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문회에 선 황라열 서울대 총학생회장,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혹들 … 향후 거취는 서울대 구성원들의 자정 능력 보여줄 리트머스 시험지
▣ 최지원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4년(전 기자)
▣ 신성미 서울대 사회학과 4년(전 기자)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사기치지 맙시다.’
그가 내세운 선거운동 대자보의 대표 구호였다. 그리고 45%가 넘는 높은 득표율로 당선했다. 그런 그가 이제는 자신이 내세운 구호를 들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6월8일 오후 4시 서울대 학생회관 라운지는 오랜만에 인파들로 북적였다. ‘황라열 총학생회장 사태 관련 진상규명 청문회’를 보기 위한 학내외 언론사 취재진들과 서울대 학생들 때문이다.
황라열(29·종교학과 4년) 총학생회장의 선거 프로필 허위 기재 의혹과 각종 발언 관련 논란의 진위 여부를 따지기 위해 열린 청문회는 서울대 총학생회 사상 이례적으로 마련된 자리였다. 300여 명이 들어찬 라운지는 빈자리 없이 꽉 찼고, 자리가 없어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아 이번 사건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여줬다.
과는 양심선언으로 밝히자?
예정된 시간보다 5분이 지나자 황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지자 황씨의 얼굴은 당황한 기색이 완연했다. 그는 청문회에 앞서 “지난 일주일간 본의 아니게 학내 및 사회에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머리를 숙였다. 청문회는 서울대 학내 언론인 원선우 기자, 정영찬 편집장, 천호현 편집장, 나우(필명) 공동편집장이 패널로 나와 논란이 되는 사안을 중심으로 묻고 황씨가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먼저 고려대 의예과 특차합격 논란에 대해 그는 합격자 명단에서 이름을 찾을 수 없다는 고려대의 공식 입장은 존중하지만 “고려대 의예과 정시모집에서 추가합격을 한 것은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수습기자 경력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는 “수습기자를 한 적이 없다”고 사과했다. “왜 프로필에 허위 기재를 했냐”는 질문에는 “이력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검토하지 않고 옮겨적은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는 “에서 기고를 청탁받았고 원고료를 받은 것도 사실”이라고 거듭 주장했다. “원고료를 제공한 적이 없다”는 쪽의 입장에 대해서는 “현금으로 받았기 때문이며, 당시 문화부 기자를 만난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이것을 증명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고민하겠다. 개인적인 얘기이지만, 한겨레와 저의 관계상 양심선언이 이뤄지지 않는 이상 밝힐 수 없다”고 말하자 방청석 곳곳에서는 실소가 터져나왔다.
무에타이 프로 자격증에 대해 그는 “프로급 대회에 출전한 것 자체가 프로 자격”이라고 했다. 또 “시간만 준다면 이틀 정도 후에 자료를 보여줄 수 있다”며 “이 문제는 사과할 일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이른바 ‘약장사’ 이력과 관련해 마약 판매 의혹이 불거진 것은 “고등학교 때 지하철에서 나프탈렌과 방향제를 팔았던 것”이라며 이력을 옮겨적는 과정에서 실수했다고 해명했다.
이날 청문회는 2시간10분가량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로 진행됐으며, 곤란한 질문이 나올 때마다 황씨는 연방 물을 마시기도 했다. 청문회에 이어 ‘총학생회장과 학우들 사이의 대화’ 자리에서 그는 한 학생이 “탄핵이나 자진 사퇴를 촉구하는 의견에는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후 결과에 대해선 사퇴로써 책임지겠다기보다는 학우들이 생각하는 바대로 행동하는 게 낫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의혹의 실타래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는 게 학내의 대체적인 분위기다.
