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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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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가격, 견딜 수 없는 한계?

등록 2006-06-02 00:00 수정 2020-05-02 04:24

논쟁이 불붙는 것 자체가 자체가 집값 거품 붕괴의 증거…
전세계적 금리 상승도 영향… 주택은 이제 리스크 큰 위험자산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일본도 과거에 버블이라고 정의되는 순간에 이미 가격이 꺾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도 지금 그런 과정을 통과하고 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버블 논란이 생기고 논쟁이 붙붙는 것이다. 논쟁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버블이 꺼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삼성증권 정영완 애널리스트)

쟁점은 곧 꺼지냐, 나중에 꺼지냐

사실 역사적으로 자산 가격은, 사후적으로 보면 주식시장이든 실물 부동산 시장이든 버블 논란이 일어나던 그 순간에 고점을 통과하고 이미 꺾이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거품 논란이 가열차게 진행될 때는 이미 가격이 많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일각에서는 “4년 전부터 거품 이야기가 나왔지만 집값은 안 떨어졌다”면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고 본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현아 연구위원은 “버블 논란이 일면서 불안한 상황은 이미 오래전부터 조성됐다. 지금은 아파트값 상승 추세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새로 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형국이다.

지금이라도 사면 더 오르지 않겠느냐고 기대하는 것이다. 예전 그때와 지금이 무슨 차이가 있는가”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정이 많이 달라진 것 또한 사실이다. 예전에 거품 논란이 일어난 뒤에도 집값은 계속 뛰었고, 지금의 강남 아파트값 버블 수준은 ‘공포스런 가격’(정영완 애널리스트)이라고 느낄 만큼 올라 있다. ‘비이성적 과열’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버블이 이제 어떤 한계지점에 다다른 것일까? 물론 거품에 ‘견딜 수 없는 한계’가 있는지도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과거에 비해 분명히 달라진 건 이제 거품의 존재 논란을 넘어 거품이 곧 꺼질 것이냐 아니면 더 연장될 것이냐는 논란의 성격이 짙다. 당분간은 버블 세븐 지역의 거품이 꺼지지 않거나 오히려 더 많이 형성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거품 붕괴’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지표들도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부동산정보 제공업체인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강남구 아파트 가격은 10·29 대책 이후 올 5월 현재까지 평당 1937만원에서 3159만원으로 63% 올랐다. 나머지 버블 세븐 지역의 상승률은 서초구가 56%, 송파구 62%, 양천구 74%, 분당 58%, 용인 46%, 평촌 87% 등이었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아파트값 평당 가격 상승률인 26%와 차이가 크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품이 과도하게 끼어 ‘언제든지 터질 수 있는’ 상태라고 할까? 특히 정부는 강남 집값이 붕괴한다고 내다보는 이유로 연평균 소득 대비 집값(PIR)이 18.8에 달해 1990년 말의 21.7에 근접했다는 점을 중요하게 꼽는다. PIR가 90년 말에 정점을 찍은 뒤 강남 지역 주택가격이 10년 가까이 하강곡선을 그렸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내년 1월부터 1가구2주택 이상 양도세 중과(50%)가 실시되고, 11∼12월에 6월1일 기준의 종합부동산세 고지서를 받게 되면 세금 부담을 피부로 느껴 연말에 매물이 한꺼번에 쏟아질 것이라는 점도 강남 집값이 꼭짓점에 달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거품 꺼지면 ‘펀더멘털 쇼크’

게다가 미국의 주택가격이 지난 3월 4년5개월 만에 하락세로 돌아섰고, 중국과 유럽에서도 주택가격 거품 논쟁이 본격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전세계적인 저금리 추세를 타고 최근 3∼5년 새 전세계적으로 집값이 동반 급등했으나 금리 인상 우려 등으로 상승세가 둔화되거나 이미 하락세로 돌아서고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집값 버블이 터진다면 금리 인상에 따른 일시적인 ‘유동성 쇼크’가 아니라, 내재가치에 비해 과도하게 거품이 끼어 있던 상태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일종의 ‘펀더멘털 쇼크’가 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본다.

