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암과 싸우며 남쪽 손님 맞았다

등록 2005-10-13 00:00 수정 2020-05-03 04:24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의 성공적 개업 이끈 북쪽 주역 새별총회사 리명관 사장…사실상 평양 최초의 남북합작 주식회사는 자금 안정의 벽을 넘어 성공할 것인가

▣ 평양=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새별총회사 리명관 사장. 남쪽에서는 낯선 이름이다. 그는 안동대마방직(회장 김정태)의 북쪽 합영사업 파트너다. 이 사장은 남북한 최초의 실질적 합영회사인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의 현지 공장장 구실을 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는 임파선암을 앓고 있으며, 암이 사타구니에까지 퍼진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50대 안팎의 전형적 기술관료다. 거의 매일 항암 치료를 받고 있지만 그가 얼마나 더 살지는 순전히 하늘의 뜻에 달려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는 일이 즐겁다. 북녘 땅의 경제가 다시 일어서는 데 보탬이 된다면 눈을 감기 직전까지 일을 손에서 놓지 않겠다는 자세다. 이런 그의 숭고한 뜻은 지켜보는 많은 이들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광고

공장 정상 가동 위해 죽을 힘 짜내…

그는 고통스런 몸을 이끌고 이번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의 개업식을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 거의 며칠 밤을 뜬눈으로 새웠다. 왜 지난 며칠간 사투를 벌인 것일까. 남북한이 평양합영공장 개업식을 열기로 합의한 날짜는 10월1일이었다. 그런데 개업식을 열기 위해서는 공장 가동에 필요한 직기 88대를 남쪽에서 지원받아야 했다. 지난 4월8일 육로를 통해 1차로 36대가 올라갔으나 나머지 52대는 개업식을 불과 사흘 앞둔 9월27일에야 평양 공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이로써 평양대마방직합영공장은 탈수, 섬유, 마방적, 편물, 양말, 타월, 자카드직물, 염색가공 등 모두 8개 공장설비를 제대로 갖추게 됐다. 리명관 새별총회사 사장은 여성 근로자 등과 힘을 합쳐 적지 않게 무게가 나가는 이 직기들을 공장 2, 3층으로 나르는 등 개업식에 맞춰 공장이 정상적으로 가동되게 하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

그는 북쪽 당국으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모범적인 산업일꾼으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온몸으로 남쪽 합영 파트너 기업과의 약속을 지킴으로써 많은 기업인들에게 찬사를 받았다. 리 사장은 합영공장 탄생의 실질적인 주역이었으나 정작 많은 남쪽 기업인들도 참석한 10월1일에는 모자를 꾹 눌러쓴 채 멀찌감치에서 개업식을 지켜봐야 했다. 항암 주사를 맞으며 암 덩어리와 싸우는 중이라 힘들어하는 모습을 남쪽 기업인들에게 보이고 싶지 않아서란다. 안동대마방직의 김용현 기획실장은 “리명관 사장은 합영공장의 성공을 위해서는 없어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무슨 수를 써더라도 낫게 해주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광고

이처럼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는 남북한 실무자들의 피와 땀으로 일궈지고 있다. 남쪽에서 온 은행이나 경제단체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넬 때마다 북쪽 인사들은 이런 당부를 잊지 않는다. “그저 각자가 서 있는 곳에서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가 성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평양대마방직합영공장 협력 사례만 봐도 북한 당국이 얼마나 눈물겹게 남쪽 기업인들의 투자를 유치하려 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이는 북한 최고위층의 대마 산업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애정을 보여준다. <노동신문>은 온 나라를 대마숲으로 뒤덮자며 집집마다 대마 재배에 나설 것을 촉구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평양 대마 농장을 방문해 큰 관심을 표시했다. 김용학 새별총회사 총사장은 “평양대마방직합영사업은 민족 공동의 이익에 부합하는 민족 애국 사업”이라며 “질 좋은 제품을 생산해 민족 섬유산업 발전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경영은 남쪽이, 공장 실무는 북쪽이

전문가들은 일단 대마의 특성을 알고 나면 누구나 대마를 탐낼 만하다고 말한다. 이들은 대마는 한마디로 ‘신비의 천연섬유’라고 규정한다. 대마의 용도가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대마는 벽지는 물론 벽돌 제작의 원료로도 쓰인다. 안동대마방직은 우선 황해도 해주와 사리원, 벽성 등지에서 대마를 키워 평양합영공장에서 삼베를 원단으로 한 벽지, 양말, 속옷, 병원복, 골프웨어 등을 생산해 국내와 북한 내수용으로 판매할 작정이다.

