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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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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질투에 시달린다

등록 2001-02-13 00:00 수정 2020-05-02 04:21

일등주의와 평등주의의 부조화 속에서 “나도 남처럼 돼야 한다”는 열등감과 집착들

“초췌한 그 후배 얼굴을 보니 그동안 밤새가며 정말 열심히 살았구나, 성공하는 게 너무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마음 한구석에서 솔직히 열불이 났다. 옛날에는 내 밑에 있었는데 언제 저렇게 컸는지…. 나도 일찍 독립할 것을 괜히 여지껏 버텼나 싶기도 하고…. 이런 생각들로 솔직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인간본성과 파멸적 악덕의 사이

최근 서울 왕십리의 한 금속가공 회사를 그만두고 독립을 준비중인 김달현(가명·33)씨. 그는 지난 2월3일 시화공단을 다녀온 직후 심리상태를 이렇게 표현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지난 94년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떠난 한 회사 후배가 시화공단에 연매출 30억원에 이르는 섬유기계 제조 공장을 세운 것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질투심을 느낀 것이다. 초기에 투자한 은행빚을 하루빨리 갚기 위해 3년 동안 부인은 가내부업으로 생계비를 조달했고, 자신은 회사 야전침대에서 잤다는 그 후배의 말을 자꾸 떠올리며 김씨는 “그래 피땀흘려 일궈놓은 성공인데…. 질투하기보다는 나도 새로 벌일 사업에서 꼭 성공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있다.

김씨처럼 아랫사람의 갑작스런 성공에 질투심을 느끼는 것은 인간본성에 가깝다. 경험주의 철학의 대가인 프란시스 베이컨은 “질투는 모든 감정에서 가장 지속적인 것이다. 질투에는 휴일이 없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도 “감정은 절대적이며, 그중에서도 질투는 가장 절대적인 감정”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나 예로부터 질투는 남은 물론 자신까지 파멸로 이끄는 악덕으로 묘사돼 경계의 대상이 돼왔다. 여호와가 동생 아벨의 제물만 받아준 것을 질투한 나머지 동생을 살해한 형 카인에 대한 성서 이야기에서부터, 나 에 이르기까지 질투하는 자의 결말은 대개 파멸이었다. 우리 선조들은 여성의 질투를 ‘내칠 수 있는’ 칠거지악의 하나로 삼을 정도로 금기시했고, 남자들에게도 ‘내가 일어서고 싶으면 남을 먼저 세워주고, 내가 도달하고 싶으면 남을 먼저 도달하게 해줘라’()거나 ‘남이 나보다 현명한 것을 알면서 천거하지 않는 것도 악덕이고, 내가 남보다 덕이 모자란 것을 알면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것도 악덕이다’()며 극단적인 억제를 요구했다. 때문에 우리 사회에서 오랫동안 질투의 감정은 감춰야 하는 것이었다. 공개적으로 문제가 되는 질투의 양태는 남녀간의 애정과 관련한 부정망상인 의처증이나 의부증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일상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사회가 불안정해지면서 질투에 관한 이런 심리적 억제선과 자기통제 장치가 무너지고 있다.

먼저 남녀간 질투의 경계선이 무너지고 있다. 그동안 질투는 마치 여성의 전유물처럼 인식돼왔다. 그러나 상당수 남성들이 직장생활 등 일상의 현장에서 질투심으로 고통받고, 병적인 증상으로 신경정신과를 찾는 경우까지 생겨나고 있다.

국내 유명 광고대행사의 마케팅연구소에 근무하는 성종석(가명·33)씨. 그는 최근 한 인터넷 업체에 스카우트됐다가 질투심 때문에 원래 직장으로 유턴했다. “남들이 알아주는 국내 최고의 마케팅 인력이 모여 있던 곳 출신인지라 마케팅에 관한 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자부심이 강했다. 그런데 새로 옮겨간 회사의 동료가 팀장의 사랑을 받으며 되지도 않은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설치는 꼴이 눈꼴셨다. 어느 날 팀장과 그의 사랑을 받는 직원이 모두 지방대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더이상 심적 고통을 견딜 수 없었다.”

