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미국·일본 등 전세계에 퍼진 38개국 1500여명이 모여 제4차 세계대회
국내 기업인들과 함께 지구적 수준의 한민족 통합 경제네트워크 구축 신호탄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중국에 화상이 있다면, 우리나라에는 ‘한상’(韓商)이 있다. 지난 9월13일부터 사흘간 경기도 한국국제전시장(KINTEX)에서는 제4차 ‘세계한상대회’가 열렸다. 한상대회는 2002년부터 재외동포재단의 주관 아래 매년 열리고 있다. 이번 대회에는 중국·미국·일본 등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38개국 1500여명의 한상이 참여했다. 참가한 기업인은 업종별로 식품·농수산 분야 149명, 건설·건축 102명, 미용 생활용품 87명, 정보통신 79명, 전기전자 73명 등으로 나타났다. 세계한상대회는 전세계의 주요 재외동포 경제인과 경제단체들을 한상이라는 이름으로 한데 묶어 글로벌 한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비즈니스 축제다.
동대문에서 브라질까지, 한상섬유벨트!
2003년 현재 해외에 거주하는 재외동포는 151개국에 607만명이다. 우리나라 총인구 대비 12.7%인데, 모국 인구 대비 재외동포 비중은 유대인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절대적 수치로 따지면 중국계 화교·화인들이 가장 많고, 재외 한인은 인도인·이탈리아인·유대인에 이어 다섯 번째다. 그러나 세계 각국에 흩어져 있는 한상의 수와 경제 규모에 대한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해외 거주 재외동포 600만명의 자산 규모는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25%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3년 한국 경제 규모를 4800억달러로 본다면 해외 한인의 자산 규모는 1200억달러로 추정된다. 교역 규모로 보면, 해외 한인 수가 두배로 늘어날 경우 국내 수출은 16%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다. 2003년 재외동포의 국내 투자액(자금 송금 및 관광 지출)은 약 51억달러로, 2002년 외국인 총투자액(91억달러)의 56.8%에 달한다. 화교의 중국 투자가 중국 경제성장을 이끌었듯, 한상과 국내 기업인들이 뭉쳐 한민족 경제 공동체를 구축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엔진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김원호 선임연구위원은 “국경을 넘나드는 교역이 활발해지고 있는 요즘, 해외 한인이 모국 경제에 기여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한민족 경제 네트워크는 구축 비용이 거의 제로인 반면 이 네트워크가 경제활동에서 창출하는 가치는 매우 크다. 한민족 경제의 외연 확장이라는 면에서 한상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전세계에 걸쳐 500대 한상 기업을 발굴하고 업종별로 국내 동종 기업들과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며 “한상은 자영업 비율이 높아서 모국과의 교역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한상을 통한 수출 가능성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한상대회에서는 특히 ‘한상섬유벨트’라는 민족간 산업연대가 구축됐다. 한상섬유벨트는 LA한인의류협회, 브라질한인상공회의소, 한국섬유산업연합회, 동대문의류봉제협회 등 섬유업계에 종사하는 국내외 한상들의 글로벌 협력체로 출범했다. 동대문, 대구·경북, 미국, 아르헨티나, 브라질을 연결해 섬유·패션산업의 협력·교류를 추구할 예정이다. 국내에서는 미국과 중남미에 섬유 기술이전과 정보를 제공하고, 미국 한상쪽은 중남미에 생산기지를 건설하고, 중남미쪽 한상은 국내와 미국쪽의 지원을 받아 생산기술을 혁신하는 등 글로벌 협력 체제를 갖춘다는 구상이다. 한국봉제기술연구소 김규만 이사장은 “아르헨티나 교민의 80%가 섬유·봉제 산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생산기지가 현지 볼리비아 상인들한테 넘어간 상태이고 한인들은 하청 생산으로 전락하고 있다”며 “볼리비아인들의 섬유 생산권 장악에 맞서 모국을 통해 봉제기계, 생산관리, 재단사에 대한 기술이전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LA한인의류협회 최대호 회장은 “한인 의류제조업체들이 밀집해 있는 LA의 자버(Jobber)라는 곳이 LA 한인 커뮤니티에서 경제적으로 큰 역할을 하고 있는데, 최근 폐업하는 봉제공장이 늘고 있다”며 “전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상들이 섬유와 의류 벨트를 타고 서로 사업을 키워주고 함께 성장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내년엔 식품·농수산 연대 출범
