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없는 남북·북-미 관계 진전에도 납작 엎드려 유연한 처신
대표적 인사들 퇴조, 1기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에 대한 비판에 위축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은 지금 어디에 꼭꼭 숨어 무얼 하고 있는 걸까?
이런 물음을 던지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남북 관계나 북-미, 북-일 관계가 진전되면 어김없이 나타나 ‘훼방’을 놓았던 일방주의 신봉자들인 네오콘들이 숨을 죽이고 있는 것이다. 이례적인 일이다. 6·15 김정일-정동영 면담이 있기 전만 해도 많은 이들은 북핵 문제를 둘러싸고 무력 진압의 필요성을 설파하는 등 한반도 위기설을 증폭시키는 데 열중해왔다. 이런 탓에 언론 지면에서는 ‘6월 위기설’ ‘8월 위기설’ 등 음울한 전쟁 시나리오가 난무했다. 네오콘의 말 한마디에 다들 일희일비했던 게 불과 서너달 전의 일이다. 그런데 남북 관계나 북-미 관계가 전례 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음에도 네오콘들이 이상하리만치 몸을 납작 엎드리고 있다. 남북 관계는 거침없이 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고, 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도 순풍에 돛을 단 듯하다.
라이스, 네오콘 입단속에 나서다
북핵 문제 조율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은 8월23일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미국쪽 핵심 관계자들을 만나 북한에 대한 평화적 핵 이용권 허용 여부 등 쟁점을 협의했으며 서로 충분한 교감을 나눴다고 밝혔다. 6자회담의 미국쪽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이날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가 “회담의 커다란 걸림돌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범네오콘으로 분류되는 럼즈펠드 국방장관도 반 장관과 회담을 마친 뒤 “북한의 평화적 핵 이용권 문제를 논의했으며, 매우 유익했다”고 거들었다. 보기 드문 ‘유연성’을 한목소리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반기문 장관이 밝혔듯이 한-미 사이에 이견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불과 몇 개월 전의 상황과 견주면 확 다르다. 한-미 관계뿐 아니라 북-미 사이에도 뚜렷한 관계 진전이 포착된다. 북한과 미국은 핵 문제의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 따로 수시로 접촉하는 등 활발한 양자협의를 벌이고 있다. 틈만 보이면 판을 깨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종전의 자세와는 사뭇 다르다. 어떻게든 북한의 핵 포기를 유도해 외교적 성과를 이끌어내려는 강한 의지가 엿보인다. 이대로만 간다면 8월 말에 재개되는 6자회담에서는 옥동자를 기대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렇다면 네오콘들은 지금 어떤 처지에 놓여 있고, 무슨 꿍꿍이속을 품고 있는 걸까. 미국 내 외교안보 라인의 흐름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미국 행정부 내 네오콘 세력의 뚜렷한 퇴조를 지적한다. 실제로 미 국무부나 국방부에는 네오콘을 대체한 새 민간인 지도부가 들어섰다. 국방부에는 폴 울포위츠 전 부장관, 더글러스 페이스 정책담당 차관 등 골수 네오콘이 떠나고 고든 잉글랜드 부장관과 에릭 에델먼 차관 등 부시 행정부 1기 때에 비해 이념적 색채가 엷고 좀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진 인사들이 빈자리를 메웠다.
국무부도 마찬가지다. 부시 2기 콘돌리자 라이스 장관 체제가 출범하면서 존 볼턴 전 국제안보담당 차관보 등 대표적 네오콘이 물러났다. 대북정책을 비롯한 국무부의 대외정책은 라이스 장관의 ‘실용주의적 이상주의’에 따라 큰 원칙은 고수하면서도 실제 접근 방식에서는 적잖은 변화를 보이고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한다. 부시 행정부는 2기 들어 기본 정책이 바뀌었다고 말하면 자신들의 1기 정책이 실패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원칙은 변한 게 없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워싱턴 포스트> 등은 6자회담에서 북-미간 양자 접촉을 사실상 전면 허용한 것은 큰 변화라고 지적한다. 더구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네오콘들의 무분별한 대북 강경 발언을 자제시키는 등 입단속에 신경을 쓰고 있다. 네오콘들의 자극적인 말 한마디가 ‘다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격이 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그래서 엊그제만 해도 북한 지도부의 분노를 자아내곤 했던 미국 행정부 인사들의 인신공격성 발언이 크게 수그러들었다.
