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청전쟁 선전조칙 초안’에서 ‘조선’을 대상에 넣었다 뺀 문서 최초 공개
“청일전쟁은 우발적 전쟁이었다”는 일본 학계의 시각을 반박하는 근거 될 듯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천우를 보존하고 만세일계의 황조(천황의 자리)를 이어받아 대일본제국 황제는 충실하고 용무한 백성들에게 알리노라. 짐은 청국과 조선(밑줄을 긋고 지워짐)에 전쟁을 선포하노라.”(일청전쟁 선전조칙 제5초안)
요시노리 일본공산당 전 의원의 분석
1894년 청일전쟁 때 일본은 전쟁을 벌인 청뿐만 아니라 조선에 대해서도 선전포고를 하려 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같은 사실은 요시오카 요시노리(75) 전 일본공산당 의원이 일본 도쿄의 국회 헌정자료관에 있는 ‘일청전쟁 선전조칙 초안’을 분석한 결과 드러났다.
요시오카 전 의원은 지난 5월 도쿄에서 이 문서의 초안 사본을 <한겨레21>에 건넸고, <한겨레21>은 민족문제연구소에 검토를 의뢰했다. 서민교 박사(성신여대 강사·일본 근대사)는 “일본의 선전조칙 초안을 보면 초기에는 교전 상대국을 ‘청 및 조선’이라고 설정했으나, 최종적으로는 청국만을 교전 상대국으로 한 선전조칙을 각의에서 결정했다”며 요시오카 전 의원의 분석에 동의했다.
요시오카가 건넨 문서는 ‘일청전쟁 선전조칙 제5초안’의 사본. 총 7쪽인 이 문서의 표지에는 ‘이토 미요지 가문의 문서-일청전쟁 선전조칙 초안’이라고 쓰여 있다. 당시 내각을 이끌던 이토 히로부미가 그의 최측근인 이토 미요지에게 지시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청일전쟁 선전포고 문서 초안은 제1초안부터 제6초안까지 남아 있고, 최종 확정된 선전조칙은 8월1일 천황에 의해 공포된다. 원본이 있는 제5초안과 달리 나머지 제1·2·3·4·6 초안은 당시 정부 고관이 작성한 필사본 형태로 남아 있다고 요시오카는 전했다.
제5초안과 나머지 초안을 비교 분석해보면, 일본의 선전포고 대상이 수시로 바뀌는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제1·2초안에는 청이 단독 선전포고 대상이었다가, 제3안과 제4안에서 조선이 청과 함께 선전포고 대상에 포함된다. 그러다가 제5초안에서는 ‘청 및 조선’이라는 문구에서 조선에 밑줄을 그어 지운 흔적이 발견된다. 그 다음 제6초안에는 선전포고 대상이 다시 청으로 한정되고, 최종 선전포고에서도 청이 단독 선전포고 대상국으로 유지된다.
그럼 일본이 조선을 개전국으로 선포하려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요시오카는 “제5초안과 1894년 7월23일 일본군의 경복궁 점령사건과의 관련성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기존 제3·4초안에서 조선이 선전포고 대상으로 포함돼 있다가, 제5초안에서 빠진 이유는 일본이 사주한 조선 왕조 친일 쿠데타(경복궁 점령사건)가 성공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청일전쟁 발발 당시 조선 조정은 청에 기울어 있었다. 1876년 조선과 강화도조약을 체결해 조선에 진출한 일본은 1884년 김옥균·박영효 등 개화파를 후원해 갑신정변을 일으켰으나 실패해 되레 청의 종주권이 강화됐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1894년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나고, 조선 조정이 청에 원병을 요청해 그해 6월8일 청군이 출동하고, 일본군도 ‘톈진조약’을 근거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한다. 양국의 전쟁 분위기가 무르익던 중, 7월23일 일본 군대의 경복궁 점령사건이 일어난다. 일본군이 왕궁 수비대와 총격전을 벌여 경복궁에 진주하고, 이튿날 오토리 조선주재 일본공사가 대원군을 데리고 왕궁에 입성한 것이다.
국제법 준수하기 위해 망설인 흔적
요시오카의 해석은 이렇다. 원래 일본은 아시아 침략을 위해 청과 조선, 양국에 전쟁을 일으킬 참이었으나, 대원군을 위시로 한 친일 정권을 세움에 따라 조선을 전쟁 협력자로 이용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듯 선전조칙 초안을 보면 조선에 대한 일본의 태도가 달라진다. 조선을 전쟁 대상에 포함시킨 선전조칙 제3초안에서 일본은 조선에게 다음과 같이 화를 낸다.