질투 때문에 병원 찾는 사람들

성씨는 그나마 양호하다. 백제병원 노만희 원장(신경정신과 전문의)은 “최근 직장 상사가 특정인, 대개의 경우 동기를 편애해 자신의 경력이나 능력 등을 제대로 인정해주지 않는다면서 동료에 대한 질투심에 시달리다 못해 병원을 찾는 남성들이 한달에 3∼4명 정도 된다”며 “확실히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양상”이라고 말했다. 이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의 눈에 비친 최근 몇 사례는 직장 남성이 느끼는 질투의 무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먼저 노 원장이 전하는 경우. 대기업 신입사원인 20대 후반의 김달중(가명)씨. 그는 임씨와 유사한 고통 때문에 신경정신과를 찾았다. 그는 학창 시절 내내 꽤나 인정받던 사람이었다. 공부도 잘했다. 그러나 대학졸업 뒤 직장에 나가자 상황은 확 달라졌다. 그를 괴롭힌 것은 비슷한 실력을 가진 사람이 주변에 너무 많다는 점이었다. 특히 자신보다 “후진 대학”을 나온 동료가 더 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그는 병원에서 “상사가 나를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의 내면에는 그동안 인생을 규율지어온 공부라는 기재가 더이상 적용되지 않는 객관적인 현실 상황을 인정하지 못한 채 상사가 신임하는 다른 동료에 대한 질투심으로 자기불만을 투사하고 있었다.

연희정신클리닉 김병후 원장이 전하는 사례는 더 극단적이다. 40대 후반의 은행간부인 박원흥(가명)씨. 그도 최근 가족에게 떠밀려 병원을 찾았다. 얼마 전에 있었던 은행 이사 승진에서 탈락한 뒤 몇 차례 자살을 기도했기 때문이다. 그는 줄곧 “내가 진급이 안 된 것은 못났기 때문이다. 직장 내에 불합리한 인사관행이 있다. 살맛이 안 난다”는 식의 일반적인 이야기를 늘어놨다. 그러나 그의 마음속에는 동료에 대한 질투가 숨겨져 있었다. 그동안 함께 승승장구해온 동료가 자신을 젖히고 혼자만 이사로 진급하자 갑자기 얄미운 질투심이 들었고, 질투심은 뒤처지고 추월당하기 시작했다는 강박관념으로 이어지면서 자살시도로까지 몰고간 것이다.

그렇다면 질투를 속으로 숨기거나 애써 억제해온 남성들이 왜 직장 내 질투의 문제를 가지고 병원을 찾고 자살을 기도하는 상황이 생겨난 것일까. 노 원장의 진단은 이렇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남자는 직장 안에서 발생하는 동기간의 경쟁심이나 질투 정도는 이겨내야 하고, 이런 문제로 힘들어 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이데올로기를 당연시하며 살아왔다. 그러나 사회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불안정해지면서 스트레스 원인이 너무 다양해져 지치고 심약해진 남성들이 더이상 질투라는 원초적 감정을 이겨내지 못하는 상황으로까지 내몰렸다.”

