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부들에게 뇌물 뿌리고 서류를 조작해 오토바이 수리점 입찰 따냈던 양승민씨… 큰 수익 못 내고 ㄱ씨의 하수인으로 이용만 당했다는 생각에 구속 각오한 폭로
현대중공업 노조는 파업을 하지 않는다. 이 회사 노조가 마지막 파업을 벌인 것은 1994년이다. 노조는 파업을 하는 대신 회사와의 공존을 선택했다. 자본은 그 선택을 ‘상생’이라 칭송했고, 노동계는 이를 ‘어용화’라 폄하했다. 2004년 이 회사 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숨졌을 때 그들은 비정규직 노조와 어깨 걸고 투쟁을 하는 대신, 민주노조와 결별하는 길을 택했다. 그해 봄은 길었고, 여름은 무더웠다. 노조는 자본이 던지는 떡고물에 쉽게 무너졌다. “노조가 쥔 각종 이권이 스스로를 병들이고 있다”고 사람들은 외쳤지만, 그 울림이 크게 퍼지는 것 같지 않다. 지난 한 해 동안에만 기아차, 항운노조, 민주노총에서 노조 비리가 하나둘씩 불거졌다. 자본은 노동과 싸우는 대신, 그들에게 떡고물을 주고 서서히 병들이는 길을 택했다. 이제 아무도 노조 비리에 놀라지 않는다. 어쩌면 그것은 이미 업계의 관행으로 자리잡았는지도 모르겠다. 현대중공업 12년, 무파업 영광의 이면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한겨레21>이 추적해봤다. 편집자
▣ 울산=글 길윤형 기자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양승민(37)씨는 어렵게 입을 열었다. 그는 “어차피 이렇게 된 것 나도 처벌을 피하지 못할 것을 안다”고 말했다. 얘기를 털어놓는 동안 목소리가 쉽게 높아졌고, 자주 한숨을 쉬었다. 그의 진술은 이따금 딴 길로 새어나갔지만, 말하려는 요점은 지극히 단순했다. 현대중공업 노조가 비리로 얼룩져 있다는 것이다. 그는 “2003년 4월 진행된 현대중공업 노동조합 위탁시설 입찰에 참여해 사업자 선정 권한을 갖는 노조 운영위원회 핵심 간부들에게 뇌물을 뿌렸고, 이를 토대로 서류를 조작해 입찰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고 말했다. 물론, 양씨가 지목한 노조 운영위의 핵심 간부는 “양씨의 주장은 전혀 사실무근”이라고 말했다.
순대 판 돈은 고스란히 로비자금으로
양씨가 털어놓은 지난 3년의 시간을 따라가보면, 병들 대로 병든 한국 대공장 노조의 치부를 날것 그대로 확인한 것 같은 씁쓸한 느낌이 든다.
2001년 가을께 사업에 실패한 뒤 장모가 운영하는 경기도의 한 식당에 머물던 양씨에게 사회 친구 강아무개(37)씨가 찾아왔다. 그는 “젊은 시절 혈기 때문에 많은 방황을 했고, 나쁜 짓에도 손을 댔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강씨는 그에게 “현대중공업 노조에서 운영하는 위탁업체의 운영권을 따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미 한 차례 입찰에서 떨어진 상태였다. “혼자 힘으로는 부족하니 같이 힘을 합해보자는 뜻이었겠죠.” 그는 “‘그쪽 노조에 줄을 대줄 사람을 알고 있다’는 강씨의 말에 귀가 번쩍 틔었다”고 말했다. “1년만 세게 로비하면 1년에 몇 억원은 쉽게 벌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단번에 대박을 잡아 재기할 발판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많이 어리석었죠.” 그는 2001년 말에 살림을 정리해 울산으로 내려왔다.
그는 제주도 출신인 부모님께 배운 순대 만드는 기술을 살려 2002년 초 순대 프랜차이즈점을 하나 차렸다. 순대 장사는 성공을 거뒀다. 큰돈은 아니어도 돈이 차곡차곡 모였다. 이후 공장은 직원들에게 맡겨두고 입찰자 선정 권한을 갖는 노조 운영위의 핵심간부들과 안면을 익히기 시작했다. 순대를 팔아 조금씩 벌어들인 돈은 고스란히 로비 자금으로 들어갔다. 그는 “강씨와 함께 노조 운영위 간부들한테 밥 사고 술 사는 데 돈이 많이 깨졌다”고 말했다.
