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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아, ‘전북시대’가 열린단다

등록 2006-03-29 00:00 수정 2020-05-02 04:24

대법원 판결 뒤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재개된 새만금의 표정을 돌아보며… 내몰리는 주민들은 발만 구르고 갯내음 대신 선거바람이 솔솔 불어온다

▣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21세기 서해안 시대의 중추적 산업기지가 될 새만금 간척종합개발 기공식이 3월28일 오후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현지에서 노태우 대통령 등 내외 귀빈과 지역주민 2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치러졌다. 14년 동안 모두 1조3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2004년 완공되는 새만금 종합개발사업은 대항리에서 가력도·신시도·야미도 및 비응도를 연결하는 세계 최장의 방조제(33km)를 쌓아 여의도의 140배 크기인 4만100ha(1억2천여만 평)를 새로 개발하는 사상 최대의 간척사업이다.”

<한겨레>는 1991년 11월29일치 5면에서 이렇게 썼다. 그로부터 만 14년5개월여 만인 오는 4월24일이면 새만금 방조제의 마지막 물막이 공사가 끝난다. 그사이 사업 주관자인 농어촌진흥공사가 농업기반공사로, 다시 한국농촌공사로 이름을 바꿨다. 한 세대가 흐른 것이다.

4월24일 공사 끝날 예정

다시 갯벌을 찾았다. 아련한 갯내음은 여전했다. 3월22일 오전 전북 부안군 해창갯벌에 다가서자 봄바람이 비릿한 냄새를 전한다. 마침 바닷물이 빠지기 시작해 모습을 드러낸 드넓은 갯벌은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3월16일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방조제 공사가 재개됐으니, 수평선 끝 바다 한가운데에선 막바지 물막이가 한창일 터이다. 갯벌을 지키고 선 장승이 처연하다.

“3월24일 본공사가 재개되기 전까지 550m를 막을 예정이다.” 새만금사업단 상황실에서 만난 농촌공사 관계자는 “조성된 부지는 농업용지 외에도 일부 산업용지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담수호가 들어설 1만1800ha를 뺀 나머지 용지 2만8300여ha 가운데 10%만 산업단지로 써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말했다.

잘 닦인 도로를 따라 거대한 가력도 배수갑문을 지나 새만금 1호 방조제 끝자락에 섰다. 2호 방조제와 끊긴 1.6km를 메우기 위한 공사는 맞은편 신시도 쪽에서만 진행되고 있었다. 다가가 내려다본 썰물은 한눈에도 유속이 제법 빨랐다. 현장 관계자는 “저 정도면 그리 빠른 편도 못 된다”고 했지만, 폭우로 불어나 맹렬한 기세로 하구를 향하는 강물을 바라보는 느낌이었다.

방조제가 끊겨 있는 지금도 최고 유속은 초속 5.4m까지 나온단다. 이를 시속으로 환산하면 18km에 해당한다. “폭우가 쏟아질 때 산에서 만난 거친 물살을 떠올리면 될 것”이란 게 공사 관계자의 설명이다. 그는 “공사 막바지 최대 유속은 초속 7m가 넘을 것으로 예상한다”며 “거센 물살에 돌무더기가 휩쓸려나가지 않게 하기 위해 막바지에는 45초당 덤프트럭 1대분의 돌을 바다로 쏟아부을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법원 판결 직후부터 일부 어민이 연일 해상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정읍지법이 3월21일 공사방해금지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공사는 탄력을 받고 있었다. 마무리 작업 일정도 확정됐다. 한국농촌공사는 3월24일 본공사를 재개해 6일간 작업한 뒤 거센 물살을 피해 나흘 쉬고, 다시 11일 동안 작업을 벌일 계획이다. 이어 사흘을 쉰 뒤 8일간 마무리 공사를 벌이면, 공사 재개 32일 만인 4월24일 방조제 공사를 끝마칠 예정이다.

“식량자급률이 높다지만 주식인 쌀만 자급률이 103%에 이를 뿐이다. 밀과 보리 등 잡곡을 포함하면 식량자급률은 30% 남짓에 불과하다. 대규모 농지에서 기계화 영농에 나설 경우 단위 면적당 영농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한국농촌공사 관계자는 “일본과 네덜란드는 각각 간척자원의 89%와 94%를 개발했지만, 우리는 환경단체의 반발 등으로 전체 간척자원의 40% 남짓만 개발했다”며 “새만금 이후 일단 새로운 간척사업은 펼치지 않겠지만, 언제든 국민의 동의가 있다면 국가이익을 위해 개발해야 할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저 멀리 바다 위에 해상시위에 나선 작은 배들이 점점이 박혀 있다.

“이 겨울이 너무 아까워서…”

‘갯가에서 살아온 게 몇 해더냐. 이 바다에서 나고 자랐다.’