약자에게까지 질투를 느낀다

실제 악화된 경제상황으로 발생한 질투심 때문에 친구관계를 멀리하는 경우도 많다. 대우에 근무하는 신상국(가명·32)씨. 그는 얼마 전까도 삼성에 다니는 한 친구와 절친하게 지냈다. 학창 시절 자신이 오히려 공부를 잘했기 때문에 근무회사를 떠나 자신감도 있었다. 그러나 대우가 부도난 뒤부터 교류를 거의 끊다시피했다. 신씨는 “솔직히 내 의사와 상관없이 회사가 망했지만, 나의 사회적 지위가 떨어진 듯해 괴롭고, 그 친구를 보면 괜히 질투가 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질투가 일상생활 전반의 모든 영역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질투는 사실 새로운 감정이 아니다.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저보다 나은 사람을 시기하여 미워한다’는 사전적 의미의 질투심은 열등감의 공격적인 표출형태다. 때문에 대개의 경우 자신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들이 질투의 대상이 되는 게 기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질투를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일상의 영역에서, 때로는 오히려 약자의 행위에 대해서까지 강한 질투를 느끼는 사람이 늘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이성순(가명·35)씨. 그는 지난해 가을 아주 황당한 꼴을 당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지 못한 이씨는 초등학교 4학년인 딸에게 깊은 관심을 기울여주는 선생님에게 평소 고마움을 표시할 방법을 고민했다. 남들이 모두 촌지를 들이미는데 그럴 형편이 못되는 데 대한 자괴감도 있었다. 그는 결국 간단하게 집에서 밥과 김치찌개를 해 교사에게 가져갔다.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했다. 이 사실을 안 다른 학부모들이 “촌지를 거둬 식사를 대접하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극성스럽게 잘난 체하느냐”거나 “정말 충신났다. 종났다”는 식으로 질투하면서 그를 왕따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이씨는 “어려워진 가정 형편에 고민하다 내놓은 성의표시 방법까지 자신들의 행동방식과 다르다고 질투하는 그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경기도 남양주에 사는 백경미(가명·31)씨도 비슷한 경우. 유아원에 다니는 딸 아이 생일잔치를 해줘야 하니 자신있는 특기를 발휘해 달라는 교사의 부탁을 받고, 아이들 숫자에 맞춰 계란빵을 만들어 보냈는데, 아직 아이들 생일 순서도 오지 않은 학부모들이 “아직 아이도 어린데…. 무슨 극성인지 모르겠다”면서 비난을 하고 나선 것이다. 백씨는 한동안 고민했다. 결국 다른 학부모들을 집으로 불러 “아주머니들도 아이들 생일 때가 되면 선생님이 요구할 것이고, 내가 해간 빵은 돈도 별로 안 드는 일”이라고 해명했다. 그뒤 겨우 비난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시민단체들도 “2등은 없다”

한 정부산하단체에 근무하는 김종우(가명·38)씨. 그는 지난해 자신의 행동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벤처열풍이 문제였다. “벤처로 갑자기 벼락부자가 됐다는 사람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나는 도대체 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괜히 가슴이 콱 막혔다. 견디다 못해 아내의 만류도 뿌리치고, 모아둔 1천여만원을 벤처에 막무가내로 투자했는데 대부분을 날렸다. 결국 언론에 오르내린 몇몇 인물들을 질투해 일을 그르쳤다는 생각이 든다.”

한 유력 시민단체 핵심 간부는 “우리 시민단체도 질투로부터 자유롭지 않다”고 털어놓는다. “좀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함께 노력한다는 시민단체들 내부에서조차 ‘한국사회에 2등은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오고 이른바 언론발을 잘 받는 단체의 동향을 파악하고 따라갈 것을 강요당한다.”

자신의 이익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 인물이나 오히려 사회적으로 훨씬 열등한 사람에게까지 질투심을 느끼고, 사회의 공동선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관계자들까지 심한 질투심을 느끼는 이런 현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신경정신과 전문의들은 “‘1등 제일주의’를 강요하는 문화가 온존하는 가운데 평등주의가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면서 질투의 천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연희정신클리닉 김병후 원장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위계신분에 의한 차이를 현실로 받아들이며 자신과 비교대상이 되지 않는 한계를 인식하고 있었다. 그러나 최근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평등주의가 확산되면서 자신의 객관적 리얼리티를 깨닫지 못한 채 ‘나도 남만큼 돼야 한다’는 집착을 갖는다. 한편 가정에서 부모는 1등 하는 아이를, 아이는 돈 잘 벌고 유능한 아빠를 요구하는 1등 제일주의가 강요되면서 혼돈을 느낀다. 결국 남에게는 평등을 강요하면서 자신만은 모든 사람 가운데 맨 꼭대기에 올라야 한다는 잘못된 질투감정에 사로잡힌다.” 일종의 천박한 평등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용인정신병원 전문의 하지연씨는 “공정한 룰이 확립되지 못한 사회의 불안정성이 개개인의 마음도 안정적으로 예측할 수 없도록 하고, 결국 상대의 성공과 노력에 박수쳐주기보다는 그저 ‘운이 좋았다’는 식으로 바라보거나 극단적인 경우 상대가 잘되는 것은 내가 피해를 보는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10대들의 연예인에 대한 과도한 집착은 이런 현실을 드러내는 가장 극명한 사례다. 30대 직장 여성인 배정희씨는 최근 한 인기연예인 콘서트에서 벌어진 일을 보고 “요즘 애들은 참 별난 데 다 질투를 느낀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같은 팬클럽 회원인 듯한 친구들끼리 환호성을 지르다 연예인이 그들 중 한 사람을 향해 행해 손짓을 하자, 손짓을 받지 못한 주위의 친구들이 그 친구를 비난하며 싸운 것이다.

