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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사회공헌은 양극화 공헌?

등록 2006-04-04 00:00 수정 2020-05-02 04:24

“수천억원 이익금 사회에 환수” 생색내는 그들의 활동실적 집중분석… 문화예술·학술교육 분야 지원에 편중, 그나마도 부익부 빈익빈 뚜렷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서울시 성북구 하월곡동 산2번지. 서울의 마지막 남은 달동네로 불리는 곳으로 동네 옆 뒷산 자락에 ‘성북구립 월곡청소년센터’가 들어서 있다. 한 종교단체가 구청에서 위탁받아 운영하고 있는데, 방과 후에 오갈 데 없거나 집에서 공부할 여건이 못 되는 지역 청소년들의 공부방으로 쓰이고 있다. 그런데 1970년대에 지은 이 낡은 콘크리트 시설은 오랜 세월 비바람에 깎인 탓인지 간판 글자도 몇 군데가 떨어져나가 다소 흉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한눈에 봐도,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을 서두르지 않으면 요즘 세상에 누가 여기에 공부하러 올 맛이 날지 의문이 들 정도다.

달동네 공부방의 살풍경은 계속된다

센터 안으로 들어가 둘러보면 시설은 더 열악하다. ‘수능공부방’ 한쪽에 붙은 조그만 학습자료실에 비치된 책은 빈약하기 짝이 없고, 그나마 빛바랜 옛날 책들이 대부분이다. 아이들이 거의 이용하지 않아서인지 학습자료실에는 여러 물품을 담아놓은 상자들이 뒤엉켜 창고처럼 쓰이고 있었다.

공부방 앞쪽에 놓인 10여 대의 컴퓨터도 배불뚝이 옛 모델이라 그런지 먼지만 뒤집어쓰고 있다. 이 센터의 이남재 관장은 “이 지역 달동네가 점차 철거되고 중산층 아파트가 속속 들어서고 있지만 아직까지 남아 살고 있는 저소득층 자녀들이 주로 센터를 찾아오고 있다”며 “방과 후 공부방에 오는 초등학생이 40여 명 정도이고 중·고등학생도 저녁에 공부하러 여기에 온다”고 말했다. 140여 석 열람실에는 자격증 시험 등을 준비하는 주민들이 공부하러 오기도 한다.

이 센터의 연간 운영비는 직원 인건비까지 포함해 1억원 안팎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부족한 운영비의 대부분은 인건비에 쓰이고, 학습 시설을 갖추는 데 쓸 돈은 거의 없다. 성북구청이 센터에 지원하는 돈은 인건비와 겨울철 연료비·전기세 등에 불과하다. 구청 관계자는 “시설이 많이 낡아서 예산을 투입해 리모델링하는 것을 생각 중인데, 학습 시설을 개선해주면 아이들도 좋아하겠지만 관내의 낡은 다른 청소년센터도 있어서 한꺼번에 예산을 투입하기는 어렵다. 시설은 열악하지만 구청에서 지원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장은 “대기업들이 집행하는 사회공헌 활동비를 지원받는 저소득층 공부방도 몇 군데 있지만, 사실은 생색내기에 그칠 뿐”이라며 “기업들이 이런저런 사회공헌 활동을 했다고 눈에 보이는 것만 자랑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LG 등 대기업들은 해마다 “수천억원의 기업 이윤을 사회에 환원했다”면서 사회공헌 활동 실적을 앞다퉈 발표하고 있다. 그런데 이 천문학적인 돈은 어디에 어떻게 쓰이고 있을까? 월곡청소년센터처럼 70년대식 건물에서 공부하는 일부 빈곤층 청소년들에게는 왜 ‘사회공헌’ 혜택이 돌아가지 못하는 것일까?

삼성그룹의 사회공헌 활동 지출액은 2000년 1658억원, 2002년 3217억원, 2004년 4716억원, 2005년 4926억원으로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삼성은 2005년 공익사업에 3092억원, 기부협찬에 1751억원, 봉사활동 지원에 83억원을 썼다.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분야별로 사회복지·문화예술·학술교육 등으로 나뉜다.

저소득층을 위해 주로 쓰이는 ‘사회복지’ 분야만 보면, 삼성의 경우 2000년 386억원, 2004년 1573억원, 2005년 2200억원을 썼다. 2200억원에는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낸 성금 200억원, 특별사업(삼성병원 암센터 건립 비용·빈민층 공부방 지원·농촌환경 개선사업 등)에 쓴 873억원이 포함됐다. 삼성사회봉사단 황정은 부장은 “민간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 지나치게 사회복지에 몰입돼서는 안 된다. 민간기업이 사회공헌에서 해야 할 진정한 역할은 사회복지보다는 문화 인프라 구축이다. 민간기업이 언제까지 빈곤한 국민들의 밥을 먹여주는 일만 할 것인가?”라며 “삼성이 올해 사회복지 지출액을 2천억원까지 늘릴 계획인데, 단지 양극화 문제가 커지고 있어서 사회복지 분야를 늘리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삼성, 호암미술관에만 한해 466억원 투입

