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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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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뇌물사건은 함정이었나?

등록 2006-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현대중공업 민주노조 간부에 돈 준 혐의로 구속됐던 ㅅ씨가 입을 열다
그는 왜 출소 뒤 회사와 노민투 핵심 간부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을까

▣ 울산=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현대중공업 민주 노조에게 ‘2002년 사건’은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원죄’다. 2002년 7월 현대중공업 노조 사무국장 강아무개(41)씨는 노조 창립기념일을 맞아 조합원들에게 나눠줄 기념품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노조 후생관 영업부장으로 일하던 ㅅ(36)씨로부터 6천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그의 혐의는 사실로 확인됐고, 민주 노조 집행부는 비리 파문을 견뎌낼 수 없었다.

그들은 총사퇴를 결심했다. 노조 집행부는 어용 논란을 빚고 있는 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노민투) 쪽에 접수됐다.

<한겨레21>은 현대중공업 노조 입찰 비리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흥미로운 진술을 접하게 됐다. 2003년 현대중공업 노조 사내 위탁시설 입찰 비리를 폭로한 양승민(38)씨는 “ㅅ씨가 집행유예로 풀려난 뒤 노민투 핵심간부 ㄱ씨와 ㅂ씨를 찾아온 것을 봤다”고 말했다. “2002년 7~8월께로 기억합니다. ㄱ씨가 ㅅ씨의 면회를 갔습니다. 두 번 갔는데 한 번은 ㅅ씨가 면회를 거부했고, 두 번째는 들어가서 한참 지난 뒤에 나오더라고요.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그때는 면회를 한 모양이었습니다. 오가는 길에 ㄱ씨가 ‘ㅅ씨에게 평생 먹을 것을 보장해주기로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ㅅ씨가 누군지도 몰랐고 ㄱ씨를 형님처럼 모실 때니까 그저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

양씨가 ㅅ씨의 이름을 두 번째로 접한 것은 그가 집행유예로 풀려나온 뒤다. “2002년 가을께입니다. ㅅ씨가 ㄱ씨와 ㅂ씨가 놀고 있는 노래방으로 찾아왔습니다. 무릎을 꿇고 ‘지금 택시 운전을 하면서 어렵게 살고 있다. 나 이렇게 죽어가는데 가만두고 볼 거냐’고 울면서 말하더라고요.” ㅅ씨는 ㄱ씨와 ㅂ씨에게 “(후생관에서 특판 행사 때) 휴대전화 하나만 집어넣을 수 있게 해달라”고 애걸했다. “ㅅ씨가 간 뒤 ㄱ씨가 ‘회사에서 ㅅ씨에게 안 해주려고 하는데 큰일이다’고 푸념하듯 말하더라고요. 나중에 ㅅ씨가 2002년 비리 사건에 개입된 사람인 것을 알았습니다.” <한겨레21>은 사실 확인을 위해 3월8일 오후 3시께 울산 남구 삼산동의 ㅇ카페에서 ㅅ씨를 만났다.

후생관을 파봐라, 그쪽 비리가 더하다

2002년 사건은 어떻게 된 일인가.

=아는 그대로다. 내가 당시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하던 강씨에게 돈을 줬다. 1억원을 줬다(경찰 수사는 6100만원). 내가 지금 그때 사건 때문에 빚만 떠안고 있다. 추징금만 1억1700만원이다. 변호사비도 많이 들었고, 노조와 걸린 손해배상 소송이 있다. 일이 이렇게 되다 보니 이혼했고 가정도 파탄 상태다. 지금은 친구 밑에서 공사판 노동을 하고 있다.

항소는 했나.

=1심에서 끝났다. 1년6개월 징역에 집행유예 3년 받고 나왔다. 구치소에는 60일 정도 있었다.

ㄱ씨가 구치소로 면회를 왔다는데.

=내가 노조 후생관에서 일하다 보니 웬만한 노조 사람들은 다 안다. 2000년부터 알았다. ㄱ씨도 알고 ㅂ씨도 안다. 한 번 면회를 왔는데 거부했다.

