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잠원동 가설 테니스장 단독 보도한 <한겨레> 24팀 기자가 전하는 사건의 전말… 서울시가 해명할수록 사건은 더 의혹 속으로… 2천만원 대납은 여전히 미지수</font>
▣ 이유주현 기자 edigna@hani.co.kr
▣ 조기원 기자 garden@hani.co.kr
처음에는 ‘짝퉁’인 줄 알았다.
이명박 서울시장의 ‘황제 테니스’ 사건은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황제 골프’ 사건에 견줘보면 어설픈 짝퉁처럼 보였다. 적어도 처음에는 그랬다.
‘황제 골프’의 짝퉁인 줄 알았는데…
문제가 처음 불거진 것은 YTN이 지난 3월13일 이 시장이 남산실내테니스장에서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주말에 독점적으로 이용했다고 보도하면서부터였다. 황제 테니스는 황제 골프 때문에 곧 사람들의 입에 올랐다. ‘황제’라는 말만 여기저기서 튈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황제 테니스는 곧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질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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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씨는 꺼지지 않고 오히려 타올랐다. 이틀 뒤인 15일 YTN은 다시 남산실내테니스장을 위탁 운영했던 (사)한국체육진흥회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밀린 사용료를 내라고 서울시 테니스협회에 보낸 공문을 공개했다. 공문에는 “이 시장이 올 때 편하게 사용하라고 주말에 남산실내테니스장을 통째로 빌리기로 서울시 테니스협회 쪽과 구두계약을 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곧 테니스장 사용료 2천만원을 누군가 대신 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사용료 계산을 어떻게 하느냐를 놓고 기자들끼리도 의견이 분분했다. 누구도 맞추기 힘든 퍼즐 같아 보였다.
서울시는 처음엔 자신감이 있었다. “테니스를 친 것은 사실이지만 자신이 친 비용 600만원은 나중에 따로 사비로 냈다”는 해명이었다. 당시 미국 출장 중이었던 이 시장을 대신해 정태근 정무부시장이 기자실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이 시장이 실제로 쳤던 ‘테니스 일지’(2003~2005년 51회분)도 공개했다. 또 2003년 4월~2005년 1월에는 ‘선병석 서울시 테니스협회 전 회장’이 이명박 시장의 테니스 경기 상대로 전직 국가선수 출신들을 섭외했고, 2005년 2월부터는 ‘이아무개 서울시 체육회 상임부회장’이 이 시장을 모셨다는 사실도 밝혔다. 다만, ‘이아무개 체육회 부회장’은 실명을 공개하지 않았으나, 전 테니스협회장인 ‘선병석’은 쉽사리 이름 석자를 밝힌 점이 좀 의아스러웠다.
여하튼 서울시가 낸 해명자료는 기자들의 손에 의해 ‘큰 그림’ 속의 ‘퍼즐 조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서울시가 이름을 밝히지 않았던 ‘이아무개 서울시체육회 부회장’은 기자를 만나자 “시장 비서실에서 시장의 일정을 통보하는 전화가 오면 나는 테니스장에 전화를 걸고 함께 테니스를 칠 선수들을 섭외했다”고 순순히 밝혔다. 금세 ‘초청’이란 퍼즐 조각은 ‘예약’으로 돌변했다.
‘초청’이란 퍼즐 조각이 ‘예약’으로 돌변
시장이 주말에 잠깐 테니스장에 들러 그곳에서 게임을 즐기던 동호인들과 어울려 스트레스를 푼 게 아니라는 정황이 포착되자, 곧 ‘테니스’를 이용해 시장에게 다가서려는 이들의 윤곽이 잡히기 시작했다. 황제 테니스는 이때부터 실체를 얻었다.
둘러보니, 이 시장의 남다른 테니스 사랑은 여기저기서 뒷말을 낳고 있었다. <한겨레>는 서울시가 42억원을 들여 서초구 잠원동에 실내 테니스장을 가설 건축물(원칙적으로 보존기한이 3년을 넘길 수 없는 가건물)로 지었다는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학교 용지로 되어 있는 땅을 용도 변경하지 않기 위해 건물을 가설 건축물로 올리는 편법을 쓴 사실이 드러났다. ‘42억원짜리 가설 건축물’ 사진이 지면에 실리자,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어떤 건축업자는 기자에게 메일을 보내 “내가 학교 용지에 조그마한 가건물을 지으려고 3년 동안 구청에 드나들었으나 끝내 허락를 받지 못했다”며 “아무리 서울시가 ‘적법’이라고 주장해도 비상식적인 처사”라며 맹비난했다.
