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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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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 없는 테러의 비밀

등록 2005-10-12 00:00 수정 2020-05-03 04:24

계속되는 발리의 악몽, 수많은 이들의 희생 속에 인도네시아 군부만 혜택
배후인물로는 아프가니스탄 군사학교 졸업한 줄카르나엔 지목되고 있지만…

▣ 자카르타=아흐마드 타우픽(Ahmad Taufic) 시사주간지 <템포> 기자

누구도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지 못한다. 10월1일 토요일 발리의 쿠타 광장도 마찬가지였다. 쇼핑 플라자가 굉음을 내며 무너져내린 오후 7시45분(현지시각)까지 여행객들은 주말의 흥청거림에 취해 왁자지껄하게 떠들고 있었다. 사고 지역은 해변에서 겨우 몇m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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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질 것 예상했지만 어딘지는 몰랐다

‘라자 바 & 호텔’에서 시작된 폭발은 축제 같은 분위기를 일순간에 아비규환으로 바꿔버렸다. 사람들은 폭발 연기가 가득 찬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방으로 소리지르고 울먹이며 뛰어다녔다. 관광객들이 즐겨 찾던 명소였던 그 식당은 폐허로 변했다.

그 광경은 참상 그 자체였다. 바에 놓여 있던 테이블·의자·꽃병이 곳곳에 나뒹굴었고, 유리창은 완전히 산산조각났다. 쿠타 광장의 사설 경비원 와얀 위르타는 “오늘은 정말 끔찍한 밤”이라고 말했다.

그로부터 20분쯤 전, 발리섬의 남부 짐바란 해변의 나오난 카페에서 또 다른 폭탄이 터졌다. 쿠타와 같은 혼란이 그곳에서도 재연됐다. 그리고 5분 뒤, 그곳에서 100m쯤 떨어진 메네가 카페에서 또 다른 폭탄이 불을 뿜었다. 경찰이 즉시 차단선을 설치했고, 그곳에서 수상한 물체 4개를 찾아냈다. 터지지 않은 폭탄이었다. 그것들은 모래밭에 묻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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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2년 이후 3년 만에 발생한 폭탄 테러의 사망자는 22명에 달했고, 74명이 중경상을 당했다. 그날 수실로 밤방 유도요노 대통령은 발리 주민과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섬을 찾았다. 대통령은 “이건 분명한 테러행위”라고 말했다.

대통령은 지난 7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에 테러가 일어날 수 있다는 보고를 받은 뒤, 테러를 추적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통령이 받은 보고서는 타격 목표를 발리가 아닌 자카르타로 꼽고 있었다. 대통령은 “자카르타의 보안 검색을 강화하라”고 명령했다. 관계당국은 자카르타와 발리를 오가는 차량에 대한 보안 검사를 시작했고, 호텔 등 여행자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의 경계도 강화됐다. “분명히 공격은 공공장소를 노린 것”이라고 대통령은 말했다. 보안당국은 세 폭탄은 모두 자살 테러자에 의해 운반됐다고 확인했다.

지난 8월부터 발리 경찰 책임자 마데 망쿠 파스티카는 9~12월에 보안이 강화될 것이라며 호텔 관계자들에게 방문객들의 보안 검사를 철저히 하라는 지침을 내려보냈다. 경찰은 시민들에게 주변에 보이는 낯선 사람들에게 좀더 주의를 기울여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의 다음 목표를 알아맞히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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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 뒤 호주 경찰이 사라졌다?

인도네시아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이번 테러의 수법이 2000년 크리스마스 폭발 때와 거의 비슷하다고 밝혔다. 그때는 폭탄이 9개 지역의 22개 교회에서 동시에 폭발했다. 그래서 제마 이슬라미야가 이번 사건의 범인이라는 쪽으로 의혹의 시선이 옮아가고 있다.

