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련 수업 첫날, 국기 경례 거부 때문에 구타당했던 ‘박해의 추억’… 신앙의 순수성 가르치던 교회 지도자들이 이젠 국기 들고 기도회한다
▣ 백종국 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경상대 교수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필자가 주장하고 있는 ‘매개의 변증법’이라는 현상에 따르면, 국가가 국민에게 충성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매개자를 매개의 본질보다 우선하는 게 원죄를 지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특징이기 때문이다. 이 본말 전도의 현상은 국가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의 모든 조직에서 흔히 관찰된다.
절묘한 합의, 나는 기수가 되었다
최근 국기에 대한 경례(맹세) 문제가 다시 논의되는 것을 보면서 수십 년 전 필자가 겪었던 ‘박해’의 추억이 어렴풋이 떠올라 우리 사회의 진화 정도가 매우 느리다는 생각을 아니할 수 없다.
기억이 뚜렷한 건 아니지만 때는 바야흐로 1971년 봄쯤이었다. 필자는 그때 전북 이리(지금은 익산)에서 고등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집은 경남 하동이었지만 이리에서 목회하는 큰형의 보살핌으로 일종의 유학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큰형은 신앙적으로 완고하기로 유명한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파의 정통파 목회자였다. 이 교파는 일제하에서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거의 순교 직전까지 이르렀던 ‘출옥성도’들이 모여 만들었다. 그러니만큼 교파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을 뿐 아니라 성경적 원칙에 어긋난다고 판단되는 모든 종류의 행위를 단칼에 거부하는 강한 의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또 우리 형은 실제로 그렇게 가르쳤다.
이 원칙에는 주일성수, 십일조, 불신 결혼 금지, 주초(술·담배) 금지 등이 포함돼 있었고 우상숭배는 두말할 것도 없이 가장 큰 죄악이었다. 우상숭배 혹은 이에 준하는 혐의가 있는 어떤 행위도 철저하게 금지하고 있었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고신파의 해석에 따르면 국기에 대한 경례는 ‘일제의 잔재’이며 ‘우상숭배적 행위’였다. 인간도 아닌 깃발을 보고 경배하라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경례’라는 구호 대신 ‘주목’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서슬 퍼런 박정희의 군사독재 치하에서는 전혀 먹혀들 여지가 없었다.
박해의 추억은 바야흐로 여기에서 시작되고 있었다. 사실 평소 필자가 국기에 경례를 하는지는 다른 이의 관심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때 군사독재의 교련수업이 재개됨으로써 사태는 확실히 불거지게 되었다.
아마도 교련 훈련 첫날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련 수업이 시작되면서 전교생들이 운동장에 나와 사열과 분열, 제식 훈련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국기에 대한 경례’라는 구령이 떨어졌다.
교관이 보니 병력의 가운데 앞부분쯤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 구령을 잘 듣지 못하는 학생이 있었다. 두어 번 반복하는데도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닌가. 다가와서 물었다. “뭐야, 인마!” 내가 “저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그가 “왜?” 하고 물었다. 나는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격분한 그가 구타를 시작했다. 자기도 교회를 잘 아는데, 너는 순 못돼먹은 이단이라는 주장이었다.
전교생이 주시하는 운동장 한가운데서 시작된 ‘박해’는 당시에 어느 교회 교인이었던 교감 선생님이 다가옴으로써 간단히 해결됐다. 그는 교관에게 고신파가 이단이 아니라 ‘지독한’ 정통파 장로교라는 점을 이해시켜주었다. 그리고 이 일은 박해로써 해결되지 않으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아야 한다는 점도 주지시켜주었다.
두 분의 합의로 좋은 방안이 도출됐다. 필자를 기수단에 포함시키는 것이었다. 국기를 들게 되면 국기에 경례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당연히 필자로서는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었다. 그리하여 팔자에도 없는 기수단이 됐다.
국기 경례 문제는 필자가 재수하고 있을 때 해결됐다. 이때 김해여고 사건이 터졌고 고신파 총회에서 국기에 경례를 해도 된다고 해석했다고 한다.
