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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원로들과 개혁·개방 투어!

등록 2006-01-2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상하이·광저우·선전의 발전상 보여주며 거부감 큰 구세대들 설득
중국 비밀 방문 통해 외국자본 유치 등 경제개혁 구상 완성 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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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교수 peter@kyungnam.ac.kr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전격적인 중국 비밀 방문은 곧 모습을 드러낼 개혁·개방의 광폭 행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최근 북쪽과 큰 경협 프로젝트를 협의하고 돌아온 한 기업인은 북한이 국제 사회가 주목할 만한 개방 조처를 곧 내놓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귀띔했다. 북한 지도부가 내놓을 새로운 경제정책의 핵심 키워드는 ‘개방화’와 ‘세계화’라고 한다. 파격적인 우대 조처를 통해 외국 자본과 기술을 더욱 적극적으로 유치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이를 추진하기 위한 내부 체제와 조직 정비도 마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내의 핵심 정책결정자와 관련 부서장들이 참여하는 ‘국가경제발전특별위원회’가 구성돼 이미 활동에 들어갔고, 특히 수도인 평양시의 일부를 경제특구로 여는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위해 일부 행정구역까지 개편했다고 한다.

평양시 일부를 경제특구로?

김 위원장의 중국 방문은 이런 최근의 변화와 맞닿아 있다. 북한은 이미 본격적으로 중국 자본을 끌어들이기로 결정한 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김 위원장은 대미·대일 관계 개선을 통한 서방 자본의 유치에 큰 관심을 보여왔다. 하지만 지금 북핵 문제에다 미국의 금융 제재, 위조 달러 공세 등 새로운 장애물이 불거지면서 일본의 수교 배상금 등에 대한 기대감은 접은 것으로 보인다. 남한 및 중국과의 경제 협력을 통해 현재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가 강하게 엿보인다. 내년이면 65살이 되는 김 위원장은 더 늦기 전에 경제를 정상 궤도에 올려놓으려는 강한 열망을 표시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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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지난해 10월 평양을 방문한 후진타오 주석은 20억~30억달러에 이르는 대북 경협자금 지원 계획을 밝힌 것으로 알려진다. 중국은 지난 2004년 11월 ‘국무원 결정 36호’를 통해 북한에 대규모 개발협력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다만 중국은 경협의 조건으로 김 위원장에게 이른바 ‘12자 원칙’을 따르도록 완곡하게 요청했다. 12자 원칙은 ‘국가주도, 민간참여, 시장활동’을 뜻한다. 이는 북-중 간의 무역과 투자를 더욱 활성화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원칙으로 중국이 제시한 것이다. 지난 2005년 10월 북한을 방문했던 후진타오 중국 주석은 이를 더 분명하게 밝혔다. “북한이 국가 주도로 시장경제의 문을 더 넓히면 더 많은 지원을 해줄 수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지금까지 해온 방식대로 북한도 시장경제를 토대로 더 과감한 개혁·개방 조처를 내놓으라고 주문한 것이다.

후 주석은 김 위원장과 권력 핵심들이 있는 자리에서 중국의 개혁·개방 방식과 성과들을 소상하게 밝혀 눈길을 끌기도 했다. 그는 개혁·개방의 구체적인 성과로 “1978년부터 2004년까지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연평균 9.4%로 성장해 1473억달러 미만에서 1조6494억달러까지 늘었으며, 수출입 총액도 연평균 16% 이상으로 증가해 206억달러에서 1조1548억달러로 늘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개혁·개방의 방식을 전하면서 북한도 지금의 사회주의를 고수하면서도 얼마든지 중국처럼 성과를 낼 수 있다며 북한 내 보수층을 안심시키는 발언을 했다. “중국 인민은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덩샤오핑 이론,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3가지 대표 중요사상을 지침으로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위업을 부단히 탐구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천지개벽의 변화를 가져왔다”고 말한 것이다. 전통적 사회주의 이념과 개혁·개방 논리가 병존하면서도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발전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물론 이는 비슷한 맥락에서 북한도 그 특색에 맞는 사회주의를 유지하면서도 개혁·개방 정책이 성공할 수 있음을 말하려 한 것이다.