사실 방송사 공개홀 등에서 서로 다른 펜클럽 회원들간에 욕설을 퍼부으며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은 쉽게 목격된다. 강북삼성병원 신영철 교수는 이런 현상에 대해 “10대들은 연예인을 자기 분신으로 생각하고, 다른 연예인을 깎아내리는 것이 곧 내가 잘되는 것으로 느끼는 질투감정”이라고 표현했다. 이런 질투의 심각성은 능력차이에 대한 비교가 아니라 자신과 취향이나 선호도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질투하고 공격한다는 데 있다.

질투의 활용과 보복

이렇게 사회전역에서 질투가 양산되면서 질투의 활용법과 대응방법도 크게 달라지고 있다. 먼저 직장에서 질투를 효율적인 통제의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보험회사 직원인 정동수(가명·36)씨. 그는 직장상사가 의도적으로 동기들간에 질투심을 유발해 자신들을 통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다. “한 부서에 4명의 입사 동기가 있었다. 그런데 부장이 의도적으로 그중 한명만을 계속 부추겨 끌어안았다. 회식자리에서 ‘영업실적이 좋다. 역시 널 잘 뽑았어. 업무속도도 빠르고 깔끔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부서 내 동기의 경쟁심리를 자극하려는 술책인지 잘 안다. 그러나 집에 가면 잠이 안 왔다. ‘내가 못난 게 뭔데’라거나 ‘왜 이런 대접을 받아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에 저항하기 위해 다른 동기들과 함께 한동안 부장의 신임을 받는 동기를 왕따시켜보기도 했다.” 그러나 정씨의 이런 시도는 곧 꺾였다. “구조조정 소문이 떠돌면서 나는 더 열심히 일하고 아부했고, 견디지 못한 몇몇은 제발로 직장을 떠났다.”

이와 정반대의 경우로 보복을 하는 사람도 있다. 한 정부투자기관에 근무하는 이석호(가명·29)씨. 그는 동기들간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상사에게 보기좋게 보복했다. “인사권이 있는 상사가 교묘하게 동기들 사이에 질투심을 유발하며 자신에게 줄을 설 것을 요구했다. 너무 억울해서 당하고만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가 공금을 잘못 사용한 내역 등 비리를 제보해 징계를 먹도록 했다.”

이렇게 직장 내 질투가 일반화되다보니 공적인 업무를 지시할 때조차 후배들간에 질투심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고민하는 일까지 발생한다. 인터넷 업체에 근무하는 30대 후반의 박경주(가명)씨는 “요즘 입사한 20대 후배들의 경우 누가 일을 좀 잘한다고 예뻐하면 아예 참지 못하고 질투하며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고, 노골적으로 서로 티격태격해 회사 분위기가 나빠진다”면서 “일을 시킬 때도 눈치를 보고 말조심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쟁이 치열하고 경제적 불안정이 가속화될수록 인간의 본성인 질투감정은 더욱 노골화된다. 남자건 여자건 이제 과거처럼 더이상 질투를 숨기거나 억제하지 못한다. 사회 전 영역에서 질투를 양산하고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질투하는 사회에 살고 있는 것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도 지금 이순간 누군가를 은근히, 또는 공공연히 질투하고 있지 않은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자긍심이 넘쳐나는 경우일 것이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라. 질투 자체는 전혀 나쁘지 않다. 신경정신과 전문의인 표진인씨는 “질투의 밑바탕에는 열등감이 있는데, 이 열등감은 사람을 움직이는 원동력이다. 문제는 자신의 열등감을 상대를 헐뜯는 쪽으로 투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맘먹기에 따라 얼마든 자기발전의 원동력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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