강씨가 소개해준 노조 실세는 노조 엔진분과 운영위원 ㄱ씨였다. 그를 통해 회사에 협조적인 노동자들의 모임인 ‘노동자민주혁신투쟁위원회’(노민투)의 핵심간부 ㅂ씨와도 얼굴을 익혔다. “현대중공업 노조 사람들과 술을 먹으면 대단했습니다. 같은 노동자들끼리 ㅂ씨를 ‘총재님’이라고 부르더라고요. 저는 대단한 사람들인 줄 알고 꾸벅꾸벅 시키는 대로 다 했습니다.” 그는 술값을 아껴보려는 마음으로 아는 선배가 운영하는 술집 하나에 전세를 내고 장사를 시작했다. 술집 이름은 ‘태후’로 지었다. 그는 그 시절 ㄱ씨가 마신 술값 영수증을 보관하고 있었다.
그는 아침 9시부터 노조 간부들이 부르면 언제든 달려갈 수 있도록 휴대전화를 켜뒀다. 노조 간부들의 물주이자, 심부름꾼이자, 대리 기사를 자청한 셈이다. 그는 “노름하러 떠나는 노조 간부들을 이끌고 강원랜드를 찾은 것도 여러 번”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거리 운전에 편하도록 아예 차를 레저용으로 바꿨다. ㄱ씨는 그에게 인감과 통장을 맡기고 비서처럼 부리기 시작했고, 그의 부인은 추석 때마다 ㄱ씨의 집에서 전을 부쳤다. “꼭 시켜서 했다기보다는, 이렇게 하면 나중에 큰 덕을 볼 줄 알았습니다.”
“현금, 그것도 헌돈으로만 상납받았다”
그는 2003년 2월27일에 만든 자신 명의의 국민은행 통장(855001-01-2451**)에서 출금한 몇 백만원대 뭉텅이 돈은 대부분 그들에게 전달한 돈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3년 3월10일 1천만원’ ‘3월17일 300만원’ ‘3월31일 450만원’ 하는 식으로 통장 거래내역이 적힌 쪽지에 형광펜을 긋기 시작했다. “ㄱ씨는 용의주도해 돈을 현금, 그것도 헌 돈으로만 받았습니다. 몇 십만원, 몇 백만원 빼준 것은 일일이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는 2002년 10월22일에 만든 ㄱ씨의 조흥은행 통장(811-06-4570**), 한빛은행 통장(131-024327-02-0**), 경남은행 통장(590-22-00559**)을 갖고 있었다.
ㄱ씨가 왜 양씨에게 통장과 인감을 고스란히 맡겼는지 알 도리는 없다. ㄱ씨는 <한겨레21>과의 만남에서 편한 후배로 생각했기 때문에 심부름을 많이 시키느라고 그랬다고 말했다.
양씨는 노조 운영위 간부들의 노름돈도 자주 대줬던 모양이다. 그는 “노름하는 데 돈이 떨어졌으니 1천만원만 맞춰봐라”는 전화를 받고 2002년 6월28일 울산 방어진 농협지점에서 노민투 핵심간부 ㅂ씨의 신한은행 계좌(461-02-1263**)로 1천만원을 송금했다. 이는 같은 날짜 농협에서 발행한 무통장입금 확인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담당자는 농협 직원 박민숙씨였고, 이체 수수료는 2400원이 들었다. 강원랜드에서 노름을 끝내고 내려오는 길에 돈을 딴 날은 영덕에 잠깐 내려 게를 먹고, 잃으면 라면을 먹었다. ㄱ씨와 ㅂ씨는 룰렛을 많이 했고, 그도 구경하며 슬롯머신을 당겼다.
1년 동안의 기다림 끝에 입찰이 진행되는 2003년 4월이 다가왔다. 그는 “자판기 납품을 할 수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있었다. 뜻밖에 일이 틀어졌다. 이권에도 노조 핵심 간부들 사이에 관할 영역이 정해져 있었던 것이다. 가장 돈이 되는 것은 자판기였지만, 이는 그가 줄을 댄 ㄱ씨가 움직일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ㄱ씨는 “대신 오토바이 수리점 낙찰을 받게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떡였다”고 말했다.
