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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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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하는 카니발은 가라

등록 2006-06-14 00:00 수정 2020-05-03 04:24

월드컵 축제를 과잉된 이미지와 경박한 이벤트로부터 구할 수 없을까… 개막전 열리는 뮌헨, 뜻밖에도 차분한 거리를 걸으며 성찰에 잠겨보다

▣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2006년 독일월드컵 거리원정 공연 ‘비나리 프로젝트’를 위해 첫 공연 장소인 독일 뮌헨에서 내가 받은 첫 느낌은 이곳이 과연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곳인가 하는 의구심이었다. 초대형 국제 스포츠 이벤트를 유치할 때 보여준 한국적 상식과 관습에 따르면, 뮌헨은 공항 입국 게이트부터 월드컵 관련 각종 홍보 이미지와 기업 광고물이 넘쳐났어야 한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진입하는 도로 주변에 월드컵 홍보 배너가 넘쳐나고 세계 각국의 서포터스들을 환영하는 대형 현수막과 도심의 대형 전광판이 스펙터클한 이미지를 연출할 것이라는 상상은 여지없이 소거되었다.

여기, 개막전 열리는 곳 맞아?

뮌헨 공항에서 숙소로 올 때까지 월드컵을 홍보하는 조형물은 간혹 보였지만 우리가 흔히 보아온 홍보용 ‘물량공세’의 인상은 아니었다.

월드컵을 집중 홍보하는 강렬한 시각 이미지들이 평범한 일상을 압도할 정도의 분위기는 도심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공항에서 도심 진입하는 길목 즈음에 독일 대표팀의 수문장 올리버 칸의 선방 장면을 타원형 구름다리 모양으로 만든 이미지가 시각을 자극했고, 뮌헨시로 진입하기 직전 고속도로에서 본 초현실적인 우주비행체 ‘알리안츠 아레나’의 위용을 보면서 이곳이 월드컵 개막 도시임을 감지한 정도였다.

서울 시청 주변에 걸린 박지성과 이영표의 대형 걸개그림과 세종로 거리를 장식한 한국 선수들의 모형물, 그리고 오래전부터 월드컵 특수효과에 올인한 기업들과 방송사들의 물량공세가 쏟아내는 이미지의 과잉 현상만 놓고 보면 월드컵은 독일이 아니라 한국에서 다시 열리는 듯하다.

필자 역시 독일에 오기 전 기업과 방송사가 쏟아내는 월드컵의 스펙터클한 이미지에 감염됐던바, 차분하기 그지없는 뮌헨에서의 경험은 다소 낯선 것이었다. 반대로 독일이나 유럽의 시민들의 일상적 삶의 기준으로 보면 2002년 한-일 월드컵의 광란의 거리 난장은 조금은 전체주의적 공포감을 발산한다. 일부 유럽 언론들이 2002 한-일 월드컵의 ‘붉은 광란’을 극찬했지만, 정반대로 뉘른베르크의 나치대회를 연상시킨다고 혹평한 것도 축제를 일상처럼 자연스럽게 경험하는 그들의 시각으로 보면 의도적인 매도로 볼 수만은 없다.

축제를 꼭 그렇게 집단적 일체감의 공식에 따라 즐겨야 할까? 모든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똑같은 옷을 입고 동일한 구호를 외치는 것이 카니발의 절정일까? 월드컵 카니발을 과잉된 이미지와 경박한 이벤트로부터 구해낼 수는 없을까? 뮌헨시의 조용한 월드컵 풍경을 보면서 내가 던진 반성적 질문이다.

이러한 반성적 질문을 도출케 한 유럽 문화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나올까? 내가 보기에 그 진정성은 특별한 이벤트를 위해 개인들의 일상을 희생시키지 않는 오랜 원칙에서 비롯된다. 특별함이 일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이 특별함을 활용하는 지혜가 유럽 문화의 힘이 아닐까 싶다. 일상과 특별한 이벤트 간의 거리가 소멸되는 예들은 특히 유럽의 유서 깊은 축제와 축구 서포터스 문화에서 발견된다.

