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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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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파자마 바람의 절망

등록 2006-01-25 00:00 수정 2020-05-02 04:24

[아버지의 부재에 관한 다섯 개의 고해성사]

힘없는 아버지에 대한 고백… 연이은 실패로 초라해지고 작아져버린 가부장
어느 차가운 동네 골목에서 모든 희망을 건 아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보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개장사를 해볼까?” 아버지가 말했다.

김영삼씨의 집과 멀지 않다던 80년대 서울 상도동의 산동네였다. ‘삐라’라고 불리던 종잇장들이 겨울바람을 타고 날아오면 어머니는 한밤중에 몰래 일어나 모아놓은 종이들을 연탄 아궁이에 태웠다. 배화교의 종교의식처럼, 어머니의 얼굴은 불빛에 경건하게 일렁였다. 어쨌든 TV에서 정치 토론회가 흘러나오던 어느 밤에, 아버지는 그렇게 말했다.

오랫만에 빗자루를 드셨다

야당 성향의 토론자가 정부를 목청 높여 성토할 때쯤, 동네에 전기가 나갔다. “전두환이 짓이야”라고 아버지가 조용히 속삭였다. 어둠 속에 우리 가족이 이불을 덮고 모여 앉았다. 경기도 인근에 비닐하우스를 쳐야 한다, 개들이 짖지 않게 고막을 터뜨려야 한다…. 아버지는 개장사 프로젝트를 어머니에게 설명했고, 나는 곧 잠이 들었다. 그즈음 아버지는 익숙하지 않은 장사에 손댔다가 집까지 날려먹었다. 그것은 그의 앞에 예정된 무수한 실패들 중 하나였다.

상도동의 그 집에서 아버지는 점점 작아졌다. 누구한테도 목소리를 높이지 못하는 아버지는 넓지도 않은 집안 구석구석으로 숨어들었다. 나는 조금씩 키가 자랐고, 동네를 미친놈처럼 뛰어다녔으며, 아버지를 유령인간 취급했다. 어느 날 다락방에서 내려온 아버지는 내 옆에 앉더니 갑자기 필통을 부러뜨렸다. 반으로 갈라진 연필들을 모으며 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것은, 그 조각들은, 아버지의 소름 끼치는 연약함이었다. 나는 그게 무섭도록 싫었다. 다음날 아버지가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가져온 예쁜 필통을 나는 교실 책상 서랍에 묻어버렸다.

철이 들면서부터 아버지에게 나는 한 자루 단검 같은 존재였다. 그를 좌절시킨 세상을 쓱싹 베어버릴 수 있는 칼 말이다. 물론 내게는 그 어마어마한 복수의 공모자가 될 자질도 의욕도 열정도 없었다. 나는 신물나게 들어온 법대 대신 어문계를 지원했다.

내가 어문계에 들어가자 아버지의 희망은 외무고시로 바뀌었다. 신입생 시절 나는 어떻게 하면 아버지의 기대를 무참히 부숴버릴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내 이상으로 철이 없었던 친구놈과 누가 더 오래 연락 끊고 집에 들어가지 않나 내기를 했다. 놈은 불과 보름 만에 항복을 선언했고 나는 알코올과 승리감에 도취돼 거지 몰골로 집에 들어갔다. 아버지는 러닝셔츠에 파자마를 입고 있었다.

자식을 잘 때리지 않는 아버지가 오랜만에 빗자루를 들었다. 처음엔 견뎌보려 했지만, 이게 장난이 아니었다. 어디 한 군데 부러질 것 같은 위기의 순간, 나는 ‘아버지의 단검’답지 않게 비굴한 얼굴로 슬리퍼를 신고 밖으로 냅다 튀었다.

늦가을의 무척 쌀쌀한 날씨였다. 아버지는 맨발에 파자마 바람으로 날 쫓아왔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나는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아무개 이씨 아무개 파의 체면에 열심히 먹칠을 해댔다. 30분쯤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먼 곳에 환갑을 바라보는 아버지가 멈춰 숨을 고르고 있었다.

초라한 삶은 그냥 아버지의 것이에요

그 쌀쌀한 날씨에 맨발로, 파자마 바람으로 한 손을 담장에 짚고 숨을 헐떡이고 있는 아버지. 나는 그때 한 인간이 완전히 무너지는 모습을 보았다. 그의 전 생애를 통해 붙들고 있던 희망이 날아가는 순간, 그리고 그것에 대한 철저한 분노. 나는 아버지의 작은 눈에서 한 인간의 완전한 절망을 읽었다.

그리고 다시 몸을 돌려 뛰었다. 보세요, 아버지. 이제 난 아버지보다 훨씬 빨리 멀리 뛸 수 있잖아요. 아버지의 초라한 삶, 연약한 인생, 그런 것들은 그냥 아버지의 것이에요. 그리고, 정말, 정말로 미안해요.

그 뒤로 아버지는 예전보다 더 조용해졌다. 시간이 멀리멀리 날아갔다. 나도 아버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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