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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영의 도박!

등록 2006-03-24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확고한 DY체제로 지방선거 치르겠다” 이해찬 밀어내고 고건과는 선긋기
정치적 ‘판돈’ 높이려는 무리수일까… 청와대 지원은 더 큰 부담 될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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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왜 만날 이길 것만 생각하냐. 이길 때 이기고 질 때 지는 것이다. 패배를 두려워하지 마라. 정치는 항상 선택을 강요받는다. 옳은 판단을 하라. 그래도 딜레마에 빠질 때 내가 손해 가는 쪽에 서 있으면 된다.”

“이 총리를 흔들었다” GT계의 비난

지난해 8월30일이다. ‘연정론’으로 정국이 뒤흔들릴 때다. 노무현 대통령이 경남 통영에서 워크숍을 하고 나서 청와대 만찬에 참석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에게 정치적 ‘훈수’를 건넸다. 끊임없이 부닥치는 선택을 통해 생명력을 키워나가야 하는 현실 정치에서 이 시대 최고의 ‘정치 승부사’가 후배 정치인들에게 던진 조언인 셈이다. 이 자리에 정동영(DY) 당시 통일부 장관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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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은 나름대로 이 교훈을 새긴 듯하다. 정 의장은 최근 여러 자리에서 5·31 지방선거와 관련해 “나는 위기라고 본다. 그러나 그 책임을 회피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거듭했다. 패배를 피한답시고 기회마저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정 의장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여건상 승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서 ‘도박’이라 부를 법도 하다.

골프 파문에 휩싸인 이해찬 전 총리의 사퇴 과정에서 당내 DY계의 물밑 움직임은 정치적 승부수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방향으로 철저하게 작동됐다는 게 당 안팎에 폭넓게 존재하는 시각이다. DY계가 총리를 총선까지 껴안고 가다가는 필패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 이 전 총리를 밀어냈다는 식이다. 이같은 시각은 김근태(GT) 최고위원 쪽에서 망설임 없이 나오는 말들이다. GT계 한 인사는 “DY 쪽에서 사퇴가 불가피하다는 쪽으로 이 전 총리를 흔들었다”고 말했다. 나름대로 여러 가지 근거가 제시된다. DY계로 알려진 김한길 원내대표가 3월11~12일 원내부대표단을 통해 상임위별로 이 전 총리의 사퇴에 대한 찬반 의견을 수렴한 것은 DY계의 속마음을 은근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앞서 DY는 3월4일 최고위원회 회의에 이어 다음날 기자간담회에서 이 전 총리가 사과와 함께 거취 문제를 꺼낸 것과 관련해 “(이 전 총리가) 오늘 입장을 밝혔는데 국민 앞에 겸손한 마음으로 결정한 것이다. …다시는 국민 가슴에 상처를 주고 국민 이익에 반하는 일이 없도록 자숙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러한 발언과 움직임은 정치권 안팎에서 정 의장이 일찌감치 이 전 총리의 사퇴를 전제해놓고 청와대와 당내 이해찬 옹호세력을 압박한 것으로 풀이됐다.

정 의장 쪽은 GT 쪽의 의심이 턱도 없는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3월14일 대통령에게 전달된 총리에 대한 ‘사퇴 불가피론’은 여론과 의원들의 민심이 그대로 전달된 과정이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오히려 당내 여론 향배의 열쇠를 쥐고 있던 김근태 최고위원이 이해찬 옹호에서 태도를 바꾸면서 사퇴 쪽으로 당의 입장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받아친다.

고건과는 만나되 차이를 부각시켜라

이를 놓고 GT계를 중심으로 DY의 조급함이 지지율이 바닥인 현 정권과 차별화하려는 움직임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과거 대통령 후보들이 정권을 부정하거나 비판하면서 자신의 파이를 키운 전례를 찾기는 어렵지 않다. 또 2002년 DY가 DJ의 최측근 가신인 권노갑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정풍 쇄신운동을 한 이력이 언젠가 노무현도 밟고 지나갈 것이라는 관측을 자연스럽게 낳기도 한다. 하지만 정 의장의 행보를 노무현 정권과 각을 세우는 움직임으로 보는 것은 시기상조인데다 현실성도 그리 높지 않다. 차별화는 반DY 쪽을 중심으로 흘러나오는, 아직 실체가 미약한 얘기로밖에 볼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분석과 해석이 나오는 배경엔 ‘정동영이 조급함에 빠져 있다’는 데 상당한 공감대가 존재하는 게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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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의장이 확고한 DY 체제의 당으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의지는 3월12일 고건 전 총리와의 회동을 전후해서도 곳곳에서 감지된다. 회동이 있고 난 뒤 16개 시·도당 대표 등이 참석한 지방선거 기획단에서 “고건을 털지 않으면 살 수 없다. 고건의 기회주의적 속성을 낱낱이 드러내는 공세를 벌여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이어 당내 초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고건은 정체성을 밝혀라’는 내용의 기자회견이 나온다. 이를 두고 고건과 일정한 선을 그으려는 정 의장 쪽의 의지가 반영된 ‘작품’이라는 해석들이 뒤따른다. 2월18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정 의장이 제기했던 ‘선 자강론’의 연속된 논리라는 것이다. 당내 GT계를 중심으로 현실적으로 거론되는 고건과의 연대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일단 만나기는 하되 회동에서 DY와 고건의 차이를 부각시키는 전략을 취했다는 것이다. 당내에서 DY와 고건의 회동 이후 형성된 “고건의 생각과 정서가 오히려 한나라당 쪽에 훨씬 가깝다”는 비판은 결국 DY 쪽의 노림수인 셈이다.

