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골치아픈 현안은 대부분 총수 가문의 소유·지배 구조와 연관
변칙 세습·공정거래법 논란 등 기업과 소유주의 이해 충돌</font>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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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은 한 덩어리로 여겨진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그룹 계열사들의 눈부신 실적은 곧 이 회장 ‘개인’의 경영 역량으로 치환되고, 삼성이란 ‘기업’이 대학에 낸 기부금은 이 회장의 명예박사 학위로 돌아온다.
거꾸로 변칙적인 경영권 세습 등 이 회장 일가를 둘러싼 갖가지 논란은 곧 삼성이란 기업에 대한 비난으로 쏟아진다. ‘안티 삼성’ 사이트 개설, 삼성 제품 불매운동 등 반삼성 분위기는 실상 삼성이란 기업보다 이 회장 개인 또는 일가에서 실마리를 제공한 예가 많다. 이 회장이 1987년 이후 18년 동안 그룹의 절대 지존으로 군림하고 있으니 그와 그룹이 한 운명체로 여겨지는 게 어쩌면 당연한지 모른다.
기업의 에너지가 엉뚱한 데로 흐른다
삼성’이란 화두를 둘러싼 대립 전선의 이쪽이나 저쪽 모두 이처럼 회장 개인과 그룹을 동일체로 여기는 시각이 강한데, 이런 인식은 온당할 것일까?
삼성그룹이 맞닥뜨린 골치 아픈 현안들을 늘어놓고 보면, 일관된 특징을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그룹이나 계열사 고유의 사업적인 이익 추구 과정에서 빚어진 것은 찾아보기 어렵고, 거의 예외없이 이 회장 가문의 소유·지배 구조와 연관돼 있다는 점이다. 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삼성에버랜드의 전환사채(CB) 발행에서 시작된 불법·변칙 세습 논란을 우선 들 수 있겠고, 삼성생명·삼성카드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 불법 초과소유 시비, 비금융 계열사 지분을 일정하게 낮추도록 한 공정거래법 조항에 대한 헌법 소원 제기도 그런 부류다.
여기에 이 회장의 선친인 이병철 전 회장의 유훈에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진 무노조 경영과 이를 관철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무리수, 가까이는 옛 안기부 불법 도청 테이프(X파일)에서 불거진 ‘재벌 우위의 정·경·법 유착’ 논란에 이르기까지 삼성을 괴롭히는 주요 이슈들은 이 회장 가문의 문제와 엮여 있다.
적어도 사회적 현안으로 불거진 삼성 관련 의제들을 놓고 볼 때 삼성과 이 회장 가문의 이해관계는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다른 정도가 아니라 충돌하는 양상을 많이 볼 수 있다. 이 회장 가문의 소유·지배력을 변칙적으로 강화하려는 갖가지 무리수가 그룹과 계열사에 버거운 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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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쪽의 사업적 판단에서 볼 때는 아무런 변수가 되지 않을 현안에 발목이 잡혀 기업 에너지가 엉뚱한 곳으로 흐르고 있다면 비약일까? 이 회장 가문으로 가야 할 외부 공격의 화살이 기업쪽에 쏟아지고, 이를 방어하는 데 그룹 계열사들이 동원되고 있지 않은가. 이 회장 일가의 지배력을 높이는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등이 금전적 피해를 입은 직접적이고 명시적인 비용도 만만치 않다.
당장 무노조 경영만 해도 그렇다. 초일류 기업이라는 삼성 브랜드 뒤편에는 항상 ‘노조 탄압 기업’이라는 불명예스런 딱지가 따라붙는다. 삼성의 관리력 정도면 노조가 설립돼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을 텐데 막무가내로 노조를 용인하지 않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초일류 기업 삼성과 이건희 회장 일가의 무노조 경영 철학이 충돌하고 있다면 잘못된 해석일까? 이런 충돌은 2007년부터 복수 노조 시대가 개막돼 삼성이 유령 노조를 동원해 노조 설립을 막을 수 없게 되면 격렬한 파열음을 내면서 삼성 기업을 뒤흔들 수 있다.
이상한 건 창업주 이병철 회장이 왜, 그리고 어느 정도로 노조 거부 방침을 밝혔는지 제대로 알려진 게 없다는 사실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상수 상무(인사조직실장)는 “사실 이병철 회장께서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 노조는 안 된다’고 말했다는데 잘못 보도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은 단지 ‘종업원들의 불만이 커지면 노동운동으로 이어지니 그러기 전에 불만이 생기지 않도록 해줘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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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거래법 위헌 소송의 무리수 둔 이유
삼성생명, 삼성화재, 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 3사가 지난 6월 공정거래법 11조에 대해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은 또 어떤가. 당시 헌소 제기는 이들 3사의 기업 이익을 위한 것이었을까?
