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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파? 해외파? 머리 뜯고파?

등록 2005-08-30 15:00 수정 2020-05-02 19:24

축구 국가대표 감독 선정을 둘러싼 백가쟁명, 아직까진 국내파 우세
전·현직 해설위원 10명 차범근·조광래·김호·허정무 등을 꼽아

▣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kimck@hani.co.kr

백가쟁명이다. 대한민국 축구에 관해서는 특히 전문가가 따로 없다. 모두가 입장이 있고, 주장하는 바가 다르다. 조 본프레레 감독 퇴임 이후 대표팀 사령탑에 대한 논의도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라져 있다. 도대체 누구를 앉혀야 하나? 여론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는 대한축구협회도 고민이 클 것이다.

9개월, 한국 축구를 잘 알아야 한다

비교적 축구판을 객관적 시각에서 접근할 수 있는 전·현직 축구 해설위원 10명의 생각도 달랐다. 10명의 해설위원은 차범근 수원 감독 등 국내 지도자부터 팬들한테는 생소한 이름의 오트마르 히츠펠트 전 바이에른 뮌헨 감독까지 각양각색의 후보를 차기 사령탑으로 추천한다.

공통점을 찾는다면 “2006 독일 월드컵까지 9개월밖에 시간이 없기 때문에, 한국 축구를 잘 아는 사람이 지휘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남 FC서울 스카우트는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에 대비해 아나톨리 비쇼베츠 감독과 함께한 적이 있다. 외국 감독들이 선진적 수준을 갖췄겠지만 대화가 잘 안 됐다. 시간이 없는 현재 상황에서는 외국인 지도자보다는 국내 감독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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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식 한국방송 해설위원은 “외국인 감독을 데려오기에는 시간적으로 촉박하다. 지난해 브뤼노 메추 감독을 영입하려다 실패한 것처럼 자칫 영입 과정에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차라리 우리나라 감독이 나을 것 같다”고 말한다.

이 밖에 정윤수 문화평론가, 박문성 MBC ESPN 해설위원이 국내파 감독을 선임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신문선 SBS 해설위원, 김대길 KBS스카이 해설위원도 국내에 있는 외국 감독이나 국내파 감독을 후보로 추천했다.

가장 강력한 지지를 받는 국내파는 차범근 수원 삼성 감독과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 김호 전 월드컵대표팀 감독이었다. 선이 굵고 이론에 밝은 허정무 전남 드래곤즈 감독도 ‘다크호스’로 거명됐다.

정윤수씨는 “차범근 감독은 1998년 상처를 크게 입었다. 그러나 축구팬들의 지지가 있고 본인의 회복 의지도 있을 것이다. 현재 여론으로 보나 그를 뽑는 게 논란을 줄일 수 있다”라고 강조한다. 김성남 스카우트는 “조광래 감독은 월드컵 선수로 뛰었고, 지도자로 K리그 우승을 한 경험이 있다”며 기회를 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미 현역에서 은퇴한 노지도자 김호 감독에 대한 지지도 나왔다. 최경식 해설위원은 “김호 감독은 특유의 카리스마가 있다. 고종수나 데니스도 잘 다독여 훌륭하게 키워냈다”며 “현재 축구협회와 문제가 있긴 하지만 잘 풀면 괜찮을 것”이라고 밝혔다. 최 위원은 김정남 울산 현대 감독도 단기적으로 대표팀을 맡아도 좋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쓴소리 하기로 유명한 신문선 해설위원은 독특한 시각을 보여준다. 그는 “감독을 선임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기준점을 설정하는지가 중요하다”며 “월드컵 최종예선 과정에서 나온 문제를 풀 수 있는 코칭 철학을 갖춘 지도자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선수들의 정신력을 다잡고, 수비의 불안 문제를 털어내며, 결정력과 해외파의 낮은 기여도 문제에 대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본선은 아시아 예선 때와 판이하게 다르다. 최소한 유럽 2개 팀과 만나 수세와 열세의 경기를 펴다 역습 펀치를 날릴 수 있는 유럽팀에 정통한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프로축구 부산 아이파크의 외국인 감독 이안 포터필드를 1순위로 꼽은 까닭이다. 김대길 해설위원도 “포터필드 감독이 명선수도 없는 부산을 이끌고 올해 전기리그 우승을 차지해 기대를 모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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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특정 국내파 감독에 대한 강한 불신도 표출됐다. 특히 차범근 감독이 새 사령탑을 맡는 것에 대한 강한 반발이 감지된다. 한 해설위원은 “이미 월드컵에서 실패한 감독을 다시 쓰는 것은 안 된다”며 차 감독에 대한 부정적 견해를 드러냈다. 또 다른 해설위원도 “차 감독은 소심하고 대범하지 못하다. 인터뷰할 때도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며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이런 약점과 대비되는 쪽으로 허정무 감독을 지목하는 의견도 있었다. 한 해설위원은 “허 감독이 선수를 휘어잡고 다독이는 용병술 차원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또 황선홍, 홍명보 등 현재 대표팀 선수들의 바로 윗선배를 코치로 활용함으로써 대표팀의 응집력을 높일 수 있다고 국내파 유용론에 힘을 실었다.

