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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으로 쳐들어가자고?

등록 2006-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유엔 안보리로 넘어간 이란 핵 문제, 선제공격 주장하는 미·이스라엘 강경파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말 안 들으면 정치·외교적 고립에 포커스 맞출 수도

▣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알다시피,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는 이제 막 이란에 대한 논의를 마감했습니다. 토론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의견이 맞서고 있다는 점을 느끼셨을 줄 압니다. 그럼에도 저는 논의 과정 전반에서 합의의 실마리가 있었다는 점을 확신합니다.”

3월8일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대한 토론을 마친 뒤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이렇게 말했다.

오스트리아 비엔나 원자력기구 본부에서 사흘 동안 열린 이번 정례 이사회는 수많은 쟁점을 두고 열띤 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나 엘바라데이 총장의 말과는 달리 ‘합의의 실마리’는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이사회는 뚜렷한 결론에 이르지 못했고, 이란 핵 문제는 지난 2월4일 결의한 대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 회부됐다. 2003년 6월 국제원자력기구가 “이란이 특정 핵물질과 핵활동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밝힌 지 2년9개월여 만이다.

이란 종교 지도자들은 민감하게 나올 듯

이란의 이른바 ‘평화적 핵에너지 이용 권리’와 국제사회의 ‘안보 우려’ 사이에서 타협점은 쉽게 찾아지지 않았다. 유럽연합과 러시아, 미국과 이스라엘이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에서 이란도 강경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유엔 안보리 회부를 전후로 오간 거친 말의 전쟁은 상황의 휘발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은 8일 이란이 핵개발 계획을 지속할 경우 “의미 있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체니 부통령은 이날 친이스라엘계 로비단체인 ‘전미이스라엘공보위원회’(AIPAC)에서 행한 연설에서 “미국과 우방국들은 이란이 핵무기를 보유하게 되는 것을 좌시하지 않는다는 데 합의했다”며 “만약 지금의 행태를 지속한다면 국제사회가 의미 있는 결과를 부과하게 될 것임을 이란 정권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맞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도 ‘우라늄 농축 권리’를 강조하며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그는 “이란은 평화적 목적으로 원자력 에너지를 활용하기로 이미 결정을 내렸으며, 이란 정부의 이같은 결정을 국제사회는 존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또 자국의 핵 문제를 안보리에 회부한 것에 대해 “이란 국민은 국제기구의 강압적이고 불의한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며 “적들은 이란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으며, 강압과 야만의 시대는 끝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안보리가 어떤 결론을 내릴지 섣부른 예단은 어렵다. 미국의 강경 기조가 고스란히 반영될 가능성도 적지 않지만, 그동안 중재 노력을 집중해온 유럽연합과 러시아는 물론 최근 미국과 인도가 맺은 핵협정에 대한 반발이 극심한 중국이 이를 두고 보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이 안보리의 결의에 따라 핵활동 동결과 국제기구의 사찰 수용 등 전향적인 반응을 보일 가능성을 미리 배제할 필요도 없다. 이란은 지난 2003년 10월과 2004년 11월에도 국제사회의 압박에 밀려 우라늄 농축 활동을 잠정 중단하는 등 극한 대립은 피해왔다.

반면 이란이 안보리의 결정을 거부할 경우 후속 제재 조치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럴 경우 채택할 제재 조치는 이란을 정치·외교적으로 고립시키는 데 초점이 맞춰질 공산이 크다. 물론 이런 조치가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위축시킬 가능성은 적지만, 이란 정국을 장악하고 있는 알리 하메네이 등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미국 정가에선 이른바 ‘방어적 안보조처’를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란 정권을 고립·압박할 수 있는 ‘억지와 봉쇄 전략’을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페르시아만 연안 아랍국가에 첨단 미사일방어시스템과 방공시스템을 수출하거나 이스라엘의 ‘애로’ 미사일방어시스템 개발을 지원함으로써 이란의 미래 핵무기 사용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다른 한편으로 이란에 대한 직접 압박에 나서기 전에 국제 에너지 공급시장에 충격이 없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빠지지 않는다.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사회가 호르무즈해협 전역에서 기뢰 제거 등 해상훈련을 벌이면서 이란을 압박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움직임은 이란에 무력 침공의 전조로 비칠 가능성이 크다. 이란은 이미 핵 문제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압박이 거세질 경우 호르무즈해협을 통한 원유 수송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여러 차례 경고해왔다. 지난 2월 말 이란의 유력지 <케이한>은 ‘죽음의 부메랑’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실어 “미국의 오만은 분명한 신호를 받게 될 것”이라며 “이란의 원유 수출을 가로막거나 군사적으로 위협할 경우 페르시아만 원유 전체를 포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원유수송로 호르무즈해협에 도는 긴장감