문제의 공정거래법 11조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기업집단(55개 그룹)의 금융회사 또는 보험회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하되 △임원의 선임 또는 해임 △정관 변경 △합병 및 양도 등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맞서 경영권을 방어해야 할 때는 총수나 다른 비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합쳐 15%(지금은 30%)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법규에 따를 경우 삼성의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난 6월 말의 삼성전자 지분 구조를 보면, 총수인 이건희 회장(1.91%)과 계열사 지분은 16.08%이며, 이 가운데 금융 계열 지분은 8.52%(삼성생명 7.26%, 삼성화재 1.26%)이다. 따라서 삼성쪽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지분 중에서 1% 남짓에 대한 의결권을 갖지 못할 뿐이다. 그나마 부칙의 경과 규정에 따라 의결권 한도를 15%로 줄이는 시한은 참여정부 임기를 훌쩍 넘기는 2008년 4월1일로 잡혀 있다.
어떻게 보더라도 위헌 소송 당사자인 삼성 계열 3사라는 기업쪽에 끼치는 영향은 크지 않다. 더욱이 해당 법 조항은 지난해 전경련으로 대표되는 재계의 합의까지 얻어 국회를 통과했다. 그런데도 삼성 3사가 갖가지 비난을 무릅쓰고 위헌 소송을 낸 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금융 계열사들을 매개로 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하기 위해 1차 방어선을 친 것으로밖에 풀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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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그런 복잡한 규정으로 기업을 괴롭히느냐고 힐난할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는데, 금융·산업 자본의 분리는 시장경제 질서의 한 축으로 대부분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는 원칙이다. 멀리 다른 나라 예를 볼 것 없이 우리나라에서는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6년부터 계열 금융사의 계열사 주식에 대해선 의결권 행사를 금지해왔다. 고객 돈으로 총수 일가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불합리를 막기 위해서다. 현재 30%로 풀려 있는 게 되레 원칙에서 벗어난 비정상적인 상태다. 이를 일부나마 교정하는 법규에 저항하는 게 총수 일가의 지배력 유지에는 도움이 될지언정 삼성이란 기업에 이익이 될 리 만무하다. 더욱이 송사 비용은 기업 몫이다. 법규에 저항함으로써 지배력을 보장받는 쪽은 총수 일가인데, 그 비용은 기업이 부담하는 ‘혜택과 비용의 기막한 불일치’를 어떻게 봐야 할까.
이런 불합리는 공정거래법에 국한되지 않는다. 공정거래법 11조에 대한 헌소 제기는 그나마 합법적인 권리 행사라는 형식이라도 갖췄지만, 금융산업구조개선법(24조) 문제는 이런 차원을 넘어선다. 해당 법규는 재벌 금융사의 계열사 지분 소유를 5%로 제한하고 있는데, 삼성카드는 6월 말 현재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4%를 갖고 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무려 7년째 법을 위반하고 있는 상태다. 삼성생명도 삼성전자 주식 7.26%를 보유함으로써 실정법 테두리를 넘어서 있다. 이에 따른 삼성의 부담은 법을 지키지 않는 회사라는 이미지 실추에 머물지 않는다. 법 위반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위해 금융감독 당국에 로비 활동을 벌이고, 아예 잣대의 변경을 겨냥해 국회와 행정부를 상대로 물적·인적 로비 비용을 적잖이 들인다는 소문도 파다하다. 이를 구체적으로 추산할 순 없어도 기업쪽엔 상당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 역시 기업 이익과는 무관한 총수 일가의 지배력를 강화하기 위한 지출임은 물론이다. 검찰 특수부 출신을 중심으로 법조인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볼 수 있을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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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가문과 기업의 이익 불일치
이에 대해선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하는 지금의 소유·지배 구조를 유지하는 게 곧 삼성의 이익과 연결된다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취재 불응으로 삼성그룹의 공식 창구에서는 이런 답변을 직접 들을 수 없었고, 한발 비켜나 있는 삼성경제연구소쪽에서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윤순봉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은 소유·지배 구조 논란 및 금융·산업 자본 분리 원칙에 대해 “코끼리한테 호랑이 꼬리를 붙이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끼리 꼬리가 불품없어 보일지 몰라도, 나름대로 환경에 적응한 오랜 진화의 결과물인데, 멋있어 보인다고 호랑이 꼬리를 붙이려 드는 건 맞지 않다는 것이다. 윤 부사장은 “신이 아닌 이상 어떤 체제가 좋을지 미리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어떤 체제가 좋은지는) 나중에 거둔 실적이 보여줄 뿐”이라고 말했다. 이건희 회장을 정점으로 한 지금의 삼성 체제가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오른 사실을 일컫는 것으로 들린다.
