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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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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 Korea, I ♡ Togo

등록 2006-06-22 00:00 수정 2020-05-02 04:24

암표로 입장하여 졸지에 토고 응원석 옆에서 지켜보게 된 대한민국-토고전 …아프리카 리듬에 몸을 맡기고 주먹으로 한국을 응원하며 입장 바꿔 생각해보다

▣ 프랑크푸르트=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모름지기 선현들께서 역지사지하면 백전백승이라고 이르시지는 않았지만, 일찍이 10여 년 전 가수 김건모는 “입장 바꿔 생각해~봐”라고 노래해 국민의 공감을 얻지 않았던가. 뭐 굳이 입장 바꾸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마침 앉은 자리가 앉은 자리인 만큼 입장이 조금은 바꿔지기도 했다. 독일 시각 2006년 6월13일 오후 3시, 2006 월드컵 한국과 토고의 경기가 벌어졌던 프랑크푸르트 코메르츠방크 아레나에서 나는 토고 응원석 옆에 앉아 있었다.

중앙역에서 애타게 암표를 찾아서

처음에는 짜증이 났다가 나중에는 웬 떡이냐 싶었다. 경기 당일 오전, 서울에서 전화가 왔다. 경기장 밖의 응원전을 취재하려던 계획을 바꿔 경기장 안으로 들어가라는 편집장의 지엄하신 분부였다.

음… 하루 일과를 일분일초도 어김없이 정확하게 반복했다는 칸트의 나라 독일에 와서인지 계획이 바뀌자 심사가 뒤틀렸다. 짜증을 내다가 뒤늦게 깨달았다. 아니, 월드컵을 경기장에서 본다는 호사를 어찌 마다하리오. 문제는 입장권이었다. 월드컵 아이디카드를 미리 신청하지 않은 탓에 경기장에 들어갈 방법이 없었다. 남은 방법은 암표를 사는 일뿐이었다. 그래서 아침부터 프랑크푸르트 중앙역 광장에서 암표상을 찾아헤맸다. 전날부터 역 광장에는 암표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났다. 월드컵 입장권 없이 무작정 독일로 날아든 한국인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는 법, 어제 안면을 익힌 한국 청년이 다가와 “저기, 흰 모자 쓰고 있는 아가씨가 표를 가지고 있다”고 알려주었다. 아가씨는 아저씨와 2인1조로 암표를 팔고 있었다. 아무래도 드넓은 경기장에서 제대로 경기를 보려면 2등석에는 앉아야 할 것 같았다. “2등석 얼마예요?” “300유로요.” 일단 가격만 확인하고 경기장으로 향했다. 경기 시간이 임박할수록 암푯값도 떨어지리라는 계산이었다. 아직 킥오프까지 4시간이 넘게 남아 있었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혹시나 현장 판매를 하지 않을까 기대했다. 하지만 경기장 옆의 판매소에는 역시나 ‘Tikets not available’, 표를 팔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심지어 암표상도 보이지 않았다. 300유로라도 주고 살걸 그랬나, 후회가 밀려들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았다.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놀면 뭐하나, 불안한 마음을 떨치기 위해서라도 취재를 시작했다. 경기장을 둘러싼 붉은 물결 사이에 점점이 노란 유니폼이 박혀 있었다. 그나마 토고를 응원하는 백인들이었다. 다가가 말을 걸었다. 혹시나 토고 사람이냐고 물었다. 백인 아저씨들은 자신들의 하얀 팔뚝을 가리키며 “우리가 토고 국민처럼 보이냐?”며 웃었다. 아일랜드 사람이지만, 토고를 응원한다고 했다. 아일랜드가 유럽 예선에서 탈락한 탓이다. 속으로 생각했다. ‘정말로 축구를 사랑하는군요.’ 왜 토고를 응원하냐고 물었다. 그들은 주변의 붉은 유니폼을 가리키면서 “한국 응원단은 많으니까”라고 답했다. 약자를 응원하는 마음은 지구촌의 인지상정이다.

이번에는 ‘I ♡ Togo’ ‘I ♡ Korea’라고 써넣은 티셔츠를 입은 청년들이 나타났다. 핀란드에서 온 야니와 얀센이라고 했다. 야니는 토고를, 얀센은 한국을 응원하는 ‘응원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날 경기장에는 토고를 응원하는 백인들이 적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프랑크푸르트에 사는 토고인이 106명뿐이란다. 토고를 응원하는 백인들은 프랑크푸르트 곳곳에서 며칠째 ‘암약하는’ 붉은 악마들을 보면서 적잖이 놀라는 눈치였다. 어디서 이렇게 ‘떼로’ 몰려왔느냐는 눈치였다.

