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르노빌의 참사 결과 왜곡하며 ‘재생에너지’로 포장되고 있는 핵발전… 기술적인 진보에도 근본 문제 여전해 제4세대 원전 시스템 안심 못해…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다시 핵에너지의 르네상스가 시작되는 것인가. 한때 꿈같은 미래를 보장할 것 같았던 핵에너지는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참사 이후 모든 것을 악몽으로 바꾸고 말았다. 하지만 20여 년의 동면기를 거친 핵에너지가 화려하게 부활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영국 과학혁신부 데이비드 세인즈버리 정무장관이 지난해 11월 “원자력은 미래 에너지 수요를 해결할 ‘만병통치약’ 같은 효용성이 있다”면서 “핵에너지를 재생에너지로 분류할 의향이 있다”고 밝힌 데 이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해 국정연설에서 “원자력이 미국의 ‘석유중독’을 해결하는 데 커다란 구실을 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사망자, 47명인가 20만명인가
이런 국가적 핵에너지 정책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데는 체르노빌 참사로 빚어진 결과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보는 ‘연구 보고서’가 한몫 거들고 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지난해 9월 체르노빌 참사로 인한 건강과 환경 영향에 관한 보고서를 펴냈다. IAEA가 주도하고 벨로루시·러시아·우크라이나 정부 그리고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참여한 ‘체르노빌 포럼’이 2년 동안의 조사 연구를 통해 밝혀낸 내용이었다. 이 보고서는 체르노빌 참사를 ‘인류 역사상 최대의 핵 재난’으로 규정하면서도 사고 당시부터 지난 2004년까지의 사망자는 모두 47명뿐이라고 밝혔다.
이렇듯 핵의 위험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하려는 시도가 잇따르고 있다. 여전히 에른스트 블로흐가 <희망의 원리>에서 “인류가 원자력으로 사막을 옥토로, 시베리아를 지중해성 온대로 만들 것”이라고 밝힌 데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는 셈이다. 이런 믿음은 체르노빌에서도 예외는 아니었다. 체르노빌 원전의 현장 책임자로 사고 현장에 있었던 자클로프마저도 “체르노빌 같은 사고는 설계상 규정을 지키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면서 “핵에너지 이용 여부를 결정하는 데 체르노빌 사고는 고려 대상에서 빼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방사선 피폭으로 인한 질병으로 사고 10년 뒤 목숨을 잃었다.
정말로 체르노빌 참사는 예외적인 사고이며 사망자도 소수에 지나지 않았을까. 물론 사망자 수를 최소화한 수치는 이해관계가 얽힌 기관들의 발표일 뿐이다. 우크라이나 정부는 사고 복구 작업에 참가한 노동자 가운데 사망한 사람만 8천여 명에 이르며 1만2천여 명이 심각하게 방사능에 피폭됐다고 밝혔다. 독일 뮌헨 방사선 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사고 후유증으로 자살을 선택한 사람들을 포함해 모두 7만여 명이 숨진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방사능 유출로 인해 암에 걸린 사람을 합하면 사망자는 1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다. 얼마 전 그린피스는 암 이외의 질병까지 포함해 사망자가 20만 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지금도 체르노빌은 재앙의 근원지 구실을 하고 있다. 옛 소련 정부는 사고 발생 다음날부터 노출된 원자로 상부에 40t의 붕소(임계 방지), 2400t의 납(방사선 차폐), 1800t의 진흙·모래(방사성물질 방출 차단), 600t의 백운석(열 흡수) 등을 쏟아부었는데 적절한 위치에 투하되지 않아 원자로 노심의 과열 등의 문제를 일으켰다. 또한 폭발한 핵발전소 4호기 잔해를 10층 높이의 철근 콘크리트 구조물로 둘러싸는 석관 공사를 1986년 11월까지 6개월에 걸쳐 실시했다. 문제는 지붕에 균열이 생기면서 빗물이 유입돼 석관 구조물이 부식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2008년 완공을 목표로 하는 2차 석관 공사의 사업자를 선정하고 있다.
