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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비리 수사, 검찰의 차별

등록 2006-03-16 00:00 수정 2020-05-03 04:24

2005년엔 현대자동차 사건 때는 20여명 사법처리 발표했던 울산지검
현대중공업 노조 압수수색하고 2명 구속했지만, 큰 산은 못 넘을 듯

▣ 울산=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과연 검찰이 어디까지 파고들 수 있을까.

우리나라 대공장 노조를 대표하는 울산 노동계는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운영위원회 간부들의 입찰비리 의혹을 수사하는 울산지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울산지검은 3월8일 노조간부 ㄱ(42)씨와 그에게 억대의 뇌물을 뿌린 오토바이 수리점 업자 강아무개(38)씨를 각각 배임수재와 배임증재 혐의로 구속했다. ㄱ씨는 2003년 4월 강씨 등 2명으로부터 “오토바이 수리점의 운영을 낙찰받게 도와달라”는 청탁을 받고 입찰 정보를 알려준 뒤 모두 14차례에 걸쳐 1억9500만여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2월28일 사상 최초로 현중 노조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데 이어, 지난 며칠 동안 노조 간부들을 줄줄이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ㅂ씨 구하기 위해 입을 맞춘다”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만 놓고 보면 검찰의 수사 의지가 단호한 듯하지만, 속내는 다소 복잡해 보인다. 검찰은 어용 논란을 빚고 있는 ‘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노민투)와 옛 민주 노조를 계승하는 ‘전진하는 노동자회’(전노회) 사이의 세력다툼에 잘못 끼어들어 괜한 오해를 낳을까봐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확히 드러난 비리에 대해서는 철저히 수사해야겠지만, 그 수준을 넘어 수사를 확대하는 데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ㄱ씨와 함께 이름이 거론된 ㅂ씨는 구속이 어렵고 입건도 힘들 수 있다”고 말했다. ㅂ씨는 현중 노조의 핵심 실세로, 2001년 노민투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4년 내내 의장을 맡아왔다. 검찰은 ㄱ씨와 달리 ㅂ씨는 뇌물을 받는 자리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혐의 입증이 힘들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현중 노조의 한 조합원은 “ㅂ씨가 쓰러지면 2002년 이후 유지돼온 어용 노조의 뿌리가 흔들릴 수 있어 수사 대상에 오른 노조 간부들이 ㅂ씨를 구하기 위해 입을 맞추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노조 후생관과 자판기 등 노조가 운영권을 갖고 있는 다른 이권 사업 쪽으로 수사를 확대하는 데에도 별다른 진전을 보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 고위 관계자는 “후생관 등으로 수사를 확대할 단서가 현재로서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중 노조의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들은 “오토바이 수리점보다 현찰이 많이 도는 후생관 쪽의 숨겨진 비리가 더 크다”고 입을 모았다. <한겨레21>에 현중 노조 입찰비리를 폭로한 양승민(38)씨는 2004년 말께 “ㄱ씨의 심부름으로 후생관 안경점 사장에게서 3500만원을 받아 ㄱ씨에게 전달했다”고 전달 금액과 대상을 구체적으로 증언했고, 2002년까지 후생관 운영부장으로 일했던 ㅅ(36)씨도 “파보면 후생관 쪽에 더 큰 비리가 있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회사는 “노사 관계 흔들린다”며 압박

검찰 수사가 탄력을 잃은 것으로 확인됨에 따라 일부에서는 검찰이 민주 노조의 비리는 철저히 수사하면서, 어용 노조의 비리는 대충 묻고 넘어가려는 게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울산지검은 지난 2005년 5월 시작된 현대자동차 노조 취업비리 수사 때는 노조 전·현직 간부 수십 명의 계좌를 압수수색한 데 이어, 수사 50일 만에 20여 명의 사법처리 결과를 담은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억대의 뇌물이 오간 똑같은 노조 비리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극과 극’이라는 비난을 받을 만하다.

회사 쪽에서도 “이번 사건이 잘못 처리되면 겨우 안정을 찾은 울산의 노사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일부 노조원들이 잘못을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검찰에 들어가 확인해보니 실제 내용보다 부풀려진 점이 많았다”며 “<한겨레21>의 보도가 그대로 사실인 것처럼 알려져 큰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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