외국인들을 인터뷰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었지만, 아직도 시계는 오후 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더위를 피하려고 나무 아래서 쉬고 있는데, 슬슬 토고 응원단이 떼지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북을 두드리면서 몸을 흔드는 그들을 보면서 2002년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에서 세네갈 응원단을 보면서 받았던 충격이 살아났다. 저토록 단순한 타악기로 그토록 유연한 리듬을 만들어내다니, 저토록 유연한 몸놀림으로 그토록 흥겨운 감정을 표현하다니, 감탄스러웠다.

프리 재즈 같은 토고의 응원

“두둥둥둥둥~ 대~한민국!”을 반복하는 한국의 응원이 단조로운 외침 같다면, 흥겨운 리듬이 끝없이 변주되는 토고(혹은 아프리카)의 응원은 마치 악보 없이 연주되는 프리 재즈 같았다. 이들의 응원을 보면서 왜 흑인의 힙합이 세계를 점령했는지 새삼 깨달았다. 더구나 아프리카식 응원은 정해진 공식대로 움직이지 않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흐느적거리지만, 결국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어디 한국뿐이랴. 이른바 현대식 국가의 응원이란 대체로 정해진 박자를 반복하면서 집단의 위용을 과시하는 방식 아니던가.

이에 견줘 아프리카식 응원은 집단적이지 않아서 위협적이지 않다.

이제는 시간이 없었다. 아무리 기다리는 자에게 복이 있다고 한들, 더 이상 나무 아래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경기 시작 1시간 전, ‘최대한 거만한 자세로’ 암표를 찾아나섰다. 아직도 4등석을 200유로씩 부르는 배짱 좋은 암표상들도 있었다. 이들을 지나쳐가다가 선인을 만났다고 했으면 좋겠으나 평범한 암표상을 만났다. 그는 2등석에 200유로를 불렀다. 그러면서 “페더레이션 티켓”이라고 강조했다.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입장권이라는 뜻이었다. 대부분의 암표가 구매한 사람의 이름이 들어간 입장권이어서 암표를 사더라도 혹시나 표 검사에서 적발되면 입장이 불허된다는 귀동냥을 해둔 터였다. 무사 입장을 보장한다는 말에 25만원에 가까운 거금 200유로를 건넸다. 검문을 받고 물을 사서 자리를 찾아가니 어느새 경기 시작 30분 전이었다. 바로 옆에서 토고 응원단이 북을 두드리며 몸을 흔들고 있었다. 졸지에 토고 응원단 옆에서 경기를 보게 생겼다. 경기장은 온통 붉은 바다인데, 내 좌석 주변은 붉은 바다에 노란 섬이었다. 잠시 동포들 곁으로 자리를 옮길까 고민하다 그냥 있기로 했다. 응원석에는 국경이 없으므로. 벌써부터 토고인들은 응원에 취해 있었다. 마침내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 애국가를 부르는 붉은 악마의 목소리가 경기장에 쩌렁쩌렁 울렸다. 만장하신 붉은 물결은 경기장의 절반 이상을 메우고 있었다. 이번엔 토고의 차례였다. 익숙한 멜로디가 다시 흘러나왔다. 토고 국가는 참 애국가와 비슷하군, 이상했지만 설마했다. 비로소 토고인들이 팔을 저으면서 야유를 지르기 시작하자 잘못된 것을 알았다. 토고인들은 약소국 국민의 설움을 토하듯 손을 맞잡고 목청껏 국가를 불렀다. 한편에서는 국가마저 몸을 슬쩍슬쩍 흔들며 부르는 자유분방한 토고인들도 있었다. 방금 전, ‘경건한’ 애국가를 비장하게 부르던 한국인이 겹치면서 괜스레 웃음이 나왔다.