삼성전자가 거두고 있는 눈부신 실적 덕에 이런 주장은 일반인들에게 상당한 호소력을 가질 법한데, 과연 그럴까?
이건희 가문이나 삼성이 지금 같은 지배 체제를 채택할지 말지는 전적으로 삼성쪽의 선택 사항이겠으되 그건 어디까지나 공동체의 룰 안에 머물 때의 일이다. 삼성이 우리 사회와 충돌을 빚고 있는 법규는 삼성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적용되고, 자본주의 시장경제 질서에서 일반적으로 채택되고 있다. 따라서 ‘코끼리 꼬리론’은 ‘동물원 울타리론’으로 대체돼야 마땅하다. 코끼리든 호랑이든 동물원의 울타리를 벗어나는 행동은 저지돼야 할 것이다. 적어도 그 울타리가 공동체의 합의로 마련된 것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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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은 국회 합의를 거친 공동체 규범인 금융관련법과 끊임없이 충돌함으로써 ‘삼성공화국’ 논란이란 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 선진 기업에선 있을 수 없는 무노조 경영을 고수하느라 삼성 계열사들이 치르는 유·무형의 비용도 적지 않다는 해석이다. X파일에서 드러난 삼성 구조조정본부의 대가성 대선자금 불법 지원 의혹은 순전히 기업의 이익을 얻기 위함이었을까. 이재용 삼성전자 상무 등 이건희 회장 자녀들에게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싸게 넘기고, 이재용 상무의 인터넷 사업 실패를 메워주는 과정에서 계열사들이 막대한 금전적인 손실을 입은 것은 또 어떻게 볼 것인가. 사정이 이런데도 삼성에 뒤얽힌 사회적 이슈들은 사실 ‘총수 가문의 영광’을 위해 삼성이란 기업이 손실을 입고 있다는 분석이 비약일까?
김기원 방송통신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전엔 재벌 가문의 이익과 기업 이익, 나아가 국민경제의 이익이 대충 맞아떨어졌는데, 1980년대 접어들면서 이게 삐그덕대기 시작했다”고 진단한다. 개발독재 체제 이후 재벌 기업들의 덩치가 커짐에 따라 창업자 가문의 지분율이 떨어지면서 기업 이익과 괴리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지분율은 떨어지는 와중에 대를 이어가며 지배를 계속하려다 보니 회삿돈을 빼돌릴 수밖에 없다. 이는 곧 비자금 조성을 불가피하게 만들었고, 기업을 멍들게 했다.”
이는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란 게 두산그룹의 ‘형제의 난’이 극명하게 보여준다. 삼성그룹에서 빚어지는 갖가지 사회적 말썽거리도 따지고 보면 채 5%도 안 되는 총수 일가의 지분율로 막강한 지배력을 행사하려는 과정에서 비롯된 바 큰 것으로 분석된다. 무리수로 지배력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곧 법규 위반으로 이어지고 해당 기업들은 빛나는 경영실적을 거두었음에도 사회의 존경에서 멀어진다.
삼성그룹이나 총수 일가는 이런 이해충돌의 문제를 모를까? 한국에서 제일 똑똑한 이들이 모인 집단이라고들 하는데, 그럴 리가 만무하다. 외국의 사례들을 부단히 연구 중인 것으로 볼 때 삼성 내부적으로도 심각하게 이 사안을 고민 중인 게 분명하다.
순환출자에 금융 계열사가 핵심 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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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재벌 일반의 문제와 덧붙여 삼성만이 안고 있는 고유의 문제 때문에 해법을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삼성은 산업자본(삼성에버랜드) → 금융자본(삼성생명) → 산업자본(삼성전자)으로 연결되는 소유·지배 구조를 갖고 있다. 여기서 핵심 고리는 금융자본인 삼성생명이다. 이렇게 금융 계열사가 핵심 고리로 끼어 있는 곳은 삼성뿐이다.”(전성인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 현대자동차도 순환출자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선 삼성과 마찬가지이나, 금융 계열사가 핵심으로 끼어 있진 않다. LG그룹의 경우 금융 부문을 분리해내고 진작에 지주회사 체제로 개편해 지배구조 시비에서 벗어났다.