LG그룹은 올해 복지·문화·교육·환경·언론 등 5개 공익재단(총기금 3200억원)과 계열사별 사회공헌 활동을 포함해 총 800억원을 사회공헌 활동에 지원할 계획이다. 2005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LG는 2005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00억원을 냈고, LG복지재단을 통해 사회복지사업(빈민지역 공부방 지원·독거노인 생필품 지원 등)에 지원한 돈은 총 27억원이다. 즉, 소외된 저소득층을 위해 직접적으로 쓰이는 돈은 총 127억원으로 총 사회공헌 실적(800억원)의 16%에 불과하다. LG복지재단 정윤석 상무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문화·예술 활동으로 나아가는 것이 맞다. 사회복지는 원래 국가가 해야 할 일”이라며 “우리나라에 아직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안 갖춰져서 민간기업이 사회공헌 활동 중 일부를 사회복지에 투입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여러 기업들을 다 합쳐 따져보면,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 결과 2002년 국내 185개 기업이 총 경상이익의 1.25%(7468억원)를 사회공헌 활동에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경련 사회공헌팀 관계자는 “국민들이 사회공헌을 노숙자·빈곤층·소년소녀가장돕기 등으로 좁게 보고 있는데 이건 잘못이다. 소외계층을 포함해 모든 사회적 문제에 대해 지원하는 것이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이다”고 말했다.

그러면 대기업들은 ‘문화·예술’ 사업에 얼마나 지원하고 있을까? 삼성은 사회공헌 활동 실적 중에서 문화·예술 분야에 2004년 1115억원을, 2005년에 823억원을 ‘쾌척’했다. 이 돈은 삼성미술관 리움이나 호암미술관 등에 전시할 고가의 유명 소장품 구입에 주로 쓰인다. 삼성은 2003년의 경우 호암미술관에 466억원, 호암갤러리 운영에 44억원, 음악사업(명품 악기은행 등)에 2억원을 지원했다. 삼성미술관 리움이나 호암미술관은 ‘동양 최고’의 사립미술관이라고 한다. LG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수준의 최첨단 다목적 공연장인 LG아트센터는 서울 강남 테헤란로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는데 총공사비만 620억원이 들어갔다. LG아트센터는 배우 윤정희씨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작은 소리도 음향이 완벽하고, 우리나라에 이런 공연장이 있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했을 정도로 ‘세계 최고’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세계 최정상급 예술가들을 초청해 공연을 여는데, 지난해 4월 100만 관객을 돌파했다. LG가 2005년 LG아트센터 운영에 쓴 사업비는 83억원으로, LG그룹 총 사회공헌활동비의 10%를 넘는다.

주로 문화·예술 분야에 주력해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2005년에 지출한 사회공헌 활동의 총 사업비는 142억원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지난해 금호아트홀 등 음악사업 분야에 35억원, 금호미술관 운영 등 미술사업에 10억원을 썼다. 지난해 정명화 첼로 연주회·황병기 가야금 연주회 등을 개최했고, 세계적인 고가의 명품 악기를 구입해 유망 연주자들에게 무상 대여해주는 악기은행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금호 악기은행은 현재 수억원짜리 1774년산 ‘과다니니’ 바이올린을 보유하고 있다.

‘학술·교육’분야에서 지방대는 철저히 소외

그런데 대기업들이 문화·예술 분야에 쾌척한 거액의 사회공헌 지원금은 과연 누구를 위해 쓰이는 것일까? <삼성 사회공헌활동 백서 2004>는 “문화를 향유하는 기쁨, 예술을 가까이하는 즐거움을 보다 많은 이들이 누릴 수 있도록 문화·예술 지원활동”과 “문화 소외계층이 없는 사회 실현”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저소득층 사람들이 ‘동양 최고’ ‘세계 최고’를 자랑하는 삼성미술관 리움과 LG아트센터에 몇 명이나 가봤을까? 가만히 들여다보면 대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혜택은 대부분 부자들이 즐기고, 치료받고, 교육받는 곳으로 흘러들어간다. 아무리 저렴하게 제공한다고 해도 미술관·오페라하우스·교향악단·아트홀 등에 가서 예술적 안목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계층은 부자들에 국한된다. 대기업들이 수십억원의 돈을 들여 도심 한복판에 최첨단 문화·예술 시설을 짓고 있는 동안에도 ‘수십만원, 수백만원의 사회적 지원을 기다리는 그늘진 곳’은 군데군데 널려 있다. 동네 뒷산 공원이 오랫동안 방치된 채 철봉이 붉게 녹슬고 있는 지역이 한두 곳일까?

