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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공단 안 가면 땅을 치고 후회?

등록 2005-11-09 00:00 수정 2020-05-02 04:24

올해 안 15개 시범공단 입주 완료, 남북당국 개발의지는 푸른 신호등
북쪽 근로자 관리 어려움과 통행의 불편함에도 남쪽 기업들 대체로 만족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개성공단 시범단지 시대가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11월1일에는 삼덕통상이 화려한 준공식을 치렀다. 개성공단 설립 이후 가장 많은 440여 명의 남쪽 인사들이 준공식을 지켜봤다. 부산에 본사를 둔 신발 제조업체인 삼덕통상은 개성공단에 근무하는 3400여 명의 근로자 가운데 1천 명 정도가 소속된 개성공단 대표기업이다. 내년 3월까지는 2천 명으로 늘려 연간 180만 켤레의 완제품을 생산한다. 더구나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신발은 싸구려 제품이 아니다. 어쩌면 개성공단에서 만들어내는 제품 가운데 가장 비쌀지도 모른다. ‘스타필드’라는 브랜드의 이 건강 웰빙 신발은 가격이 200달러에 이른다. 이런 탓인지 일부 인사들은 북쪽 근로자들이 만든 고급 신발을 중국에서 만든 것이 아니냐고 의심했다고 한다. 삼덕통상 쪽이 11명의 직원을 현지에 상주시켜 북쪽 노동자들에게 품질관리와 교육을 한 덕분이다.

중국산 뺨치는 고급신발 ‘스타필드’

삼덕통상의 문창섭 대표는 아예 남북 공동의 신발연구소를 공단 안에 세울 참이다. 그는 11월2일 “북쪽 연구인력 30명과 남쪽 연구인력 10명으로 구성된 연구소를 개성공단 안에 세울 예정”이라며 “북쪽과 이미 협의를 마쳤다”고 말했다. 북쪽 연구진은 주로 신발이나 디자인 분야에 전문지식을 갖춘 인사들로 꾸려질 예정이다. 삼덕통상 쪽은 이르면 5년 안에 북쪽 연구진들이 기획한 상품을 개성공단에서 생산하는 모습을 보게 될 것 같다고 설명한다. 이런 협력은 북한에 단순히 기술을 이전하는 것뿐 아니라 북쪽과 기술을 제휴한다는 의미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삼덕통상이 준공식을 열면서 이제 용인전자와 제씨콤 2개 기업만 올해 안에 준공식을 치르면 15개 시범공단 기업의 입주는 사실상 마무리된다. 이들이 공장을 짓고 생산을 시작하면 내년부터 본격적인 본공단 개발시대로 넘어가게 된다. 지난해 12월15일 주방기기를 만드는 리빙아트가 첫 제품을 선보인 이후 1년이 가까워지면서 개성공단이 제자리를 찾게 된 것이다.

