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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매매 병행 의무화하라”

등록 2005-11-22 00:00 수정 2020-05-02 04:24

한국적인 유통의 특수성 고려 않고 일본식만 모방한 ‘농안법’
강기갑 의원실에선 ‘내년 2월 통과’를 목표로 개정안 마련중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가락시장을 비롯한 농수산물 공영 도매시장의 거래 원칙을 수의매매가 아닌 경쟁 입찰 방식으로 정한 것은 1976년 제정된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이 농안법을 통해 도매시장의 농수산물 거래는 경매를 기본으로 삼도록 했다. 농수산물, 특히 청과물의 가격 안정 문제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던 시절이었다.

제대로 된 경매가 불가능했다

그 이전까지 청과물은 ‘객주’의 전통을 이어받은 ‘위탁 상인’에 의한 수의매매가 주류를 이뤘으며, 이는 적잖은 부작용을 노출하고 있었다. 현지 생산자에게 대금 정산을 제때 해주지 않거나 아예 떼먹는 경우도 있어 농민들의 불만이 비등했다. 이같은 거래의 불투명성 문제와 함께 흔히 ‘칼질’로 일컫는 불공정 거래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위탁 상인은 도매시장에서 생산물을 100만원에 팔아놓고도 80만원만 받았다는 식으로 속여 농민의 몫을 가로채는 경우가 많았는데, 현지 농민들이 이를 확인할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농안법 제정은 경매제를 통해 거래 가격을 투명하게 노출시켜 이같은 불투명·불공정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었는데, 결과적으로는 별 효과를 거두지 못해 기존 거래 방식에 큰 변화가 없었다. 김완배 서울대 교수(농경제사회학부)는 이를 두고 “우리의 상관행이나 산지 유통 형태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일본의 ‘도매시장법’을 그대로 모방한 데 따라 빚어진 결과”라고 풀이한다.

일본에선 거의 모든 농산물이 농협 조직을 통해 계통 출하(공동 출하)되는 까닭에 소비지에서 비로소 가격이 결정되는 반면, 우리의 실정은 이와 달라 산지 수집상의 이른바 ‘밭떼기’로 결정되는 차이를 반영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우리의 산지 유통 실정과 상관행을 반영하고 위탁 상인의 부정적인 측면을 막을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 수의매매를 줄기로 하는 현대적 의미의 도매상 제도를 도입하는 게 바람직했을 것”이라고 밝힌다.

도매시장의 거래 방식에 또 한 번 큰 변화가 이뤄진 것은 1985년. 국내 첫 공영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시장이 개장된 이때부터 농안법이 본격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지정도매 법인 제도에 따라 경매 법인이 지정되고 지정도매 법인을 통한 상장 경매 거래가 강제됐다. 그렇지만 이 또한 정부의 뜻과는 달리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도매 법인의 수집 능력이 취약한 상태에서 제대로 된 경매가 이뤄질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 수집은 중도매인이 하면서 서류상으로 법인이 수집하거나 경매가 이뤄진 것처럼 꾸며 법인은 앉아서 상장 수수료만 챙기는 ‘기록 상장’ 또는 ‘형식 경매’라는 파행적인 거래가 비일비재했다. 이는 지금도 지방 도매시장에선 현재진행형이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상장 경매 원칙은 계속 강화돼왔다. 1990년대 들어 경매 대상 품목 수가 확대되고 중도매인의 산지 수집 행위는 축소되는 반면, 도매법인의 수집 활동은 확대됐다. 급기야 1994년엔 중도매인은 중개 거래만 할 수 있도록 한 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는 기존 농산물 도매상인들의 영업 방식을 급격히 변화시키는 것이어서 중매인들의 대규모 실력 행사(거래 중단)에 따른 ‘농안법 파동’으로 이어졌다. 정부는 결국 이듬해 농안법을 개정해 농안법 파동에 따른 문제점을 보완하기에 이른다. ‘중매인’의 명칭을 지금의 ‘중도매인’으로 바꾸고 상품을 경락받아 중개뿐 아니라 도매를 할 수 있도록 했으며 무조건적인 상장경매 실시 원칙을 일부 풀어 시장 개설자(지방자치단체장)가 정한 경우 중도매인이 직접 수탁받아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다.

경매법인들은 강력 반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농안법 개정에 따라 미흡하나마 수의매매를 줄기로 삼는 시장도매인 제도가 도입돼 2000년 6월부터 지방도매시장(충주, 구리 등 23곳)에서, 2005년 7월부터는 중앙도매시장(가락·노량진 수산·대구·부산 등 9곳)에서도 시장 개설자(지방자치단체장)의 결정에 따라 이를 도입할 수 있게 됐다. 그렇지만 도매시장의 경매 법인 등의 반대에 막혀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다. 민주노동당의 강기갑 의원실에서는 이에 따라 일정 자격 조건을 두어 시장도매인제의 병행 실시를 의무화하는 내용의 농안법 개정안을 마련 중이다. 강 의원 쪽에선 내년 2월 통과를 목표로 잡고 있는데, 정부 쪽에선 아직 뚜렷한 법 개정 방침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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