광고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는 남쪽 안동대마방직(회장 김정태)과 북쪽의 새별총회사가 각각 500달러씩 투자해서 만든 남북 상생의 새로운 모델이다. 정부에서도 남북협력기금을 지원하는 등 각별한 애정을 쏟고 있다. 개성공단이 아닌 평양에 세워지는 남북 합영기업에 기금을 쓴 사례는 처음이다. 얼마 전에는 한국산업은행으로부터 15억원의 시설자금을 대출받기도 했다. 김정태(63) 안동대마방직 회장은 “대마산업이 북한의 농촌경제에 단비 같은 구실을 할 것이며, 남한 경제에도 도움이 되는 새로운 협력모델로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합영공장을 세우고, 직기를 육로로 수송하기 위한 허가를 받는 것도 어려웠지만 정부의 지원이 비정부기구(NGO)들의 일회성 행사나 개성공단 등에 집중되고, 정치적 의미가 큰 평양 진출 업체들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게 안타깝다고도 했다.

합영기업이란 남북한 기업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공동으로 운영하며 투자 몫에 따라 분배하는 기업을 일컫는다. 쌍방이 공동투자, 공동경영을 하고 출자한 몫에 따라 이윤을 분배받는다. 기업의 채무에 대한 책임을 출자자들이 자기 출자액에 따라 한정하는 유한 책임회사라는 것이다. 경영관리상 완전한 독자권을 갖고 수출입 업무를 자체의 결심에 따라 진행하는 권리를 가진다. 평양 공장의 경우 경영은 남쪽이 맡고, 공장 실무는 북쪽이 담당한다. 일부 기업인들은 이번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는 평양에 세워지는 최초의 주식회사나 다름없다는 견해를 내놓는다. 안동대마방직의 김정태 회장은 남북이 각 4명씩 참여하는 이사회의 대표이사를 맡게 된다.

일각에서는 50 대 50 지분에 따른 경영권 분쟁 가능성을 제기하지만 김 회장은 서로 믿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오지도 못했다고 일축한다. 김 회장은 “공동 지분이지만 우리가 운영자금을 더 대면 수익을 더 받을 수 있도록 계약했다”고 말했다. 안동대마쪽은 초기에는 기술직 6명과 관리직 2명이 6개월마다 연장 가능한 장기 비자를 신청해 평양에 상주하고 점차 관리직원 배치를 늘려갈 예정이다. 김용현 안동대마방직 기획실장은 “우선 10월20일 전까지 기술자가 들어가 당분간 기술지도 등을 하면서 상주해야 합니다. 양말 제작 기계도 아직 덜 들어간 게 있어 마저 보내야 하고요. 기계들을 보낸 뒤에는 공장 건설을 위해서 철근 등 자재를 보내 본공장 준공을 앞당기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안동대마방직 김정태 회장의 꿈

평양 동대원구역에 자리잡은 본 공장이 세워지고 정상 가동되면 약 1만명의 북한 노동자들이 일하게 된다. 김정태 안동대마방직 회장은 “2007년까지 북한 전 지역에 6천만평씩의 대마공장 500여개를 조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는 북한 농촌 5만 가구 20만명의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셈이다. 김 회장은 합영공장이 순조롭게 진행될 경우 사회복지시설도 지을 요량이다. 이를테면 ‘평화의 집’을 지어 북한 주민들을 위한 무료 급식소, 무료 진료소 등으로 쓸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김 회장은 북한 당국이 섬유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게 여간 다행스럽지 않단다. “지난 60, 70년대 한국이 그랬던 것처럼 북한도 섬유산업의 기초를 다져야 서비스나 정보통신 산업으로 발전할 수 있습니다. 북한은 남쪽에서는 사양산업으로 전락했지만 북쪽에서는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섬유산업 관련 기술이전을 받으면 서로에게 큰 도움이 됩니다.”

그렇지만 평양대마방직합영회사가 헤쳐나가야 할 난관은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안정적인 운영자금 조달이 큰 과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개업식은 말 그대로 시작에 불과하다. 그러나 평양 합영공장의 실패는 남북한 모두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누구도 대북사업에 뛰어들려 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남북이 힘을 합쳐 공장을 성공적으로 운영함으로써 성공적인 민족기업의 모델을 만들어 다른 기업들이 더 많이 진출하도록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10월1일 남북 기업인 사이의 대규모 투자상담회를 성사시킨 주역이기도 한 김 회장의 어깨는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광고

4월3일부터 한겨레 로그인만 지원됩니다 기존에 작성하신 소셜 댓글 삭제 및 계정 관련 궁금한 점이 있다면, 라이브리로 연락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