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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랄레스, 안티공세를 넘고 넘어…

등록 2006-05-12 00:00 수정 2020-05-03 04:24

첫 장애물 무난히 통과한 볼리비아 대통령의 ‘에너지 국유화’ 모험…부유층 지역 기반으로 삼고 있는 야권에선 “분리독립”포문 열 듯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에르네스토 체 게바라가 사랑했던 볼리비아는 가난한 나라다. 세계 1위의 주석 생산량을 자랑하는 등 광물자원이 비교적 풍부하고, 남미 2위의 천연가스 보유국임에도 각종 경제지표에서 남미 최하위층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지난해 볼리비아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960달러에 머물렀다. 전체 인구의 63%가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고 있고, 50%를 넘는 국민이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

굴곡 많은 남미 현대사의 전형

전통적으로 볼리비아 정치·경제는 도시에 거주하는 소수 부유한 스페인계가 장악해왔다. 반면 910만여 인구의 3분의 2에 이르는 원주민들은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코카를 재배하거나 광부가 돼 고단한 삶을 이어왔다. 라마를 몰고 코카 농사를 지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에보 모랄레스가 지난해 12월 대선에서 집권에 성공할 수 있었던 건 이런 현실을 바꿔야 한다는 국민적 열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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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의 시대는 갔다.” 지난 5월1일 제116주년 세계 노동절을 맞아 모랄레스 대통령은 볼리비아 최대 산알베르토 가스전을 방문해 이렇게 외쳤다. “그토록 기다려온 날이 마침내 왔다. 오늘은 볼리비아가 천연자원에 대한 통제권을 다시 확보하는 역사적인 날이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선거 공약대로 볼리비아 에너지 산업 재국유화를 선언했다. 에너지 부문을 장악해온 외국 업체들은 180일 안에 새로운 계약을 체결하도록 했으며, 이 기간을 넘길 경우 볼리비아를 떠나도록 요구했다. 외국 자본이 장악하고 있는 56개 가스전과 정유시설에 국영 에너지 기업(YPFB) 소속 엔지니어가 파견됐고, 군인들이 시설을 접수하기 시작했다.

볼리비아는 굴곡 많은 남미 현대사의 전형이다. 1960년대 초반부터 쿠데타가 되풀이되면서 20여 년 동안 군사정권이 이어졌다. 1982년 문민정부가 집권했지만, 경제는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극심한 침체기에 빠져들었다. 1985년 군부의 쿠데타 모의가 실패한 뒤 집권한 파스 에스텐소로 대통령은 기존 국가 주도 경제정책을 시장 중심으로 이행시키는 작업에 나섰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잡고 재정 운영의 효율성을 높여 경제를 안정화해야 한다는 명분으로 ‘구조조정’이 단행됐다. 이듬해 국제 주식시장이 붕괴하면서 광부 2만1천여 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지만, 극도의 긴축예산이 유지되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1985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했던 볼리비아의 국내총생산은 1989년 3.8%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1989년 집권한 하이메 파스 사모라 대통령은 경제정책 기조를 ‘안정’에서 ‘성장’으로 바꿨다. 빈곤 문제를 단기간에 풀려면 성장이 전제돼야 한다는 점에 반대하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성장을 위해선 무엇보다 외국자본의 직접 투자가 필요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의 ‘조언’은 한 가지로 모아졌다. 외국자본을 끌어들이려면 광범위한 개방·민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사모라 정부는 ‘구조조정’을 통해 궁극적으로 국영기업의 민영화가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특별 기구까지 구성했다. 사모라 정권 말 볼리비아의 경제 성장률은 연 4.3%에 이르렀다.

