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교조치 둘러싸고 ‘자치활동 위기’와 ‘폭력 추방’ 부딪치는 고대… 전북대·외대는 ‘비권’ 총학과 학생 정치세력 사이의 갈등 불거져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학교를 떠나거라!”
4월19일 보직교수 9명을 억류한 고려대 학생 7명에 대해 학생으로서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출교 조치가 내려졌다. 5명에게는 1개월 유기정학이, 이유미 총학생회장 등 7명에게는 1주일 견책 조치가 내려졌다. 학교는 배움터를 불법 폭력 시위로부터 지켜내고자 출교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이에 징계 대상 학생들은 학생자치와 진보운동에 대한 탄압이라며 삭발 등으로 맞서고 있다.
“민노당이든 열우당이든 나가라”
고려대는 지난해 5월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명예박사 학위를 두고 크게 몸살을 앓았다. 총학생회(이하 총학)는 이 회장의 학위 수여식에서 항의시위를 강행했고, 몇몇 학생들은 총학의 시위에 반대하며 ‘평화고대’ 모임을 만들어 총핵 탄핵안을 발의했다. 결과적으로는 부결됐지만 탄핵 사태를 통해 정치·사회적인 주장보다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문화와 총학 등 운동권에 대한 학생들에 대한 거부감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이번 사태로 이어지고 있다.
고려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학생자치권 주장과 폭력시위 반대, 학생운동 반대 등 서로 다른 목소리가 복잡하게 엉켜 있다. 학내에서 정당 등 외부 단체를 몰아내자는 의견도 많다. 징계 대상 학생에 민주노동당 학생위원회(이하 민노학위)와 대중정치 조직 ‘다함께’ 소속 학생들이 다수 포함된 것을 두고 하는 주장이다. 홈페이지에는 ‘민노당이 고대에 들어온 뒤 고대는 폭력과 투쟁의 본거지가 된 듯하다’는 비난과 ‘민노당이든 열우당이든 한나라당이든 학교에서 나가야 한다’는 학내 정치활동 반대의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자랑스러운 고대만들기’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는 채재규(정외·4)씨는 “폭력에 많은 학생들이 반대한다”며 “학생들을 대표하는 총학이 외부 정치단체 등과 연계해 사회·정치적인 사안을 다루기보다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제대로 전달하는 단체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출교 조치를 받은 안형우(국어교육·4)씨는 “출교 조치 찬성 여론에는 학교가 언론을 통해 사실을 왜곡한 것이 크게 작용했다”며 “또 학생들이 (학내 문제에 대해) 개인적인 해결책을 우선시하는 것도 하나의 원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안씨는 “이대로 물러난다면 학내 자치활동 위축이 자명하기 때문에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문제 제기의 정당성을 알리면 학생들도 공감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북대에는 유례없이 학내 정당활동을 금지하는 안건이 통과돼 논란이다. 4월6일 전북대 총학은 전학대회를 열고 ‘특정 정당의 집권을 목적으로 학내에서 활동하는 민노학위 공간을 돌려달라’ ‘민노학위 선전활동과 정당활동을 할 수 없도록 규정해달라’는 발의안을 통과시켰다. 전북대 총학은 온라인 대자보에서 “학생들을 위한 활동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특정 정당을 위해 활동을 벌이고 있는 민노학위의 공간을 학생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앞두고 학내 불법 사전선거운동을 규제할 수 있는 규칙을 만들어야 하기에 민노학위의 선전물과 선동행위 등을 금했다”고 밝혔다.
전북대 민노학위 김관중(작물생산·4) 위원장은 사전선거운동에 대해 “총학이 하지 않는 등록금 인상 반대투쟁을 했다고 해서 사전선거운동 의혹을 갖는 것은 확대해석”이라고 못박았다. 또 “총학이 자신들과 지향점이 다르다는 이유로 민노학위의 학내 정당활동을 금지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자유로운 정치활동 금지는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총학과 민노학위는 4월19일 한 차례 충돌했다.
