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맞이한 인권영화제, 10개의 키워드로 톺아보다…탄압의 산과 희망의 강 넘어 마침내 아시아, 아시아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살아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제1회 인권영화제에서 어느 관객이 남긴 말이다. 인권운동사랑방이 주최하는 인권영화제의 시작은 그렇게 험난했다. 1996년, 우려 섞인 기대 속에 출발한 인권영화제가 어느덧 10회를 맞았다(2001년 영화제를 11월에서 5월로 앞당겨지면서 5.5회 영화제가 열렸다). 제10회 인권영화제는 5월6일부터 13일까지 서울 종로의 서울아트시네마(구 허리우드 극장)에서 열린다.
14일 마지막 상영은 평택 대추리 초등학교에서 주민과 함께 한다. ‘인권 교육의 실천’과 ‘표현의 자유’를 내걸고 시작한 인권영화제는 정권의 탄압과 자본의 질서를 뚫고 ‘살아남았다’. 인권의 눈으로 세상을 비추는 저항의 영사기는 한 해도 멈추지 않았다. 제10회 인권영화제를 10개의 키워드를 통해 돌아본다.
1. <레드 헌트>, 빨갱이 사냥
‘영화 속의 인권, 인권 속의 영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시작한 제1회 인권영화제는 사전검열을 거부하는 최초의 영화제였다. 인권영화제는 표현의 자유를 실천하기 위해 영화제 상영작조차 사전검열을 받아야 하는 심의제도에 저항했다. 사전검열을 거부하는 인권영화제에 정권은 탄압으로 대응했다. 제1회가 열린 서울 이화여대는 전경에 의해 봉쇄되기도 했다. 97년 서울 홍익대에서 열린 제2회 인권영화제에 대한 탄압은 더욱 심해졌다. 경찰이 홍익대를 봉쇄하기도 했고, 학교 당국은 영화가 상영되는 건물의 전원을 차단하기도 했다. 홍익대 총학생회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어졌고, 서준식 인권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제주 4·3 항쟁을 다룬 <레드 헌트>를 상영했다는 이유였다. <레드 헌트>는 이적표현물로 규정됐고, 서준식 집행위원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영화를 만든 사람은 잡아가지 않으면서 영화를 상영한 사람은 잡아가는 희극이 연출됐다. 김정아 인권영화제 프로그래머는 “당시는 97년 대선을 앞둔 시점이었다”며 “서준식 대표의 구속은 영상표현물에 대한 검열뿐 아니라 인권운동 탄압이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고 돌이켰다. 결국 서 위원장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렇게 <레드 헌트>로 벌어진 ‘빨갱이 사냥’은 인권영화제의 상징으로 남았다.
2. 관객의 열광을 넘어 인권의 연대로
인권영화제는 관객에게도 단순한 영화제가 아니었다. 정권 탄압에 맞서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투쟁의 장이었다. 관객은 영화제를 지키기 위해 봉쇄된 학교로 달려갔다. 영화를 보는 일뿐 아니라 영화제를 지키는 투쟁에도 함께했다. 1·2회 영화제의 관람 ‘투쟁’은 그렇게 시작됐다. 제1회 인권영화제에는 서울에서만 1만5천 명이 다녀갔다. 이어진 지방상영 투쟁에는 1만5천 명의 관객이 인권영화제 ‘운동’에 동참했다.
100개에 가까운 사회단체가 연대했고, 600명의 후원회원이 가세했다. 제2회 때는 서준식 대표가 구속되자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레드 헌트> 상영운동을 벌였다. 서준식 무죄석방 공동대책위가 발족했고, <레드 헌트> 이적 규정에 반대하는 의견개진운동이 벌어졌다. 이렇게 인권영화제는 예상을 뛰어넘는 호응을 얻었다. 사실 인권영화제가 시작될 무렵, 영화인 사이에서는 인권영화제에 대한 회의론이 우세했다. 김정아 프로그래머는 “당시에는 영화인 사이에 두 가지 회의론이 있었다”며 “‘투쟁성을 노골화한 영화제가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과 ‘저런 다큐멘터리 영화를 상영하면서 오래 버틸 수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영화인조차 몰랐던 인권영화에 대한 욕구는 생각보다 강렬했다.
