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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난 박정희, 5억원은 정당한가

등록 2005-11-30 00:00 수정 2020-05-03 04:24

<font color="darkblue">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둘러싼 명예훼손 소송 법정의 불꽃 튀는 공방
역사학자 한홍구 교수와 영화평론가 김영진씨가 박지만씨 쪽 변호사와 맞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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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그때 그 영화는 아직 재판 중이다. 올해 2월 개봉됐던 <그때 그사람들>(감독 임상수·제작 명필름). 1979년 10월26일, 궁정동 안가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과 그를 살해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그리고 살해 현장의 언저리에 서 있던 사람들을 그린 영화다.

소송 접수된지 9달 만에 처음 열려

이 영화의 개봉 직전,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는 상영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재판부는 박씨의 주장을 일부 수용해 영화의 서두와 말미에 붙어 있는 자료화면의 문제 부분을 삭제한 채 상영하라고 판결했다. 3분50초짜리 자료화면에는 부마항쟁, 박정희의 죽음 뒤 오열하는 가족과 시민들, 김수환 추기경의 기도 모습 등이 담겨 있었다.

MK픽처스(옛 명필름)는 가처분 이의 신청을 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앞뒤 자료화면을 삭제한 채 일반상영했다. 110만 명의 관객은 앞뒤가 잘린 영화를 봐야 했고, 제대로 된 영화를 본 사람들은 가처분 직전 열린 시사회에 참석한 스태프와 기자들 그리고 일부 관객들뿐이었다. 그리고 박지만씨는 다시 MK픽처스에 5억원의 손해배상금을 요구하는 명예훼손 소송을 냈다. 그때 그 재판이 아직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1월24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 595호. 민사합의13부(재판장 조경란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재판에서 피고인 MK픽처스는 영화평론가 김영진씨와 현대사학자인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를 증인으로 불렀다. 소송이 접수된 지 9달 만에 처음 열린 공판이었다. 증인석에 선 김영진씨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

“<그때 그사람들>은 독특한 영화적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영화라면 마지막에 박 대통령이 죽고 끝났어야 할 것을, 이 영화는 전반부에서 박 대통령이 먼저 죽고 이후 주변 사람들의 혼란한 모습을 비춥니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박 대통령에 대한 영화라기보다는 그때 그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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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원고 쪽 이승환 변호사는 한 장면 한 장면을 조목조목 분석하면서 반대 심문을 했다. ‘삭제를 모면한’ 픽션 부분에서 박정희가 일본말을 쓰고, 엔카(일본노래)에 심취해 있거나, 박정희의 주검의 성기를 모자로 가리는 장면 등이 ‘문제 장면’이었다.

“증인 말대로라면, 영화는 박정희 대통령을 다룬 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다뤘다는 얘기인데, 마지막 자료화면을 보면 대통령의 친인척들이 오열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렇다면 박 대통령을 다룬 거 아닙니까?”

그 친인척에는 박근혜 대표 모습도 끼어 있었다. 자료화면이 삭제된 채 상영됐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 청초한 모습을 보지 못했지만. 이 변호사와 김씨는 같은 영화를 보면서 다른 생각을 했다. 김씨는 이렇게 대답했다.

“난 유족들 얼굴보다는 그 자료화면에서 연이어 비쳤던 시민들의 모습이 더 인상 깊었는데요. 거리에서 나와 슬퍼하는 수많은 시민들의 모습이오.”

이어 한홍구 교수가 증인석에 섰다. 그는 이 영화의 최종편집 과정에서 감수를 맡았다. 그는 “<그때 그사람들>의 기본 뼈대는 사실에 충실하며, 10·26도 사실에 입각해 묘사됐다”고 증언했다.

피고 쪽의 이동직 변호사는 “역사를 보는 관점은 다양할 수 있다”며 “박지만씨 쪽은 합동수사본부의 기록만이 진실이라는 태도로 재판에 임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한 교수가 맞장구쳤다.

‘왜색’과 ‘여색’은 진실인가

“물론 그게 공식 기록이지요. 그러나 기록이란 기록한 사람의 입장을 대변합니다. 당시 10·26을 조사했던 합동수사본부장은 전두환이었어요. 전두환은 박정희의 정치적 아들이었고요. 따라서 공식 기록이란 신군부의 관점에서 10·26을 바라본 겁니다. 만약 김재규가 처형당하지 않고, 그가 당시 상황을 책으로 펴냈다고 상상해보세요, 혹은 정승화나 김종필이 대통령이 됐다면요?”