나 홀로 안되는 개혁·개방

사실 후진타오 주석의 이런 공개적인 발언은 김 위원장만을 겨냥한 것은 아니었다. 김 위원장은 중국식 ‘경제특구 개방형 경제발전 전략’이 갖는 유용성을 일찌감치 인정했다. 그는 2001년 1월 상하이 등 중국의 대표적인 경제특구들을 둘러본 뒤 자본주의적 시장경제 요소를 대폭 도입한 ‘7·1 경제관리 개선 조치’를 내놓았고, 곧이어 신의주경제특구, 개성공단 등을 개방하고, 시장경제에 기초한 법·제도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후 주석의 노골적인 개혁·개방 권유에 대해, 김 위원장은 다들 보는 앞에서는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 현대화 건설에 많은 성과가 있었으며 중국의 국력은 비상히 강화되고 있다”며 다소 밋밋하게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그는 내심 중국의 경협 지원을 통한 경제 발전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최근 불붙고 있는 북-중 경제 교류와 협력은 이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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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김 위원장은 중국식 경제발전 전략을 북쪽에 펼치기 위해서는 국내에서의 정치적 지지 기반 확보가 필요했다. 구세대들은 아직도 개혁·개방에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지난 2000년 이후 본격화된 개혁·개방에 따른 성과가 기대 수준을 밑돌고 있는 점도 작용한 듯하다. 갈 길이 바쁜 김 위원장으로서는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을 법하다. 김 위원장이 본격적인 개혁·개방 행보를 걸은 지 5년이 흘렀다. 하지만 미국은 금융 제재, 위조 달러 제조 의혹 등을 제기하며 끝 모를 공세를 가하고 있다. 경수로의 악몽도 재연되고 있다. 1997년 8월 착공한 경수로 공사는 지난 2003년 12월 중지된 이후 현지에서 시설물을 관리해오던 인력 57명이 철수함으로써 결국 막을 내렸다. 경수로 건설은 김일성 주석의 유훈 사업이면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대미 외교전 전리품(!)으로 간주되던 것이다.

이처럼 국내외의 정세가 요동치는 시기에 개혁·개방을 나 홀로 끌고 나가기는 쉽지 않다. 구세대들을 껴안고 갈 수밖에 없는 그로서는 자신이 몸소 현장을 방문해, 개혁·개방을 실천하는 모습을 대내외에 과시하고, 핵심 원로그룹들에게도 중국의 천지개벽된 모습을 직접 보여줌으로써 생각을 바꾸려 했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김 위원장의 수행원 명단이 1월13일 현재 구체적으로 확인되고 있지는 않지만,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함께 일했던 원로 간부들이 많이 끼여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 쪽 분석이다. 김 위원장의 주요 방문 행로로 꼽히고 있는 상하이 → 후베이성 우한 → 광둥성 광저우 → 선전 등은 자본주의 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돌아보아도 그 놀라운 발전상에 감탄사를 토해내는 곳이다.

올해 투쟁목표는 “경제 토대 덕 보자”

북한은 올해 1월1일 공동사설을 통해 “사회주의 경제 건설과 인민생활에서 결정적인 전환을 가져와야 한다”며 “가까운 연간에 경제 전반이 흥하게 하고, 인민들이 우리 경제 토대의 덕을 실질적으로 보게 하려는 것이 당의 의도이며 우리의 투쟁 목표”라고 밝힌 바 있다. ‘경제 다지기’에 모든 힘을 쏟겠다는 의지가 잘 묻어난다. 그리고 김 위원장은 지난 1월4일 새해 첫 공개적인 활동으로 평양 김책공업대학에 새로 건설된 디지털도서관을 찾았다. 과학 인재 양성의 산실로 불리는 곳이다. 그는 특히 이번 중국 방문에서 첨단 과학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창구로서 중국의 경제특구 기능을 눈여겨봤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올해 평양이나 개성공단이 어떻게 변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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