“가장 경기 수준이 낮다”는 혹평도

경기가 시작됐다. 헛발질이 시작됐다. 한국 선수들이 전반에 가장 잘한 플레이는 상대방의 공격을 끊는 파울이었다. 패스는 도무지 연결되지 않았고, 가까스로 연결된 패스마저 어이없는 슛으로 날려버렸다. 조재진이 헛발질을 하자 유럽인들의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다만 박지성은 한 선수가 한 팀에 얼마나 막강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몸으로 보여주었다. 단언컨대 전·후반을 통틀어, 박지성의 운동량은 팀 전체 운동량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했다. 선수들의 쓸데없는 움직임을 제외한 효율적인 플레이로만 따지면 정말로 그렇게 보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전반 초반, 이영표가 돌파를 하자 주먹을 불끈 쥐는 자신을 발견했다. 아니 히딩크 어퍼컷까지 나오는 것 아닌가. 에라 모르겠다. 양다리를 걸쳤다. 토고 응원단의 리듬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주먹은 한국을 응원했다. 토고 응원단은 지치지도 않는다. 한국 응원단이 “대~한민국”을 외치는 시간이 경기 통틀어 10분이라면, 토고 응원단은 100분 동안 줄기차게 응원했다. 하프타임 10분 동안에도 응원을 멈추지 않는다. 토고 응원단에 한눈을 파는 사이에 사고가 터졌다. 전반 31분, 토고 17번 쿠바자가 선제골을 넣었다. 토고 응원단의 리듬은 빨라지고 몸놀림도 격렬해졌다. 그렇게 전반이 끝났지만, 경기장 전광판으로 보여주는 전반의 하이라이트는 몹시도 짧았다. 교민들의 전언에 따르면, 경기를 중계했던 독일 아나운서는 전반전에 “이번 월드컵 경기 중 가장 수준이 낮다”고 혹평했다고 한다.

후반전이 시작됐다. 다행히 후반에 투입된 안정환이 허리까지 내려와 연결고리 구실을 충실히 하면서 공격이 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53분, 운명의 시간이 찾아왔다. 박지성에게 파울을 한 토고 선수가 퇴장당했다. 하필이면 그 순간, 경기장을 울렸던 애국가 가사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세”가 생각났다. 곧이어 이천수의 동점골, 안정환의 역전골이 터지자 토고 응원석이 잠잠해졌다. 이따금 “아데!”를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흥겨운 리듬은 잦아들었다. 토고 국기를 머리에 둘러쓴 여성이 안쓰러워지기 시작했다. 경기 종료 10분을 남기고 한국팀이 공을 돌리기 시작하자 야유가 터져나왔다. 야유는 갈수록 커져서 나중에는 귀청이 따가웠다. 그리고 종료 휘슬이 울렸다. 노란 얼굴의 아저씨는 검은 사나이들 사이에서 긴장했다. 괜스레 머뭇대다 봉변이나 당하지 않을까 근심했다. 얼른 토고 응원단의 기색을 살폈다. 토고 응원단에는 비통한 분위기도, 분노의 기색도 없었다. 오히려 선수들이 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자 박수로 응답했다. 그들의 낙천성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소심한 아저씨와 달리 발랄한 한국 청년은 토고 응원단과 어깨동무를 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다. 어찌나 한국 사람이 많은지, 경기장 앞 전철역에서는 한국어 안내방송을 했다. 시내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인도계 독일인 청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재미있는 게임이었다”고 예의를 차렸지만, 심판에 대해 묻자 “한국 쪽에 약간 유리하게 판정했다”고 완곡하게 답했다. 같은 전철에 탔던 재독동포도 “결과는 좋았지만, 내용은 아쉬웠다”고 말했다. 원정 월드컵에서 한국이 거둔 첫 승은 물론 기뻤지만, 언제쯤 깔끔한 승리를 거두나 하는 아쉬움도 남았다.

태극기 두른 토고 출신 미하엘과의 만남

밤 깊은 프랑크푸르트 거리에서 토고 유니폼을 입고 태극기를 두른 청년을 만났다. 토고에서 태어나 독일로 이주했다는 미하엘은 발짓을 섞어가면서 “아프리카 팀들은 축구가 아니라 서커스만 하다 진다”고 아쉬워했다. 토고에서 태어났지만 가나계 혈통이라는 그는 “사람을 국경에 따라 나누는 것 자체가 멍청한 짓”이라고도 말했다. 한국 응원단에게 태극기를 받았다고 뿌듯해하는 미하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숙소인 쾰른으로 가는 밤 기차에 몸을 실었다. 프랑크푸르트의 하루는 그렇게 저물었다. 나중에 보니, 월드컵 입장권에 프랑스어로 ‘토고축구협회’라고 적혀 있었다. 토고협회에서 흘러나온 입장권이 아닐까 싶었다. 어쩌면 토고 입장권으로 토고 응원단 옆에서 경기를 본 셈이다. 부디 암표값의 일부라도 가난한 토고인을 위해 쓰였으면 좋겠다는 부질없는 공상을 했다. 굿 바이 미하엘, 굿 럭 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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