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개방을 기회로 활용하는 희망 제언, 고품질·고가격 농산물 시장을 겨냥하라
다른 소프트 요소와 결합하는 농업의 1.5차화는 부가가치 높이는 혁신의 길</font>
▣ 민승규/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이제는 우리도 시대의 흐름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포기하는 농가가 나올까 그게 걱정입니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는 이르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분명히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를 도와주세요! 우리가 원하는 것은 정부의 지원이나 돈이 아닙니다.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할 수 있다는 희망입니다.”
농업계의 변화는 충분했는가
얼마 전 어느 젊은 농민이 필자에게 보내온 편지다. 그 농민의 말처럼 지금 우리 농업에 필요한 것은 때늦은 위로금이 아닌 바로 ‘희망’이 아닌가 생각된다.
2004년 가구당 농가부채는 2689만원으로 10년간 3배 가까이 증가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농민들이 미래에 대한 희망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5년 뒤 농촌의 생활 수준이 현재보다 나아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농민은 전체 농민의 채 10%도 되지 않는다는 조사결과가 이를 설명하고 있다. 농촌공동체는 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농민들은 근본 대책을 요구하며 격렬한 시위에 나설 정도로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한국 농업을 이렇게까지 위기상황으로 몰아넣은 원인은 무엇일까?
시장개방으로 국내 농산물과 수입농산물 간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경쟁력이 약한 국내 농산물의 피해가 확대된 점을 먼저 꼽을 수 있다. 또 1990년대 초 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시작된 농업 투·융자 사업이 부실과 비효율 탓에 그다지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은 개방 시나리오에 대응하기 위한 농업계의 변화가 미흡했다는 것이다.
한국 농업이 위기 상황에 직면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야말로 절박한 마음으로 농업·농촌의 위기를 헤쳐나갈 돌파구를 찾아보고, 그 해답을 현실화하기 위한 전략적이고 실천적인 행동에 나설 때다.
농산물 시장 개방은 한국 농업에 위협이지만,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서는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시장 개방을 통해 한국 시장이 열림과 동시에 수출장벽 역시 낮아지므로, 경쟁력을 키운다면 농업 시장이 세계적으로 크게 확대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고품질 농산물을 수출 상품화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천적 농법을 도입해 파프리카를 일본에 연간 60억원 이상을 수출하는 전북 김제의 참샘영농조합이 좋은 예다.
국제적 흐름으로 자리잡은 웰빙 열풍에서 보듯이, 소비자 계층이 나눠지면서 가격이 비싸더라도 품질 좋은 농산물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추세다. 일본의 고급 쌀인 ‘고시히카리’는 중국 쌀보다 10배 이상 비싸지만 대만의 고소득 계층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 고가격·고품질 농산물의 소비계층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따라서 저품질·저가격 농산물 시장은 수입 농산물에 내준다고 하더라도, 고품질·고가격 농산물 시장을 확보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낸다면 우리 농업에도 분명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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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최근에 일고 있는 농업계 내부의 변화 움직임이다. 국내 농업의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모험심과 도전정신, 열정을 가지고 우리 농업의 나아갈 길을 스스로 찾고 있는 이들 신농업인에게서 한국 농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농지·시설 등의 하드웨어에 장기간 축적된 영농 노하우를 더하고, 새로운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접목한 벤처농업인들이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고통스러워도 구조조정을 실현하자
지난 11월27일 한국벤처농업대학(www.vaf21.com)에서는 1천여 명의 벤처농업인들이 모여 ‘한국농업 희망선언문’을 채택했다. 이들은 선언문을 통해 농업인 스스로가 변해 농업을 경제 발전의 동력으로 키우자고 다짐했다. 이들 벤처농업인은 전통적인 농업 영역에서 해답을 찾기보다는 사고의 지평을 다른 산업과 융합하고, 소프트 경쟁력을 높이는 쪽으로 확대하고 있다. 대규모 기업농이나 경쟁력 세계 1위의 농업은 아니라도 작지만 강한 농업을 지향하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이들 벤처농업인의 성공사례는 농업도 얼마든지 수익을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과거의 농업혁명이 ‘생산성 제고’에 초점을 맞췄다면 벤처농업인들이 추구하는 농업혁명은 고객의 관점에서 부가가치를 높이는 쪽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런 새로운 농업인상을 많은 농업인들에게 확산시키는 것이 한국 농업의 과제라고 본다. 벤처농업인이 일부의 특수한 사례가 아닌 한국 농업의 대표상이 될 때 농업의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선 먼저 농업의 1.5차화를 통해 농업의 스펙트럼을 확장해야 한다(Product Innovation). 농업의 1.5차화는 1차 산업인 농업에 다른 산업 또는 소프트 요소를 결합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고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을 뜻한다. 식품·제약·유통·관광·레저 등 관련 산업을 결합해 소비자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거나, 예술·문화와 연계해 차별적인 가치를 제공해야 한다. 고품질 수출농업을 육성해 해외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는 것도 농업의 1.5차화를 통한 혁신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과 경지면적은 유사하고 농가 인구는 6분의 1에 불과한 네덜란드는 수출농업을 육성한 결과, 한국의 반도체와 자동차 수출액을 더한 것과 비슷한 수준의 농산물 수출액을 기록하고 있다.
둘째, 시장지향형 농업경영의 실현이다(Process Innovation). 개방이 불가피하고 국제경쟁력 확보가 어려운 농업경영체에 대해서는 고통을 감수하더라도 구조조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농업으로 변신하려면 아이디어와 기술을 접목해 개성 있는 농업 비즈니스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 미에현 아야마 마을의 뭉게뭉게농장은 ‘소비자와 함께 생각하고, 소비자와 함께 감동하는 농업경영’을 농장경영 이념으로 삼고, 농산물 생산과 판매, 가공 및 관광을 연계한 상품을 개발해 연간 250억원 이상의 매출을 달성하고 있다. 시장지향형 농업의 핵심적인 경쟁력은 바로 아이디어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핵심적 경쟁력은 아이디어
셋째로 사람의 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People Innovation). 농업 부문에서 시장원리가 작동하는 것에 대응해 농업인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변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세로는 농업의 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 그렇다면 결국 경쟁력 있는 한국 농업 만들기를 실천에 옮길 주체인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한국 농업이 해결해야 할 과제다.
백범 김구 선생은 “나는 우리나라가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 농업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세계 최고의 부강한 농업보다는 멋있는 농업이 되고, 그것이 우리 농업의 경쟁력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가 지향해야 할 농업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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