한상섬유벨트 출범에 대해 재외동포재단 이광규 이사장은 “이번 대회는 한상과 국내 기업인들과의 교류 물꼬를 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업종별 실질적인 네트워크로 섬유한상이 구축된 것은 섬유한상이 해외에 가장 먼저 진출해 많은 시장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수백건의 1대1 비즈니스 미팅과 수출입 상담을 통해 3억6천만달러의 실적을 올렸다. 또 해외취업박람회도 열려 14개국 112개 동포 기업체에 200여명이 채용됐다. 이번 대회에서 대회장을 맡은 미국의 임창빈 창텍스 회장은 “국내 기업과 한상간의 만남이 화학적 결합으로 이어진 점이 최대 성과”라며 “앞으로 한상이 국내 기업들의 주요한 현지 거점 역할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상대회 사무국은 “식품·농수산 분야에 종사하는 한상이 많은 만큼 내년 5차 세계한상대회에서는 음식산업쪽에서 산업연대를 출범시킬 예정”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인쇄업을 하는 민대길(60)씨는 지난해 제주도 3차 세계한상대회에서 만난, 중국 산둥성 옌타이의 조선인 한상 5명과 한-중 합작사업을 시작했다. 한상대회에 참가한 최아무개씨 등 조선인 사업가 5명이 플라스틱 자원재활용 사업을 한-중 합작사업으로 제안했는데, 한상대회에 참가했다가 우연히 이 제안을 접한 민씨가 뛰어들어 합작사업이 성사된 것이다. 조선인 한상 5명이 3억원을, 민씨가 4억5천만원을 출자해 ‘우신’이라는 한-중 합작법인을 설립했다. 민씨는 “사업에서 이익이 남으면 옌타이에 한국어학교를 세우겠다는 말에 감동받아 합작사업에 나섰다”며 “원유 가격이 올라 중국에서 재생 자재가 부족한 실정인데, 사업에 참여하는 중국쪽 한상이 운영하는 공장에서 앞으로 생산될 재활용 플라스틱 제품을 쓰기로 하는 등 판로는 확보돼 있다”고 말했다. 임씨는 요즘 전라남도쪽에서 공장 부지를 물색 중이다.
물론 한상은 화상에 비해 이민의 역사가 짧고 세계적 규모의 한상이 미미하다. 한상의 중추를 이루는 대부분의 상공업체들은 아직 중소 규모에 불과하다. 또 한상은 화상처럼 혈연·지연·업연에 의한 강한 유대보다는 민족애와 동포애 등 추상적 정서에 의존해 묶이고 있다. 그러나 한상과 국내 기업인들을 연결해 지구적 수준의 한민족 통합 경제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사업은 이제 막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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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4차 세계한상대회에 참가한 한상 가운데 거상(巨商)으로는 25명의 ‘해외 리딩 CEO’와 42명의 ‘차세대 경제 리더’를 꼽을 수 있다. 해외 리딩 CEO로는 미국의 창텍스(제조·화학) 임창빈 회장, 인도네시아의 코린도그룹(제조·펄프) 승은호 회장, 미국의 레이니어그룹(관광·호텔) 홍성은 회장, 일본의 이나자와(서비스) 김건치 회장, 일본의 마루한(서비스) 한창우 회장, 중국의 베이징 아시안스타그룹(건설·유통) 송재국 회장, 말레이시아의 헤니권 코포레이션(서비스) 권병하 회장, 라오스의 코라오그룹(무역·자동차) 오세영 회장, 미국의 로열아이맥스(무역·가방) 정진철 회장, 미국의 파커듀란트 인터내셔널(건축) 허승회 회장, 미국의 코카콜라 아시안마케팅(유통·음료) 이동 부사장, 일본의 럭키그룹(서비스) 김일웅 사장, 미국의 STSC(컨설팅) 릭이 회장 등 25명이 참석했다. 대부분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했으며, 연간 매출액 3천만∼8억달러를 올리는 그룹 경영자들이다. 이들은 거주 국가에서 현재 한인상공인단체나 한인무역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한상을 이끌어갈 차세대 경제리더는 비교적 젊은 재외동포 기업인들로 구성된다. 이들은 미국의 다국적기업인 듀라코트 서정일 부사장, 미국 하와이은행 곽재원 부회장, 카자흐스탄의 컨설팅 CEO인 김뱌체슬라브, 미국의 A&J뮤추얼 김대인 사장, 브라질의 섬유기업인 신테크필사 김성훈 사장, 중국의 에너지기업인 차이나권 권혁대 사장, 우즈베키스탄의 김알렉세이 사장, 미국 샌디에이고의 청년 사업가인 피오르마맥스 김영식 사장, 인도네시아에서 성공한 한인 2세인 김종헌 사장(프리마무다), 버마에서 제조업 공장을 운영하는 머큐리레이스 김춘섭 사장, 미국의 대형 로펌에 근무하는 김한신 변호사,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성공한 여성 사업가 박은덕(기업 컨설턴트)씨, 독일의 컨설팅 사업가인 안병주씨, 키르기스스탄 국회의원인 신라마노비치 등 42명이다. 재외동포의 높은 교육열로 차세대의 경우 의사·변호사·과학기술자·회계사·금융업 등 전문직 종사자가 많은데, 의료·법률·교육·회계시장 개방을 감안하면 차세대 네트워크의 필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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