정영완 애널리스트는 “단순히 저금리에 따른 유동성이 받쳐준다는 이유로 강남 집값이 급등했다고 본다. 그러나 주택시장은 이제 정부의 가장 큰 규제 대상이 돼버렸다”며 “이제 양도세 중과가 시행되고 저금리와 높은 유동성의 시대가 점차 지나가고 있는데다 대출금리도 상승 추세다. 이럴수록 아파트 투자에 대한 요구수익률은 더욱 상승하게 되는데, 이런 여러 비용을 고려하면 부동산 투자의 실익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주거 수단이 아닌 투자 수단인 주택의 경우 투자 리스크가 증가하면서 ‘위험 자산’이 되고 있다는 얘기다. 특히 인구추계를 볼 때 2008년부터 35살 이상 인구가 한 해 2만~3만 명씩 확 가파르게 떨어지게 되는데, 맞벌이 소득으로 집을 살 수 있는 이 연령대가 줄어든다는 점 또한 부동산 가격 하락에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집값 하락이 임박한 상황이라면, 왜 지금 정부가 버블 경고를 잇따라 내고 있을까? 대신투신운용 권혁부 부장은 “자꾸 버블이라고 경고를 내보내서 연착륙을 유도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사실 과거에 정부가 내놓은 버블 주장은 강남 부동산값이 잘 안 떨어지자 일단 말로 싸움을 걸어서 떨어지게 하려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지금은 버블을 터지게 하려는 립서비스는 아니라고 본다. 경고 시그널을 보내서 미리 대비하도록 해 버블 충격이 흡수되도록 만들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갑작스럽게 닥친 외환위기를 경험한 뒤 조금만 징후가 나타나도 여러 경제연구소들이 자꾸 경고를 보내고 있는데, 정부의 버블 붕괴 주장도 이런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김현아 연구위원은 “요즘 청와대와 재정경제부 당국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연착륙시키겠다는 뉘앙스가 아니라 강압적으로 강남 아파트값을 붕괴시키겠다고 하는 것 같다”며 “시장에서 집값이 조정받을 수는 있지만 크게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까 오히려 큰 소리로 여기저기에서 버블을 주장하면서 쇼크를 더 키우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정부의 경고는 연착륙 유도 위한 것

사실 버블은 꺼지기 때문에 버블이다. 그리고 버블은 터질 때까지 갔다가 일단 붕괴되기 시작하면 대책이 없다. 권혁부 부장은 “풍선을 불어 바람을 넣을 때 당분간은 더 막연히 커질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오직 기대심리만으로 오른 것은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경착륙하게 된다”고 말했다. 거품은 터지고 난 뒤에야 알 수 있다지만, 내버려둘 경우에 정부가 정책수단을 동원해 연착륙을 유도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마저 벗어나 파괴적인 수준까지 치달을 수도 있다.

특히 실물 자산의 거품 붕괴는 주식시장 붕괴보다 충격이 더 크게 마련이다. 부동산 가격 버블이 붕괴되면 수많은 금융부실·가계파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본의 경우 90년대 초 부동산 버블이 붕괴된 뒤 ‘잃어버린 10년’의 장기 불황을 맞았고, 영국도 90년대 초반에 주택가격이 급속히 하락해 대규모 가계가 부도에 빠졌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듯 “부동산 거품이 꺼질 때 편안했던 경제는 없다”. 아무튼 버블은 언젠가는 꺼지게 마련이고, 버블 세븐 지역의 주택가격이 안팎의 여건 변화에 따라 전환점에 도달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청와대가 밝힌 부동산 통계의 오해와 진실


① 최근 3년간 강남(강남·서초·송파구) 아파트값 상승률 52.5%
강남을 뺀 서울 지역(13.7%)의 3.8배
② 버블 세븐 지역(강남·서초·송파·목동·분당·평촌·용인)의 아파트값 상승률 26.0%
이 지역을 제외한 전국 상승률(5%)의 5.2배
③ 강남 아파트값 총액(140조원)은 전국 아파트값 총액의 16%
강남 아파트 수(25만 채)는 전국 아파트의 3.6%
④ 강남 아파트값 평균가격은 평균 가구소득의 13.5배 전국 평균가격은 5.5배
⑤ 참여정부 들어 아파트값 상승률 55%는 잘못된 통계
실제는 15.3%(아파트 공급 물량 증가 효과를 감안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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