다시 이라크전의 수렁에 빠진 부시
또 부시 행정부는 그동안 미뤄왔던 제이 레프코비츠(43) 대북 인권특사를 8월19일 조용하게 임명하는 절차를 밟았다. 미 행정부 관리는 “인권특사 임명은 지난해 10월 제정된 북한인권법에 따른 후속 조치일 뿐”이라며 “특사 임명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자세를 낮췄다. 부시 대통령이 탈북자 출신인 강철환씨를 40분간이나 만나 북한 인권 문제의 중요성을 부각시킨 때와는 크게 다른 태도다. 6자회담과 북-미간 대화가 그나마 순항하고 있는 까닭도 네오콘의 이런 낮은 포복 자세와 무관치 않다. 피터 벡 국제위기감시기구(ICG) 동북아 사무소장은 “이라크 전쟁과 북핵 위기 등 부시 행정부 1기에 조성된 대외정책의 난맥상이 강경보수 네오콘들을 일시적으로 침묵하게 만들었다”고 분석한다. 피터 벡 소장은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의 좌장 격인 딕 체니 같은 이도 협상 결과를 기대하지는 않지만 다른 대책이 없으니 두고 보자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고 네오콘의 최근 동향을 전했다.
네오콘들을 더 위축시키는 것은 자신들을 향한 미국 내 차가운 분위기다. 이라크전에서 아들을 잃은 신디 쉬한의 1인 시위를 계기로 반전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고, 정치권이 다시 이라크전 논쟁에 빠져들고 있다. 이라크전 지지율이 가장 낮은 30%대로 곤두박질쳤고, 공화당 의원들의 입에서조차 이라크 주둔 미군의 조기 철군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cnn>은 지난 8월21일 특집 다큐멘터리에서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대량살상무기(WMD)를 갖고 있다는 엉터리 정보를 내세워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를 침공했던 자세한 내막을 폭로하기도 했다. 사정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부시 행정부 내 네오콘들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 의혹도 터무니없이 부풀린 것으로 드러났다. <워싱턴 포스트>는 8월23일치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 현지 조사를 벌인 결과 “2년 전에 이란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수입한 핵 설비에서 발견한 폭탄급 우라늄의 흔적은 이란의 핵무기 개발의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프랑스·일본·영국·러시아 과학자와 더불어 미국 과학자까지 포함된 IAEA 조사팀은 지난 9개월간 수집한 관련 자료를 분석한 뒤 “폭탄급 우라늄의 흔적은 이란이 이 설비를 수입해온 파키스탄에서부터 있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 이 조사 결과는 9월 초에 열리는 IAEA 이사회에 보고된다.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구실로 이라크식으로 이란 정권 교체를 꾀했던 네오콘들로서는 또 다른 타격인 셈이다.
네오콘 재기의 발판은 6자회담 실패?
북한 핵 개발의 실상도 네오콘들의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않다.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23일 파키스탄 핵 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1990년대 초부터 북한에 (고농축 우라늄 제조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본체와 관련 부품, 설계를 보냈다”고 밝혔다. <교도통신>은 “파키스탄의 대통령이 칸 박사가 북한에 핵기술을 이전했다고 확인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이번 발언은 북한이 플루토늄뿐 아니라 그간 일관되게 부인해왔던 우라늄 농축에 의한 핵개발에도 큰 관심을 보였음을 뒷받침하는 것이어서 6자회담 향방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무샤라프 대통령은 왜 하필 6자회담의 긍정적 분위기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런 돌출 발언을 했을까. 네오콘들이 자신들의 주장이나 정책을 관철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들며 여론 조작이나 정보 유출을 일삼아왔다는 점에서 발언의 배경을 의심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다. 또 <아사히신문>은 8월21일치에서 미국 정부 고위 관계자의 말을 빌려 “북한이 3월 말께 원자로 가동을 중단한 뒤 5월에 폐연료봉을 인출했던 영변 원자로(5천kW급)를 7월 말 4차 6자회담이 시작되기 전에 재가동했다”고 전했다. 이처럼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북한에 불리한 정보들은 주로 일본 언론을 통해 흘러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일본의 보수 언론과 네오콘 사이의 끈끈한 유착 관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어쨌든 미국 네오콘들의 ‘세력 약화’는 북한에 다시 없는 기회다. 6자회담의 실패는 죽을 쑤고 있는 네오콘에게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줄 수 있다. 독수리의 눈매로 세 반전을 노리는 네오콘들에게 어떤 빌미도 주지 않기 위해서는 미국과 적절한 타협이 불가피한 셈이다.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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