스스로 만들고 즐기는 거품 없는 축제

독일 베를린의 ‘러브 퍼레이드’와 뮌헨의 ‘옥토버 호프 페스트’, 스페인 발렌시아 인근 부놀의 ‘토마토축제’와 산페르민 축제에서 벌어지는 ‘소몰이 축제’, 그리고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축제와 프랑스의 아비뇽 축제와 같은 세계적인 카니발들은 특별한 이벤트를 선보이지 않지만, 매년 수십만에서 수백만의 인파가 몰린다. 베를린 러브 퍼레이드는 유럽의 수십만 청년들이 브란덴부르크 광장 주변에 모여 4박5일간 일렉트로닉 사운드에 맞춰 춤을 추는 것이 전부이고, 맥주 축제는 그냥 거리의 노천 카페나 동네 호프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일상의 담소를 즐기는 것이 고작이다. 스페인 토마토 축제는 엄청난 양의 토마토를 거리에 풀어놓고 서로 던지고 뭉개고 드러눕는 즐거움이 전부이며, 소몰이 축제는 500m 남짓한 좁은 골목길에 성난 소를 풀어놓고 인간의 용맹함을 과시하는 것 외에 특별한 이벤트는 하지 않는다. 에든버러와 아비뇽 예술축제 역시 자연스러움을 즐기려는 자들의 문화적 연대감에서 비롯되었다.

물론 ‘고작’이나 ‘불과’라는 표현을 단순하게 말할 만큼 유럽의 축제문화가 자명한 것은 아니다. 유럽의 축제들은 일상의 축제로 정착하기까지 나름대로 갈등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축제의 관변성과 상업성에 저항하고 때로는 흡수되는 불균등함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유럽의 축제들은 지역 시민들 스스로가 만들고 즐기는 거품 없는 축제로 정착했고, 이러한 역사는 축구 서포터스 문화에도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유럽 축구 서포터스 문화는 지역의 문화 정체성을 그대로 갖고 있다. 서포터스의 역사는 지역 문화의 역사이며 정치와 노동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탈리아 세리에A 리그에서 인테르밀란과 AC밀란의 ‘밀란 더비’는 남북으로 분할되는 밀라노의 경제적·계급적 불평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스페인 프리메라리그의 FC바로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의 ‘클래식 더비’는 지역 감정과 종족 갈등의 연장이다. 스코틀랜드의 셀틱과 글래스고의 목숨을 건 경기는 신·구교도 간의 대결로 대변된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전통의 라이벌인 리버풀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대결에서는 지역 노동자들 간의 오랜 경쟁의식과 파업의 연대감을 느낄 수 있다. 인구 40만여 명에 불과한 맨체스터시에 7만 석이 넘는 좌석은 항상 매진되고, ‘밀란 더비’와 FC바로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 간 ‘클래식 더비’에서 감동적인 응원 열기가 식지 않는 것은 바로 지역에 뿌리를 둔 일상의 소중함 때문이다. 유럽인들의 축구문화는 월드컵을 특별한 이벤트로 여기지 않는다. 오히려 이들에게는 유럽 챔피언스리그가 더 친근하고 절박하다. 국가별 프로리그나 유럽 챔피언스리그는 늘 지속되어 일상의 축제로 정착되었기 때문이다.

높고 큰 게 다 좋은 건 아니라오

월드컵을 홍보하는 초대형 이미지나 고성능 스피커를 장착한 도심의 늘씬한 내레이터 모델의 인공적 목소리가 없는 한적한 뮌헨시를 돌다 이곳에서 32년간 살고 있는 한국 교민으로부터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이야기인즉 뮌헨시의 개선문 안으로 멀리 보이는 초현대식 비즈니스 빌딩 건축을 놓고 뮌헨 시민들이 거센 비판을 했다는 것이다. 급기야는 시민투표를 해 도시의 전통적 이미지를 훼손하는 현대식 빌딩의 건축을 불허하는 시 조례안을 통과시켰다고 한다. 사실 뮌헨 개선문에서 초현대식 비즈니스 빌딩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어 그 자체로는 큰 문제가 될 법하지 않다. 그러나 개선문이라는 유서 깊은 스크린을 통해 멀리 보이는 현대식 빌딩을 보니 주변의 전통적이고 수평적인 경관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모든 건축물이 보통 사람들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은 도심의 수평 감각은 모든 유럽 도시가 갖고 있는 생태적인 장점이다. 수직보다는 수평을, 세로보다는 가로를 선호하는 유럽인들의 문화 전통이 월드컵 개막전이 열리는 뮌헨시의 소박한 경관들을 전혀 이상하지 않게 만든 요인이 아닌가 싶다. 일상의 평상심을 유지한 채 경박하지 않게 개막전을 준비하는 뮌헨에서 서울의 고층빌딩에 걸린 대형 현수막이 자꾸 오버랩되는 것은 아마도 높고 큰 것이 모두 좋은 것은 아니라는 교훈이 우리에게 중요해서였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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