패널로 나선 공동편집장 나우(고고미술사학과 4학년)씨는 “청문회 목적에 부합하지 못했다”며 “해명할 내용에는 사과하고, 사과할 내용에는 해명했다. 납득할 수 없는 사실이 많다”고 말했다. 청문회를 끝까지 봤다는 송영훈(법학부 4년)씨는 “모호한 답변이 많았다”면서 “황우석 사태 이후 서울대가 또다시 이런 일로 세간의 주목을 받는 것을 보니 서울대생으로서 참 불행한 일”이라고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청문회장에서 나오던 한 학생은 “다 말장난 아니냐. 황우석과 그를 비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박상우(경제학부 4년)씨는 “도덕성이나 진실성에 대한 논란은 확실하게 밝혀졌으면 한다”며 “다만 생산적이지 못한 정치논쟁으로 가는 것은 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언론 플레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
학생들은 조속한 마무리를 원하고 있지만, 그를 둘러싼 논란과 해명은 당분간 지속될 전망이다. 황씨는 의혹과 관련한 증명자료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해 “하루이틀 안에 준비하겠다”고 약속했다. 청문회 직후 등 학내 언론사 게시판은 청문회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며 사퇴·탄핵 등을 요구하는 글들로 달아올랐다. 또 “백댄서를 했다니 춤을 춰보게 하자”거나 “피아노 조율 실력을 보자”는 등 그의 경력 전반에 의문을 표시하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올해 초 그의 당선 당시 선관위 위원장을 맡았던 박종하(법학부 3년)씨는 “탄핵은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대의원 3분의 2가 출석하고, 출석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만 한다”며 “이른 시일 안에 탄핵안이 발의될 것 같지는 않다”고 내다봤다. 학내에서는 불신임 선언, 사퇴촉구안 발의 등 여러 대안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기말고사가 진행 중이고 6월14일이 공식 종강일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의견 수렴 과정이 순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경력이 의문투성이라면 왜 선거 과정을 통해 한 번도 검증되지 않았을까. 황씨가 후보로 출마했던 지난해 11월 선거 당시 선관위 활동을 했던 김현태(경제학부 4년)씨의 설명은 이렇다(지난해 11월 선거는 투표율 저조로 무산됐다). “지금까지 후보들의 경력이 단과대 학생회장 등 학내 경력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경력이 중요하지 않았고, 특별히 논쟁거리가 된 적도 없다. 황씨처럼 학외 경력을 들고 나온 경우는 거의 없다.”
그는 실제로 ‘학내’에서는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던 학생이다. 경력의 대부분이 외부 활동이다. 종교학과의 한 학생은 “그는 2001년 1학기부터 휴학과 복학을 반복했고, 과나 반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았다”며 “같은 과 사람들을 만나봐도 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사무실에 들러 물어보니 “이번 학기에 수업을 4개 정도 듣는 것 같은데 5월에 나타나 자기 수업의 강의실이 어디냐고 묻더라”는 대답만 들을 수 있었다. 그와 어느 정도 친분이 있다는 학생회 관련 인물을 찾아가 그에 대해 물어도 극구 대답을 꺼릴 뿐이었다.
그는 지금까지 많은 일들을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처리해왔다. 투표소 지키는 일을 돈을 주고 아르바이트를 고용한다든지, 외부 회사에서 자금을 유치하려는 계획 등이 그것이다. 매일 ‘총학생회 일일결산 보고’라는 글로 에 그날의 활동을 일일이 보고하는 등 의욕적인 모습은 일부 학생들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언론플레이’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지금의 사태를 예고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학생-총학-본부 간의 의사소통에 대한 질문에 “언론플레이를 해서 밖의 시선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편집장 정영찬(인문계열 2학년)씨는 “기성 언론사와 황라열 양쪽에서 서로를 이용하며 언론플레이를 하다가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분석도 있다”면서 “기성 언론의 띄워주기에 결국 이용당한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전했다.
“그와 얘기할 때는 반드시 녹취를”
청문회에 증인으로 참석한 신호철 기자는 황씨와 말이 엇갈리자 녹취를 하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 “일반 학생이라 녹취를 하지 않았다. 보통 녹취를 하는 경우는 정치인의 경우인데, 정치인이나 거짓말을 하기 때문이다. 누가 학생이 거짓말을 할 거라고 생각하느냐.” 그가 출마했던 지난해 11월 당시 선거활동을 했다는 익명의 제보자는 “여러 언론에서 (황씨의) 말들이 엇갈렸다”며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그와 얘기할 때는 반드시 녹취를 해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기성 정치권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거짓말 논쟁’을 관악캠퍼스의 화두로 만들어놓은 황씨 사건은 서울대 구성원들의 자정 능력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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