가능성은 적지만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선제 군사행동’도 여전히 ‘테이블 위’에 있다. 지난 3월2일 패트릭 클로슨 워싱턴근동정책연구소 연구부원장은 미 상원 외교관계위 청문회에 출석해 이렇게 말했다. “이란을 압박하고 억제하는 이같은 전술들은 지연책에 불과하다. 이란이 이슬람 공화국으로 남아 있는 한 적어도 비밀스럽게라도 이란은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유지할 것이다. 그러므로 문제는 이란의 현 정권이 얼마나 오랫동안 살아남을 것인가에 있다.” 그는 1981년 이라크 오시라크 원자로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을 거론하며, “군사력을 동원할 필요가 생긴다면, (미국의) 선택지는 훨씬 다양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폴 로저스 영국 브래드퍼드대학 교수(평화학)는 최근 내놓은 ‘이란-전쟁의 결과’란 제목의 보고서에서 “이란에서 정권교체를 위해 미군이 지상군 공격에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내다봤다. 그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도 ‘이라크-전쟁의 결과’란 보고서를 내어, “사담 후세인 정권을 무너뜨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닐 테지만, 점령군의 이라크 주둔으로 저항세력이 득세하면서 장기전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예상한 바 있다.

로저스 교수는 우선 미국이 이라크 침공과 비슷한 형태의 전면전을 통한 이란 정권교체에 나서기 위해선 적어도 10만 명 이상의 지상군 병력을 투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이라크(약 15만 명)와 페르시아만 연안 국가(약 3만 명), 아프가니스탄(약 1만8천 명)에 주둔한 병력을 유지하기도 어려운 현실에서 미국이 이런 결정을 내리기는 어렵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유럽연합 등 동맹국이 이란의 정권 교체를 위해 병력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전무한 것도 미국의 운신의 폭을 좁히고 있다.

하지만 그는 이란 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이 점차 줄어드는 가운데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선제 군사행동 가능성은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로저스 교수는 “미국이 이란 핵시설을 공격할 경우, 이는 미국과 이란 두 나라는 물론 이라크·이스라엘을 비롯한 이 지역 국가 대부분이 휘말려들어가는 장기적인 군사적 대치 국면으로 치닫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또 이스라엘이 단독으로 제한적인 이란 핵시설 공습을 감행하더라도 종국에는 미국이 이에 말려들면서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란 정권 교체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

데릴 킴벨 미 군축협회(ACT) 사무총장도 비슷한 분석을 내놨다. 그는 <군축회보> 최신호에서 “막대한 원유매장량을 보유한 이란에 대한 처벌적 경제제재는 안보리 이사국을 분열시킬 위험성이 있으며, 오히려 이란 정부를 자극해 핵확산금지조약에서 탈퇴하게 만들 수도 있다”며 “미국 주도의 ‘정권 교체’ 움직임은 이란 내부의 강한 반발을 부를 것이며, 안보 위협을 이유로 이란이 핵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원인을 제공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어쩌면 이란 핵 문제라는 ‘공’은 유엔 안보리가 아닌 미국과 이스라엘 쪽으로 넘어갔는지도 모른다.


“정치적 타결 외에 대안 없다”

유엔 안보리에 관련 보고서 제출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

▣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냉정을 유지하며, 말싸움을 삼가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국제원자력기구 사무총장은 3월8일 정례 이사회를 마친 뒤 기자회견을 열어 이렇게 강조했다. 그는 이란 핵 문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에 회부된 것을 두고도 “대화와 외교의 연장”임을 강조하며, 상황 악화에 따른 비관론을 경계했다. 다음은 국제원자력기구가 공개한 회견 내용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요약한 것이다.

이사회 결과가 좋지 않다.

=실망하지 않는다. 일이 잘 풀릴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 법이다. 이사회에서 합의를 이끌어내 이번주 내로 협상 국면으로 복귀할 수 있기를 바라기는 했다. 하지만 다음주에 돌파구가 마련될 수도 있고, 그 다음주에 마련될 수도 있다. 많은 접촉과 대화가 오고 갔지만, 아직은 때가 아닌 듯하다.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가?

=예단하고 싶지 않다. 내 역할은 이란이 국제원자력기구와 협력해 산적한 문제를 풀어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이란의 평화적 핵 에너지 이용 권리와 국제사회의 우려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여러 방안이 있을 수 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치적 타결을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고 본다.

유엔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 내용은?

=안보리에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하는 건 통상적인 일이며, 내가 하고 있는 일도 바로 그것이다. 보고서의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안보리 이사국들이 보고 판단할 것이다. 유엔 결의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 이사회가 토론을 벌였고 그 결과를 안보리에 보고한 것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안보리가 국제원자력기구의 노력에 힘을 실어주기를 국제사회가 바라고 있다는 점이다.

안보리 회부 이후 상황 악화를 우려하는 시각이 많은데.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란다.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말한 것처럼 모두 냉정을 유지하고, 말을 가려 할 필요가 있다. 거친 언사는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협상 재개를 위한 여러 가지 방안이 있을 수 있으며, 관련 당사국들이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고 있다는 것이 좋은 징조라고 본다.

안보리 회부가 상황의 심각성을 보여주는 것 아닌가?

=안보리에서 이란 핵 문제를 논의하게 된 것을 국제원자력기구의 실패로 보는 것은 상황을 완전히 잘못 읽은 것이다. 안보리 역시 핵 비확산 체제의 중요한 일부다. 안보리를 정치적 대화의 장으로 삼을 필요가 있는 시점이 됐기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안보리가 제 역할을 다한다면 상황을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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