사회공헌 활동 중에서 ‘학술·교육’ 분야 지원은 어떨까? 삼성이 2005년 학술·교육에 지원한 돈은 1554억원이다. 이 가운데 고려대 ‘100주년 기념관’ 등 대학 시설 기부에 556억원을 썼다. 삼성사회봉사단 황정은 부장은 “최근 2∼3년간 고려대, 이화여대 등에 학교 기념일과 관련된 디-데이가 있어서 삼성이 지원했다”며 “대학 건물 기부로 300억원을 지원한 것을 두고 ‘가난한 사람한테 밥을 주지 무슨 대학 건물 지원이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사회공헌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대학 시설 기부도 일부 명문 대학교에만 집중될 뿐 정작 투자가 필요한 지방대학 등은 대기업의 사회공헌 혜택에서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다. LG는 2000년 이후 고려대 ‘LG-포스코관’ 신축에 100억원을 지원한 것을 비롯해 서울대·이화여대·연세대 등에도 강의동과 기숙사를 짓는 데 수백억원을 기부금으로 지원했다. LG복지재단 정윤석 상무는 “대학은 기업에 인재 공급을 해주는 구실도 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한편, 포스코도 2000년 이후 서울대 ‘포스코생활체육관’, 고려대 ‘LG-포스코관’, 이화여대 ‘이화-포스코관’ 건립에 각각 100억원을 지원했다. 그러나 LG가 진주 경상대학교에 ‘개척관’을 지어준 것을 빼면 지방대학이 지원받은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경상대 지원도 LG 창업주가 진주에서 사업을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인연과 무관하지 않다. 이미 잘나가는 명문 대학에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비 수백억원이 지원되는 반면, 저소득층 아이들이 교육받는 초·중학교 등은 운동장을 조금 넓히는 데 필요한 돈도 없어서 애를 태우는 것이 현실이다.

사회복지 분야는 돈보다는 인력투입

물론 삼성·LG 등이 사회복지 사업을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니다. 삼성은 전국 34개 삼성어린이집 운영에 연간 10억원 정도를 쓰고 있고, 빈곤지역 공부방 시설 개선 등에 60억원 정도를 지원하고 있다. LG복지재단도 2005년 △거동이 불편한 노인과 장애인을 위한 이동목욕 차량 지원에 3억7천만원 △빈민지역 공부방 지원과 독거노인 생필품 지원에 각각 1억원 △시각장애특수학교 지원에 1억6천만원 △지역사회 복지관 건립에 23억원 등 총 27억원을 썼다. 그러나 이는 LG아트센터에 들어간 지원금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 추세를 보면, 금전적으로는 문화·예술 분야로 향하고 있고 사회복지 분야는 돈보다는 대기업 임직원들의 자발적인 인력 투입(사회봉사활동)을 더 강조하고 있다. 삼성 쪽은 “2003년 계열사 임직원 43만5천 명(연인원)이 사회봉사활동에 참가했다”며 “임직원의 급여가 월평균 325만원이므로 이것을 경제적 가치로 따지면 172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빈곤과 양극화 해소를 위해 돈을 투입하는 건 웬만해서는 때깔이 나지 않고, 임직원들이 직접 나서서 봉사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홍보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일까?



기부금은 다시 기업으로

“전액 세금 혜택은 국가가 민간기업 대신해 기부하는 꼴”

대기업의 사회공헌 활동비 중 상당액은 국가로부터 세금 혜택을 받는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조사 결과, 2000년의 경우 국내 114∼146개사의 사회공헌 활동 총 지출액 6664억원 가운데 6086억원이 세금 혜택을 입었다. 2002년에는 사회공헌 총 지출액 7187억원 중에서 세금 혜택이 적용된 돈은 4713억원이었다.
기업의 사회공헌 지출에 대한 세금 혜택을 보면, 손금산입한도(세법상 비용으로 인정돼 법인세 과세표준 산정에서 제외되는 금액)는 일반적으로 법인소득(순이익)의 5%다. 그런데 국가·지방자치단체·복지단체에 또는 장학금·학교 시설비 등으로 기부한 돈은 법인소득의 100%까지 손금으로 인정해준다. 예컨대 어느 기업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100억원, 서울대학교에 300억원을 기부해 총 400억원을 기부했다고 하자. 이 기업의 순이익이 1천억원이라면 400억원을 손금으로 빼고 600억원에 대해서만 과세가 된다. 즉 법인세율이 27%이므로 600억원의 27%이면 162억원의 세금을 내게 된다. 기부가 없었다면 1천억원의 27%, 즉 270억원의 세금을 내야 하는데 국가가 108억원의 세금을 감면해준 셈이다. 기부금의 상당액을 돌려받는 것인데, 거꾸로 말하면 국가가 그만큼을 기업 대신 사회에 기부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재경부 관계자는 “기부금에 대해 전액 세금 혜택을 주면 결국 국가가 민간기업을 대신해 기부하는 꼴이 되고 만다”며 “2009년부터는 복지단체와 대학 등에 기부하는 돈에 대해 손금산입한도를 법인소득의 50%로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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