4월11일 한국외국어대에서는 외대 총학과 외대 노동조합의 마찰이 있었다. 노조 조합원 자격 등을 두고 학교와 대립하던 노조는 4월6일 파업에 들어갔다. 파업으로 도서관 등이 제대로 운영되지 않자 총학은 학습권을 주장하며 이날 본관에서 농성 중인 노조를 항의 방문했다. 마찰은 총학과 노조 사이의 말다툼과 총학의 대자보 철거로 시작됐다. 총학이 대자보를 뜯어내자 이에 격분한 노조원 및 파업에 동조하는 학생들과 총학 간의 몸싸움이 벌어졌다.
다양한 목소리 혼재하는 과도기
외대 민노학위와 다함께 외대 모임 등은 성명을 내고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을 짓밟는 학교 쪽과 우파 학생들의 공격은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며 “총학은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학생들의 의견을 자유롭게 허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고 비난하며 노조 탄압 중단과 표현의 자유 보장 등을 요구했다. 외대 총학생회장 엄태용(아랍어·3)씨는 “노동권이나 파업권도 중요하지만 학교 안에서는 학생들의 학습권이 먼저”라며 “파업은 학내 문제인데 이에 대해 다른 단체가 대자보를 쓴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했고, 대자보를 게시판이 아닌 본관 안에 붙여 철거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엄씨는 “대자보 철거는 파업에 대한 총학의 항의 표시지만 운동권을 탄압하려는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최근 대학에서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은 민주노동당이 주류였던 학생 정치활동에 변화가 일고 개인의 권리를 우선시하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다양한 학생들의 의견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혼재하는 과도기이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민노학위의 한 관계자는 “대학 안에 좌파 학생들의 목소리만 있는 것이 정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좌파와 우파를 비롯해 여러 의견이 오가는 것이 긍정적이라고 보지만 생산적인 의견 교환보다 충돌, 비방이 만연한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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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사건, 그 계단에선 무슨 일이 ‘교수 9명이 학생들에 의해 감금된 초유의 사태’라고 고려대 당국이 명명한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학생들은 ‘감금’이 아니라 ‘대치’였다며 학교가 이 사건을 왜곡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4월5일부터 17시간 동안 고려대 본관 2층과 3층 사이 계단에서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학교의 ‘본관 교수 감금사태 일지’에 따르면 학생들은 5일 오후 본관에서 교수들의 교무위원회 회의 진입을 시도했다. 이후 계단 앞뒤를 막고 1평 남짓한 계단 사이의 공간에 교수들을 감금하고 요구안을 받아줄 것을 거칠게 요구했다. 학생들은 교수들이 교대로 화장실에 가는 것만 허용하고 외부 출입은 통제했다. 학생들이 마시던 물병을 학생처장에게 던져줘 학생처장이 “누가 마시던 것인지 몰라 마실 수 없다”고 하자 학생들은 야유했다. 저녁식사로 김밥 등을 마련해 자기들만 먹었고, 상의도 없이 자장면을 시켜주고는 교수들에게 바닥에서 먹게 했다. 뿐만 아니라 교수에게 삿대질을 하며 폭언을 했다.
그러나 징계 조치를 받은 학생들에 따르면, 그날 학생들은 학교에 보건대 학생들의 투표권 요구안을 받아줄 것을 요구했으나 교수들이 이를 거부해 실랑이 중이었다. 교수들은 3층 남녀 공용화장실을 자유롭게 이용했다. 학생들은 교수들에게 ‘중앙선관위의 결정을 존중해달라’는 내용의 쪽지와 시루떡 등을 함께 전달했지만, 교수들은 불쾌하다며 이를 거부했다. 한 교수는 학생들과 함께 떡을 먹기도 했다. 학생들에게 폭언을 하고 윽박지른 교수도 있었다.
<고대신문>은 당시 이 사태를 이렇게 보도했다. “처장단은 현재 학생들이 하고 있는 행위가 자신들을 감금하고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이에 반해 학생들은 요구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출입을 제한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학생 측은 처장단이 요구안을 받는 즉시 출입을 자유롭게 할 것이므로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학교의 일방적인 주장만 언론에 알려졌다는 점이다. 수많은 언론이 이 사태를 다뤘지만 학생들의 반론이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다룬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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