그는 “입찰 과정에서 많은 서류 조작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입찰일 하루 전에 울산 일산지 해수욕장 앞에 있는 ㄱ모텔로 전 노조 간부 ㅊ씨가 입찰에 참여한 업체들의 서류를 모두 빼왔다. 그는 “그 자리에 노조 운영위원 ㅈ, ㄱ, ㅇ씨 등 4~5명이 모여 서류를 넣은 업체들의 제시 가격을 비교해가며 강씨와 내 서류를 꾸몄다”고 말했다. 강씨가 서류를 넣은 중앙수리점 입찰에는 기존 업체 1곳 외에 세기오토바이, 중앙상사, 중부모터스, 동부오토바이, 미래 등 5곳, 그가 서류를 넣은 프랜트수리점에는 기존 업체 1곳 외에 일등대림오토바이, 진주오토바이, 울산부속 등 3곳이 참여했다. 그는 “나는 자격이 안 돼 직접 서류를 넣지 않고, 강씨의 후배 ㄴ씨를 바지사장으로 내세워 원서를 넣었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수리점 입찰에 참여하려면 2년 이상 수리점을 운영한 경험이 있어야 했다. 입찰 서류에 들어가는 ㄴ씨의 이력서는 양씨의 부인이 직접 작성했다. 그는 일등대림, 강씨는 중부모터스였다. 그는 “다른 업체의 부품 가격을 보고 1천~2천원씩 가격을 깎아 서류를 작성했다”고 말했다. 땅 짚고 헤엄치기 식으로 대림에서 만드는 택트50의 12V 배터리 가격을 2만3천원으로 책정했다가, 다른 업체의 제시 가격을 보고 2만원으로 깎는 수법으로 서류 작성이 이뤄졌다. 그는 2003년 5월 자판기, 오토바이 수리점, 후생관의 운영 위탁을 받기 위해 제출한 업체들의 입찰 서류들을 모두 가지고 있었다. 그는 “ㄱ씨 등은 운영위원들이 질문을 하면 대답할 예시 답안까지 알려줬다”고 말했다.
대가로 ㄱ씨에게 노래방 차려줘
그가 심사에 참여한 운영위원밖에 볼 수 없는 입찰 서류들을 어떻게 지금까지 보관할 수 있었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이해하기 힘들긴요. 아까 ㅊ씨가 입찰 하루 전에 서류를 빼와 모텔에서 밤새워 우리 쪽 서류를 꾸몄다고 안 했습니까.” 결국 강씨와 양씨는 2년 기한의 오토바이 수리점 위탁권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양씨는 “사업자 선정이 끝난 뒤 ㄱ씨가 돈을 요구했다”고 말했다. “강씨에게는 1억2천만원을 요구했고, 나에게는 1억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는 애초 3천만원이면 될 줄 알았는데 액수가 너무 커서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강씨는 2003년 6월께 부산에 있던 ㄷ부속 사장에게서 1억원을 빌렸다. “농협 직원으로 일하던 강씨의 친구가 ㄷ부속 사장에게 송금한 1억원을 제가 직접 찾아다 ㄱ씨에게 줬습니다. ㄱ씨는 머리가 좋아서 자신이 직접 나서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제가 그 심부름을 다 한 거죠.” 돈은 쇼핑백 속에 들어 있었고, 모두 헌 돈으로 바꾼 상태였다. 돈을 찾은 곳은 농협 방어진 지점이다.
그는 “그 무렵에는 이미 실탄이 떨어져 돈을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1억원은 무리였다. ㄱ씨는 “강씨는 돈을 맞췄는데, 너는 뭐하는 거냐”며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는 낙찰받은 오토바이 수리업체 프랜트의 수익금으로 울산 일산지 해수욕장 앞에 ‘블랙 앤 화이트’라는 이름의 노래방을 만들었다. 돈 대신 현물로 뇌물을 갚은 셈이다. “저는 얼굴이 하얗고, ㄱ씨는 까맣거든요. 그래서 노래방 이름을 그렇게 지었죠.” 2003년 가을께부터 두 달 동안 공사가 진행됐다. ㄱ씨는 지금은 그 노래방을 처분하고 일산지에 새로 ㅎ노래방을 만들어 이사했다.
