특정 가치관이 아이들에게 강제돼 헌법 19조가 보장하는 내심(양심)의 자유에 반하는 것”이라며 1999년 국기·국가법 제정 이후 본격화해온 애국주의 교육의 강화 움직임과도 맞물려 있을뿐더러 히노마루 게양, 기미가요 제창 때 기립 강요 등 애국심을 강요하는 근거로 악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국제 사회의 평화와 발전에 기여’라는 대목도 자위대의 해외 파병을 정당화하는 구실로 삼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나타낸다.
헌법의 평화정신과 연결고리 끊는 작업
셋째, 현행 교기법 10조 1항인 “교육은 부당한 지배에 복종하지 않는다”는 문장은 남겨놓았으나, “국민 전체에 대해 직접적으로 책임을 지고 이행해나간다”는 부분을 삭제함으로써 교육의 주권자가 국민임을 밝힌 부분을 도려냈다. 국민을 위한 교육을 국가와 향토를 사랑하는 태도를 키우기 위한 교육으로 탈바꿈시키고, 부당한 지배에 대한 판단도 국민이 아닌 ‘교육 행정’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게다가 10조 2항에 나온 교육 행정의 임무를 ‘교육 조건의 정립과 교육 비용의 확립’으로 제한했던 2개 항목을 삭제해 교육 행정의 교육에 대한 개입의 여지를 열어두고 교육 행정에 대한 비판도 제한하려 하고 있다. 정부·여당의 교기법 개정을 향한 총력 공세의 현재상을 반영이라도 하듯, 은 5월23일 교기법 개정안과 관련한 여론조사 결과를 실어 눈길을 끌었다.
‘나라 사랑’을 교육 목표로서 교기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이른바 ‘애국심 규정’만 본다면, 과반수인 56%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 쪽이 ‘얼씨구나’ 했을 대목이다. 그러나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킬 것인가”에 대해서는 찬성이 12%에 머물러, 교기법 개정을 고이즈미 내각에 맡길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는 생각을 국민의 과반수가 보여줬다.
그렇다면 정부·여당이 우파 세력들과 머리를 맞대고 교기법 개정에 혈안이 되어 있는 진짜 이유, 전전의 군국주의 교육을 전후 민주·평화주의 교육으로 돌려놓은 역사적 성과물인 현행 교기법을 개정하려는 진짜 ‘속셈’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일반 교사들의 대답은 한결같다. 바로 ‘전쟁에 저항감이 없는’ 아이들을 만들고, 머릿속에 국가에 대한 인식을 확고하게 심어놓겠다는 발상이라는 것이다. 역사 교과서 왜곡의 핵심인 ‘새로운 역사 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 멤버들이 교육 문제의 원인을 ‘애국심 결핍’과 ‘자학주의 사관’으로 몰아붙이고 있는 양태나, 평화헌법과 교기법 개정을 양대 핵심 과제로 삼고 총력 공세를 작정한 정부·여당의 인식의 뿌리는 같을 수밖에 없다.
‘사상과 양심의 자유는 침해할 수 없다’는 헌법 제19조 그리고 종교·언론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 제20·21조에 근거해, 도쿄도 교육위원회의 ‘히노마루·기미가요 강제’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싸우고 있는 교사들 역시, 교육 행정의 교육 개입은 물론 ‘강제되는 애국심’을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편협한 내셔널리즘으로 전쟁을 일으킨 과거 일본의 역사, 그리고 현재까지도 강화 일로를 걷고 있는 집권여당의 군국주의에 대한 ‘정당화 도화선’이 될 것을 우려하는 것이다.
전쟁에 저항감 없는 아이들을 양산하는가
교기법 개정 논의보다 한발 앞서 ‘애국심 통신표’ 없이도 더욱 확실하고 악랄하게 ‘통달’과 ‘직무명령서’를 근거로 교사들을 징계하고 처분해나가는 도쿄도 교육위원회. 그리고 공무원인 교사와 달리 교육위원회가 아무런 강제와 지도의 권한을 갖고 있지 않은 대상인 학부모들에게조차 “애국에 저항하면 국물도 없다”는 식으로 주의를 가하고 제재를 단행하는 지방교육위원회의 움직임까지 가세하고 있는 일본의 현재상. “전쟁의 참화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전제로 성립된 ‘평화헌법’과 ‘교육기본법’의 개정 논란은 일본 사회의 ‘국가주의’와 ‘평화적 양심’ 간의 공방을 보여주는 것”이라던 곤도 도오루(57) ‘히노마루·기미가요 피처분자 모임’ 사무국장의 말이 다시금 의미심장하게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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