“청과 조선이 서로 손을 잡고 가까이 하면서 (일본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는 행동은 도대체 무엇이냐?”
반면 조선이 선전포고 대상에서 지워진 제5초안에서는 조선에 대한 태도가 한층 누그러져 있다.
“제국은 이에 조선에 권하여 그 잘못된 정치를 변혁하고 안으로는 치안의 기초를 다지고 밖으로는 독립국의 권위를 완수하도록 했는데, 조선은 이를 긍정하였지만 청은 시종일관 뒤에서 백방으로 그 목적을 방해하여….”
그러나 서 박사는 “각 초안에 작성일자가 명시되어 있지 않아, 제5초안이 경복궁 점령사건 직후에 작성됐다고 단정짓기는 무리”라며 “이보다는 선전포고 없이 전쟁이 시작됐고 일본이 ‘국제법을 준수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에서 조선을 어떻게 취급할 것인가를 두고 망설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선이 청과 동맹해 일본에 적대 행위를 할 경우 조선을 공격해도 국제법적인 문제가 없도록 청과 조선을 동시에 선전포고 대상으로 넣었다가, 나중에 조선을 국제법적으로 대등한 국가로 취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의견이 우세해져 조선이 빠졌을 것이라는 견해다.
이번 발견은 청일전쟁을 청과 일본의 교전으로 시작된 우발적인 전쟁으로 보는 일본 역사학계의 시각에 강력한 반론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서도 청일전쟁은 치밀하게 사전준비로 이뤄진 전쟁이라기보다는 갑오농민전쟁으로 출병한 청과 일본이 부딪친 사건으로 기술되고 있다. 현재 일본 역사학계 주류는 7월25일 인천 앞바다의 ‘풍도해전’을 첫 전투로 기록하고 있다. 반면 한국과 일본의 진보적인 역사학계에서는 경복궁 점령사건을 첫 교전으로 보고 있다. 이 문서대로라면 후자의 의견이 설득력 있게 비친다.
요시오카는 “일청전쟁 선전조칙 초안은 일본 역사학계에 공개된 적이 있으나 아무도 조선이 삭제된 사실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며 “19세기 후반부터 일본이 아시아를 침략하려고 했던 사실이 일본 사회에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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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군대의 경복궁 점령사건을 청일전쟁 속에서 파악하는 것과 이와 별개의 사건으로 파악하는 것은 큰 차이가 있다. 그동안 일본은 청일전쟁을 ‘조선의 독립’을 위해 치른 전쟁이었다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국민들도 태평양 전쟁과 달리 메이지 유신 시기의 청일·러일전쟁 등에 대해선 ‘과거사 책임’을 느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천황이 선포한 청일전쟁 최종 선전조칙에도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
“조선은 제국(일본)이 처음에 가르치고 이끌어 열국의 대열에 들게 만든 독립국이다. 그런데도 청은 조선을 속방이라고 하며 음으로 양으로 그 내정에 간섭하니… 제국이 솔선해서 제 독립국의 대열에 들게 한 ‘조선의 지위’와 ‘그것을 표시하는 조약’(강화도조약을 가리킴)을 업신여기는 청조 중국의 잘못된 욕망 때문에 일본은 부득이 전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애초 조선을 선전포고 대상으로 계획했고, 무력을 이용한 경복궁 점령을 통해 친일 정권을 세운 사실을 볼 때 이런 일본의 태도는 이중적이기 그지없다.
그동안 일본은 참모본부가 편찬한 <일청전사> 등을 근거로, 경복궁 점령사건이 우발적인 소규모 충돌사건에 지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일본 군대를 경성으로 이동시키는 과정에서 조선 병사가 먼저 발포했고, 일본군은 어쩔 수 없이 응전해 왕궁으로 들어가 국왕을 보호했다는 것이다.
일본 역사학자 나카쓰카 아키라는 후쿠시마 현립도서관에서 발견한 ‘조선 왕궁에 대한 위협적 운동계획’이라는 제목의 <일청전사> 초안 문서를 근거로 이에 대해 반박한다. 이 문서에는 “연대 2대대와 공병 1소대가 불시에 왕궁으로 침입해 조선 군사를 몰아내고 국왕을 옹위해 수호하라”는 등의 치밀한 작전계획이 드러나 있다. 그는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라>라는 책에서 <일청전사> 초안 정리 과정에서 이같은 사실이 빠졌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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