경제 민영화, 국민적 분노를 부르다

볼리비아 경제에 본격적인 민영화 바람이 분 것은 1993년 곤살로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이 집권하면서부터다. 공기업 민영화를 위한 별도의 법률까지 제정한 로사다 정권은 막대한 규모의 외자를 유치하고자 규제 완화를 포함한 과감한 제도 정비에 나섰다. 1994년 전력 부문을 시작으로 통신(1995)·에너지(1996) 부문 등 대부분의 기반산업을 대상으로 민영화를 위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이를 통해 볼리비아 정부는 1995년부터 2000년까지 국내총생산의 약 30%에 이르는 20억달러 규모의 자본을 유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회적 비용은 예상보다 컸다. 가뜩이나 심각한 빈부격차가 갈수록 벌어졌고, 이는 광범위한 사회적 갈등과 혼란을 일으켰다. 특히 1997년 이후 실업률이 급상승하면서 1999년 말에 이르면 ‘구조조정’을 시작하기 이전의 2배까지 늘었다. 지난 2003년 국제통화기금이 내놓은 자료를 보면, 20여 년에 걸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볼리비아의 국민소득은 오히려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분노가 쌓이는 것은 당연했고, 2005년 12월18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의 후보로 나선 모랄레스는 52%라는 압도적 지지율로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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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볼리비아 없이 살 수 있지만, 볼리비아는 세계 없이 살 수 없다.”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모랄레스 대통령의 에너지 산업 국유화 선언에 대한 호들갑스런 반응은 도처에서 흘러나왔다. 볼리비아 에너지 산업에 투자해온 각국 기업들이 일제히 우려를 표하고 나섰고, ‘에너지 자원 무기화’에 대한 성급한 묵시록이 고개를 들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국유화 조처로 볼리비아 국론이 분열 조짐을 보인다’는 제목의 기사에서 “모랄레스의 광대짓 때문에 외국 투자자들이 빠져나가지 않도록 기도할 뿐”이란 부유층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모랄레스 대통령의 ‘모험’은 일단 첫 장애물을 무난히 통과한 것으로 보인다. 브라질·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볼리비아 4개국 정상들은 5월4일 아르헨티나 북부 푸에르토이과수 관광지구에서 열린 긴급회담에서 3시간여에 걸친 협상을 마친 뒤 “볼리비아의 에너지 산업 국유화 선언을 존중한다”는 합의를 이끌어냈다. 또 이에 따른 역내 에너지 수급과 가격 조정, 볼리비아에 투자한 외국 기업 문제 등은 향후 협상을 통해 결정하기로 했다.

이미 볼리비아에 10억유로 이상을 투자한 스페인의 거대 정유업체 렙솔은 볼리비아에서 철수할 뜻이 없으며 모랄레스 정부와 협력할 계획임을 밝혔다. 가장 많은 투자를 한 브라질의 정유업체 페트로브라 쪽은 일단 향후 투자를 중단하겠다고 밝혔지만,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은 이날 정상회담을 마친 뒤 “향후 협상을 통해 투자 중단 결정이 번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8월 제헌의회 소집을 기점으로!

위기의 씨앗은 오히려 볼리비아 내부에 있다. 군부마저 지지의 뜻을 밝힌 상황이어서 아직까지는 야권이 모랄레스 대통령에 대한 직접 공세를 자제하고 있지만, 이번 국유화 선언으로 야권이 더는 침묵만 하고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모랄레스 대통령이 집권에 앞서 약속한 대로 오는 8월 헌법 개정을 위한 제헌의회를 소집한다면, 이를 전후로 야권의 본격 공세가 시작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개헌을 통해 원주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한편 에너지 자원의 국유화를 못박을 심산이다. 반면 원유·천연가스 자원이 몰린 상대적 부유층 지역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야권은 지역 자치권을 대폭 강화하는 한편 에너지 산업을 통한 수입의 상당 부분을 지방정부를 통해 장악하려 할 것이다. 모랄레스 대통령 집권을 전후로 야권은 “자원 국유화를 통해 외국 투자자가 빠져나가면서 경제 상황이 나빠질 경우 분리독립을 추진할 수도 있다”는 주장을 흘리기도 했다. 5월1일 에너지 산업 국유화 선언으로 볼리비아의 미래를 건 한판 승부는 이미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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