이에 비해 외국인 지도자를 영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상대적으로 젊은 해설위원쪽에서 강하게 드러났다. 서형욱 문화방송 해설위원은 “애초 외국 감독을 기용하려고 했던 상황과 현재 상황이 다른 게 없다”며 “팀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명성 있는 해외파 감독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그는 “잉글랜드의 보비 롭슨 감독은 나이가 많아 재임 중 장례를 치를 수 있다는 농담이 나오지만 경력이 화려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최고의 카드”라고 제안했다. 독일 출신으로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뮌헨을 챔피언스리그에서 여러차례 우승시킨 히츠펠트 감독도 후보 2순위로 꼽았다.

젊은 해설위원들은 외국인 지도자 선호

한준희 문화방송 해설위원은 마르셀로 비엘사 전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장티가나 전 풀햄 감독을 제시했다. 한 위원은 “비엘사 감독의 경우 한국이 현재 사용하는 3백의 달인이며, 3-3-1-3 시스템을 완성한 세계적인 명장이어서 한국팀에 매우 매력적”이라고 설명했다. 한 위원은 이런 수준급 외국 감독을 데려오기 어렵다면, 국내 감독도 괜찮을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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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2일 기술위원회에서 대표팀 감독 선정 윤곽을 확정해야 하는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회와 국제국은 외부와의 접촉을 기피한 채 감독 선정을 위한 자료 수집과 후보자 접촉으로 매일 비상 상태다. 그러나 국내파 후보가 많지 않고 한국을 잘 아는 마땅한 해외파가 없어 곤혹스럽다. 이런 어려움을 반영하듯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2006 독일 월드컵에서 최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는 지도자를 찾고 있다. 좀 기다려달라”며 타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까지 ‘감독 탓’인가

유소년 클럽 시스템·국내 프로리그 활성화 등 자성론도 고개 들어

새 감독 선임 문제로 온 나라가 떠들썩한 상황에 대해 문제의 본말이 전도됐다는 자성론이 만만치 않다.
정종덕 전 건국대 감독은 “우리 현실이 월드컵 4강이 아니고, 정말 4강이 되기 위해서는 초·중·고 축구 환경부터 개선해야 한다”며 “이런 논의 없이 마치 감독이 요술쟁이처럼 월드컵에서 성적을 내줄 것을 믿고, 감독 타령만 하는 상황이 황당하다”고 비판한다.
대표팀 후보로 거명되는 조광래 전 FC서울 감독의 진단도 뼈아프다. 조 감독은 “대표팀이 잘되기 위해서는 국내 프로축구 리그의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돼야 한다”며 “당장 눈앞에 닥친 월드컵에 대비해 감독 선임도 잘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앞선 것은 국내 프로리그 수준을 높이기 위한 고민”이라고 강조했다. 조 감독은 “월드컵 목표를 한 단계 낮추고, 국내 프로리그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장기 전략을 세워야 어떤 감독이 와도 대표팀을 안정적이고 여유롭게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대의 흐름은 이런 쪽으로 가고 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이 2002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1년6개월간 프로팀 선수들을 마음대로 불러 썼던 일은 더 이상 없다. 더불어 한국 선수들의 게임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한 근본적인 혁신이 더 시급한 실정이다.
조 감독은 “프로리그 20년이 된 나라에서 유소년 클럽 시스템의 틀이 갖춰지지 않은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며 “창조적인 축구선수를 키우는 토양을 만드는 데 주력하지 않고서는 4년 뒤, 8년 뒤에도 대표팀 감독 선임을 놓고 똑같은 문제가 제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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