이른바 ‘맨손 어업’을 하는 개화도 주민 이순덕(58)씨는 지난 겨울 갯일을 나가면서 경운기를 타지 않았다. 시한부 삶을 살고 있는 갯벌을 직접 밟아도 보고, 만져도 보고, 느끼고도 싶었단다. 그는 “너무 아까워서, 마지막 가는 이 겨울이 너무 아까워서 보고 또 바라봤다”고 말했다.

부안 돈지가 고향인 그는 27살이 되던 해 결혼해 6년 동안 읍내에 나가 산 때를 빼고는 반세기를 꼬박 이 바닷가를 지켜왔다. 1997년 남편이 갑작스레 사고로 세상을 등진 뒤에도 ‘만년통장’ 갯가에 기댄 채 네 자녀를 키웠다. 백합도 잡고, 동죽도 잡고, 겨울이면 모시조개도 잡았다. 여름에는 하루 두 번씩 갯일을 나갔다. “금광은 언제고 폐광을 맞지만, 캐도 캐도 한없이 조개가 나오는 갯벌은 그 자체가 보석”이라고 이씨는 말했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뒤 어떻게나 마음이 아픈지…. 그날로 전화도 다 꺼버리고 텔레비전도 일절 안 보고 머리 싸매고 누워버렸다. 어제도 새만금에 가서 시위 단속 나온 여경들 붙잡고 얘기하면서 울었다. 남편 죽었을 때도 나오지 않던 그 눈물이 한없이 쏟아졌다.”

하루 네댓 시간으로 충분했다. 바다가 주는 선물을 캐내는 데는 정직한 땀방울이면 족했다. 공사가 막바지에 이르면서 갯벌이 영향을 받는지 소출이 줄면서 작업 시간이 늘긴 했지만, 그가 지난해 수협에 넘기고 챙긴 수입은 1700여만원에 이른다. 몇 년 전 어장 폐쇄에 따른 보상금이라며 정부가 ‘1등급’으로 분류한 그에게 쥐어준 돈은 1030만원이 고작이다. “부안만 해도 2천 명이 갯가에서 맨손으로 조개를 캐 생계를 꾸린다. 4인 가족 기준으로 줄잡아 8천 명이 먹고사는 문제다. 하루 네댓 시간이면 7만~10만원까지 벌 수 있는데, 도시 노동자가 그렇게 벌 수 있나. 거기다 대고 무슨 경제성을 들먹이는가?” 한 지역활동가가 쓰게 웃었다.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논쟁이 189만 전라북도민과 2만여 피해지역 주민들 사이의 싸움으로 변질된 건 이미 오래다. 물막이 공사를 막을 수 없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해지면서 현지 주민들도 두 패로 갈라섰다. 그럼에도 당장 일터를 빼앗길 주민들은 ‘미련’을 버릴 수 없다. 간척지에 농지가 조성돼 짠물에 가경작이라도 할 수 있는 게 2012년이라니, 그때까지 살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새만금 일대 어민들이 간척사업 반대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한 데는 몇 가지 사연이 있다. 치명적인 약점은 면세유였다. 조업을 나가지 않고도 면세유를 타내 인근 주유소에 되파는 식으로 부족한 수입을 메웠다. 여느 어촌과 별반 다를 게 없는 일이다. 터무니없이 낮은 액수일망정 어장 폐쇄에 따른 보상금을 받은 이상 조업을 계속하는 것도 불법이었다. 이래저래 발목을 잡힌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방조제 공사 완공과 함께 불 보듯 뻔한 생계 파탄을 한 달여 앞두고 그들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백날 얘기해봐야 뭐혀. 물난리도 겪어보구 함서 직접 느껴봐야제. 당해봐야 한당께. 그래야 물꼬를 트제. 안 글고 만날 떠들어봐야 암 소용도 없당께.” 구릿빛 피부의 까칠한 사내가 마른 침을 뱉는다.

전라북도의 집단 최면?

3월22일 오후 부안을 빠져나와 서해안고속도로를 거슬러 군산으로 향했다. 김제·만경의 드넓은 들녘 군데군데 파릇파릇 고개를 내민 보리가 한창이다. 동군산 나들목을 빠져나와 21번 국도를 타고 새만금 방조제 군산 기점인 비응도로 향했다. 시원하게 뚫린 도로를 따라 내달리는 데 교통정보 전광판의 글귀가 생뚱맞다.

“새만금 전북도민 품으로 돌아오다. 새만금 사업 재개. 전북시대 활짝 열렸다.” 부안에서 만난 한 지역활동가는 “지금 전라북도는 집단 최면에 걸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새만금은 전북의 미래고, 새만금 간척사업이 끝나면 수도권보다 훨씬 살기가 나아질 것이란 기대로 들떠 있다”며 “심지어 일 안 해도 먹고살 만해질 것이란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비응도에서 출발해 검문소를 두 곳이나 지나 야미도를 거치며 방조제 비포장길을 달렸다. 바다 저 멀리 아스라이 보이는 것이 뭍인지 섬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간척지 면적이 서울의 3분의 2에 이른다는 얘기가 새삼스럽다. 길 양쪽으로 공사용 골재와 거대한 규격석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돌망태 가적장에는 3t 단위로 철망에 묶인 채 층층이 오와 열을 맞춰 끝없이 늘어서 있다. 돌무더기는 덤프트럭을 타고 바다 속으로 출전할 날을 기다리는 병사처럼 보였다.

