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도시를 찾아서 ① 바르셀로나]
FC 바르셀로나와 그 열혈 소시오, 그리고 유소년 클럽 ‘라 마시아’… 스페인의 정체성 부정하며 프랑코 독재의 설움을 그라운드에서 날린다
▣ 바르셀로나=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주안 라몬은 27살이다. 그는 자신을 “FC바르셀로나의 열혈 서포터”라고 소개했다. 그는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매주 토요일이면 캄프누 스타디움에 가서 그들의 영웅이 펼치는 드라마틱한 경기를 지켜봤다. 라몬은 “FC바르셀로나는 클럽 그 이상의 클럽(more than a club)”이라고 말했다. 그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경기장에서 흥분에 찬 목소리로 독재자 프랑코를 저주했다. 그들은 자신을 ‘바르샤’(바르셀로나인)라고 불렀다. “엄혹한 프랑코 독재 시절 ‘캄프누’만이 바르샤들의 억눌린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창구였거든요. 지금도 캄프누 앞에만 서면 가슴이 떨리고, 붉은색과 파란색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유니폼만 봐도 피가 거꾸로 솟는걸요.” 그는 “당신은 스페인 사람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아임 카탈란”(나는 카탈루냐 사람입니다)이라고 답했다. 거두나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한 카탈루냐는 우리나라의 경기도쯤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주민들의 소득이 다른 스페인 지역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우리가 돈 벌어서 왜 가난한 마드리드놈들의 배를 불려줘야 하죠?” 그에게 축구는 고도의 정치적 색깔을 띤 인생 자체인 것으로 보였다.
내전 기간 구단주 수뇰이 암살되고…
카탈루냐인이 자신을 FC바르셀로나의 팬이라고 말하는 것은 단순히 “우리 마을의 축구단을 좋아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카탈루냐는 마드리드를 중심으로 한 카스티야 지역과 오랫동안 라이벌 관계를 유지해왔다. 카탈루냐는 카스티야 지역과 언어·문화·풍습이 다르다. 라몬은 “카탈루냐는 스페인이 아니고, 나도 스페인 사람이 아니다”고 거듭 말했다. 흥분하는 라몬의 얼굴에서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이 패망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의 모습이 카탈루냐와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FC바르셀로나와 그들의 숙적인 레알 마드리드의 갈등을 이해하려면 스페인 근·현대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비극이 시작된 것은 1936년 프랑코 장군의 쿠데타로 2년에 걸친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면서부터다. 프랑코는 레알 마드리드의 끔찍한 팬이었다. 내전 기간에 바르셀로나의 구단주 수뇰이 암살됐고, 이는 모든 바르샤들에게 “우리도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공포로 다가왔다.
내전이 끝난 뒤 프랑코는 스페인의 문화를 하나로 통합하고 싶어했다. 가장 큰 표적은 맨 마지막으로 프랑코 군대에 무릎 꿇은 ‘바르샤’들이었다. 프랑코는 바르샤들에게 암흑을 뜻했다. 바르샤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은 녹색의 그라운드 위뿐이었다. 그들이 가진 것은 축구밖에 없었다. 정권의 특혜와 지원 속에 막강 전력을 구축한 레알 마드리드를 상대로 FC바르셀로나는 힘겨운 싸움을 통해 꾸준히 승리를 거둬왔다. 그런 의미에서 요한 크루이프는 모든 바르샤들이 사랑하는 바르샤의 혼이다. 비록 그의 태생은 네덜란드지만 그는 “독재자의 지원을 받는 팀에서는 뛸 수 없다”며 레알 마드리드의 ‘러브콜’을 단칼에 거절해 바르샤들의 환호를 받았다. 1974년 크루이프를 앞세운 바르샤의 영웅들은 프랑코의 코앞에서 레알 마드리드를 5-0으로 격침시켰고, 20년이 지나 크루이프는 이번엔 감독으로 다시 한 번 레알 마드리드를 5-0으로 꺾었다.