이승환 변호사가 다시 반대 심문에 나섰다. 그는 한 교수가 지은 <대한민국사>의 출판사가 어디냐고 물어보며 판사들을 흘끗 쳐다봤다. 한 교수는 “한겨레신문사”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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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변호사는 영화에서 박정희의 ‘왜색’과 ‘여색’을 묘사한 부분 등이 ‘허위’라며 집중적으로 따졌다. 그러나 한 교수는 “실제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덧붙인 허구와 허위는 구분돼야 한다”며 “10·26 재판 과정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박선호 의전과장(한석규 분)의 증언 및 기타 자료에서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지난 10월26일 출판된 <10·26은 아직도 살아 있다>에도 그런 내용이 담겨 있다. 이 책은 10·26 재판에서 김재규의 변호를 맡았던 안동일 변호사의 회고록이다. 당시 1심 재판에서 변호인이 “그날 오후 4시경 (여자 조달을 위해) 프라자호텔에 간 일이 있지요?”라고 박선호 의전과장에게 물었다. 그러자 피고인석 앞줄에 앉아 있던 김재규가 박선호에게 “야, 얘기하지 마!”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박선호는 “상상에 맡기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표적인 우익 언론인인 조갑제 <월간조선> 기자가 1987년에 쓴 <유고>라는 책에도 박정희의 ‘여색’이 드러나 있다. “박선호는 여자 조달에 신경을 무척 써야 하는데다가 격무에 지쳐… 애써 여자를 골라오면 경호실에서 퇴짜를 놓는 일도 잦았다.”

이 재판은 명예훼손 소송이다. 명예훼손 소송은 저작물이 적시한 내용의 사실 여부가 판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다. 설사 사실이 아니더라도 저작자가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사유가 있다면 문제가 없다. 피고 쪽은 재판정에 가지고 나온 30여 권의 책을 늘어놓으면서, <그때 그사람들>은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제작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원고 쪽은 이들 책이 10·26이 터진 훨씬 이후에 씌어 실제 현장조사에 근거하지 않음을 지적했다. 그리고 다음달 재판에 이를 반박할 만한 새 자료를 증거로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2005년 한국 사회에서 박정희는 여전히 살아 있다.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경북 구미의 생가에서, 불황 속에 개발주의의 향수를 자극해 표를 모으려는 선거 유세장에서, 그리고 이곳 재판정에서 생채기 난 ‘명예’를 회복하려 싸우고 있다. 진보 진영 일부에서는 이 영화에 대해 “인혁당 사건에서 8명을 하룻만에 사형으로 몰아냈던 표독스런 독재자를 어떻게 이렇게 우아하게 그릴 수 있느냐”며 불평하고, 한편에서는 “내후년 대선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라는 정치적 분석도 있지만, 상처난 박정희를 보고 분노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박지만씨가 관심있게 챙긴다”

한홍구 교수는 증언 말미에 이렇게 말했다. “혹자는 박정희가 죽고 난 뒤 국민들이 대성통곡하는 모습을 보며 김일성 사후 평양의 모습을 떠올린다고 하지요. 1979년 10월26일, 26년 전의 일이지만, 바로 지금 우리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다음 재판은 12월15일이다. 이날엔 원고 쪽이 반박 자료를 제출할 예정이다. 원고 쪽 이승환 변호사는 “박지만씨가 이 재판을 관심 있게 챙기고 있다”고 알려줬다. 판결은 이르면 내년 초에나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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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에 비해 꽤 자제한 것”</font>

<font color="6633cc">[인터뷰_ <그때 그사람들> 임상수 감독]</font>

삭제 지시한 가처분 결정은 정치적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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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의 감독 임상수씨는 10월24일 밤 전화 통화에서 “소송 당사자는 아니지만, 사법부 앞에서 상당한 왜소함을 느낀다”며 “내 표현의 자유가 사법부 판단 앞에 선 것”이라고 말했다. <그때 그사람들>은 지난 5월 칸영화제 감독주간에 초청됐고, 10월25일 폐막된 필리핀의 시네마닐라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인 리노브로카상을 받았다. 물론 앞뒤가 잘린 채였다.
<font color="008080">박지만씨 쪽에서 사실 왜곡을 지적하고 있는데.</font>

=재판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색’이나 ‘왜색’은 모두 실증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영화를 만들기 전에 참고한 책 20여 점 등 관련 자료를 변호인에게 넘겼다. 영화는 자료에 비하면 꽤 자제해서 표현한 것이다.
<font color="008080">박지만씨 쪽은 중간에 있는 픽션을 사실처럼 보이게 하려고 영화 앞뒤에 논픽션인 자료화면을 삽입했다고 주장한다.</font>

=자료화면의 장례식 장면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얼굴이 나온다. 재판부가 지난 1월 받아들인 가처분 결정은 자료화면을 빼라는 것인데, 결국 박근혜 대표의 얼굴을 빼라는 것 아닌가. 정치적인 판결이 아닌가 싶다.
<font color="008080">영화를 만들게 된 배경은.</font>

=10·26을 캐기 시작하면 현대사의 추한 모습이 고구마 덩굴처럼 끌려나온다. 뚜껑을 연다는 기분으로 영화를 만들었다. 다행히 이 영화가 나온 뒤 10·26에 대한 역사적 논쟁이 일었다. 최근에 김재규 변호인이었던 안동일 변호사도 책을 냈고. 그러나 그 사람들은 묻어두고 싶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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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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