이런 공사에 들어가는 비용은 체르노빌 참사 피해국에 이중 삼중의 고통을 안겨준다. 무려 185t의 핵연료와 35t의 방사능 분진이 남아 있는 4호기에 대한 2차 석관 공사만 해도 10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아무리 유럽부흥개발은행(EBRD) 같은 기관이 우크라이나를 지원한다 해도 세계 각국의 도움 없이 공사를 마무리하기 어렵다. 이미 우크라이나 정부는 체르노빌 참사 복구비용으로 해마다 국가 예산의 4%를 지출하고 있는데 적어도 20%로 확대해야 원하는 성과를 거둘 것이라는 지적이다. 국가 재정의 25%를 사고 후유증 처리에 사용하는 벨로루시는 더욱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
벨로루시, 후유증 처리비용이 예산의 25%
아직도 벨로루시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등 3개국에는 극심하게 오염된 땅이 수두룩하다. 키에프 저수지는 방사능에 찌들어 있고 4호기 반경 30km의 격리지역에 있는 크고 작은 연못에는 성분 분석도 되지 않은 방사성 폐기물이 가득하다. 이런 피해는 비단 3개국에만 머물지 않는다. 당시 다량의 방사성 물질이 기류를 타고 인접국을 넘나들었다. 이 여파로 프랑스 포주 지방에서 심하게 오염된 멧돼지가 발견되기도 했다. 이때 염소와 양젖을 이용한 유제품을 많이 소비한 사람들은 과도한 방사능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지금도 프랑스와 영국 등지에서는 방사능 피해 상황을 둘러싼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일부 연구자들은 체르노빌 참사 지역의 생태계가 회복될 기미를 보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우크라이나 국립과학원 빅토르 도린은 “인간이 돌아가기에는 위험한 방사선 수준이지만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있는 동물이 일부 목격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유엔은 “생태관광을 추진해 지역경제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하기도 했다. 하지만 버섯, 딸기류 등의 임산물과 야생동물에 농축된 세슘137(Cs137)의 흡수량은 국가 조치기준(100Bq/kg)을 훨씬 웃돌고 있다. 게다가 체르노빌 근처 제비들의 생존율이 낮고, 부화하는 알의 수도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생물 다양성 증가가 ‘방사능 농축 생물’로 위험을 키우는 셈이다.
이렇게 20년 동안 체르노빌의 악몽이 지속되고 있음에도 핵에너지에 대한 기대가 되살아나는 것일까. 이는 체르노빌 사고의 원인이 옛 소련에서 개발한 원자로인 ‘경수냉각 흑연감속로’(RBMK-100)의 근본적인 결함에 있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즉 RBMK의 설계가 불완전했고 설비에도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 신원기 원장은 “체르노빌의 원전은 최후의 물리적 방벽인 격납 용기와 격납 건물이 없어 대량의 방사능 유출을 막지 못했다”면서 “(요즘은) 핵연료 용융이 발생하더라도 원자로 압력용기 내부에 가두어 냉각시키고 있다. 설령 유출되더라도 격납 건물을 빠져나올 수 없는 장치를 마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핵에너지 관련 공학기술은 획기적인 발전을 이뤄내지 못했다. 전세계는 지난 50여 년 동안 핵에너지 연구개발에 최소한 1조달러를 투자해 경수로용 MOX(우라늄·플루토늄 혼합산화물)를 이용하거나 고속증식로를 통해 사용후 핵연료를 재이용하는 기술 등을 확보했다. 하지만 안전성과 경제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심지어 핵폐기물 처리 같은 오래된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핵에너지의 잠재된 위험은 앞으로 10년, 20년을 내다보는 제4세대 원전 시스템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
1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사고?
현재 전세계적으로 27개의 핵발전소가 건설되고 있다. 이 가운데 18개가 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특히 중국은 2020년까지 원전 30여 개를 건립할 계획이다. 우리나라와 일본·러시아 등도 예외는 아니다. 체르노빌 참사로 인해 방사능 물질이 원전로 반경 100km 이내에 침전되었고, 유럽의 20만㎢가 오염된 것을 떠올리면 핵에너지의 위험성은 국경을 뛰어넘는다. 아시아의 핵에너지 지대화를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하기 두 달 전, 우크라니아 전력발전부 장관 비탈리 스킬야로프는 “핵발전소의 노심 용융 사건은 1만 년에 한 번 일어날 정도”라며 핵에너지의 안전성을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참고자료:
<에너지 주권> 헤르만 셰어 지음, 고즈윈 펴냄.
<대안 없는 대안 원자력 발전> 신부용 지음, 생각의나무 펴냄.
체르노빌 포럼 보고서 <체르노빌 원전 사고의 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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