지난 15년 동안 FC바르셀로나는 수많은 영웅들을 배출했다. 축구 천재 디에고 마라도나, 고집은 세지만 천재적인 골 감각을 지녔던 브라질의 호마리우와 천재라는 한마디로 설명이 가능한 호나우두, 히바우두 등 FC바르셀로나를 거쳐간 영웅의 수를 헤아리긴 어렵다.
“강압적이고 힘든 운동은 시키지 않는다”
그렇지만 FC바르셀로나의 혼을 지키는 것은 바르셀로나의 유소년 클럽인 ‘라 마시아’(la Macia) 출신의 선수들이다. 라 마시아는 1979년에 처음 창단된 뒤 26년의 역사를 자랑하고 있다. 라 마시아의 관리자 폴게라는 “라 마시아의 스카우터들은 전세계에 포진해 유능한 스타들을 스카우트해 온다”고 말했다. 이 찾은 5월30일, 라 마시아에는 제2의 에투를 노리는 카메룬 출신의 축구 유망주 6명이 모여 훈련을 받고 있었다.
바르샤의 영웅이 되려면 하루 종일 고된 훈련을 받아야 할 것 같지만, 그것은 한국적 축구 전통에 익숙한 외지인의 오해일 뿐이다. 이들의 하루 일과는 7시45분에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들은 서둘러 아침을 먹고 오후 2시까지 보충 수업을 받는다. 16~17살 아이들은 오후 5시부터 2시간 동안 훈련을 받고, 16살 이하 아이들은 오후 7시부터 2시간 동안 훈련받는다. 운동 시간은 보통 하루 2시간 정도다. 폴게라는 “선수들이 축구에 흥미를 붙이고 창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강압적이고 힘든 운동은 시키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말에는 늘 실전으로 리그전을 치른다. 폴게라는 “처음에는 13살 이하 아이들도 관리했지만, 부모님이 보고 싶다고 우는 경우가 많아 그만뒀다”고 말했다. 같은 나이대에는 20명 정도의 선수가 모여 훈련을 받는다. 라 마시아 선수들의 훈련을 책임지고 있는 앨버트는 “어린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닌 지능”이라고 말했다. “기술은 시간이 지나면 배울 수 있지만, 지능은 그럴 수 없거든요. 그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동료들과 얼마나 잘 어울릴 수 있는가 하는 성격입니다.”

이곳을 거쳐 바르샤의 전사로 자라난 사람들은 스페인 대표팀의 주전 수비수 푸욜, FC바르셀로나의 주전 골키퍼 빅토르 발데스, 후보 골기퍼 호르키나, 미드필더 가브리, 이니에스타 등 수를 헤아리기 힘들다. 라몬은 “바르샤들은 라 마시아를 거쳐 팀의 주축이 된 선수들을 가족으로 생각해 어떤 실수에도 좀처럼 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인구 158만 명에 소시오 13만 명
바르셀로나의 기둥은 바르셀로나의 재정을 담당하는 13만 명의 ‘소시오’(서포터)들이다. 그들은 매년 40~150유로의 회비를 내고 300유로에서 1천유로까지 하는 비싼 시즌 티켓값도 마다하지 않는다. 소시오의 수는 처음에는 51명에 불과했지만 해마다 늘어나 2005년에 13만 명에 이르렀다. 2005년 바르셀로나의 인구가 158만8546명인 것을 보면 모든 바르셀로나인이 서포터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다. 라몬의 친구인 로드리게스는 기자에게 자신이 가진 소시오 배지를 보여주며 웃었다. 로드리게스의 배지는 지금은 구리로 돼 있지만, 25년이 지나면 은으로 바뀌고, 다시 25년이 지나면 금으로 바뀔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한국인들에게 바르셀로나가 독립국가라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말했다. 어쩌면 바르샤들의 가장 큰 전쟁터는 녹색의 그라운드가 아닌 스페인과 살을 맞댄 그들의 하루하루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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