삼성으로선 법규를 지키면서 지금의 지배체제를 유지할 마땅한 방법이 없다. 해법은 두 가지다. 법에 따라 금융·산업 부문을 분리하든지, 아니면 법의 잣대를 바꿔버리는 것이다. 금융산업구조개선법 24조와 공정거래법 11조에 대한 대응은 바로 잣대를 바꾸려는 노력의 하나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금융·산업 자본의 분리 원칙은 삼성만을 겨냥한 게 아니라는 점이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삼성만 정면으로 위반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삼성 손보기용’이란 시비는 주객전도다. ‘가문의 영광’을 위해 기업과 사회가 비용을 지는 일이 언제까지 가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총수 가문의 영광만이 아닌, 기업과 사회의 영광을 아울러 고민함으로써 ‘영광의 가문’으로 남는 길을 찾아야 할 지점에 접어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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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을 두 부문으로 가를까</font>
삼성그룹과 이건희 회장 가문의 이해관계 충돌을 해소하는 핵심 고리는 금융·산업 부문이 섞여 있는 소유·지배 구조를 고치는 일이다. 이는 삼성과 우리 사회의 충돌 문제를 푸는 길이기도 하다.
삼성은 지난 2002년 말~2003년 초 맥킨지컨설팅에 의뢰해 지배구조 개선 방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역시 이 문제를 고민 중인 것이다. 스웨덴 최대 그룹 발렌베리 가문 등 외국 대부호 기업들의 소유·경영 실태를 세밀하게 연구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삼성 체제의 유력한 대안은 LG그룹 같은 지주회사 체제이며, 맥킨지컨설팅 또한 이런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지만 이건희 회장의 삼성은 이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금융·산업 자본의 분리 원칙과 금융지주회사법에 따라 삼성전자와 삼성생명을 두 축으로 해서 그룹을 두 부문으로 갈라 총수 가문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총수 일가가 삼성생명 지분 등을 팔아 삼성전자 그룹으로 집중시키더라도 그 어마어마한 덩치 때문에 안정적인 지분을 확보하기 힘들다. 삼성전자 지분의 20%를 확보하려면 대략 17조원(주당 50만원 기준)을 들여야 한다.
일각에선 삼성생명을 정점에 둔 금융지주회사그룹을 선택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는 관측도 한다. 금융지주회사 체제에선 은행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삼성생명쪽을 택하는 방안도 나쁘지 않을 것이란 점에서다.
그룹 안팎에선 총수 일가가 대승적·도덕적 견지에서 어느 한쪽으로 마음을 굳히더라도 이를 행동으로 옮기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총수 가문을 감싸고 있는 가신 그룹의 운명을 뒤흔들 수 있는 사안이어서 그룹 상층부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삼성으로선 언제까지나 법을 어기는 상태를 지속하며 사회와 충돌을 빚을 수도 없다. 삼성의 지배구조 해법은 생각해볼수록 까다로운 일인데, 역시 문제의 실마리는 감독 당국이 법 집행의 잣대를 엄격히 적용하는 데서 시작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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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은 뭐 그리 깨끗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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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과 기업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지점에 대한 삼성 사람들의 생각은 어떨까? 기업에 짐을 지우는 존재라며 총수 가문을 거북스러워할까?
삼성인들로부터 여기에 대한 솔직한 답변을 듣기는 어렵다. 총수 일가에 대한 얘기 자체를 꺼리기 때문이다. 평소 만나는 이들한테서 언뜻언뜻 들어온 말은 대략 이런 식이다. “(다른 그룹에 다니는) 친구들과 비교해볼 때 내가 특별히 더 열심히 일하는 것도 아닌데, 월급도 많고 좋은 대우를 받는다. 이걸 뭘로 설명할 수 있겠는가?” 총수의 뛰어난 역량으로 혜택을 받기 때문에 사회적인 물의로 빚어지는 기업 이미지 실추는 상쇄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이들은 총수 가문의 일에는 아예 눈길을 거두는 무관심층과 함께 다수를 이루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피상적인 생각에서 좀더 파고들어가 보면, “다른 그룹 가문은 뭐 그리 깨끗하냐”는 형평론을 발견할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삼성그룹 비서실(1998년 이후 구조조정본부)에서 3년 반 정도 근무하다 삼성을 떠난 ㅎ씨는 “삼성맨들은 국내 최고의 대우를 받으니 자부심이 대단하다”며 “패밀리(총수 가문)의 좋지 않은 면들에 대해선, 그게 어디 삼성에만 있는 일이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불법 변칙 세습, 정치자금 제공, 법규 위반 등 갖가지 사회적 물의는 대한민국 전반에 퍼져 있는 현상인데, 삼성의 존재가 워낙 크다 보니 삼성가의 문제만 도드라져 보일 뿐이라는 게 상당수 삼성인들의 생각이다. 구조조정본부를 중심으로 한 가신 그룹은 이보다 한층 더 적극적으로 “잘나가는 삼성을 괜히 시기하는 이들이 트집 잡는 것일 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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