민심을 자극하는 봇물이 터지자 이내 뉴스는 홍수처럼 흘렀다. 서울시가 해명자료로 낸 ‘시장의 테니스 일지’를 꼼꼼히 분석해보니, 2005년 7월17일 이 시장은 서울시에 큰비가 내린 상황에서도 테니스를 쳤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서울시는 “시장이 테니스를 치고 있을 당시엔 이미 비가 멈췄다”며 기상청 자료를 내밀었으나, 공무원들의 비상근무가 해제되기 이전에 시장이 남산실내테니스장에 갔다는 더욱 구체적인 사실이 밝혀질 뿐이었다. 이제 황제 테니스는 ‘폭우 테니스’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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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쪽에선 서울시의 거대한 조직과 예산에 얽힌 구조적 문제점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후반기에 ‘테니스 의전’을 시중든 ‘이아무개 체육회 상임부회장’은 실제론 ‘한국회’(한나라당 지구당 사무국장들의 모임)라는 단체를 주도하며 이 시장의 ‘큰 꿈’을 돕기 위해 움직여온 정황이 포착됐다. 그는 차기 서울시장 후보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듣는 ‘한국회’ 모임에서 밥값을 체육회 카드로 긁었다.
이 시장은 이에 앞서 지난 20일, 시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접 나서 해명했다. “일이 바빠 골프는 치지 못하고, 한 달에 한두 번 테니스를 쳤을 뿐인데 문제가 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돈을 그때그때 내지 못한 것은 사려 깊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 시장은 번쩍거리는 카메라 플래시 세례 속에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국가 청렴위 조사가 기다린다
지금까지 해명자료는 물음표를 늘렸고, 기자들의 손에 의해 마침표로 정리됐다. 그러나 한 가지 물음표는 여전히 남아 있다. 2천만원은 당시 테니스 멤버였던 ㅇ아무개씨가 대신 냈다고 해명했지만, 보험설계사인 ㅇ씨가 자신의 회사에서 대출까지 받아가며 허겁지겁 돈을 낸 이유는 아직 명확히 정리되지 않았다.
이 시장은 지금 검찰에 고발된 상태다.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은 이 시장을 뇌물수수, 직권남용 등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국가청렴위 조사도 이 시장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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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은 서민적인 스포츠라고 생각했던 테니스가 이토록 문제를 일으킬지 미처 몰랐을 것이다. 청계천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뒤 여론 지지도가 급상승하며 대권에 한발한발 다가가고 있던 그는 정말 몰랐을 것이다. 이런 시련이 왜 닥친 건지 그리고 그 고리가 어떻게 ‘테니스’가 되었는지, 정말 몰랐을 것이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이명박 시장은 이번에 테니스 파문을 겪으며 아마도 여러 번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왜 제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까? 제가 테니스 친 비용을 다 낸 것은 신도 아시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저렇게 돌을 던지는 것입니까?”
어쩌면, 아마도 어쩌면, 하나님은 그에게 이미 응답하셨을는지 모른다.
“주위를 둘러보거라. 이미 큰돈과 권력을 가졌으며, 앞으로도 더 큰 권력을 쥐게 될지 모를 너의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은 너의 지혜와 총명을 가릴 말들을 어떻게 속삭이고 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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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한 코트, 비밀스런 스매싱</font>
▣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이명박 서울시장이 ‘황제 테니스’를 즐긴 서울 남산실내테니스장은 어떤 곳일까.
취재 도중 만난 테니스 동호인들은 하나같이 “거긴 보통 사람들은 잘 가지도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코트도 1면밖에 없어 불편하고, 안전기획부가 있던 곳이라 으스스한 기분도 드는 탓”이라는 게 이유였다. “남산실내테니스장이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고 한 동호인들도 많았다.