그 당국자는 지난 7월 남칼리만탄의 마타푸라에서 있었던 모임에 대해 소개했다. 이 모임은 즉시 대통령에게 보고됐다. 그때 정보당국은 알파벳 없이 아랍어로 쓰인 서류 한 뭉치를 발견했다. “이번에 우리가 발견한 문서는 폭탄을 운반할 자원자를 찾는 것이었다.” 비슷한 문건이 3년 전 발리 폭탄 테러가 일어나기 전에도 발견됐다. 한달쯤 지나 그들은 12명의 지원자가 모였다는 정보를 얻었다.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목표가 자카르타라고 생각했다.” 그는 자카르타의 보안이 강화된 탓에 목표가 발리로 바뀐 것 같다고 추측했다. 그는 이번 폭탄 운반자는 인도네시아에 근본주의 이슬람 국가를 만들려는 다룰이라는 이슬람 강경파 그룹쪽에서 충원된 것으로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은 2년 전 자카르타 JW메리어트 호텔 테러 때부터 자원자를 모집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제마 이슬라미야 핵심 멤버들이 3년 전의 발리 테러로 와해된 탓에 이번 사건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2000년 크리스마스 테러와 2002년 발리 테러 때도 같이 있었다.” 그는 모든 테러는 아리스 수마르소노라는 별명을 가진 줄카르나엔에 의해 계획됐다고 말했다. “누르딘 M. 톱과 아즈라히는 그의 행동대원일 뿐이다.”

줄카르나엔은 45살로 제마 이슬라미야 군부쪽의 수뇌다. 그에 대한 정보가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년 전 제마 이슬라미야 고위 간부 아흐마드 로이한(일명 사아드)이 잡히면서부터다. 사아드는 4년 전 자바 중부의 솔로 지역에 있는 타왈망우에서 줄카르나엔을 만났다고 시인했다. 이 사건 이후 발리 폭탄 테러가 터졌다.

줄카르나엔은 다우드라는 또 다른 가명을 갖고 있다. 이슬람계 학교에서 그를 가르쳤던 무알리프 로시디는 “그는 체격이 좋고 조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1975년에 입학해 6년 동안 공부했다. 줄카르나엔은 반에서 5등 안에 드는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가드자 마다 대학 생물학부에 입학할 수 있었다.

폭탄 테러범인 나지르 아바스는 법정에서 줄카르나엔이 발리 폭탄 테러의 배후에서 했던 역할에 대한 좀더 신빙성 있는 증언을 했다. 나지르는 1987년 아프가니스탄의 성전에 참전했으며, 이후 남필리핀 민다나오에 있는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게릴라에 참여했다.

인도네시아의 무자헤딘(성스러운 전사)들에게 줄카르나엔은 존경받는 선배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 있는 군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는 아프간 무자헤딘들의 전설인 스에흐 압둘라술 샤아프 소유의 캠프 사다흐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게릴라전의 수법, 무기와 폭탄을 만드는 법, 독도법, 감시 기술 등 전쟁 기술을 배웠다.

인도네시아 군경은 발리 폭탄 테러가 이전 테러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존 하워드 오스트레일리아 총리는 이번 테러의 배후에는 제마 이슬라미야가 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무자헤딘 의장 이르판 S. 아와스는 이번 비극을 놓고 외국을 비난했다. 그는 “우리는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와 이슬람 주민들에게 숨기고 있는 게 있다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비디오 카메라로 녹화된 현장 화면에서 폭탄 테러가 일어난 지점에 있던 오스트레일리아 연방경찰이 폭발 뒤 사라진 점을 문제 삼았다.

발리 관광산업만 죽을 지경

발리를 폭파시킨 무슬림들에게서는 어떤 이데올로기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더 많은 인도네시아인과 무슬림 희생자가 생겼을 뿐이다. 경제난과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숨겨진 어젠다’가 사람들을 자살 폭탄 테러로 몰았을 것이다. 10월1일 인도네시아 정부는 원유 가격을 87~180% 올렸다. 생필품 가격도 계속 오른다. 이런 요인들이 사람들을 허탈하게 하고, 자살 폭탄 테러에 뛰어들게 만든다. 이런 비극을 통해 이익을 얻는 것은 군부다. 10월5일 인도네시아군(TNI)의 날 행사에서 TNI 최고사령관 엔드리아토노 수타르토 장군은 인도네시사 군부가 지역 명령권을 돌려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도네시아 군부는 사람들이 군에 더 많은 테러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엔드리아토노 장군은 “7년 전 수하르토 정권이 무너진 뒤, 사람들이 정보기관에 가는 것을 꺼린다”며 “이는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정보기관은 사람들이 기관을 돕고 정보를 제공할 때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군 장교들과 의심스러운 문제들에 대한 정보를 나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이번 폭탄 테러로 발리의 관광산업은 다시 한번 된서리를 맞게 됐다. 관광은 경제위기 아래서도 끄떡없는 편리한 사업이다. 지난 2002년 10월 이후 발리를 찾는 관광객은 그전 최고치를 기록한 130만명에 견줘 100만명 이상 줄었다. 지난해 방문객은 120만명으로 예전 수치를 가까스로 회복했지만, 이번 테러로 발리는 관광객들을 다시 불러모으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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