현지 농촌공사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바다 메우기가 한창인 신시도 쪽 방조제 끝자락에 섰다. 바닷바람이 제법 거세졌다. 밀물로 바뀐 바닷물은 맹렬한 속도로 뭍으로 향하고 있었다. 부안 쪽에서 본 것보다 훨씬 빠른 유속이 자못 위협적이다. 공사를 재개하지 않은 가력도 쪽과 달리 신시도 쪽은 ‘세계 최대의 간척사업’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실감하게 했다. 길게 줄을 늘어선 덤프트럭은 쉬지 않고 돌덩이를 쏟아붓고 있었다. 그 곁에서 불도저가 흩어진 돌들을 밀어넣기에 분주했다.

본공사 재개에 앞선 ‘준비공사’임에도 덤프트럭 124대와 포클레인 30대, 불도저 3대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바다를 메우고 있었다. 공사 관계자는 “공사를 재개하고 오늘 아침까지 모두 446m를 메웠다”며 “예상보다 작업 속도가 빨라 완공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갯벌의 수명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간 것이다.

“앞으로 공격과 수비가 바뀔 것이다”

새만금을 둘러싸고 지난 10년간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사이 우리 사회는 엄청난 인식의 변화를 겪었다. 1991년 3월 낙동강 페놀 오염 사고에서 1997~98년을 뜨겁게 달궜던 동강 살리기 운동, 그리고 새만금 갯벌 살리기 운동을 거치는 사이 ‘공해추방’에서 ‘환경보호’를 거쳐 ‘생명운동’으로 발전해나갔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까지 나온 마당에 방조제 공사를 막을 방법은 어디에도 없다. 환경단체들이 새로운 싸움을 준비하는 이유다. 장지영 ‘새만금 화해와 상생을 위한 국민회의’ 정책기획부장은 상황을 이렇게 설명한다. “지금까지는 방조제 공사를 막느냐 마느냐로 10년 세월을 싸워왔다. 대법원 판결로 이제 1차전은 끝난 셈이다. 하지만 2차전은 이제 시작이다. 미래 예측 가능한 환경재앙을 경고하면서 싸웠던 이전과 달리 환경재앙이 현실화하면서 생태 파괴의 증거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다. 1차전과 달리 공격과 수비가 바뀌는 셈이다.”

환경단체들은 오는 6월 말 새만금 내부 간척지 토지이용계획에 대한 연구 결과가 나오면, 이를 토대로 정부가 간척지 용도를 현행 농지에서 산업단지를 포함하는 쪽으로 바꿀 것으로 보고 있다. 용도 변경을 위해선 사업계획이 다시 만들어져야 하고, 이에 따라 환경영향평가를 새로 해야 한다. 관련 예산도 급증할 것이다. 이런 번잡함을 피해갈 수 있는 방법은 새만금 사업 지원을 위한 특별법을 제정하는 것이다. 염형철 환경연합 활동국장은 “2001년 기준으로 농지로 조성하면 5조7천억원 규모가, 산업단지와 병행하면 18~29조원까지 들 것으로 추정됐다”며 “특별법 추진은 이미 예견됐던 일로 결국 법원은 안이한 판단을 내렸다는 책임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고, 정부 역시 부도덕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거용으로 출발한 새만금, 끝에도 선거가

“전북의 희망은 새만금에 있다. 단군 이래 한반도에 1억2천만 평의 용지가 펼쳐진 것은 처음이다. 그 잠재력은 무한대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 한국 경제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세계 최강의 방조제, 관광지, 우량 농지, 항구 조건 등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3월23일 오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전북도당을 방문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대법원 판결로 소모적인 논쟁은 끝났고, 새만금을 친환경적으로 개발하자는 원칙을 모아가고 있다”며 “다양한 구상을 통해 대한민국을 먹여살릴 기지로서 새만금에 대한 설계도를 그려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오후 김한길 원내대표도 군산대에서 열린 정책간담회에서 대법원 판결로 새만금 공사가 재개된 것을 축하하며 “친환경적인 내부 개발과 복잡한 여러 가지 개발 절차를 간소화하는 문제를 내용으로 한 새만금 종합개발을 위한 특별법을 추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며 새만금 개발에 대한 국회 차원의 예산과 법 제도 뒷받침을 약속했다.

새만금 사업은 1987년 대선을 앞둔 집권 민정당의 선거용 정책에서 출발했다. 개발독재 시절 철저히 소외됐던 호남 지역의 민심을 대형 국책사업으로 돌려보겠다는 심산이었다. 새만금 방조제 공사의 끝자락에 다시 선거 바람이 불고 있다. 대법원 판결도 새만금 사업을 둘러싼 논쟁의 마침표가 될 수 없을 것으로 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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