신학적 해석이 시류를 따라 달라지는 것이야 늘상 있는 일이니 그렇게 새로울 것도 없다. 필자의 생각에도 신앙의 본질이 아닌 교리의 주변적 해석을 가지고 과도하게 갈등을 유발하고 박해를 자초하는 것은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일이 아니다.
관용을 베풀 때가 되지 않았나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그토록 신앙의 순수성을 강조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이들에게는 국기에 경례를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쳐서 박해를 받게 했던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이제는 우리 국기뿐만 아니라 남의 나라 국기까지 들고 시청 앞에 모여 기도회를 하는 모습이란 참 가관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신학적 해석이 바뀐다고 해도 그렇게 돌변해서는 안 된다.
국기에 대한 경례가 문제라면 한국 사회의 민주화가 충분히 진행됐으므로 이제는 다양한 견해에 관용을 베풀 처지도 되었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신앙 양심의 문제라도 ‘징병 거부’와는 다르다. 징병 거부는 다른 징병 대상자들에게 피해를 주며 신앙을 이유로 특혜를 주기가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국기에 대한 경례는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는다. 이를 문제 삼는 것은 국가주의 논란을 떠나 시대착오적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신앙 때문에 잠시 박해를 받는다고 해도 그렇게 섭섭하게 생각할 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다소나마 박해를 받은 경험은 참으로 유익하다. 시류가 어떻든지 간에 이것이 옳다 했을 때는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소중한 추억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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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박준규(당시 15살·여호와의 증인)군은 의정부 영석고에 지원했다가 입학을 거부당했다. 면접 전형서에 “국민의례를 할 수 없으니 이해해달라”고 쓴 게 화근이었다. 영석고는 ‘국가·사회·학교의 기본 정신에 위배되는 사상이나 특수 종교를 가진 학생은 불합격 처리할 수 있다’는 내부 규정을 들어 박군을 불합격시켰다. 처음엔 너무도 어이없는 일이라 경기도교육청에 진정서를 내면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경기도교육청의 답변은 의외로 “학교의 불합격 처분이 정당하다”는 것이었다. 경기도교육청의 회신에 첨부된 자료는 1976년 김해여고 판례였다.
1973년 9월 김해여고는 국기 경례를 거부한 기독교 학생 6명을 제적한다. 제적된 학생들은 헌법이 보장한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침해당했다며 제적 처분 취소 소송을 냈지만, 1976년 대법원은 끝내 다음과 같이 판결한다. “원고들은 위 학교의 학생들로서 모름지기 그 학교의 학칙을 준수하고 교내 질서를 유지할 임무가 있을진대… 원고들이 그들의 임무를 저버림으로써 학교장인 피고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음으로 인하여 종교의 자유가 침해된 결과를 초래하였다 하더라도 이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
제천 남천교회 판결은 김해여고 판결보다 1년 앞선 1975년에 이뤄졌다. 두 재판은 각각 형사소송과 행정소송이라는 점에서 달랐지만, 국가주의에 대항한 양심·종교의 자유를 시험대에 올렸다는 점에선 같았다. 그런 점에서 남천교회 사건 재판부가 경례 거부자들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종교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인정한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해여고 사건 재판부가 종교의 자유를 한낱 일개 학교의 학칙 아래로 깔아뭉갠 데 비해서는 말이다.
더욱이 남천교회 판결은 3년 전 판례를 뒤집은 것이었다. 1972년 전남 광양 진월중앙초등학교 국기 경례 거부 사건. 이 사건은 학생들의 경례 거부를 모사한 혐의로 교회 관계자를 구속한 형사소송이라는 점에서 남천교회 사건과 똑같다. 검찰은 그해 이 학교 학생들의 경례 거부를 ‘모사’한 혐의로 당시 오사교회 주일학교 교사였던 양영례씨를 구속했다. 법원은 검찰이 주장한 ‘국기 비기’ 혐의를 인정해 양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1년6개월을 선고했다. 1970년대 초 연이은 3번의 국기 경례 사건 재판에서 ‘경례 안 할 자유’를 인정한 건 남천교회 판결뿐이었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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