외국인 투자기업단도 현지 시찰

시범단지는 자욱한 북핵 안개 속에서 조심스럽게 첫 삽을 뜬 선도적 프로젝트다. 지금까지 개성공단에서 나온 여러 제품들은 남쪽의 자본, 기술과 북쪽의 토지, 인력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며 개성공단의 성공 가능성을 말해준다. 처음 시범단지에 발을 담근 기업들은 남다른 용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이제 입주한 지 1년이 다 돼가면서 조금은 느긋하게 개성공단을 바라본다. 더러는 남북한 당국에 훈수도 두고, 이들을 끈질지게 설득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하기도 한다. 개성공단에 첫발을 내디딜 때만 해도 기대 반 우려 반으로 잔뜩 긴장하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숨죽이며 지켜보던 다른 많은 기업들은 이제 개성공단에 자사 깃발을 꽂기 위해 이리저리 뛰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본단지 조기 분양 및 입주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본단지 1차 5만 평에는 이미 섬유·의류·봉제 11개 업체와 가죽·가방·신발을 생산하는 5개 업체, 영소 중소기업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한 7개 업체가 입주를 기다리고 있다. 이들은 올해 말 공장을 짓기 시작해 내년 상반기 중 공장을 가동할 작정이다.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0월16일 “개성공단에 3년 내로 1천 개 정도의 공장이 입주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요즘 개성공단은 겉보기로는 전성시대를 구가하고 있다. 개성공단 세미나가 하루가 멀다 하고 열리고, 시범단지 입주기업과 새로 들어갈 기업 간의 정보교류가 한창이다. 개성공단이 이처럼 활기를 띠자 오갈 데 없는 중소기업들이 가뭄에 단비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고 있다. 중소기업들은 고유가, 높은 원자재 가격, 내수침체 장기화에다 만성적인 노동력 부족으로 겹겹이 고통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지방 중소기업들도 속속 개성공단 방문길에 오를 태세다. 경남도 대표단 150명은 다음달 12일 1박2일 일정으로 개성공단에 들어간다. 김경웅 민간남북경제교류협의회 위원장은 “2006년부터 추진하게 될 2단계 150만 평 중 100만 평 공단 개발은 전문성 있는 중소기업중앙회가 시행사로 나서 담당하게 해야 한다”며 “그래야 산업정책적 수요를 충족하는 동시에 개성공단 개발사업의 효율화를 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협중앙회는 개성공단 2차 사업부지 200만 평 가운데 절반인 100만 평을 현대아산과 공동으로 개발하기로 합의하고, 조만간 사업신청서를 통일부에 낼 것으로 알려졌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덩달아 외국 기업들도 개성공단 진출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지난 11월2일에는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EUCCK)가 주한 유럽국가 대사관과 외국인 투자기업 대표단 70여 명을 이끌고 개성공업지구를 시찰했다. 소속 회원사들이 간절히 원했기 때문에 성사됐다고 한다. 이들은 현지에서 개성공단의 개발 과정과 투자 방법 등을 꼬치꼬치 물었다.

그렇다면 대체 시범단지 입주기업들은 얼마나 만족하고 있을까. 아직도 풀어야 할 문제가 많지만 대체로 개성공단에 입주하길 잘했다는 견해가 다수인 듯하다. 먼저 북쪽 인력의 노동생산성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 의류업체 관계자는 “애초 북쪽의 노동생산성을 80% 수준으로 잡았는데, 현재 85% 정도로 예상보다 빠르게 생산성이 올라가고 있어 고무적”이라고 말했다. 다만 개성공단에 들어가기 위한 초청장 발급에 1개월이 걸리고, 출입신청을 1주일 전에 해야 하는 등 통행이 불편하다고 말한다. 통관 절차가 까다롭고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하소연이다. “개성공단 내 공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10시 반에서 11시이고, 점심을 먹고 나서 한두 시간 일하고 공장을 돌고 그러면 3시에 모여 인원 파악하고 서울로 돌아와야 한다.”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4시간 남짓하다는 얘기다. 더구나 기계가 고장나면 기술자가 제때 들어가야 하는데도 방북 초청장을 받는 데 한 달이 걸려 발만 동동 구른다. 개성공단에서 생산되는 제품과 물자의 통관 절차도 복잡하기 그지없단다. 면허 절차가 복잡하고 원산지 증명 등 각종 서류를 세관에 제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들 꾸지람하면 인권모독?