실제로 남산실내테니스장을 ‘찾아내는’ 건 쉽지 않았다. 남산 순환로를 따라 리라초등학교 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보이는 서울종합방재센터 표지판이 거의 유일한 단서였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대로 ‘굽이굽이’ 난 도로를 따라 들어가다 보니 방재센터와 옛 안기부 건물이었던 서울 유스호스텔이 있었다. 그 안쪽의 터널처럼 생긴 콘크리트 구조물을 지나 더 들어가서야 간신히 테니스장을 만날 수 있었다. 그나마 건물에는 이곳을 지난해까지 위탁 운영했던 한국체육진흥회의 간판만 덩그러니 걸려 있어, 이런 곳에 테니스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기 어려웠다. 길눈 밝기로는 누구도 따라오기 힘든 취재 차량 운전사도 그 근처를 뱅뱅 돌다 서너 차례 길을 물어서야 찾아낼 정도였다.
이 시장은 왜 이런 곳에서 테니스를 쳤을까.
남산실내테니스장은 1970년대 중반, 당시 중앙정보부 안의 체육시설로 문을 열었다. 테니스장의 ‘생명’인 코트 바닥은 독일에서 수입해 인조 잔디를 덮은 것으로 알려졌다. 두어 번 그곳에 가 봤다는 한 테니스계 인사는 “서너 게임 치고 나면 무릎이 아픈데, 남산은 바닥이 좋아 전혀 그렇지 않았다”며 “건물 자체는 오래돼서 문제가 있을 수 있어도, 코트 하나는 지금 기준으로도 수준급”이라고 말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이 테니스장을 매우 아꼈는데, 관리를 잘못한다고 중정 고위 간부를 야단친 적이 있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먹고살기도 바쁜 보통 사람들은 취미생활을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시절, 이곳이 특권층의 전용 ‘놀이터’였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다.
1995년 국가정보원이 남산에서 철수하면서, 시민체육시설로 헌납한다는 취지로 테니스장 소유권이 서울시에 이전된 뒤에도 ‘그들만의 리그’는 계속됐다. 남산공원관리소가 직접 운영하면서 일반인들에게는 개방하지 않았던 것이다. 공개 입찰에 따른 민간 위탁으로 운영 체제가 바뀐 2001년 4월에 들어서야 이곳은 명시적으로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첫 공개 입찰에서 테니스장의 3년 위탁운영권은 숭의여자대학에 돌아갔다. 이 과정에서 숭의여대의 한 인사가 “수업에도 필요하고, 학생들을 위해 쓰려고 하니까 양보해달라”고 입찰할 만한 사람들한테 부탁을 했다는 후문도 있다.
교육용이나 일반인 사용료는 1시간에 2만원으로 책정됐지만, 공무원과 학교 관계자들은 무료로 이용할 수 있었다. 문을 열지 않는 토요일에도 학교 관계자나 그들과 친분이 있는 사람들, 고위층의 사용 요청은 시간이 겹치지 않는 한 모두 받아들여졌다. 결국 온전히 시민을 위한 테니스장은 아니었던 셈이다. ‘더 높은 분’의 정기를 받고 싶어서였을까. 한 고위 공무원은 이곳에서 테니스를 치다 지게 되자, 박 전 대통령이 앉았던 의자 앞으로 가 30분 넘게 국선도를 하고 나서야 다시 경기를 계속했다고 한다. 또 테니스광으로 소문난 노태우 전 대통령과 부인 김옥숙씨, 고건 전 총리,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임창열 전 경기지사 등이 이곳을 이용했다. 이 시장도 몇 차례 이곳을 찾았다. “아는 사람만 오는 곳이니 조용하고, 남의 눈에 띌 일이 없기 때문에 남산을 찾지 않겠느냐”는 게 테니스계 인사들의 중론이다.
2003년 4월부터는 위탁운영자가 (사)한국체육진흥회로 바뀐다. 이때부터 공무원 무료 이용 혜택은 없어졌지만, 남산실내테니스장은 여전히 ‘아는 사람만 가는 곳’이었다. 이런 맥락 속에서 이 시장의 ‘황제 테니스’ 파문이 불거진 것이다.
30여 년 동안 사실상 특권층의 비밀스런 사교모임 장소였던 남산실내테니스장. 이곳은 ‘황제 테니스’ 말고 또 무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현재 전기·수도 공사 때문에 문을 닫은 이곳이 재개장할 땐, 시민의 품에 편안히 안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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