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교민사회에서 6년째 ‘축구부장’ 맡고 있는 장재인 할아버지… 소질 있던 두 아들을 ‘선행학습’으로 망친 뼈아픈 경험의 교훈
▣ 크레펠트=글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아… 저렇게 하면 안 된다니까!”
6월3일 독일 크레펠트에서 열린 한우리 교민체육대회에서 교민들이 ‘볼’을 차고 있었다. 명목은 체육대회지만 다들 오랜만에 만나 친목을 다지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오직 ‘추리닝’ 바람의 할아버지만이 축구 경기를 줄곧 지켜보며 무언가를 주문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에서 뛰다가 온 선수들을 가리키며 “보라고, 저렇게 뻥 차면 안 된다니까. 낮고 빠르게 줘야지”라고 혀를 차다가, 독일에서 축구를 배운 교포 선수를 보면서는 “쟤들은 (공 받을) 준비가 돼 있잖아. 언제든 준비가 중요해”라고 말하기도 했다.
두개로 갈라진 교민응원단
말투가 재미있어 옆에서 한두 마디 추임새를 넣었더니 한국 축구에 대한 아쉬움이 타령조로 이어졌다. 그가 지적하는 한국 축구의 문제점은 이랬다. “바둑에도 고수들은 길목에 딱딱 수를 두잖아. 축구에도 공이 가는 길이 있어요. 공이 가는 길에 미리 가 있어야지.” 그리고 하나 더 “언제든지 준비가 돼 있어야 해. 공 받을 준비를 하고 있어야지”라고 덧붙였다. 축구 사설이 재미있어서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졌다. 그가 내민 명함에는 ‘재독 대한축구협회 회장’이 찍혀 있었다. 그는 “6년째 축구부장(축구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고 소개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장재인씨는 2006 독일월드컵 교민응원단장을 겸하고 있었다. 독일 교민사회는 이민을 온 시기와 독재정권 시절 정치적 견해에 따라 나뉘어져 있었다. 아직도 반목의 골은 깊어서 하나로 뭉치기가 쉽지 않다. 여러 갈래로 나뉘었던 교민응원단은 우여곡절 끝에 재독한인총연합회가 주도하는 ‘재독한인 월드컵응원 조직위원회’로 통합됐다. 과거 반독재 운동을 했던 일부 교민을 중심으로 구성된 ‘붉은 호랑이 응원단’은 아직도 독자적인 응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 장 응원단장은 “다 함께 응원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지만, 아직도 과거의 대립으로 생긴 감정의 골을 메우기는 쉽지 않다”고 전했다.
장재인씨는 응원도 좋아하지만, 축구는 더욱 좋아한다. 축구 얘기만 나오면 사설이 끝이 없다. 그는 한국에서 야구선수 생활을 잠시 했지만, 36년 전 광부로 독일에 오면서 축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마침 그의 아들 둘이 모두 축구에 자질을 보이면서 축구에 대한 관심은 더욱 깊어졌다. 특히 그의 큰아들은 17살 이하 독일 대표팀에 뽑힐 만큼 재능을 보였지만, 프로선수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는 “한국식으로 아들을 가르치려 한 것이 잘못이었다”며 “아버지의 치맛바람이 결국은 부작용을 낳았다”고 돌이켰다. 그는 스스로 축구를 공부해 아들에게 클럽에서 배울 기술을 먼저 가르치는 ‘선행학습’을 시켰다. 하지만 아버지의 선행학습은 오히려 아들에게 축구에 대한 흥미를 잃게 만들었다. 그는 “한국 선수들도 비슷하다”며 “청소년 때까지는 몰아세우니까 독일 애들보다 축구를 잘하지만, 스스로 흥미를 느끼면서 해야 할 성인이 되면 독일 선수들보다 뒤처지게 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선수를 보는 눈에 대해서도 한마디 했다. 그는 “한국 코치들은 무조건 발 빠르고 체격 좋은 선수들만 선호한다”며 “선수들의 다양한 재능을 보는 눈을 길러야 한다”고 충고했다.
지도법만 바꿔도 축구강국 될 수 있다
그의 축구에 대한 열정은 식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아들 같은 축구선수를 키우고 싶어한다. 그래서 한국의 유망주들이 독일에서 축구를 배우도록 돕고 있다. 여건만 된다면 한국에 돌아가 축구학교도 열고 싶다. 그는 “한국인은 스피드도 빠르고, 발재간도 좋고, 재치도 있어서 가능성이 충분하다”며 “전술과 지도법만 혁신하면 얼마든지 축구강국이 될 수 있다”고 낙관했다. 그리고 “당장 16강에 들지 못하더라도 언제든 16강에 들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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