그렇지만 그가 운영권을 쥔 프랜트오토바이 수리점은 큰 수익을 내지 못했다. “아무래도 바지사장을 세워서 그랬던 모양입니다.” 수리점에서 들어오는 돈은 신통치 않았고, 수익을 내려고 무리하게 값을 매기다 오히려 적자가 났다. 그는 “속았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오토바이 수리점 운영을 포기했다.
그는 지난 3년 동안 ㄱ씨의 하수인으로 철저히 이용만 당했다고 말했다. 오토바이 수리점에도 돈이 제대로 들어오지 않자 그와 ㄱ씨의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제가 형님 이러시면 곤란하다고 많이 항의했습니다. 약점을 잡고 있는 것도 많았고.” 그는 “ㄱ씨를 압박해 노조 창립일에 생활용품으로 그릇과 추석 선물로 로봇 청소기 등 2번의 입찰 기회를 얻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큰돈을 만들지는 못했다. 그와 ㄱ씨의 사이는 점점 더 벌어졌다. ㄱ씨와 ㅂ씨는 양씨에게 “조금만 참으라”는 문자메시지를 자주 보내왔다. “ㄱ씨가 2005년 12월께 순대 공장을 찾아와서 ‘4월이 되면 하청업체에 자리 하나 줄 테니 조금만 참으라’고 하더군요. 이제는 완전히 지쳤습니다. 3년 동안 뜬구름 잡고 다니면서 물질적인 피해도 많이 입었고, 아내와 이혼할 위기에까지 몰렸습니다. 저도 깨끗하게 살아온 사람은 아니지만 해도해도 너무합니다.”
“똑바로 살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ㄱ씨의 돈 심부름을 참 많이 했다”고 말했다. “문제는 오토바이 수리점뿐만이 아니었을 겁니다. 2004년 말에 ㄱ씨의 심부름으로 후생관에 입점한 한 업체로부터 3500만원을 받아 ㄱ씨에게 건네준 적이 있습니다.” 그는 “솔직히 말해 내가 알선해 ㄱ씨에게 돈을 전달한 사람도 여럿 있다”고 말했다.
“저는 무식해서 노조가 뭔지 모르지만, 아무튼 좋은 일 하고 다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의 생활을 본 뒤 든 느낌은 좌절과 절망뿐이었습니다. 완전히 썩었죠. 어찌 보면 그 사람들도 불쌍합니다. 저는 돈을 잃어서 폐인이지만, 그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폐인이죠.”
그는 “나도 나쁜 짓을 한 만큼 처벌은 각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이 문제를 확실히 수사해서 비리를 뿌리 뽑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젊으니까 재기할 날이 올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정신 차리고 똑바로 살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그는 2월24일 그가 확보한 증거자료를 싸들고 울산지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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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씨는 브로커 짓 일삼는 사기꾼 |
ㄱ씨는 <한겨레21>의 인터뷰 요청에 선뜻 “울산 일산지 해수욕장 앞으로 오라”고 말했다. 그는 “양씨를 평소 동생처럼 생각해 아껴준 적은 있지만, 그가 주장하는 모든 말은 거짓”이라고 말했다. 그는 “양씨는 현대중공업 노조 운영위원회에 힘을 가진 나와 ㅂ씨를 이용해 브로커 짓을 일삼으며 사기를 치는 사기꾼”이라며 “가만히 앉아 당하지 않고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씩 물어보자. 양씨와의 관계는.
=양씨를 알게 된 것은 현재 회사 안에서 중앙오토바이 수리점을 하고 있는 강씨를 통해서였다. 어릴 적부터 잘 아는 친구라고 해서 안면을 트게 됐다. 친동생처럼 워낙 살갑게 굴어 귀여워하며 친하게 지냈던 것이 사실이다.
양씨는 2003년 4월 입찰 심사에 대비해 수십~수백만원의 돈을 수시로 줬다는데.
=사실무근이다. 증거가 있으면 가져와봐라. 그 친구는 울산에 왔을 때 빈털터리였다. 오히려 내 카드를 빌려가 이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중앙오토비아 수리점을 하는 강씨가 가끔 술값이나 밥값을 낸 적은 있다. 내가 살림에 보태쓰라고 돈을 준 적도 있다.
