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견해 차이로 표류하는 국민연금, 어떻게 바꿀 것인가
급여는 높고 재정 불안한 공무원·군인·사학연금부터 수술칼 대야
▣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경상학부
대표적인 미래학자인 피터 드러커는 “앞으로 20년 내, 사회와 기업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주요 요소는 전쟁, 괴질 또는 혜성 충돌 같은 돌발 사태를 제외하면, 인구 구조의 변화와 지식의 중요성이 증대하는 것”이라고 설파했다. 실제로 현재 선진국의 노년 부양 비율은 20% 안팎이지만, 2030~40년경에는 40%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2020년께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연금수급 세대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돼 인구 노령화가 급속히 진전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노령화 경향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우리나라 전체 인구에서 65살 이상 노령인구 비율이 2000년에 7%을 넘어섰고 2018년에 14%를 돌파할 전망이다. 2050년께는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한 서구 선진국과 비슷한 인구 구조를 갖게 된다. 인구 노령화는 직접적으로는 공적연금제도의 위기로 이어진다. 연금보험료를 불입하는 가입자에 비해 연금을 받는 수급자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그 결과 연금재정 적자가 심화되고 있다.
재정 안정 우선이냐, 총체적 개혁이냐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의 4대 공적연금에 대한 제도 개혁의 시도는 있었지만 근본적인 개선은 이뤄지지 못했다. 1998년 12월의 국민연금 재정안정화를 위한 개혁이 그랬으며, 1999년의 국민연금 전국민 확대 조처가 그랬다. 2000년의 공무원연금 개혁 또한 마찬가지였다.
최근에는 정부와 여당이 현행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10%포인트 인하하고 보험료를 현행 9%에서 15.9%까지 인상하는 재정 안정화에 초점을 맞춘 방안을, 야당이 현행 국민연금의 틀을 전면적으로 손질하는 기초-소득비례 연금 2층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외형상으로는 정부와 여당은 재정 안정화 문제가 급하니 먼저 급여 수준을 낮추고 사각지대 해결은 별도로 논의하자는 것인 반면, 야당은 재정 안정화와 구조개혁은 별개의 사안이 아니므로 함께 논의해 대안을 만들어보자는 태도다.
이러한 여야 견해 차이로 국민연금 개혁 작업은 표류하고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은 높아지고 있다. 정부와 국회가 갈피를 못 잡고 있어 국민들의 혼란이 더욱 가중되는 양상이다. 여야 할 것 없이 국민연금이라는 뜨거운 감자를 두고 책임 회피에 급급하다는 여론의 비판이 거세다. 이제 국민들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에서 연금개혁을 할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인구 고령화 속도가 가장 빠르고 저출산화 경향이 가속화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제도는 저부담·고급여의 재정 불균형 구조, 광범위한 연금 사각지대의 존재,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 연금 사이의 형평성 문제, 기금 운용에 대한 불신 확대로 더 이상 연금개혁을 미룰 수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표를 의식한 나머지 연금개혁을 당리당략 차원에서만 본다면 이것은 국회 본연의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세계은행은 최근 2005년 보고서에서 연금제도 개혁안의 평가기준을 제안했다. 첫째, 개혁안이 연금 시스템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충실히 설계됐는가? 구체적으로, 개혁안이 고령자에게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고령자의 빈곤 위험에 대한 보장 기능을 합리적으로 제공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국민연금의 기능을 분화시키자
또 하나의 기준으로는, 거시적 또는 재정적 환경이 개혁안을 뒷받침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 꼽혔다. 연금개혁안에 대한 장기적인 재정 전망이 이루어졌는지, 거시경제적 목표와 이용 가능한 정책수단을 갖고 있는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규제감독 체계가 마련돼 있는가 하는 점도 중요한 기준으로 제시됐다. 정부는 지속 가능하고 효과적인 규제감독 시스템을 설치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 이런 세계은행 평가기준은 국제노동기구(ILO)의 제안과도 거의 유사하다. 연금개혁의 기본 방향에서는 세계적으로 보편적 원칙이 확립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면 지금 우리가 선택해야 할 연금개혁의 내용은 무엇일까?
우선, 국민연금제도의 보장성과 형평성 확보다. 국민연금제도는 우리 국민이면 누구나 일정한 노후소득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설계돼야 한다. 국가가 책임지는 공적연금제도는 제한된 계층에게 높은 보장을 하기보다는 모든 계층에 균등한 보장을 해야 한다. 국민연금보다 높은 급여를 보장하면서도 재정불안 문제가 더욱 심각한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의 제도 개혁이 먼저 이행돼야 한다.
둘째, 노후 소득보장에서 국가가 책임질 부분과 국민 개개인이 책임질 부분의 합의를 이루는 것이다. 이때, 국가의 책임 부분은 국가가 책임질 수 있는 부분에 한정해야 하고 그 수준도 가능한 한 경제사회의 자율성을 해치지 않는 최소한이어야 할 것이다. 그 이상의 부분에 대해서는 국가가 개인이 여유로운 노후를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국민연금기금의 합리적 운용구조를 함께 마련하는 일도 중요한 과제다. 국민연금을 현행 방식대로 운용하면, 적립기금은 1700조원까지 늘어나다가 2040년 중반에 급속히 고갈돼 금융시장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적립기금이 성숙기까지 일정 수준까지 증가하고 난 뒤에는 적정기금을 유지할 수 있도록 재정 방식을 만들어야 한다. 즉, 세대 간 재분배가 필요한 ‘부과 방식’ 부분과 각 개인이 부담한 보험료로 수지균등한 연금 급여를 받을 수 있는 ‘적립 방식’ 부분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 이는 지금 국민연금제도의 기능 분화로 준비해야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선 무엇보다도 공적연금 사각지대의 해소와 세대 간·세대 내 형평성 제고를 위한 다층화 체계의 구축이 필요하다. 각 공적연금제도는 소득 수준, 퇴직 연령, 직업 등 직역별 특성에 상응해 안정된 노후생활에 필요한 적정 급여 체계를 설계한다.
정부는 퇴직연금의 전환을 지원해야
국민연금은 수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운영하고, 이미 적립기금이 고갈된 공무원연금 등 특수직역 연금은 제도개혁 시점 이후 가입 기간에 대해서는 장기적 수지균형 체계를 구축하되 과거 가입 기간의 ‘미적립 부채액’(미래 연금 지급에 상응하는 준비금 중 부족액)은 별도로 적립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또 현행 퇴직금제도는 개별 기업별로 노사 합의에 의해 일시금 형태를 포함한 다양한 퇴직연금제도를 설계할 수 있도록 해 다양성과 신축성이 유지돼야 한다. 정부는 퇴직금 제도를 퇴직연금으로 원활하게 전환할 수 있도록 세제 개편 등 지원 체계를 구축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는 대안이라면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본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고령화 시대에도 지속 가능한 세대 간 부양을 위해 노령세대와 근로세대가 어떠한 사회 계약을 체결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 국회가 책임감을 갖고 나서서 이러한 사회적 합의 절차를 추진해야 할 시점이다. 말없는 다수 국민들은 21세기의 국가경쟁력과 복지공동체의 기반이 될 연금개혁의 합의 과정을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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