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사람을 달라면 줬고 자르라면 잘랐던 노 대통령과의 사이에 냉랭한 기류… 총선 때와는 다른 ‘관계맺기’ 가능성… 지방선거 결과는 올곧이 DY 몫으로</font>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의 ‘도박’은 상대가 있는 게임이다. 그 상대는 열린우리당 안에도 있고 밖에도 있다. 그리고 청와대에도 부담스러운 상대가 있다. 그 상대는 2002년 민주당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의 경쟁자였고, 정 의장이 ‘2기 이해찬 내각’에서 외교·안보 분야의 사령탑인 국가안보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내도록 배려한 노무현 대통령이다.
“너무한 거 아냐? 자기 하나 때문에…”
시간이 많이 흘렀다. 2006년 지방선거가 끝나면 정 의장에게 시간은 더 빨리 흐를 것이다. 다급해졌다. 집권여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이면서 지지율은 좀처럼 한 자리대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을 걸어야 할 시점이 다가온다. 도박이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당을 위하고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것이라면 명분이 있다. 게다가 민심까지 등에 업으면 못할 일이 없다. 때론 경계선까지 넘나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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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대통령은 정 의장을 통해 온 열린우리당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했다. 사람을 달라면 줬고 자르라면 잘랐다. 오영교 행정자치부, 진대제 정보통신부, 오거돈 해양수산부, 이재용 환경부 장관이 5·31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 후보로 광역단체장에 도전한다. 이해찬 총리도 정 의장이 원하는 모양새를 갖춰 사퇴시켰다. 노 대통령은 3월14일 아프리카 순방 외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정 의장과 2시간 동안 만났다. 그 자리에서 사퇴 의사를 수용했다.
두 사람은 이 총리 사퇴 이후에 관해서도 논의했다. 후임 총리 인선에 관해 어느 정도 속깊은 얘기가 오갔는지는 두 사람과 그 자리에 배석했던 이병완 비서실장만 안다. 정 의장이 “후임 인선 시기를 지방선거 이후로 미뤄달라”고 요청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청와대 사람들의 기류를 보면 추정할 수는 있다.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저쪽(정 의장 쪽)에 확인해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더 직접적으로 불쾌감을 드러냈다. “너무한 거 아냐? 자기 하나 때문에….” 정 의장의 ‘과욕’으로 보는 기류가 역력했다. 정 의장은 후임 총리 조기 인선이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힌 16일에도 “솔직히 당으로서는 지방선거 전에 총리 지명이 부담스럽다. 아무리 좋은 총리를 내세워도 야당은 총공세를 펼 것이고, 국회 인준 과정에서 상처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후임 총리 인선과 관련해 양쪽의 기류가 다른 것은 5·31 지방선거를 대하는 관점에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갈 길이 먼 정 의장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라면 어떤 장애물이라도 걷어야 할 입장이다. 노 대통령은 이기면 좋겠지만 지더라도 그동안 치러온 산전수전에 비하면 그리 대수가 아니다. 현재 열린우리당 소속 단체장은 대전의 염홍철 시장과 전북의 강현욱 지사 둘뿐이다. 0 대 16으로 지더라도 다른 당 단체장 2명이 더 늘어나는 것이다.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를 견제할 장치만 탄탄하다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기류다. 2006년 지방선거와 2004년 총선을 비교해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노 대통령은 총선을 50일가량 앞두고 “열린우리당이 표를 얻을 수만 있다면 합법적인 모든 것을 다 하고 싶다”(2004년 2월24일 한국방송기자클럽 회견)고 말했다. 그 발언은 탄핵 정국의 시발점이 됐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모든 일을 하겠다’→‘할 일이 없다’
그런데 지금은 지방선거를 부담스러워하고 거리를 두려 한다. “선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하던 일도 선거 때가 되면 중단해야 하고, 하려던 일도 선거 때가 되면 바꿔야 하고 중단해야 된다.”(2월26일 기자간담회) 그런 마당에 과거 총리와 달리 국정 운영의 한 축을 담당하는 국무총리의 인선을 늦춰달라는 ‘압박성’ 바람은, 그 방식이 아무리 부드럽다 하더라도 청와대 입장에선 위험 수위를 넘나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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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누구를 어떤 성격의 총리로 지명하느냐를 보면 집권 후반기 구상의 일단을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향후 당·청 관계도 포함된다.
노 대통령은 3월15일 후임 총리 인선 방향과 관련해 청와대 참모들에게 ”기존 기조를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이백만 홍보수석은 “과거에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가 일해온 시스템을 유지하는 책임총리형, 즉 책임을 지고 총리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분을 물색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청와대의 여러 인사들은 3월17일 “많이 늦어지지 않을 것이며 주요 정책을 총괄하는 책임 총리의 기조는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3월22일 안팎에, 대통령의 통치 철학에 정통하고 참여정부의 정책 기조에 밝은 인사 가운데 지명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병준 정책실장, 문재인 민정수석 등 청와대 고위 인사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된다.
노 대통령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윤태영 연설기획비서관의 발언은, 여러 가지로 시사점이 크다.
“분권형 책임총리제를 처음 언급한 2004년 7월 열린우리당은 과반을 확보하고 있었다. 노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분권형 개념에는, 여당 출신 인사 총리가 당을 틀어쥐고 정책의 중심에 서는 구상이었다. 이해찬 총리가 정책을 잘 챙겼지만 그런 분권형 개념에는 미치지 못했고 제도적 한계도 많았다. 현실적으로 잘 안 돼왔고 그때와 비교하면 이제는 더 어려워진 것 아닌가.”
총리 인선 시점이 다가오면서 ‘분권형’은 사라지고 ‘책임총리’가 전면에 나온다. ‘분권형 국정운영 책임총리제’를 재검토한 이후다. 윤 비서관의 말처럼 노 대통령의 ‘분권’이 당과의 권한 분점 성격이었다면, 앞으로는 희미해지거나 사라질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여당인 열린우리당과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관계맺기’를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대통령 탈당” 요구 재연될 수도
이런 흐름은 지난해 10월 국회의원 재선거 이후와도 유사하다. 당시 열린우리당 안에서는 0 대 4의 패인을 노 대통령의 ‘대연정 발언’ 탓으로 지목했다. 일부 의원들은 탈당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후 청와대의 기류는 열린우리당에 부담이 된다면 그리하겠다는 것이었다. 5·31 지방선거 이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 청와대의 기류는 그때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다. 먼저 나가지는 않겠지만, 나가라면 나가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정치판이 크게 요동칠 수도 있다.
노 대통령이 정 의장의 요구를 최대한 수용한 데는, 지방선거 이후 정국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한 대목이다. 정 의장의 구상대로 선거를 치러 이기면 공을 챙기되, 질 경우에도 과를 거두라는 얘기인 셈이다. 어쨌든 총리 인선 시기를 두고 양쪽 사이에 냉랭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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