양씨는 같이 강원랜드에 도박을 하러 가면 손수 운전한 적도 많았다는데.
=그건 사실이다. 양씨와 같이 한두 번 강원랜드에 갔다.
양씨는 2003년 4월 입찰 심사 직전에 일산지 해수욕장 모텔 한 곳에 숙소를 잡아 서류 조작을 했다던데.
=어처구니없다. 사실무근이다. 편한 동생처럼 친하게 지내던 사람들이라 “입찰에는 가격이 중요하다. 가격을 낮춰 서류를 넣어라”는 정도의 코치를 해준 것은 사실이다. 그 정도 말은 해줄 수 있는 것 아닌가.
어쨌든 양씨와 강씨가 오토바이 수리점 위탁을 받았다. 이후 돈을 요구했고, 강씨의 돈은 양씨가 직접 전달했다는데.
=사실이 아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하나. 증거가 있나. 솔직히 말해 나와 ㅂ씨가 노조 운영위원회에 힘을 좀 쓰기는 한다. 입찰이 끝나면 선정된 업체 사장이 “고맙다”며 밥을 한 끼 사기도 하고 술을 한잔 사기도 한다. 그것을 얻어먹은 적은 있다. 그게 잘못이라면 벌을 달게 받겠다. 돈을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양씨는 자신은 돈을 직접 전달할 수 없어 노래방을 차려줬다는데.
=양씨 말이 틀렸다는 증언을 해줄 사람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노래방을 차리기 위해 여기저기서 대출을 받았다. 사실이 아니다.
양씨와 결정적으로 멀어지게 된 계기는.
=이곳저곳에서 나와 ㅂ씨의 이름을 팔아가며 브로커 짓을 하고 있다는 소문이 귀에 들어왔다. 평소 알고 지내던 한 후배는 양씨의 말을 듣고 입찰에 참여하려고 뇌물 1억원을 준비해 가져나온 적도 있다고 고백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다. 이런 소문을 듣고 “정말 큰일 낼 놈”이라는 생각이 들어 멀리하기 시작했다. 양씨가 자꾸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있어,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다. 회사 쪽에서도 소문을 듣고 나에게 만나자고 자꾸 연락이 온다. 심신이 괴로워 피하고 있다. 나는 피해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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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판기 입찰은 대기업도 욕심
현대중공업 노조는 우리나라 대공장 노조 가운데 세 손가락 안에 드는 대규모 노조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때 회사가 내세운 어용노조를 깨뜨리고 탄생해 ‘87년 여름의 적자’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박일수씨를 ‘열사’로 인정하는지 여부를 둘러싸고 상급단체인 민주노총 금속노조와 갈등을 벌이다 2004년 9월 제명됐다. 2005년 10월 임원선거를 기준으로 전체 조합원 수는 1만8254명이다.
노조를 구성하는 집행부는 2년마다 선거를 통해 당선되는 5명의 간부와 50명의 상근직원으로 구성된다. 이 밖에 중요한 사항은 노조 간부 5명과 전체 대의원(조합원 100명 가운데 1명 선출) 가운데 간접선거로 선출되는 20명의 운영위원을 합친 25명 운영위원의 심의로 결정된다. 비리의 배경이 된 노동조합 위탁업체의 입찰 심사가 진행되는 곳이 이곳 운영위원회다. 노조가 위탁하는 주요 위탁시설은 회사 영내에 자리한 오토바이 수리점과 자동판매기, 노조원들이 싼값에 이용하도록 회사 밖에 지어진 후생관 등이다. 특히 자판기는 롯데칠성 등 대기업에서도 욕심을 내고 입찰에 참여할 만큼 큰 수익이 보장돼 있다.
노조의 파벌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현재 노조 집행부와 80% 이상의 대의원을 장악한 곳은 어용 논란을 빚고 있는 ‘노민투’다. ㄱ씨도 “노민투는 회사로부터 여러 가지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숨기지 않았다. 이에 맞선 곳은 옛 민주노조를 계승한 ‘전노회’지만 그 세력은 노민투에 견줘 매우 약한 편이다. 2002년 민주노조가 노조 사무국장 강아무개씨의 비리 파문으로 사퇴한 이후 2006년까지 노민투가 집행부 선거에서 3번 연속 승리를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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