DY 쪽에서는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이해찬 밀어내기나 고건과의 선긋기가 DY의 ‘판돈’을 높이기 위한 무리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 의장의 대선 후보로서의 지지율은 지난 1~2년 사이 제자리걸음이다. 여전히 두 자릿수대로 진입하지 못한 채 이명박, 고건, 박근혜에 한참 뒤처진 만년 4등 처지에 놓여 있다. 그래서 내년 초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번 선거가 아니면 반전을 꾀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기 어렵다는 계산에 따라 지방선거에 ‘다 걸기’를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승부수는 자연스럽게 대권 프로젝트의 한 수순으로 읽히고 있다. 물론 표피적으로 당 의장으로서 당의 명운이 걸린 지방선거에 최선을 다하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넘길 수 있다. 하지만 정 의장 개인에게 이번 지방선거는 정치력을 배가시킬 수도 있는 엄청나게 중요한 변곡점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순 없다.

‘조급함’이 반감을 쌓고 있다

그래서 정 의장의 처지에선 지방선거의 장애물을 일찌감치 처리하려고 한 게 당연했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3월16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총리 인선과 관련해 “지방선거 전이냐 후냐를 구분할 이유는 없다”고 하면서도 “어떤 총리를 내놔도 야당은 총공세를 해서 4월 국회를 청문회 국회로 만들 것이 예상되는 부담이 있다”고 말했다. 임명권자에게 부담으로 들릴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회적으로 총리 인선의 시기가 지방선거 이후로 미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을 감추지 않았다.

정 의장의 ‘조급함’이 빚어낸 이러한 움직임은 당 안팎에서 반감을 쌓고 있다. GT계를 중심으로 정동영식 방식에 대한 알레르기적인 거부와 소리 없는 불만이 있는 것과는 별도로 청와대에서도 이 전 총리의 사퇴 처리 과정 등에서 정 의장이 보인 움직임에 불쾌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정 의장이 국정 운영보다 자신의 명운이 달린 선거가 우선이라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김형준 국민대 교수(정치학)는 “정 의장이 자신을 통해서 이번 선거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여유가 없어 보인다”며 “5·31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먼저 자기 철학이 뭔지 보여주어야 한다. 또 자신을 통한 정권 창출이라는 강박에 시달리면 시달릴수록 악수를 둘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제는 정 의장이 무리수를 두는 듯한 인상을 보이면서까지 던진 ‘승부수’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에 있다. 이긴다면 굳이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지면? 선거는 앞으로 90여 일이나 남았다. 그 결과를 예측한다는 것도 무리일 수 있다. 유·불리를 떠나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이 얼마든지 터져나올 수 있다. 분명한 것은 결과에 따라 정 의장의 정치적 운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정 의장은 현재의 판세를 뒤바꾸지 않으면 힘든 선거를 치러내야 하는 상황이다. 한나라당과의 당 지지율 격차가 20%포인트에서 10%포인트 정도로 좁혀졌고, 지난 연말의 수도권 전패라는 암울한 예측이 횡행할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것이 사실이다. 최근엔 DY계를 중심으로 당내에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의 ‘1대1’ 대결 국면이나 ‘결국 5% 싸움’ 등 다양한 형태의 낙관적 전망과 근거들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당의 승리를 예상하는 선거전문가들은 거의 없다.

패배한다고 무한 책임을 지는 건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가 책임을 져야 할 실패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아직 합의된 것도 없다. 하지만 서울시장을 포함해 수도권을 내줬을 경우 강하게 제기될 책임론을 피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으로 박근혜와 정동영 둘 가운데 하나가 ‘죽어야’ 하는 게임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완패’가 아닌 ‘석패’라는 애매한 상황이 될 경우엔 책임론에서 좀 자유로울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당 장악력이 떨어지는 것’까지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박근혜·정동영 중 하나가 ‘죽는’ 게임

선긋기를 통해 고건을 배제하고 정동영 체제 중심으로 선거에서 이겼을 경우 정 의장이 가져갈 것은 많다. 하지만 승률이 낮은 게임에서 정 의장은 분명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게 맞다. 정청래 의원은 “5·31은 정 의장에게 이겨도 위기 져도 위기”라고 말한다. 이겨도 위기라는 것은 이긴 뒤 당 안팎에서 계파 간의 견제가 본격화될 것임을 암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엄살에 가깝다. 문제는 졌을 때고, 패배의 강도에 따라 정 의장이 처하는 위기의 양상도 크게 달라질 수 있다. 한편에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어차피 비관론이 팽배한 상황에서 나름대로 어느 정도나마 선방하면 좋은 거고,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도 쉽게 책임론을 들고 나오기 어려울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청와대의 전폭적인 지원은 오히려 ‘밑져야 본전’이라는 계산을 압도할 만큼 정 의장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청와대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의 의견을 수렴하는 형식으로 이해찬 사퇴를 수용해줬고, 당에서 요구하는 각료들의 지방선거 참여를 배려하는 방식 등으로 당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청와대의 지원은 거꾸로 정 의장에게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멍석까지 깔아줬는데도 졌다는 비판은 곧 정 의장의 본선 경쟁력에 대한 회의로 나타나, GT나 새로운 대안으로 급속히 힘이 쏠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고건 참여를 완전히 배제한 뒤 실패했을 경우에도 마찬가지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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