후생관에서 하는 일은 뭐였나.

=처음에는 부장으로 업무를 보다가 잡혀 들어가기 8개월 전부터는 직접 운영을 했다. 전에 운영하던 사장님이 다른 사업으로 바빠서, 내가 1억2천만원 정도를 주고 운영권을 넘겨받았다. 그때 계속 일했으면 지금쯤 돈을 꽤 벌었을 거다.

후생관 쪽에서는 강씨 말고 금전 관계가 없었나.

=안 했다. 오히려 양씨 쪽이 더 많이 알고 있을 텐데. 기사에는 오토바이 수리점 얘기밖에 안 나온 것 같은데. 후생관 쪽을 파봐라. 그쪽이 오히려 더 많이 나올 것 같은데, 왜 안 쓰냐. 2004년 휴대전화 특판과 관련해 내게 자료도 하나 있다.

자료가 있으면 달라.

=내일 11시 삼산동에서 보자. 집에 있다. (그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강씨에게 돈을 왜 줬나.

=돈 벌어보려고 욕심낸 거다. 그런데 운이 없어 핀트가 잘 안 맞아 이렇게 됐다.

회사와 노민투 쪽과 얘기를 맞춰놓고 강씨에게 돈을 줘 함정에 빠뜨렸다는 의혹이 있다.

=회사 쪽 사람은 직접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 같은 장사꾼을 만나주겠나. 나는 모른다.

노민투쪽 사람들과 사전에 입을 맞췄나

그 사건으로 피해가 막심한데.

=나는 희생양이다. 감옥에서 나오자마자 회사를 찾아갔다. 이 일 때문에 가장 큰 이익을 본 게 회사와 지금 노조 아니냐. 회사를 찾아가 사장님을 뵙자고 했다. 비서가 전화를 받고 잠깐 기다리라더니 문전박대했다. 2002년 9월쯤이다. 그 사건을 통해 회사 쪽은 엄청난 돈을 벌었다. 그러면 보상을 해줘야 하는데 보상이 없다는 거다. 일이 이렇게 됐으니 내가 보상을 받아야 한다. 나는 지금 빚더미 위에 앉아 있다. 나는 희생자다,

희생자라니 무슨 뜻인가. 사전에 회사나 노민투 쪽과 말을 맞췄다는 것인가.

=(잠시 침묵) 그냥 내 생각에 그렇다는 거다. 회사 쪽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는 못했다.

그럼 노민투 쪽 사람들과 사전에 입을 맞췄다는 뜻인가.

=내 연락처는 누구에게 들었나. 나한테도 한 번 연락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양씨도 피해자고 돈 벌려고 한 것은 똑같다. 머리가 안 따라줘서 못 벌어먹은 거지. 솔직히 말해 누구에게 밥 한 끼 안 얻어먹은 사람이 어디 있는가.

말 돌리지 말고, 희생양이라는 말은 무슨 뜻인가. ㄱ씨와 ㅂ씨는 당신이 돈 주는 과정을 알았나.

=그걸 그 사람들이 어떻게 아나.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사람들이 돈을 받아서 나한테까지 전달이 안 됐을 수도 있다, 그 정도다. 만약 사전에 얘기가 됐으면 3년째 내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ㄱ씨와 ㅂ씨를 가만뒀겠는가.

그럼 ㄱ씨나 ㅂ씨와 사전에 얘기가 됐다는 뜻인가. 명확하게 말해달라.

=기자님이 물어보는 얘기를 나도 풍문으로 듣기는 했다. 사실이 아니다. 만약 그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지금 이 모양으로 살겠나.

혹시 ㄱ씨와 ㅂ씨를 만나 (회사 쪽에서) 받은 거 있냐고 물어보지는 않았나?

=나오고 얼마 안 돼서 우연히 마주친 뒤로는 한 번도 안 만났다. 전화 통화는 가끔 했다.

현중 잠바만 봐도 소름이 돋는다

지금 ㄱ씨나 ㅂ씨가 회사에서 당신에게 주라고 돈 받은 것이 있나 의심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그들에게 직접 확인해보지는 않았나.

