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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던지는 안마사의 슬픔

등록 2006-06-15 00:00 수정 2020-05-03 04:24

‘자격제한 위헌결정’에 흥분하면서 자살까지 꿈꾸는 시각장애인들의 사연 … 2003년 합헌 결정 뒤 관련법 개정 안한 보건복지부가 사태 불씨 제공

▣ 신지은 기자 wldms2@ablenews.co.kr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한 ‘안마사에 관한 규칙’(보건복지부령)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에 반발하는 시각장애인들의 시위가 그야말로 전국 방방곡곡에서 터지고 있다. 고속도로와 지하철 선로를 점거하고, 수업을 거부하고, 심지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고 있다.

날마다 마포대교엔 70~80명이 모인다

서울 마포대교는 시각장애인들의 핵심 시위 장소. 지난 5월29일 오후 시작된 고공시위가 열흘을 넘겨 계속되고 있다.

그사이 모두 10명의 시각장애인이 어두운 강물 속으로 몸을 던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에 모두 구출됐지만, 생과 사를 넘나드는 아찔한 순간들이었다. 마포대교 아래 한강 둔치에도 시각장애인들이 연일 몰려들어 시위를 벌인다. 아예 이곳에 눌러앉은 장기 농성자만 70~80명이다. 맨바닥에서 먹고 자며 정부가 구체적인 대안을 가져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이곳에는 지난 6월4일 자신의 아파트 9층 창문에서 떨어져 숨진 시각장애인 안마사 손아무개씨의 분향소도 설치돼 있다.

마포대교 시위가 10일째 되던 지난 7일 한강 둔치에서 만난 안마사 경력 7년째 윤경옥(여·39·시각장애 1급)씨는 “지금 시각장애인들은 다들 흥분 상태”라며 “지금은 발버둥이라도 칠 수 있지만 정말 시각장애인 안마사 제도가 중단되고 시간이 흘러 생활이 어렵게 되면 자살하는 시각장애인들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윤씨도 장기 농성자 가운데 한 명이다. 시위에 참여한 뒤 2~3일에 한 번씩 옷을 갈아입으러 집에 갈 때를 빼곤 매일 이곳을 지키고 있다. “시위 현장을 떠나면 안마를 빼앗길까 불안하다”는 그는 현재 경기도 분당의 한 안마시술소에서 일하고 있다. 안마시술소는 쉬는 날에 손님이 더 많기에 안마사에게는 명절도 공휴일도 없다. 24시간 항시 대기 상태다. 잠을 자다가도 손님이 오면 일을 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쉬는 날은 한 달에 이틀이 전부이다. 이렇게 일하고 받는 돈은 월 170만원 정도.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를 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안마사 하나밖에 없어서 하는 거예요. 시간의 자유도, 쉬는 날도 없는 안마사를 누가 하고 싶어하겠어요?”

그래도 윤씨는 안마 일을 만나고 나서 살아가는 희망을 찾았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눈이 나빠지기 시작한 그는 눈이 완전히 보이지 않아야 시각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는 줄 알고, 스물아홉이 되던 1996년에야 장애인등록을 했다. “부모님 연세가 많으셔서 혼자 생계를 꾸려야 했기 때문에 중학교 졸업 이후 옷가게 점원, 중국집 배달, 사무원, 노점상 등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지만 비장애인도, 시각장애인도 아닌 중간 입장이어서 사회에 내 자리는 없었다. 그 당시에는 오히려 안마나 침을 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이 부러웠다. 장애인 등록 이후 이제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일할 수 있다는 기쁨을 느꼈다.”

윤씨는 장애인 등록 이후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를 통해 점자교육을 받은 뒤 부산에 위치한 안마수련원에서 2년간의 수련 과정을 거쳐 1999년 안마사 자격을 취득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지방에서는 일자리를 찾기 어려워 상경했고, 현재 일하는 안마시술소에 취직했다. 현재 사이버대학을 다니는 윤씨는 “안마사를 하면서 공부도 할 수 있어 행복하고 즐거웠는데 이런 일이 터지니 삶의 희망이 사라져버렸다”고 털어놨다.

1912년부터 시작된 안마사 제도의 역사

윤씨처럼 안마사 자격을 취득한 시각장애인은 전국적으로 6천여 명. 보건복지부 통계를 보면 이들은 안마시술소 982개소, 안마원 91개소에서 일한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안마사 제도의 역사는 꽤 깊다. 1912년부터 시각장애인들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보장해왔다. 하지만 놀랍게도 정작 법률에는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는 근거 규정이 없다. 관련 법률인 의료법이 아니라 하위 법규인 보건복지부령인 ‘안마사에 관한 규칙’에 관련 규정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화근이었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른 것은 3년 전 현행 안마사 제도가 합헌이라는 판결이 났을 때 이미 여러 재판관이 안마사 조항은 국회에서 정하는 법률로 명시해야 한다고 지적했음에도 이를 손보지 않고 방치했기 때문이다. 결국 이번 헌재의 위헌 결정은 관련 부처의 직무유기가 초래한 결과다.” 대한안마사협회 나종천 회장은 지난 5일 국회 기자회견장에서 전날 자살한 손씨를 애도하는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헌재의 결정문에는 나 회장의 지적이 포함돼 있다.

“안마사 자격 인정에 있어서 비맹 제외 기준은 기본권의 제한과 관련된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사항임에도, 이 사건 규칙조항은 위임의 기존과 범위가 불분명하거나 지나치게 포괄적인 법률조항을 빌미로 혹은 모법인 의료법 제61조 제4항의 위임 범위를 벗어나 이를 기본권 제한 사유로 설정하고 있으므로, 이는 위임 입법의 한계를 명백히 일탈한 것으로서 법률 유보 원칙에 위배된다.”(헌법재판소 결정문 중)

한마디로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고, 시각장애가 없는 사람은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없다는 것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중요한 사안인데도 법률에서 근거를 두고 있지 않아 위헌이라는 것이다. 이는 지난 2003년 결정 당시 헌법재판관 5명의 지적사항이었다. 헌법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찬성을 해야 위헌 결정을 내릴 수 있는데, 5명만 위헌 의견을 내놓아 당시는 합헌 결정이 났던 것. 2003년 결정 이후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지 않아 결국 이번 사태까지 오게 된 셈이다.

현재 보건복지부는 뒤늦게 대한안마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 법률가, 여야 의원 보좌관이 참여하는 ‘의료법 개정 실무협의회’를 구성해 대체 입법을 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특히 유시민 장관은 지난 8일 마포대교 농성장을 방문해 “헌재 결정은 절대적으로 존중할 수밖에 없지만 시각장애인이 안마 분야에서 전문직업인으로서 자부심을 갖고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강구하겠다”며 “헌재의 결정과 법 제도를 존중하는 틀 안에서 구체적인 방법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법률안 개정안 준비하는 정화원 의원

일단 의료법 개정은 위헌 요소를 해소하기 위해 의료법에 시각장애인만 안마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 규정을 만드는 쪽으로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정부보다 시각장애인 국회의원인 한나라당 정화원 의원이 더 빨리 개정안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정 의원은 이미 의료법 개정안을 마련해놓고 동료 의원들의 서명을 받고 있다. 조만간 발의해 다음 임시국회가 열리는 대로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추진하겠다는 방침이다. 정 의원실 관계자는 “의료법을 개정하면 일단 위헌 요소 하나를 제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나머지 위헌 요소인 직업 선택의 자유와의 충돌 부분은 그대로 남게 된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을 보면, 시각장애인만 안마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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