한 신발업체는 북한 노동자의 손재주를 높게 평가한다. 이 기업은 앞으로 더 많은 기업들이 개성공단에 투자할 수 있도록 선도적으로 성공사례를 꼭 만들겠다고 힘주어 말하기도 한다. 이제 어느 정도 자신감이 붙은 셈이다. 물론 이 기업도 애로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담보가 없는 기업들은 남북협력기금을 대출받기 어려워 자금조달이 힘들다는 것이다. 화장품 용기를 생산하는 기업은 일단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안도하는 분위기다. 하루 24시간을 2교대로 근무할 정도로 공장이 잘 돌아가고 있단다. 일본인 기술자 2명이 상주하면서 품질관리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통신 연결이 안 돼 불편하다고 한다. 현재 개성공단 내 공장과 서울 본사의 통화는 개성공단관리위원회와 현대아산사무소의 전화와 팩스로만 가능하다. 각 기업에는 전화와 팩스가 없는 셈이다. 지난 7월 KT가 통신 인프라 설치를 위해 미 상무성에 전략물자 개성공단 반출 신청을 해놓은 상태다.

북쪽 근로자를 직접 뽑지 못하고 작업지시를 내릴 수 없는 점이 고충이라는 기업도 있다. 북쪽 근로자들에게는 직장장을 통해서만 작업 지시를 할 수 있고, 한 번 꾸지람을 하면 북쪽이 인권 모독이라고 주장해 불편하다는 것이다. 특히 남쪽과 달리 능력이 모자라는 근로자를 맘대로 교체할 수 없는 점도 골칫거리다. 개성공단 입주자기업 대표인 김기문 로만손 대표이사는 11월2일 한 세미나에서 “현재 인력채용은 입주기업이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를 거쳐 북쪽 인력 알선기관에 신청을 하고 협의 후 인력 알선료 1인당 17달러를 지급하고 이뤄진다”면서 “개성공단 입주기업이 직접 북한 노동자를 선발해 고용하고 해고 권한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북쪽 근로자 관리를 위해 채용뿐 아니라 상벌 규정, 해고 권한에 대해서도 입주 업체가 자율권을 가질 수 있도록 관련 부문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개성공업지구 회계검증규정’도 발표

아직은 긍정과 부정이 교차하는 개성공단의 모습이다. 이런 탓에 시범단지를 성공작으로 평가할 수 있을지에 대해 조심스런 견해를 표시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김기문 로만손 대표이사는 10월25일 “기업은 기다리면 망한다. 이런 상황(문제점들)이 빨리 해결돼야 하고, 시범단지가 성공을 못해 향후 (개성공단에서) 기업활동을 할 수 없다고 인식되면 분양 자체가 문제가 된다”고 지적했다. 박윤환 무역협회 남북교역팀장도 “시범단지에 입주한 15개 업체의 운영 결과 성공적으로 갈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데, 2단계를 전제조건으로 달고 3단계까지 개발해서 2천만 평을 개발하는 것이 정답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다소 신중한 견해를 밝혔다. 정부는 남북관계의 진전과 중소기업들의 입주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1단계 100만 평 사업과 더불어 애초 2007년부터 추진하려던 2단계 150만 평 개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개성공단은 북핵 문제를 핵심으로 한 국제정치적 불안정성이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이다. 여기에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인프라 구축이나 노동력의 신속한 조달 등이 우려 요인으로 꼽힌다.

그럼에도 개성공단 시대의 대세는 누구도 막기 어려워 보인다. 남북한 당국의 개발 의지가 확고한데다, 많은 기업들의 현실적 이해관계가 개성공단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 당국은 남쪽 기업들의 각종 기업활동에 따른 편의를 봐주기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공단에 파견한 근로자들의 생산성 향상을 독려하고 법적·제도적 안정장치 마련에도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는다. 10월28일에는 그간의 부동산, 보험, 회계, 기업재정규정 등을 마련한 데 이어 ‘개성공업지구 회계검증규정’을 발표해 입주 기업들의 환영을 받았다. 이 규정은 개성공단 기업운영에 필수적인 회계감사를 법적으로 규정한 데 의미가 있다. 개성공단은 끊임없이 진화하는 생물과 같다. 통신, 통행, 통관 등이 흐르는 강처럼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날이 오면 미리 개성공단에 들어가지 못한 기업들은 땅을 치며 후회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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