3. 한국 다큐멘터리의 발견
인권영화제는 한국 다큐멘터리를 발굴했다. 국내외의 다큐멘터리를 주요 프로그램으로 하는 인권영화제를 통해 다큐멘터리가 지루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동과 재미를 주는 장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텔레비전에서 볼 수 없는 주제를 인권의 시선으로 다룬 독립 다큐멘터리는 감동을 넘어 각성을 불러일으켰다. 인권영화제는 갈수록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를 결산하는 자리로 매김됐다. 90년대 후반까지 해마다 제작되는 한국 독립 다큐멘터리가 드물어 수소문해 찾아다녀야 할 정도였지만,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독립 다큐멘터리가 급격히 늘어나 상영작을 골라야 할 만큼 상황이 변했다. 인권영화제는 99년부터 ‘인권영화상’을 제정해 한국 독립다큐멘터리를 격려하는 자리도 마련했다. 제7회 인권영화제는 ‘제작지원 프로젝트- 옴니버스 여정’을 통해 이주노동자들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찍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비디오로 행동하라, 인권영화제의 또 다른 정신이다.
4. 소수자들의 해방구
인권영화제 상영작들은 인권 상황의 변화를 반영해왔다. 인권영화제는 일찌감치 소수자 인권에 주목했다. 제1회 인권영화제의 화제작 중 하나는 샌프란시스코 게이 시집행관의 커밍아웃과 살해 사건을 다룬 <하비밀크의 시대>였다. 인권영화제는 해를 거듭할수록 소수자 감수성을 강화했다. 장애인, 이주노동자, 동성애자 등 소수자들은 인권영화제를 통해 자신이 갈망했던 필름을 볼 수 있었다. 2000년대 들어와서는 소수자 인권이 영화제 전면에 부각됐다. 2003년 제7회 인권영화제의 주제는 ‘이주노동자의 인권’이었고, 2004년 제8회의 주제는 ‘감옥의 인권’이었다. 인권영화제는 소수자들의 토론장이자 놀이터였다. 2000년 제5회 인권영화제에서 ‘동성애자의 인권을 이야기하자’는 토론회를 여는 등 소수자들이 자신의 인권 문제에 대해 머리를 맞대어 궁리하고, 직접 발언할 자리를 지속적으로 마련했다.
그래서 인권영화제는 소수자들이 친구들을 만나는 놀이터였다. 2004년에는 모형 감옥을 설치해 직접 감옥체험을 하는 기회도 마련했다. 또 장애인 접근권 보장을 위해 영화제 주변에 경사로를 설치하고, 활동보조인을 배치했다. 열악한 재정 상황 속에서도 시각장애인를 위해 화면 해설과 더빙이 들어간 작품도 상영하고 있다.
5. 팔레스타인, 이라크 그리고 쿠르드
인권영화제는 인도주의의 허울을 쓴 전쟁의 참상을 꾸준하게 고발했다. 인권을 위한 전쟁이란 없다는 사실을 영상으로 증명했다. 2001년 팔레스타인 특별전을 마련했고, 2002년 제6회 인권영화제의 주제는 ‘전쟁과 인권’이었다. 분쟁의 이면에 감추어진 자본의 논리를 들추었고, 분쟁지역 주민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에 주목했다. 2006년 제10회 인권영화제의 회고전인 ‘다시 보는 인권영화’ 10편 중 2편이 분쟁에 관련된 영화일 만큼 인권영화제는 전쟁과 평화에 각별한 관심을 쏟아왔다. 인권영화제의 시선은 이라크를 통해 미국을 고발하는 한편, 이라크 내의 소수민족인 쿠르드족의 현실을 전하는 깊이도 잃지 않았다.
6.게바라, 사파티스타 그리고 아부자말
그리고 인권영화제의 스크린에서 절망뿐 아니라 희망을 보았다. 과거와 현재를 아우르는 지구촌의 저항운동을 목격했다. 98년 제3회 인권영화제에서는 멕시코 사파티스타운동을 다룬 <치아파스>가 상영됐다. <치아파스>를 통해 멕시코의 밀림에서 세계화에 저항하는 원주민들의 치열한 몸부림이 전해졌다. 99년의 개막작 <모든 권력을 민중에게>는 인종차별에 저항했던 미국의 흑인운동가 무미아 아부자말이 어떻게 인종주의 사회에서 억울한 살인 누명을 쓰게 됐는지를 보여주었다. 인권영화제는 영화 상영뿐 아니라 아부자말의 석방을 촉구하는 항의엽서 쓰기운동도 벌였다. 한국의 공중파가 체 게바라, 사파티스타, 아부자말에 주목하기 훨씬 전부터 인권영화제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했다. 인권영화제는 지구촌 곳곳에서 벌어지는 민중의 저항을 전하는 미디어였다.