=물어보지 않았다.

혹시 출소 직후 택시 운전을 했나.

=그렇다.

양씨 얘기로는 ㄱ씨와 ㅂ씨를 찾아와서 “택시 운전을 하며 어렵게 살고 있다”며 살려달라고 부탁했다는데.

=(잠시 침묵) 지나온 얘기는 더 이상 말할 것도 없고. 나를 좀 가만뒀으면 좋겠다. 미안하다. 나중에 울산 오면 커피나 한 잔 하자. 사람들 앞에서 내 이름 안 오르내리게 해달라. 이제는 현대중공업 잠바만 봐도 소름이 돋는다.

ㅅ씨는 회사 또는 노민투 쪽과 입을 맞추고 민주 노조의 사무국장에게 돈을 준 것을 사실상 시인하는 뉘앙스의 말을 흘렸다가, 명확히 말해달라는 취재진의 요청에 황급히 이를 부인했다. 어찌됐든 그는 자신을 희생자로 생각하고 있었고, 출소 뒤 회사와 노민투 핵심 간부들에게 구원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그가 왜 자신을 희생자라고 생각하게 됐는지 더 이상 확인할 수는 없었다. 회사 관계자는 “ㅅ씨는 여러 곳에서 거짓말을 일삼고 다니는 사기꾼으로 알고 있다”며 “ㅅ씨가 출소 뒤 회사를 찾아왔다는 얘기는 생전 처음 들어본다”고 답했다. ㅂ씨도 “2002년 경찰 수사 때 나도 ㅅ씨에게 800만원을 받은 게 드러나 큰 곤혹을 치르고 회사에서 거의 매장당한 경험이 있다”며 “2002년 이후 ㅅ씨를 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고 관련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워낙 복잡했던 비리의 고리

사법처리 끝났지만 여전히 베일속에 가려진
‘2002년 사건’의 진상


‘2002년 사건’은 당시 노조 감사로 활동했던 노민투 회원들의 경찰 제보로 시작됐다. 야외용 텐트를 만들던 업체 ㅅ사는 7월28일로 다가온 노조창립기념일을 맞아 조합원들에게 지급되는 기념품 납품권을 따내기 위해 노조 간부와 선을 대줄 수 있는 사람들을 물색했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당시 노조 후생관 영업부장으로 일하던 ㅅ(36)씨였다. 그는 납품이 성사되면 ㅅ사 쪽에 물품 하나당 1만2천원을 사례비로 받기로 약정하고 노조 사무국장 강아무개씨를 회사 쪽과 연결했다.
강씨는 ㅅ씨로부터 ㅅ사 상무이사를 소개받아 ㅅ사를 납품업체로 선정하는 대가로 1억원의 사례금을 받기로 약속했다. 그는 이 가운데 6100만원을 받아 700만원을 ㅅ씨에게 소개비로 떼주고 5400만원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결국 ㅅ사가 그해 노조창립기념품으로 선정된 야외용 침대 남품업체로 선정됐다. ㅅ씨는 당시 노민투의 핵심 간부로 일하던 ㅂ씨 등 두 명에게 800만원씩을 건네기도 했다.
그러나 ㅅ사는 뇌물 비용과 적정 이윤을 남기기 위해 “국산 제품만 사용한다”는 계약 내용을 어기고 값싼 중국 제품을 납품했다. 이 사실이 조합 감사들의 귀에 들어갔다. ㅅ사는 ㅅ씨를 통해 조합 감사들의 입을 막으려 3천만원을 건넸지만, 두 번째 로비는 성공하지 못했다. 평소 ㅅ씨의 비리 사실을 눈치채고 있던 감사들은 돈을 건네주는 ㅅ씨를 위협해 그동안의 비리 사실을 적은 자술서를 받아 울산 동부경찰서에 강씨의 비리 사실을 제보했다. 당시 노조 비리 진상조사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그때 사건은 워낙 비리 고리가 복잡해 정확한 진상 규명이 불가능했다”며 “사법 처리가 끝났지만 여전히 진상은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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