7. 공짜 영화제
인권영화제 관계자들은 “10년 동안의 사은행사”라고 농담한다. 그렇게 인권영화제는 모든 작품을 무료로 상영해왔다. 누구에게나 영화를 볼 권리가 있다는 원칙을 철저히 지켜왔다. 인권영화제가 무료 상영을 고수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김정아 프로그래머는 “인권영화제의 목표는 영화를 통한 인권의 확산”이라며 “돈을 받기 시작하면 관객의 요구에 맹종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무료 원칙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인권영화제의 재정은 후원으로 충당된다. 후원회원은 인권영화제를 지켜온 버팀목이다. “영화를 무료로 관람하는 대신에 후원으로 연대하라.
” 인권영화제가 관객에게 호소하는 정신이다. 물론 고민도 있다. 한때 500여 명에 이르렀던 후원회원은 감소해왔다. 재정 충당을 위해 99년부터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을 받아왔지만 여전히 기업 후원은 받지 않는다. 해마다 영화제를 치르면 약간의 빚이 남지만 비디오 판매를 통해 부족한 재원을 메워왔다.
8. <칠레전투>
<칠레전투>는 인권영화제의 효자다. 인권영화제 최대의 히트작인 <칠레전투>는 쏠쏠한 비디오 판매로 부족한 재원을 충당하는 일등공신이었다. 선거사회주의로 수립된 칠레의 아옌데 정권의 탄생과 실험과 모험과 수난을 다룬 <칠레전투>는 인권영화제의 존재 이유를 설명하는 작품이다. “아옌데, 아옌데, 민중이 당신을 지켜주리라”고 외치는 칠레 민중의 뜨거운 함성에, 카스트로가 선물한 총을 들고 끝까지 대통령궁을 사수하다가 숨지는 아옌데의 최후에 관객은 전율했다. <칠레전투>를 통해 검은 활자로만 보아오던 인류 역사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 중 한 장면이 생생한 영상으로 살아났다. 인권영화제가 아니었다면, <칠레전투>는 아직도 한국 땅에서 상영되지 못했거나 훨씬 늦게 상영됐을 것이다. <칠레전투>는 저 뜨거운 역사에 동참하는 듯한 감동뿐 아니라 영화 교과서에 기록된 작품을 본다는 마니아적 즐거움도 주었다. 인권영화제의 주관객은 영화의 주제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다.
김정아 프로그래머는 “첫 번째를 정점으로 관객이 줄었지만, 2001년 이후에는 감소하지 않고 있다”며 “이제는 인권영화제의 자기 관객이 형성됐다”고 말했다. 장애인 인권이면 장애인들이, 어린이 인권이면 어린이들이 주관객층이라는 것이다.
9. 관객에서 주인으로, 자원활동가들
인권영화제는 자원활동가들이 만들어간다. 인권영화제에 집중하는 인권운동사랑방의 상임활동가는 해마다 두세 명에 불과하다. 홍보, 번역, 자막, 진행까지 인권영화제에 자원활동가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일은 없다. 10년 가까이 영화제 포스터를 만들어온 디자이너, 번역 작업에 참여해온 방송작가 등 ‘고정’ 자원활동가들은 이제는 영화제 준비 기간이 되면 자연스레 모인다. 어린이 만화채널 ‘투니버스’ 성우들은 장애인를 위한 더빙 작업에 참여하고 있다. 물론 모두가 무보수다. 자원활동가들이 없었다면 인권영화제도 없었다.
10. 마침내 아시아, 아시아
인권영화제가 10년의 여정을 거쳐서 당도한 곳은 아시아다. 제10회 인권영화제의 주제는 ‘아시아 민중의 인권현장’. 한국은 아시아의 일부지만, 아시아의 인권 문제를 타자화해왔다. 인권영화제도 아시아의 문제를 인권의 보편성 안에서만 사고해왔다는 반성을 한다. 이제 인권영화제는 아시아의 인권에 주목한다. 하지만 아시아에 주목하는 이유가 단지 같은 지역이기 때문은 아니다. 아시아는 비슷한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아 프로그래머는 “아시아는 제국주의에 의해 같은 약탈의 역사를 경험했고, 과거 청산이 되지 않아 발생하는 문제들도 비슷하고, 신자유주의의 세계화로 인권 유린이 심화되는 고통도 공유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인권영화제에서는 중국 여공, 버마 난민, 방글라데시 청년의 이야기가 상영된다. 한국의 어제이자 오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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